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들었던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하물며 책에서 정이 든 사람을 보게 되는 것은 얼마나 더 기쁜 일인가. 그들의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은근히 그들의 뒷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한 것은 나만 가지는 생각은 아닐 것이다. 루이즈 페니의 <스틸라이프>의 후속작이 나왔다. 그녀의 후속작이 이렇게 빨리 나올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하다. 아마도 <스틸라이프>를 쓰면서 후속작의 스토리를 미리 생각해 두었던게 아닐까. 어찌 되었든 그녀의 팬으로서 나는 그녀의 후속작을 기다려 왔으며 그녀의 후속작 소식에 가슴까지 두근거리며 기다렸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또 다시 등장한 마을, 약 1년전쯤 무서운 살인사건이 일어난 마을. 그곳에서 또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내용이다.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 스리파인스. 그곳에서 지난 번에 만났던 인물들이 다시 보게되서 옛 친구를 만난 기분에 더 빠르게 몰입할 수 있는것도 <스틸라이프>의 힘이 미치는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제인이 그렇게 살해당하고 나서 유산을 클라라에게 남겼는데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그녀는 어떻게 변했을까, 살인사건이 난 후 그 마을은 어떻게 변했을까, 떠나버린 사람도 있었을까를 늘 생각해 왔던 나로서는 빛의 속도로 이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또 다른 살인. <스틸라이프>에서는 많이 사랑받던 여인 제인이 살해 당했는데, 이번에는 모두가 싫어하는 여인 C.C가 살해 당한다. 첫 페이지, 첫 줄 부터 그녀가 살해당할 것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참 특이한 시작이다. 나는 이런 시작이 좋다. 미사여구를 줄줄이 늘어놓아 도입은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보다 이런 깔끔한 도발이 나는 너무 좋다. 그녀의 죽음을 대놓고 알리는 첫페이지의 배경 역시 불륜의 현장인데 여기서 바로 저자의 속마음이 살짝 드러나는 것 같다. 물론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의 말로가 다 그러해야 하는것은 아니지만 만약 오늘 죽을 줄 알았다면 넌 이런 일보다 가족을 위해 시간을 가지는게 더 나았을지 모른다는 저자의 마음이 보인다.

 

나도 가끔 생각해 보는 것중 한가지 이기도 한데, 내 마지막 때는 누구와 있을까, 내 마지막때를 알고 가는 것이 좋을까 모르고 가는것이 좋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내 마지막 때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것이 내 소망이고, 난 내 마지막을 모르고 가기를 원하고 있지만 그것은 나중에 상황에 따라 바뀔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떻게 죽을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 이 명언은 늘 내 중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참 뜻을 새기고 생각해 보면 인생의 말미에 웃게 되지 않을까?

 

여기서 나오는 모두가 싫어한 여자 C.C는 모두가 싫어할 만 하다. 그리고 나도 싫어졌다. 하지만 그녀도 피해자다. 폭력가정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이 학습이 되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 C.C가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도 어렵게 성장했기 때문에 비뚤어진 정신세계가 형성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비뚤어진 정신세계관이 또 다시 그녀의 딸에게 형성되었다는 점이 성장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비참한 가족사가 아닐 수 없다. C.C 역시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사랑받고 자랐다면 그녀의 인생과 그녀의 딸 크리의 인생이 바뀔수도 있었음에 모두가 싫어했던 여인 C.C가 너무 안되어 마음이 아팠다.

 

명탐정 코난에서의 코난쯤?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김전일쯤?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와로쯤?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쯤 되는 이가, 루이즈 페니 여사의 아르망 가마슈경감이다. 그는 꽤 매력적인 남자로 표현되는데 난 눈이 삐었는지 아직까지 그의 매력을 찾지 못했다. 어디가 그렇게 매력적인지,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 뛰어난 실력? 문학을 좋하는 형사의 분위기? 훌륭한 리더의 자질? 정의사회 실현 구축을 위해 동료를 고발하는 그의 대쪽같은 성품? 난 언제가 되어야 그의 매력을 알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번엔 그의 아픈 과거사가 나온다. 그의 발목에 족쇄처럼 그를 놔주지 않는 아르망의 주홍글씨. 루이즈 페니 여사가 아끼는 아르망 가마슈인 만큼 다음작, 아니면 그 다음작이라도 언젠가는 그의 주홍글씨를 떼어줄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한 마을에 1년 간격으로 살인사건이 일어 났으니 연쇄살인 까지는 아니어도 흉흉한 마을이 되어버릴 터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 분명히 FEDEX도 들어갈 터이고, 식자재도 들어갈 터 이지만 저자는 신비한 배경을 위해 지도에도 없다 설정해 놓았다. 지도에도 없는 마을이 살인 사건이 터지는 마을이라면 더욱 으스스해진다. 다음 후속작에도 분명히 아르망 경감도 나올 것이고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인 클라라 역시 다시 볼 수 있을텐데 그때도 무대는 스리파인스 일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답고, 추운곳이지만 마음 착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또 다시 살인사건이 나야만 그들을 볼 수 있다는 건 너무 마음 아픈 일이다. 하나를 얻기위해 하나를 내놓는 마음이 이럴까? 그런 쓰고 아픈 마음중에 다음 작품에선 얄미운 이베트 니콜 형사는 없었으면 하는 내 작은 바램도 심어본다.

