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후에 영혼이 현세로 돌아온다는 상상을 가지고 시작한 글이지만
논리적 비약이나 허무맹랑하다는 느낌 없이, 탄탄한 짜임새로 한 편의 글이 되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현세에서 죽기 전에는 자신과 반대되는 특성을 가진 몸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설정은 재미있지만, 姓이 다른 육체에 들어갔더니 그에 상응하는 이성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키스했다는 부분은 왜 그렇게 몇 번이나 강조된 것인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른이면 누구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비밀을 가지고 있어 괴롭다."
내 정신 안에서의 인식이 모두 사실인양 믿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진실을 알고 싶기도 하지만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도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지 않을까? 나는 그래서 이 소설이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작가 본인이 야쿠자 생활을 했다고 작가 소개에 나와있다. 그래서인지, 외부인은 잘 생각하지 못할 야쿠자의 내면, 약한 모습, 두려움 등도 실감나게 그려낸 것 같다. 물론 정말로 야쿠자가 어떤 존재인지는 이 소설과 전혀 별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벌을 받았다." 는 ("나는 벌을 받아 마땅하다.")라는 인식이 생기는 내면의 과정과 감정을 묘사한 부분이 가장 인상깊다.
"세 살 때 기억이라면 상당히 애매모호할 텐데, 네가 기억하고 있는 걸 전부 말해주겠니?"
"진짜 엄마랑 아빠에 대해선 잘 몰라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건 보육원에 대한 것뿐이에요."
"보육원의 이름을 기억하니?"
"그건 잊어버렸어요."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게 아니라 잊어버리려고 애써 노력했다. 보육원에 대한 기억을 잊는 게 새로운 엄마와 아빠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함께 놀았던 친구의 이름도, 선생님의 이름도 전부 잊어버렸다.
"보육원 앞에 강물이 흐르고 있지는 않았니?"
그렇다. 그곳은 분명히 강가였다. 보육원 바로 앞쪽에 물새가 찾아오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잊고 있었던 기억을 조금씩 떠올리는 것이 왠지 두려워졌다.
"보육원의 지붕은 빨간색이고 벽은 하얀색이었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소리를 내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으니까. 젖도 떼지 못한 간난아기 때부터 키워준 보육원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있었으니까. 기저귀를 갈아준 선생님도, 같이 놀아준 형이랑 누나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 혼자만 행복하게 살았다.
"현관에 조금은 오래된 커다란 시계가 있었지?"
그렇다. 현관에 커다란 시계가 있었다. 나는 시계에도 작별인사를 했다. "널 잊어버릴 거야. 미안해." 하고 말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면서 주스를 마셨다.
"전 벌을 받았어요."
"그게 무슨 뜻이지?"
자세한 말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벌을 받아서 차에 치인 것이다. 혼자만 행복해졌으니까. 가난한 엄마와 아빠를 잊어버리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잊어버리고, 혼자만 부자 엄마와 아빠를 만났으니까.
잊어버리는 게 새로운 엄마, 아빠에 대한 예의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난 그렇게 예의 바른 착한 아이가 아니다. 난 자신이 버림받은 아이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부모가 없는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다만 그런 불행을 잊어버리려고 노력했다. 나쁜 일은 모조리 잊어버리고 혼자만 행복해지려고 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진짜 엄마와 아빠에게도, 보육원 선생님들에게도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이다. 어쨌든 그들을 잊어버린 것은 크나큰 죄이다. 나는 내 불행과 함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 세상에서 키워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은혜를 잊어버리려고 했다.
부탁해요, 할아버지. 전 벌을 받았지만 어떻게든 속죄를 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