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텔레비젼을 통해 본 서울의 모습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넓은 집에 부엌과 거실이 따로 있고, 아이들도 각기 자신의 방이 있는 풍경, 높고 큰 건물의 모습들, 난 서울의 모습은 다 그런 줄 알았다. 훌쩍 자란 후에야 그것이 서울의 전부가 아니라 아주 일부라는 걸 깨달았다. 

요즘 이옥수 작가의 여러 작품을 만나고 있는데, <푸른 사다리>는 사계절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서 쏙 빠져들어 봤기에 이 작품도 기대가 되었다.

법원 단지 앞 꽃마을 비닐하우스에 사는 윤제네와 비닐하우스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다소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윤제의 시각에서 보여지는 빈민촌 삶의 모습과 자신의 내면의 갈등, 성장의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윤제네는 강원도에서 아버지가 광부를 하다가 꽃마을 비닐하우스촌으로 이사를 왔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사연이 없고, 어려움이 없는 집이 없다. 술을 먹고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는 아빠도 싫고, 동네 골목대장을 하고 있는 태욱이에 대한 경계심과 자신의 형편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반항심으로 가출을 하기도 하고, 나쁜 행동을 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파출소를 드나들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잘못된 짓을 저질러도 한결같이 보듬어주는 엄마와 야단을 치면서도 든든하게 지켜주는 혁제 형,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생의 전부는 공부라며 계속 다독여주는 영진이형, 처음 이사왔을 때 친구들이 놀리는걸 못하게 해주어 계속 따라다니는 기철이, 자신때문에 윤제가 잘못되었다며 친구가 되어준 태욱이와 윤제가 좋아하는 혜미가 있었기에 윤제는 자신을 조금씩 사랑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땅에 무허가로 지어진 비닐하우스에서 그곳이라도 지키기 위해 아웅다웅 다툴때도 있지만, 서로 보듬어 안으며 지켜나가려 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장기 과정에 있는 윤제는 힘겹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더 단단해졌으리라 여긴다.  

'제발 부끄러워하지 말고 너의 신념을 지켜!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싫은 건 싫다고 말해!'라고 윤제에게 말하고 싶지만, 만약 내가 윤제의 상황이었다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윤제만한 아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자꾸 마지막 한 번이라고 협박하는 그 아이들에게 윤제가 이제는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나길 바란다. 조금씩 조금씩 푸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작은 꿈을 펼칠 수 있기를 응원한다.

 

누군가 추천하지 않았다면 쉽게 잡지 않았을 책이다. 무섭고 날카로운 인상의 책표지때문이다. 제목과 책표지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짐작하기도 어려워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읽어봐야 할 책으로 마음속에 정해놓았기에 어느새 내 손에 다가와 있었다.

6학년인 사춘기 소년 지로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지금은 아나키스트라고 불리는 과격한 프리라이터 아버지와 찻집을 운영하는 어머니, 누나, 여동생 모모코와 함께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화해해가면서 몸 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성장해나간다.

지로는 그냥 평범한 아이이지만 집안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과격할뿐만 아니라 특별히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작가라고 하는 아버지를 보며 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학교는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기관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학교 수학여행비가 너무 비싸다며 학교에 쫓아와 큰소리를 내니 지로는 아버지가 학교에 오는 것이 늘 불안불안하다.

지로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외가와는 일체 연락을 끊고 살아가는 엄마가 혼자서 찻집을 운영해나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 나이많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누나의 모습은 왠지 불안불안하다. 그리고 아빠의 행동에 늘 노심초사하고 외할머니댁에 가고싶어하는  동생 모모코를 위해서는 늘 따뜻한 오빠가 되어준다. 1권에서는 이 시기의 아이들이 겪는 친구문제, 성에 대한 의식, 학교폭력 문제들이 생겨나 힘겨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맞서기도 하면서 지로의 일상이 잘 나타나 있다.

결국 집에 잠시 머물렀던 아키라 아저씨로 인한 사건에 말려들어 지로네 가족은 도쿄를 떠나 오키나와 근처 이리오모테라는 섬으로 이사를 간다. 1권에서는 도쿄에서의 생활모습이 나타났다면 2권에서는 남쪽의 오키나와에서의 지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사온 곳에서의 아버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섬 사람들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조상을 영웅으로 대우해주고, 매일 뒹굴거리던 아버지가 밭에서 일을 하고 고기도 잡으로 나가며 항상 바쁘게 사는 것이다. 전기도 없고, 수세식 화장실도 없는 숲속에서의 생활이 편하지 않지만 지로와 모모코는 무엇이든 함께 나누어주는 이곳의 생활에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학교는 필요없다고 하는 아버지 몰래 학교를  방문해 결국 전교생이 다섯명인 학교도 다니게 되고, 외국인 베니씨도 만나면서 섬 생활이 즐거워진다.