 

 

참 흥미롭게도 이 책의 저자는 법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10년전 신인 발굴프로젝트에 참가해서 <밀실의 열쇠를 빌려드립니다>가 선발되에 문단에 데뷔를 했다고 한다. <밀실을 향해 쏴라>는 데뷔작의 2부다. 주인공과 등장인물은 같지만 또 다른 사건으로 주위를 환기시켜 1부를 군침삼키며 봤던 사람이라면 2부를 보지않을수 없게 만드는 유혹을 일으키기도 한다.

 

가상의 도시 이카가와시를 만들어 구체적으로 묘사한 저자의 솜씨는 박수를 보낼만큼 환상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1부에서 그칠 뿐, 2부에서까지 좁디좁은 무대에서의 재롱잔치를 또 여는것은 저자의 역량탓일까? 아니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저자의 대범함일까? 자신감일까? 연작으로 나가는 시리즈는 책이나 영화를 보면 2부는 1부에 비해 스케일도 커지고 사건도 더 복잡해지는 구조를 이루는데 이 책은 2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작은도시 이카가와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만 다루는 단순한 구조를 보인다.

 

이건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저자는 법학을 전공하며 경찰에 대한 불신을 경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법은 경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무래도 경찰과 실갱이를 하는것도 다반사일테고 경찰과 손을 잡아야 하는 일도 허다했을 것이다. 알고 지낸 세월이 오래였다면 그만큼 미운정도 쌓이고 그러다보면 비록 같은 처지는 아니지만 그들의 입장도 이해할 때가 종종 있었을것이다. 그런데도 저자는 책 두권을 쓰면서 경찰을 바보로 만들어 놓았다. 살인자를 검거하는 중에 중요한 증거를 분실하는 것은 징계를 면치못할 큰 실수다. 물론 그들도 잃어버리고 싶어 잃어버린 것은 아니지만, 증거를 잃어버리고 전전긍긍하며 끙끙 앓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고 적나라하게 표현해서 설정한다는 자체가 경찰을 우습게 보는 저자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저자는 경찰을 바보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이기적인 마음까지도 꿰뚫어 봤음이 분명하다. 보통 아무리 마음에 들지않는 동료라 하더라도 남들에게 보여지는 경찰의 이미지를 위해서 동료를 바보로 만들지 않는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나마 약간의 지능을 보유한 형사인 스나가와 경부는 반향을 실험해보는 와중에 자신의 부하직원을 멍청이로 만들어 버린다. 자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부하직원을 다른 일반인들에게 실수나 일삼는 멍청이같은 인간처럼 보이게 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설령 부하직원이 실수를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에겐 경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중이라 설명하며 감싸는것이 당연할텐데도 말이다. 분명 저자는 경찰들의 시기심과 이기심을 알고 있었던 듯하다. 부하직원을 짓밟고 다른사람의 공을 자신의 공으로 가로채는 비리가 가끔씩은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밝혀버린 저자의 의도가 슬며시 짐작될 뿐이다.

 

또 한가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탐정들은 모두 배우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추리소설을 읽으며 그저 그러려니 하며 지나쳤던 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전(前)처남이 주인공 중 한명이기 때문에 우카이탐정도 한때는 가정이 있었음을 알게 하는데, 그렇다. 탐정은 모두 가정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사람에겐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기 마련인데, 남편이 탐정이라면 숨길수 있는 것은 없을것이다. 그러다 보면 숨이 막혔을테고 그러다 보면 떠날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꾸준한 수입이 없는 것도 한 몫을 단단히 할 것이다. 그런데 우카이라는 탐정은 탐정사무실 월세가 1년치나 밀려있어도 갚을 능력이 없는데 자신의 겉모습을 위해 고급외제승용차를 소유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사람들의 허영심을 단편적으로 꼬집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지인중에서도 1년마다 새로운 중형차로 바꿔타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의 가족이 원룸에서 산다는 것은 아는 사람만 아는것이다. 차에서 내리는 그 가족을 보면, 처음 보는 사람은 재력이 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정을 아는 나는, 볼때마다 한심한 마음과 안타까운 마음이 늘 교차한다. 그들은 얼마전에도 할부로 또 차를 바꿨다. 아이에게 아이방을 마련해줘야 하지 않느냐는 조언도 늘 해주지만, 조언은 늘 잘 이해하지만 막상 실천을 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더이상 나는 할 말이 없다. 그저 지켜봐줄 뿐이다. 이런 허영심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느 나라나 비슷할 것이다. 탐정 우카이의 그런 허영심이 이해는 가지만 월세를 내지않아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모범적인 탐정의 모습은 아니다. 물론 저자의 의도는 탐정을 모범적인 탐정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든, 2부지만 전혀 스케일도 커지지 않고 사건도 단순해서 조금은 실망했다. 1부와 다를바 없는 2부는 지겨운게 뻔하다. 앞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저자의 역량일까? 아니면 자신감에 찬 대범함일까? 나의 경우는 3부가 나온다 하면 읽을 마음은 없다. 어느 순간 진지해 지다가도, 갑자기 한 순간 우습게 풀어버리는 저자의 화법도 1부에서는 신선했지만 2부에서는 뻔하게만 보여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였다. 3부는 읽지 않아도 어떤 느낌일지 알것 같기도 해서 저자의 작품은 이 책으로 끝을 맺어야 할 듯 싶다.

