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의 행복한 기록이 역사가 되다.

1. 책 뜯어 먹기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예비 부모에게 가장 소중하고 거룩한 경험이다. 아이가 세상의 빛을 본 후 햇병아리 부모는 더욱 내적인 성숙을 맞이하며 내 부모와 내 아이에 대한 경외감을 맛보기도 한다. 육아일기는 이런 성숙함을 유도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한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행복한 기록이 되어 감동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손에서 손으로 이어진다. 내가 결혼할 무렵, 내 어머니는 내가 태어날 당시에 입었던 빛바랜 배냇저고리와 병원 진료카드를 지금의 아내에게 내밀며 소중하게 간직하라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다. 갓난아이 때 내가 입었던 옷이라니, 그저 눈물이 핑 돌았다. 가슴 쓸어내리는 짓만 했던 자식인데 어떻게 저리 오래된 당신의 추억까지 물려주시는 걸까.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내가 아이를 낳고 어느새 해가 바뀔때 마다 아이에게 추억이 될 만한 것들을 이리저리 모으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리사랑의 의미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일제 강점기와 이념의 골이 깊어진 시기에 박정희 할머니의 독특한 육아일기는 세간의 화젯거리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 가정에도 딸아이의 육아일기가 있으나 천편일률적인 기록은 여느 가정의 육아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한, 탈 근대화와 현대화의 진입으로 이제는 비디오도 사라지고 디지털카메라가 육아일기를 대신한다고 하니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행복한 육아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내 어린 시절과 많이 닮아있다. 아니 닮았다기보다는 시대적 공감대의 맥락이 큰 역할을 했다. 좌식에서 입식으로 옮겨가는 생활사가 그랬으며 대가족의 모양새가 그랬고 그림과 글에 나타난 일상이 그랬다.

이렇게 조밀하고 섬세한 글과 그림은 향수를 자극한다. 무엇보다 글에 이면에서 느껴지는 박정희 할머니의 품성과 덕은 고향의 품속과 같이 포근하고 아늑하다. 행복이라는 의미는 그리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그림 속에 행복은 항상 그림자처럼 함께했다는 사소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내겐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의 육아일기 속 명애, 현애, 인애, 순애, 그리고 제룡의 모습은 흡사 양지바른 곳에서 막 빨래를 마친 새하얀 기저귀가 하늘거리는 모습이다. 다닥다닥 붙은 포도알 같은 사랑을 한껏 머금은 이들은 이제 청포를 입은 어른의 모습으로 또한 이웃 사람들의 빛으로 거듭 태어났다. 한글 점자를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의 둘째 딸로 태어나고 구순에 이르도록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시는 박정희 할머니의 노년을 보며 난 고개를 떨군다.

4월 19일에 난 너를 업고 삼산외과 지하실로 송도 로씨 댁으로 피난을 다닌 것은 6월이니 만 1개월 남짓한 너는 불편하다고 야단을 치는 것이었다. 촉양 아래 게우고 싸고 하니 아버지들만 먼 곳으로 가시게 하고 외할아버님께로 돌아와 너희 삼형제를 데리고 율목동 집에서 난을 겪었다. 비행기 폭격, 함포, 불 모다 말할 수 없이 무서웠으나 넓은 방 넓은 마루를 기어다니며 노는 너에게는 아무 일 없었다. 할아버지 품에 안겨 내가 불 끄러 밤새도록 다니다 와도 울지 않고 자는 너였다...본문 중.

2. 끄트머리

얼마나 대단하기에 국가기록원의 기록물로 보존되어 있을까. 내겐 한가지 변하지 않는 역사관이 있다.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역사는 보존되어 그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이 후손된 자의 도리이고 미래의 후손들에게 넘겨줘야 할 책임과 의무 역시 우리의 몫이다. 또한, 영예로운 것만이 역사는 아니다. 치욕도 우리 역사다. 서릿발 같은 치욕이 서린 건물을 철거한다고 역사가 지워진다는 이 나라 지도층의 어리석은 발상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근대 한국사의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현실 속에 무형의 역사인 박정희 할머니는 오늘날 사유와 사색이 결여된 우리의 귀감이다. 오늘 어머니의 품이 한없이 그리워진다면 이 한 권의 책을 가슴에 품자.

서글프다.

