<돌 씹어먹는 아이> <바느질 소녀> <어떤 아이가> <광인 수술 보고서>와 같은 송미경 작가의 책들을 보면 다른 작가들과 다르게 이 작가는 작품세계가 오묘하고 특이하고 색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래서인지 송미경 작가의 새로운 책을 만나게 되면 또 어떤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펼쳐낼지 궁금해진다. 제목이 <일기 먹는 일기장>이다. 제목부터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1동부터 7동까지 색깔별로 나누어진 무지개 아파트, 색깔만 다른게 아니라 집의 크기도 다르다. 1동은 방이 1개, 7동은 방이 7개이다. 한 단지 안에 여러 평수의 아파트가 있으면 차별이 심하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었기에 지민이와 동진이가 사는 무지개 아파트는 그 상징성을 나타내는 듯 하다. 지민이는 1동에 살지만 엄마아빠랑 함께 자고, 좋아하는 피아노도 있어 행복하다. 동진이는 7동에 살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고 엄마가 하라는데로 별별 학원을 다 다니지만 공놀이를 할때나 샘소리 피아노학원에 갈때만 행복하다.

어느날부턴가 지민이가 쓴 일기들이 사라진다. 일기장이 일기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께 혼나고 남아서 청소를 하기 일쑤다. 동진이는 지민이처럼 일기가 사라지는게 아니라 공이 자꾸 사라진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지만 지민이랑 동진이는 서로의 이야기를 믿어주며 친구가 된다.

지민이와 동진이 이외에도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귀는 잘 들리지 않지만 항상 동진이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샘소리 피아노 선생님, 동진이가 재채기를 하고 코파는 소리까지 들린다며 걸핏하면 인터폰을 하는 신경질쟁이 지팡이 할멈, 기린상가의 행복식당 할머니..이들을 통해 아이들의 눈에 우리는 어떤 어른의 모습을 보여야할지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물론 우리 아이에게도 눈맞추고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부모인지, 맨날 신경질적으로 잔소리만 하는 부모인지 내 모습도 돌아보게 한다.

지민이와 동진이는 지구 반대편 음악 잔치에 초대를 받아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기차를 타고 지구 반대편 마을에 도착한다. 안내원 아저씨를 따라 간 곳에는 각자의 방이 있다. 지민의 방에는 그동안 사라졌던 지민이의 일기와 피아노가 놓여 있다. 간절한 소원과 진실한 마음을 보관하는 곳으로 이것들이 나중에 지민이의 꿈을 이루게 해준다는 말을 듣는다. 지민이에게 가장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원했던 것들이 진짜 사라진 게 아니라 지구 반대편 어느 곳에 이렇게 보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께 보이기 위해 쓰는 가짜 일기가 아니라 지민이의 마음이 담긴 일기는 정말 어디로 사라져버린게 아니라 이렇게 남아있는 것이다. 동진이의 방에는 동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공들이 가득하겠지... 음악잔치에서 동진이는 '일기 먹는 일기장' 노래를 마음대로 부르고, 지민이는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며 자신들만의 느낌대로 즐겁게 연주한다. 1등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처음 마음과는 다르게 꼭 1등이 아니어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행복하니까 말이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도 학원을 다니느라 늘상 바쁘다.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이들이 잠시라도 빈둥거리는 모습을 참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여유가 없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때 즐거운지 알아낼 여유도 없이 학원에서 학원으로 돌아다니기 바쁘다. 아이들의 꿈은 부모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찾게 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쉽지는 않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가 반발을 하거나,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으면 순간 잔소리가 나오려 한다. 아이의 사춘기는 아이 뿐만 아니라 부모인 나도 성장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이 책을 보며 또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스스로의 길을 찾도록 기다려주어야 해!'

'독도가 우리 땅'임을 그 누구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일본이 끊임없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주장한다. 우리는 독도가 왜 우리네 땅인지 그 이유를 댈 때 빈약한 역사지식을 토대로 이야기하곤 한다. 신라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한 이야기, 안용복이 관리 행세를 해가며 독도를 지켜낸 이야기, 세종실록 지리지에 독도가 표기된 이야기 등등.. 이러한 증거가 있음에도 일본은 왜 계속해서 독도를 다케시마라 하며 세계에 자기 땅임을 주장하고 있는 걸까?

이 책에서 저자는 이전 책인 <독도를 지키는 사람들>에 이어 해방 이후 독토 분쟁의 역사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나리는 선생님이 내주신 과제를 하기 위해 자료를 조사하고, 아빠와의 대화를 통해 세가지 질문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첫째, 일본은 왜 요즘 들어 더 극성스럽게 독도를 두고 자기네 땅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걸까?
둘째, 독도 문제를 국제 사법 재판소에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걸까?
셋째, 독도를 왜 군대가 지키지 않을까?