 

 

 

어린 조카를 떠나보내고, 그 후 엄마같던 언니를 떠나보냈다.

그 전까지는 내 주위의 누군가가 생을 다한적도 없었고, 그 흔한 장례식장 한번 가본일이 없었다.

그런 내게 내 삶과도 같았던, 내 살점과도 같았던 이들을 잃고서 나는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더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아졌다. 어린 조카도 간 길인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곳을 가는 날엔 그들이 날 반겨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생길만큼 이젠 더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들을 그렇게 보내고 난 뒤, 나는 한동안 그들이 어디쯤에 있을까, 어디만큼 갔을까, 지금은 아프지 않을까, 그 둘은 그곳에서 만나 이제는 행복할까를 매일 생각하며 눈물지었고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참을 사후세계와 관련된 주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 책은 생을 다한 소녀와 소년의 죽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다.

소녀는 죽고 난 뒤, 과거를 기억해내지 못해 과거를 찾기위한 기억여행을 떠난다.

내가 알아낸 정보중 하나는, 아무리 착한 영혼도 죽고 나면 집착으로 얼룩져 살아있는 사람에겐 나쁜 영향을 끼치는 영혼이 된다고 한다. 이것이 제대로 된 정보인지 잘못된 정보인지 알수는 없지만 이 책에선 주위 사람을 괴롭히기 보다는 죽음에 이르러서 무엇인가를 깨달아야만 영원한 안식에 들수 있다고 설명해놓은듯 하다. 알렉스도 영면에 들기까지 리즈를 기다려야 했고, 리즈 역시 영면에 들기까지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알아내야만 했다.

 

저자의 의도는 그것이 아닐테지만 나는 왠지 너무 슬퍼졌다.

길지 않은 생에서 물론 행복하기도 했을테지만 무척이나 고단하고 힘들기도 했을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는 몹시 고통스럽기도 했을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이들은 그들이 더이상 힘들지 않도록 천국으로 인도되기를 매일 매일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처럼 자신이 뭔가를 깨닫기 전에는 천국으로 갈 수 없다면 너무 서글퍼질것 같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들었다. 만약 내가 망자라면 너무 피곤해질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주인공인 리즈도 아픈 발때문에 곤욕을 겪지 않았던가.

 

죄책감.

죄책감 때문에 잠조차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분명 리즈의 마음을 쉽게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좋은 친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좋은 친구를 가졌다면 리즈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죄책감 때문에 생을 갉아먹고, 나쁜친구 덕분에 생을 잃어버린 리즈.

여러 기억을 거스르고 거슬러 결국 모든 퍼즐을 맞춘 리즈.

 

난 그녀의 죄책감은 이해하면서 왜 쉽게 그녀에게 동화되지 못했을까?

책을 읽으면서 죽기까지 한 주인공을 이렇게까지 정을 주지 못한것은 이번이 처음인것 같다.

나는 처음 이 책을 접했을때 영화 <러블리 본즈>가 떠올려졌다. 그녀는 살해당했고 그녀는 천국으로 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시간을 가져야 했다. 러블리본즈의 수지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여자아이였다.

내가 수지를 사랑했고 안타까워 했던만큼 리즈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리즈에게는 그저 방관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만 됐던것은 저자도 한몫을 크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포커스를 맞추지 못하고, 내가 끌려하는 영적존재에 포커스를 맞춰 내가 보고싶은것만 봤던지 아니면 내가 이해하고 싶은것만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좀 더 영혼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서 목마른 사람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큰 하늘을 보지 못하고 우물속에 비친 하늘만 본게 아닌가 싶기도 해서 너털웃음도 나오지만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어떤 식으로든 떠나간 사람들의 그 후가 궁금하다면 한번쯤 읽고 마음을 달랠수도 있을것 같다.

 

 

 

 

모든 것이 따뜻하고 밝다.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