하지만 섬에 리조트를 건설하려는 문제로 인해 또다시 아버지는 그들과 투쟁을 벌이면서 섬사람들과 함께 숲을 지키려 끝까지 애쓴다. 하지만 약자들의 힘만으로 공권력을 이겨낼 수는 없다. 그래도 끝까지 저항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지로도 아버지를 다시 보게 된다. 지로의 마음이 느껴지는 아래의 글은 지로가 이 글을 읽는 우리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오늘의 농성 소동은 틀림없이 큰 뉴스가 되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국민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까. 미움까지야 사지 않겠지만 동정도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지로는 어디까지나 냉담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경찰과 기업에 창끝을 들이댄 사람을 통쾌하다면 재미있어 하면서도, 그것을 막상 내 일처럼 생각해줄 사람은 없다. 텔레비젼을 지켜본 어른들은 단 한 번도 싸운 일이 없고 앞으로도 싸울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항하고 투쟁하는 사람을 안전한 장소에서 구경하고 그럴싸한 얼굴로 논평할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냉소를 던지리라. 그것이 바로 아버지를 제외한 대다수의 어른들이었다.'

 

이 책은 아버지가 지로에게 들려주는 말로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항상 이 마음을 놓지 않도록 해야겠다.

 

"비겁한 어른은 되지 마.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로알드 달의 마틸다 이야기이다. 아이들에게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더 많이 알려진 작가의 작품이다. 온몸이 푹 담기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푹신한 핑크색 소파에 앉아 자기 몸만한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린 소녀 마틸다의 모습은 보기만해도 사랑스럽다. 그런데 마틸다의 부모는 이런 사랑스러운 모습이 보이지 않나보다. 아니, 보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엔진에 톱밥을 섞어넣고, 미터기를 교정하는 속임수를 써서 중고차를 파는 아빠 웜우드씨, 텔레비젼과 놀이에 푹 빠져 마틸다에게는 관심도 없는 엄마, 그리고 오빠 마이클이 마틸다의 가족이다. 가족들은 마틸다에게 관심이 없을뿐만 아니라 쓸모없는 존재라고 여긴다. 그런 가족 안에서 마틸다는 스스로 글을 깨쳐 책 읽기에 빠지고 구구단도 혼자서 터득한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서선생님의 마틸다의 능력을 알아차리고 항상 좋은 책을 권해주고, 빌려가게 도와주기도 한다. 마틸다의 능력은 어쩌면 좋은 사서선생님을 만났기에 더 향상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자신을 미워하는 아빠를 골탕먹이려 아빠가 쓰는 모자에 초강력접착제를 발라놓기도 하고, 엄마의 염색약을 아빠가 쓰는 통에 부어놓아 아빠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 마틸다에게 악담을 퍼붓는 아빠가 당하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통쾌함을 준다.

드디어 마틸다는 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런데 그 학교에는 무시무시한 트렌치불 교장선생님이 있다. 어린아이들은 쓸모없는 존재라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길게 땋은 머리를 잡고 흔들거나, 두 귀를 잡아당겨 위로 올리는 등 상상할수도 없는 일들을 저지르고도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는다. 마틸다의 담임선생님인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의 능력을 발견하고 상급반으로 올리려 하지만 교장선생님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마틸다를 아끼는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작은 오두막집으로 초대하고, 트렌치불 교장선생님이 자신의 이모이며 아버지가 물려주신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고 자신을 어렸을때부터 얼마나 핍박하고 부려먹었는지 이야기한다.

마틸다는 자신에게 생긴 초능력으로 교장선생님을 혼내줄 계획을 짠다. 교장선생님의 수업이 있는 날, 분필을 움직여 칠판에 글을 써서 교장선생님은 혼비백산하고 기절하고 만다. 결국 집에서 쫓아내는데 성공하고 마틸다는 다른 나라로 떠나는 부모님을 따라가지 않고 하니선생님과 함께 살게된다.

다섯살짜리 꼬마 아이가 어른들이 읽는 찰스 디킨스의 작품까지 다 읽어내고 신비한 초능력까지 생긴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마틸다를 통해 우리도 책속에 푹 빠져들어 안쓰러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또 통쾌해한다.

책을 다 읽고보니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도 마틸다의 이야기를 좋아할 것 같다. 마틸다가 초능력을 쓰는 모습을 보며 똑같이 따라해보려 할 것도 같다. 어떻게 이런 부모가 있을까, 어떻게 이런 교장이 학교에서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책 속에서 잠시 들었던 것 뿐이고 읽고 나서는 기분이 참 좋아지는 책이다. 우리 아이에게도 얼른 보여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