이 세 가지 질문에 우리는 정확하게 답변할 수 있을까?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분노하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걸 목아프게 주장하면서 정작 일본이 독도를 차지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해오고 있고,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또 남북전쟁이라는 시련을 겪으며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왔다. 그 와중에도 일본은 물밑작업을 하며 끊임없이 독도를 다케시마로 만드는 데 치밀한 외교 작전을 펼치며 열을 쏟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소극적인 대처만 해왔다는 게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 책은 우리가 독도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자그마한 행동이라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한다. 
이 책이 동화로서는 아이들에게 재미를 줄 수는 없겠지만, 독도를 제대로 알기 위한 자료로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년 독도의 날이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독도 그림 그리기나 글쓰기를 한다. 5,6학년 정도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다함께 이 책을 읽고 독도에 관한 자료도 조사하고, 토론을 해보면서 독도에 대해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막연하게 독도 사랑이라는 표어만 제시하기 보다 실질적인 자료를 통해 아이들이 독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길 바래본다.  

표지에 나타난 호빵처럼 동그란 얼굴에 빨간 망토를 한 아이, 민영이의 동생 민국이다. 나는 막내여서 가끔은 동생이 있는 아이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고, 우리가 놀 때 자꾸 따라오는 친구 동생들이 귀찮게 여겨지기도 했다. 다 큰 어른이 된 지금, 마음을 나눌 여동생이 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른이 될수록 외로움이 깊어진 것 때문일까? 나의 큰 아이는 딸이다. 우리 딸에게 동생은 아주 특별했다. 샘을 내지도 않고 어찌나 동생을 챙기는지 어떨땐 엄마아빠보다 더할 정도였다. 두 아이 모두 사춘기가 된 지금은 가끔 서로 못잡아먹어서 안달이긴 하지만 그래도 다른 한 명이 없으면 어쩔뻔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개발로 인해 폐허가 되어가는 마을 응달말에 사는 민영이에게 동생 민국이는 때론 귀찮지만 지켜주고 안아주어야 할 동생이었다. 헐크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록 왈가닥인 민영이와 파워레인저를 꿈꾸는 호빵레인저 민국이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민영이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은혜와 은혜아빠도 있다. 아이들이 함께 모여 놀고 민영이 엄마가 갈비를 가져와 마당에서 고기 파티를 하는 날에는 다 함께 모여 저녁을 먹고 놀았던 마을은 어느새 한 집, 두 집 떠나가고 점점 폐허가 되어 간다. 재개발로 인해 겪는 아픔들은 고스란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진다. 정들어 살던 곳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하는 그 마음들이 매번 짠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는 착하기만 한 은혜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그 때 그때 풀어버리는 민영이에 비해 은혜는 한없이 착하다. 심성이 그러하기도 하겠지만 착하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하면 그것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아니나 다를까. 은혜는 엄마랑 헤어졌듯이 아빠랑 또 헤어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착해질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아빠랑 헤어지게 된 은혜가 한없이 가여워진다. 은혜가 어디 가서 살든지 씩씩함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한없이 동화적인 요소를 가진 이 이야기에는 상상하지 못한 슬픈 반전이 있었다. 호빵레인저로서 태풍이 닥친 날에도 고양이를 지키려 빗속을 뚫고 달려갔던 민국이가 그 임무를 수행했지만 정작 자신은 지켜내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까지 슬픔을 극대화 시켰어야 했을까? 잠깐동안 작가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의 빈자리를 느낀다는 건 참으로 오랫동안 마음 한 켠이 쿡쿡 쑤시고 찢어질 정도로 아린 것이다. 엄마와 할머니, 민영이에게 너무나 큰 아픔일 것이다. 이야기 안에서 민영이는 미래에서 온 자신과의 만남을 통해 상처나고 비워진 마음을 메꿔나가긴 하겠지만 예상치 못한 슬픔에 책 읽는 나도 오래도록 가슴이 아팠다.

폭염이 계속되고 있는 요즘, 조그만 일 하나에도 불쾌지수가 높아진다. 괜히 짜증부리게 되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순간, 내 옆에 있는 나의 사람들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마음 깊이 되새긴다. 그래서 한번 더 안아주고, 높아졌던 목소리도 부드럽게 낮추고, 찡그렸던 얼굴을 미소로 바꾸어본다. '오늘도 소중한 나의 사람들과 함께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잘 살았습니다.' 소리내어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