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 보이는 남자의 놀란 모습이 인상적이다.

일단 공포물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고, 내심 오랫만에 접한 만화라 제대로 날 공포로 몰아주길 바라며

책을 펼쳤다.

 

사실 그림은 여느 화려하거나, 유려하게 그려지진 않았다.

조금은 거친듯한, 조금은 아마추어적인 화법으로 그림을 그린 흔적이 보였다.

하지만 소싯적 만화를 그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도 물론 마음에 드는 만화를 그려본적이 있었지만, 만화를 따라그리는 것과 자신이 생각하는것을 그려낸다는 것은 아주 어렵다. (특히 그림을 못그리는 나의 경우는 더더욱)

 

거친 터치로 그려낸 이 작품은 얼핏 보기에 아마추어가 그렸으리라 생각하게 하지만

놀랍게도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당당히 대상을 타낸 작품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 여성들을 떨게 만드는 성추행범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자주인공 치고는 좀 안생긴 성진은 제대를 한 후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전여친인 연지에게로 가서 둘은 하룻밤을 지내는데 누군가 훔쳐보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 훔쳐보고 있었고, 위해를 가하려 해 성진은 범인을 잡고자 고군분투한다.

 

여성 혼자만 사는 원룸을 노린 성추행범이 세상을 들썩이게 하고, 성폭행을 하고 다니는 발바리나,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여자아이의 새싹의 꿈을 잘라버리는 인간같지도 않은 남자들이 세상엔 많다.

어린 여자아이의 몸에 몹쓸짓을 하고는 술을 마셔서 이성을 잃었다는 한마디로 12년형만 선고받은 남자도 있다. 술을 핑계로 한다면 모든게 용서되고 이해가 되는 우스운 세상이다.

 

창문을 열어놓은채 옷을 갈아입는 연지의 모습을 훔쳐보던 것이 계기가 되어 멀쩡한 남자도 졸지에 관음증환자가 되어버리고, 결국엔 그녀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별로 무섭지 않다고 생각하며 보던 만화책이 어느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이상한 남자만 범죄를 짓는게 아니라 멀쩡한 남자도 범죄를 짓고 다닐수도 있다는 말에 뒷통수를 맞은듯

충격을 받았다.

 

물론 아무생각 없이 커텐도 치지않고 창문을 열어놓은 채 옷을 갈아입은 연지도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사실은 나 역시도 누군가 볼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커텐을 치지도 않고 옷을 갈아입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행동 하나만으로도 보통남자를 범인으로 만들어 버릴수도 있는것이 정말 두렵다.

아무래도 남자들의 염색체에는 뭔가 다른 돌연변이 DNA가 있는것이 분명할지도 모른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부분은 웹툰 연재 당시에도 발표하지 않았던 [BAD TIMING] 를 수록한 부분이다.

남자주인공 성진과 여자주인공 연지의 엇갈린 아주 좋지않은 타이밍.

숨죽여 우는 성진의 모습이 너무 애잔해서 왠지 어깨를 두드려 주며 술 한잔 사주고픈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대한민국 창작만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여러 이야기를 들은 듯 하다.

그리고 실의에도 빠져보이는 듯 하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이 응모했는지 나는 알수 없지만, 대한민국 스릴러 만화의 기대작이라는 타이틀이

절대 부끄럽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탄탄한 스토리와 구성은 만화가 아닌, 왠지 수사일지를 본것 같기도 하고 영화 한편을 본것 같기도

할 정도로 흥미진진 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문제를 들추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도 컸다.

만화를 재미로만 보는것을 끝내는 것은 작가로서는 쉬운일일 것이다.

만화를 보고 무언가 가슴에 남는것이 있게 하는 것은 쉬운일은 아닐것이다.

 

복학 후, 머리가 길어진 성진은 꽤 멋있기도 하다.

그림에 정 들어가려니 완결이라 안타깝기는 하지만,

솔직히 여자의 입장에서 이런 주제는 어렵다.

보기 힘들다.

하지만 앞으로도 이런 사건들은 계속 될 것이다.

좀 더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서글프다.

 

밀실이라는 단어가 참 친숙하게 다가온다.

소년탐정 김전일이나 명탐정 코난에서는 밀실트릭은 심심찮게 나오는 구성요소다.

