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만약 내가 찾았던 곳이 동해가 아닌 서해나 남해였다면 어땠을까. 또, 런던이나 일본이 아닌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뉴질랜드였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곳에서도 강원도 동해바다에서 느껴지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기분을 맛볼 수 있었을까. 다시 말해 어떤 곳이건 모든 여행지들이, 단지 낯설고 먼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한결같이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리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서해와 남해에서는 동해의 그것이 아닌 그곳 고유의 영혼과 기운이 존재할 테니까.
나는 이른바 ‘휴양’이라는 것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본 적 또한 한 번도 없었다. 때문에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만들어온 역사가 어려 있는 대도시가 아니라, 오로지 휴식과 즐거움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곳에서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인지 잘 모른다. 짐작 컨데 비싼 돈을 지불하고 떠난 몰디브나 푸켓 같은 고급휴양지에서 강원도에서나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서글프고 애상적인 느낌을 기대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오히려 그러한 곳에서는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풍경의 사치스러움 덕택에 눈은 호사를 누릴 것이며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아늑함과 활기가 쓸쓸함보다 더 크게 다가올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세상의 가보지 못한 많은 곳에서 맛볼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느낌 같은 것들을.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의 곳들을 가야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목적지는 강원도. 이미 여러 번 찾았던 곳이다. 모처럼 오랜만에 여행을 떠나면서 또다시 익숙한 곳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나는 강원도를 여러 번 갔으되, 결코 여러 곳을 다녀본 적이 없다. 숙소는 거의 설악산 근처 K호텔에 잡고,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면 설악산 비룡폭포에 올랐다간 저녁이면 대포항에 가서 술과 회를 먹고 잠을 잔 후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는, 이것이 몇 번을 가든 판에 박은 듯 되풀이되었던 나의 진부한 강원도행의 전부였다. 사실 진짜 여행은 무엇이고, 그렇제 않은 여행은 무엇인지 나도 잘은 모른다. 다만 지금의 내게 중요한 것이 ‘가보지 않은 곳’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나는 강원도의 진짜 모습,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싶었다. 비록 내가 알고 있는 강원도가 그곳의 전부라 해도 말이다.
떠나는 날, 일정상 먼저 병원엔 들러야 했다. 최근 나는 무려 오년 간이나 미뤄오던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뭔가 심상치 않은 병이 확인되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담당의를 만나는 날. 예약시간이 일렀던 관계로 아침 일찍 병원에 도착해 긴장 속에 차례를 기다렸다. 애써 스스로를 안심시키려고 해봤지만 역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이번 여행의 동행자가 저만치서 여행 가방을 밀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진홍색 여행용 슈트케이스에 짧은 반바지 차림의 그는 누가 봐도 여행객의 모습이었다. 붐비는 환자들 틈에 어렵사리 자리를 마련해 앉은 우리는 그곳에서 확실히 이질적인 존재들이었다. ‘대장센터’라는 묵직한 이름의 공간과 곧 여행을 떠나게 될 두 사람. 그것은 마치 각기 불안과 희망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내 머릿속의 복잡한 심경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이윽고 나의 이름이 불려졌다. “이석원 환자님 들어오세요.” #