1. 책 뜯어 먹기

인간과 자연이 공멸하는 길. 급속한 도시화와 개발 논리는 인간의 폐와도 같은 작은 산과 들로부터 그만큼 우리와 멀어지게 한다. 자연을 등진 채 인간의 이기로 말미암아 하염없이 삽과 곡괭이로 죽어가는 자연. 자연은 인간에게 당한 것 이상으로 앙갚음한다는 사실을 어리석은 인간은 좌시하고 있으며 후대에 물려 줄 최고의 유산을 그렇게 파괴해간다. 능금과 앵두밭으로 유명했던 내 고향 서울 자하문 밖 세검정. 이제 백사실 계곡도 트래킹 코스로 변했으며 울창한 산림과 계곡은 뭇사람들에 의해 다시 보존되고 자정되고 있다지만 어찌 그 시절만 하오리까. 이제 가재와 반딧불이, 올챙이와 도롱뇽, 장수하늘소는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소쩍새 울음소리는 여름밤 하늘을 꿰뚫어 공허함을 가르는 메아리로만 남아 있다. 반추해 볼 일이다. 우리는 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뒷산이 하하하]는 단순히 서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추억 따위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과 여운이 남을 책이지만, 이 책에서 음미할 수 있는 작가의 생태학 관점에 기초를 둔 인문학적 사유는 우리가 깊게 성찰해야 할 의무이며 각성하고 봐야 할 일이다. [뒷산이 하하하]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인간의 탐욕과 자본주의의 폐해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독자의 가슴을 두드리게 한다. 혹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 위에서 죽어가는 지렁이를 본 일이 있는가.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런 작은 자연의 주검은 이미 뜨거운 가슴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삶의 쉼표를 찍어가며 살아가는 '느리게'라는 미학의 부재가 나를 슬프게 한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생태'라는 단어는 근래에 들어 화두로 오를 만큼 오늘날의 관심사이다. [뒷산이 하하하]의 저자 이일훈 씨는 뒷산과 약수터를 인용하여 자연환경과 생태에 관한 사유를 열거한다. 작금의 생태위기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 온난화가 유일무이한 원인이 아니다. 나아가 오존층 파괴, 열대우림과 습지의 파괴, 쓰레기 매립지 확대 등 수많은 심각성이 난재해 있으며 이는 전쟁을 통해 세계체제를 유지하고 축적의 논리를 지탱하려는 자본주의의 끝없는 호전성이 이 모든 것의 바탕이라는 사회학 교수 '존 벨라미 포스터'의 주장을 다시금 생각게 한다. 나는 지구의 초토화는 당연한 논리라는 자본주의의 오만함에 명백히 반대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기득권자는 현 상황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좌파는 전면적인 생태혁명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열로 말미암은 파장은 이윤의 획득이다. 이는 자본주의는 이윤의 획득이 주된 목적으로 이윤은 재투자되어 또 다른 이윤을 낳고 오로지 이윤의 확대를 위해 무분별한 자연의 약탈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로 빈곤이라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낸다. 또 한 가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화. 분업과 기계의 도입으로 노동자 계급의 신성한 노동은 단순화되어가고 점차 소외되어 간다. 특히 생산과정에서 수반되는 생태문제에 대하여 노동자들에겐 철저히 대응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지난날 마르크스가 주장한 토지의 사적 소유에 관한 언급은 그저 가볍게 흘려들을 얘기가 아니다. 모든 사회와 국가 또는 동시대에 존재하는 모든 사회는 토지의 소유자가 아니며 그들은 오직 토지의 점유자이자 수혜자에 지나지 않으므로 토지를 보다 개선된 상태로 다음 세대에 물려 줄 책임을 지고 있다. 산림남벌, 사막화, 기후변화, 생물 종의 상품화, 자원 회수, 질병, 인구과잉 등과 같은 문제점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지적은 오늘날 이슈화되어가는 생태환경과 인간과 자연의 순환관계를 역설하는 이들의 지향점이 될 수도 있다.

2. 끄트머리

[뒷산이 하하하], '하하하..' 저자의 역설적인 표현일지는 몰라도 이제 뒷산과 약수터는 찾는 이가 줄어 슬프다. 사람도 새들과 다람쥐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추억에서만 겨우 그려질 것 같은 '기우'는 새삼 서글프게 다가온다. 인간이 저지른 최악의 범죄는 자연의 파괴다. 배려라는 것은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은 원한다. 인간의 따뜻한 배려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