제목에 혹해서 이 책의 평을 찾아 읽어봤는데 평은 무척이나 좋았다.

그러니 더 궁금할수 밖에.

 

이 책은 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일본에서는 완성도 높은 수작이라는 찬사를 아낌없이 받았다고 한다.

나는 근래에 들어 작가의 데뷔작만 골라 본듯한 느낌도 들지만 읽었던 책 모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을 정도로 수작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너무 기대를 하고 본 탓인지 무척 흥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대학3학년 류헤이는 남자주인공이다. 이제 졸업 후 취업문제로 걱정도 되던 참에 마침 선배가 취직에 도움을 주고 류헤이는 그 기쁜소식을 애인인 유키에게 말한다. 하지만 유키는 졸업 후 도쿄로 나가 멋진 삶을 살거라는 미래의 청사진을 무시한 류헤이가 싫어져 헤어지자 말한다. 그리고 류헤이는 술김에 그녀를 죽여버리겠다고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며칠 후 유키는 살해당한다. 그리고 선배와 같이 영화를 보다 같이 있던 선배 역시 살해당한다. 류헤이는 함정에 빠진것이다......

 

류헤이는 사건이 일어난 직후, 자신이 혐의를 받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자신의 지문을 지우고, 증거를 없애고 전 자형인 탐정에게로 간다. 난 이 대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경찰은 첫 발견자를 용의선상에 두기도 하기때문에 나 역시 도망가고 싶어질 것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밀실의 경우엔 어떠할지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무섭다.

 

화자는 작가의 시선으로 쓰여졌다.

작가가 얼마나 경찰에 대한 신뢰가 없는지 조롱도 서슴치 않는다.

p35. 그런 이유로 형사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형사들은 범인이 아니다.

이것은 본격 추리에서 걸핏하면 광대 역할을 해야 하는 그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젠 질려서 보기도 싫은 미드의 과학수사대처럼 정말 정밀하고 치밀하고 스마트한 형사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나 일본엔 그런 형사들이 없는게 분명한것 같다.

 

얼마 전, 내가 일했던 병원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도난사건이 있었는지 등에 [과학수사대]라고 적힌

조끼를 입은 형사들이 지문을 채취한다고 분주하고 주변을 탐방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했다.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겠지만 왠지 TV와 비교되는 현실에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TV에서 보여지는 그들의 능력때문에 우리나라 경찰들까지도 무능력하게 보이는건 좀 싫긴 하지만 실제로 무능력하기도 하고, TV를 있는 그대로 믿고 보는것도 문제가 있는것 같기는 하다. 미드의 수사대는 시나리오 대로 움직이는 배우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경찰들도 그들때문에 왠지 자신들이 비교되어 몹시 힘들지도 모른다. 실은 나도 과학수사대라고 적혀있는 조끼를 입고있는 형사들을 신뢰하는 눈으로 보지는 않았으니까. 일본이라고 별다를까 싶다.

실력은 없으면서 권력만 앞세운 그들에게 이런식으로 복수를 하는 작가가 좀 귀엽게 느껴진다.

 

사실 이 책은 반전이 압권이라 해서 상당한 기대를 하고 봤다.

내심 읽으면서 나는 나름대로 추리도 해 보았다. 내가 생각한 범인이 진짜 범인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추리의 백미는 반전이고, 이 책은 반전이 압권이라 해서 내가 생각한 범인은 진짜 범인이 아닐거라

나는 생각했지만 내가 생각한 범인이 진짜 범인인것을 알았을때 왠지 맥빠지는 듯한 이 느낌은 뭘까?

내가 그간 추리를 너무 봤나 싶기도 하고.

 

맥이 탁 풀리는 와중에도 마음에 남는 뭉클함도 있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지켜주고자 했던 남자의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를 향한 사랑이 결국엔 모두를 파멸로 이끌뻔 한 위험한 사랑이 되어버리는 사랑의 어두운 뒷 그림자.

비뚤어진 그의 사랑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WELCOME TROUBLE !