# 작성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서란 무엇이 문제점인지 생각해보자.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서의 문제점을 찾는다는 것은 곧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는 어떻게 시각화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이해이기도 하다.
먼저 가공이나 양식만이 아니라 본래 소재인 정보나 사용하는 언어도 보고서의 이해를 방해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먼저, 정보의 질 자체가 좋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 요리에서 말하면 요리의 재료 자체가 나쁜 경우다.
정보의 신선도가 떨어지거나 데이터를 다루는 방식이 잘못되어 있거나 혹은 애초 메시지 자체가 없는 것조차 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제안 자체에 가치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마저 있다. 정보의 질이 나쁜 경우, 도큐멘테이션 기술로는 이를 도저히 보완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정보의 양이 너무 많은 문제를 꼽을 수 있다. 요리도 재료가 제아무리 좋아도 무턱대고 다 넣으면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최근에는 특히 이 문제가 두드러진다. 이것도 전하고, 저것도 전하는 바람에 정보를 다듬지 못한다. 혹은 질문이나 요구에 따라 보고서의 양을 늘리는데, 그러면 본질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의문이 양산되고 결국 의사결정이 늦어진다.
세 번째는 질도 좋고 양도 적절했지만 정보 가공이 좋지 않은 경우다. 요리에 비유하면 당근을 너무 크게 썰었다거나 무에 흙이 묻어 있어서 그대로 먹을 수 없는 경우다. 이 경우에는 정보를 사실 그대로 전하기보다 그 정보의 영향력이 돋보일 수 있도록 표나 그래프로 가공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비유나 유추를 이용하여 보다 소화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
네 번째는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용한 기능이 오히려 효과를 반감시키는 경우다. 파워포인트의 기능이 증가함에 따라 이것이 이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이나 컬러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 사용이 서툴러 오히려 이해를 방해한다면 이는 사용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요리에 비유하면 고춧가루를 지나치게 넣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피해 이해하기 쉬운 보고서를 만드는 ‘시각화’의 기술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시각화 기술의 첫 번째는 정보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에는 1) 사용할 언어를 선택하여 의미를 정의한다, 2) 구체와 추상의 균형을 잡는다, 3) 제목, 목차와 내용의 불일치를 없앤다는 세 가지 포인트가 있다.
먼저 정보의 질을 높이는 첫 번째 포인트는 언어를 엄선하는 것이다. 보고서 작성은 얼마만큼 정밀한 언어를 사용하느냐 에서부터 출발한다. 사용할 언어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명확히 정의해둘 필요가 있다.
수많은 자료를 보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데, ‘밸류’나 ‘과제’, ‘지원’처럼 복수의 의미로 쓰이는 말들이다. 자주 사용하고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아서 편리하지만 조금만 파고들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통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작을 나타내는 영어 단어는 더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리뷰하다’는 말을 단순히 읽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단어 하나하나를 교정해가면서 읽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품질관리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업계나 상황이 다르면, ‘상품의 품평을 쓰는 것’이나 ‘복습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이다.
또한 버즈워드 라는 말을 쓸 때도 주의가 필요하다. 버즈워드란 업계의 일정 그룹 사이에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그 실태가 명확하지 않은 비교적 새로운 말이다. ‘잘 모르지만, 굉장하다’는 이미지를 선사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을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이해받을 수 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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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서평 혹은 정치 연설처럼 비문학적인 글보다 문학작품을 번역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시문학을 번역하는 일은 모든 문학의 형식들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 무엇인가를 잃고 마는 이유들 중 하나는, 텍스트가 옮겨지면서 그것의 음성적 특성을 거의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학작품에서 음성적 특성이 제멋대로 드러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하자면 이런 특성은 텍스트가 표현하는 의미에 도움이 되도록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는 자신의 『비평론(An Essay on Criticism)』에서 “음성은 의미에 대한 반향이어야 한다.”고 했다.
『맥베스』의 대사는 음성이 어떻게 의미를 메아리칠 수 있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에서 모음들은 광대한 느낌을 표현함으로써 시간의 무한함을 보여준다. “struts”와 “frets” 간결함은 개인의 삶이 덧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운법을 사용함으로써 대사는 더욱더 강한 인상을 받는다.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 1896-1982)은 문학작품에서 음성학적 특성의 효과에 관한 연구의 길을 열었다. 그는 애드가 앨런 포우(Edgar Allen Poe, 1809-1849)의 시 <갈가마귀> (The Raven)에서 음성이 어떻게 의미를 메아리치게 하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갈가마귀는 날아가버리지 않고 아직도 앉아있네. 그저 앉아있네.
내 방문 바로 위 팰러스의 창백한 가슴 위에.
그리고 그의 두 눈은 꿈에 젖은 악마의 온갖 모습을 담아두고,
그런데 램프불빛이 그를 타고 흘러 마룻바닥에 그림자를 드리우네,
그러면 내 영혼은 마룻바닥을 누워 떠다니는 저 그림자를 떠나서는
두 번 다시 떠올려지지 못하리라 ? 이젠 끝장이야!

And the Raven, never flitting, still is sitting, still is sitting
On the pallid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And his eyes have all the seeming of a demon’s that is dreaming
And the lamp-light o’er him streaming throws this shadow on the floor;
And my soul from out that shadow that lies floating on the floor
Shall be lifted-nevermore!

<갈가마귀>의 마지막 연에서 단어 일부가 음성으로써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raven”과 “never”는 서로 마주한 이미지(mirror image)와 같다. “raven”의 자음구성은 r-v-n이고 “never”의 자음구성은 n-v-r이다. 그리고 “still is sitting, still is sitting”같은 구에서는 “sti”를 바로 뒤이어 “sit”으로 재구성된 음성이 따른다. 음성을 이용한 이러한 형태의 구성은 음성영역을 넘어 의미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시가 이루어내려는 것들 중 하나는 영원히 머무르려 하는 갈가마귀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포는 음성으로 연결된 단어들을 사용함으로써 갈가마귀의 끊임없는 찾아듦을 써내고 있다. 이 새는 그 시인의 방에서 좇아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어들 역시 서로에게 벗어날 수 없다. 이처럼 시인은 음성차원과 단어의 의미차원이라는 두 측면에서 영속성을 표현한다. 음성의 특성을 각 시구의 의미와 병행해서 사용하는 일은 그 시구가 참조하는 의미를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