2005년 발표된 이후로 열광적인 반응과 더불어 상이란 상은 죄다 거머쥔 책이다. 저자인 루이즈 페니는 여러 직업을 거쳤고 이젠 그녀가 읽고 싶었던 책을 쓰고 싶어 이 책을 완성해 냈다고 한다. 그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근간에 내가 읽었던 책들은 모두 저자의 데뷔작이었지만, 정말 데뷔작이 맞는지 의심이 일 정도로 작품성은 매우 뛰어나 글재주가 없는 나로서는 그저 감탄에 감탄을 할 뿐이고 역시 이런것도 타고 나야 하는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일찌감치 그런 길로는 발도 들이지 않았던 나의 현명한(?) 처사에 안도의 한숨을 살며시 내쉬어본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한적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머무는 마을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등장인물들의 소개와 성격을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가마슈 경감으로 하여금 한꺼번에 독자에게 안내해 주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도입을 자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길고 긴 추리과정은 살짝 지겹게도 생각기도 했는데 난 이 책을 바쁜중에 시간을 쪼개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1주일만에 읽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살짝 지루해지면, 만약 내가 쉬지않고 단번에 읽었더라면 지루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김없이 하며 내 자신을 달래기도 했다.

추리소설의 백미는 바로 반전이다. 분명 범인으로 지목되는 사람이 있을것이고 결국 용의자가 되어 온갖 고초를 당하는 사람은 바로 범인이 아니다. 범인은 나중에야 진면목을 드러낸다. 이 책도 역시 그런 고전적인 형식을 답습하고 있었고, 나는 범인으로 몰린 용의자를 대하면서도 이미 그는 범인이 아니다 라는 생각으로 저자가 쳐놓은 덫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내 몹쓸 버릇인 끝을 먼저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 추리소설을 읽을때의 나는 내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고 난 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번에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나의 이런 노력이 추리소설을 읽을때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그래야 할텐데....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등장인물중 가마슈 경감은 저자가 결혼하고 싶어하는 남성상을 그렸다고 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진국인 인물이다. 그가 이번 사건에 이베트 니콜이라는 신참 형사를 대동하게 되는데 그녀의 비뚤어진 모습에 주위 모든사람들이 고개를 흔들때도 가마슈 경감만큼은 그녀를 잘 이끌고자 부단한 노력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모두 탐낼만한 직장상사의 모습이다. 그러나 니콜형사는 그의 그런 마음도 몰라준채 오로지 자신의 직감만 믿으며 동료와 화합할 생각은 하지않고 화합해야할때 동료와 경쟁을 하는 오만함과 비뚤어짐으로 가마슈형사나 그들의 동료나 읽는 독자인 나에게서마저 온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든다. 읽을수록 나는 니콜의 저런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은 아닐지 상상해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수사에 방해를 하고도 그것이 왜 수사에 방해되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왜 잘못인지도 모르고, 그리고 미안해하지도 않는 뻔뻔한 그녀의 모습. 책의 초반부에 저자는 니콜이라는 인물에 상당한 크기를 부여했다. 그래서 나는 끝까지 뭔가 그녀가 해낼줄 알았지만, 책의 끝이 다가올수록 나는 저자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왜 초반부에 니콜을 그렇게 크게 그려냈을는지.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됐다. 니콜의 오만한 태도는 저자 루이즈 페니의 사회초년병 시절의 모습을 그려낸것이라고. 스포의 분위기를 띄우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니콜은 떨려난다. 그렇다면 저자 역시?
회사에서 나를 보는 눈은 늘 이렇다. 제발 자신을 더 믿으라고.
하지만 난 나를 아직은 믿지 못한다. 내가 잘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내가 그만큼 준비하고 노력하는데서 기인할 뿐임을 나는 잘 안다. 난 내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날 믿는 그 순간 (어쩌면 이제 안전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난 노력을 지금보다 훨씬 아주 훨씬 더 덜하게 될것을 알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긴장을 늦출수 없는것이다.
니콜의 모습을 보며 나는 직장에서 어떤 모습일지 점검도 해보게 되기도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만약 단번에 읽어냈더라면 훨씬 더 재밌었을지 모른다. 그런 안타까운 마음에 길고 긴 시간동안 내 손에 있느라 살짝 정이 든 책을 이제 책장에 꼽야야 할것 같다. 길고 긴 추리를 조금만 간략하게 추린다면 이 책은 이렇게까지 두꺼울 필요는 없었을텐데.
아쉽다.




"내가 자네를 인격적으로 대해준 건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대하는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하지만 친절을 나약함의 증거로 보는건 용납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