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은 우리의 삶이요, 역사의 보고이다.

1. 책 뜯어 먹기

생각 좀 해봐야 할 일이 있다. 지난달 '아리랑'이 중국 국가 유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에선 자성의 목소리와 더불어 중국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거칠게 일었다. 대한민국의 혼이라 일컬어지며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준 노동요, 아리랑.

중국에서 6년 동안 생활하면서 그들과 역사의 논쟁이 될만한 이야기는 대부분 해봤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중국이라는 나라가 알다시피 50개가 넘는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나라라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고리다. 무슨 이야기냐, 이들이 지닌 역사 인식은 주류민족인 한족을 비롯해 소수민족의 모든 역사를 중국 하나의 역사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단일민족인 우리나라의 역사인식과 크게 다르다.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하자니 역사를 빼앗겨 억울하고, 이해않자니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중국을 인정 못하는 샘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소리다. 또한 '아리랑'과는 반대인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가 강릉 '단오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을때 중국의 반응이 우리나라와 같았으니 같은 문화권에 속한 양국은 보다 성숙하고 냉철하게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해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KBS 한국의 유산 제작팀이 펴낸 [한국의 유산]은 여느 때와는 다른 감동으로 가슴을 두드린다. 역사 시간을 통해 수없이 배워왔던 유구한 유무형의 유산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이 맥없이 쳐진 우리의 역사관에 금을 가르며 거친 파문을 일으킨다. 한국의 기록유산, 한국의 인물유산 그리고 한국의 문화유산, 이렇게 총 3부로 구성된 [한국의 유산]은 2010년부터 방영된 일종의 다큐멘터리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작품으로 특히 흥미로운 것은 각 편당 방송 분량이 1분을 남짓하다는 사실이다. 이 1분 남짓한 시간의 감동 뒤엔 강렬한 여운이 남는다.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무엇이던가. 우리가 독서를 통해 충분한 사색이 필요하듯 방송 역시 사색의 시간을 충분히 할애토록 유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한국의 유산]은 비록 짧은 내용이지만 함축적이고 집약적 설명은 한국의 혼을 알기에 손색이 없다. 직지심체와 유감이지만 임대 형식으로 프랑스로부터 반환받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박병선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정부의 부끄러운 역사의식을 생각케 한다. 안중근과 그의 어머니, 1,500년 전 백제의 보물창고 무령왕릉, 대한민국에 기꺼이 용기와 헌신을 바친 김영옥 등 유, 무형의 마흔다섯 가지 유산들은 한국의 혼을 불사른다. 역사를 어설프게 안다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이다. 차라리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으나 이도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던가. 더욱 위험천만한 일은 어설픈 역사의 인지로 비롯된 그릇된 역사인식이 정신과 혼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끔찍하리라 만치 비참하다.

역사는 왜 알아야 하는가.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주장한 영국의 역사학자 E.H. Carr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반추하여 현실을 이해하고 진보적 가치를 추구할 미래를 준비할 의무가 있다. 과거는 과거로서만 존재하고, 현재는 현재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도 역사 속 궤적 일부라는 시대정신이 요구된다.

2. 끄트머리

[한국의 유산]을 읽고 있자니 쓸쓸한 미소가 나온다. 전소한 숭례문, 그리고 화마가 휩쓸어 버린 강원도 낙산사 등 역사가 걸어온 그 길을 이제는 걸을 수 없다. 다시 거꾸로 수백 년의 세월을 걸어가기에는 너무 멀기만 한 공허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선인들이 이룬 찬란한 문화유산은 곧 우리의 삶이요, 역사의 보고이다.

그의 그림과 정신과 영혼을 훔치다!

1. 책 뜯어 먹기

이런 걸 두고 룰모델이라고 하는가보다. 엉킨 실타래같이 뒤죽박죽인 삶에 금을 가르며 나타난 사람. 인간은 저마다의 룰모델을 가슴에 지닌 채 살아간다. 내게 있어 닮아간다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열 가지 중 한 가지를 위해서라도 전념하고 배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바람직한 일이던가. '이중섭'을 기꺼이 훔친 '몽우'라는 작가가 이와 같다. 학창시절 나는 미술 시간을 통해 강인하고 옹골찬 '소' 그림을 본 일이 있다. 지금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외국의 유명 작가의 삶과 작품을 대라고 하면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터진 입으로 곧잘 대답하곤 하지만 국내 작가라면 딱히 생각나는 인물이 없다. 그나마 생각나는 작가라곤 이중섭. 책을 읽고 한동안 거실 책장을 무심코 쳐다본다. 서양미술사와 관련된 서적과 국외 유명 작가의 평전만이 책장 한편을 차지한 채 집요하게 모아대는 나의 집착을 나무란다. 그러고보니 국내 작품집이나 작가의 평전은 단 한권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이것이 바로 삐딱이 독서가 아닌가.

얼마 전 이중섭 작가의 작품이 위작 논란에 빠지며 진흙탕에서 싸우는 대한민국 미술계의 현실을 보곤 참 마음이 답답했던 적이 있다. 그것도 유명 시사 프로그램에서 직접 시간을 할애하여 다뤘으니 국제적인 망신은 고사하더라도 국민의 시선은 어떠했겠는가. 또한, 위작이 대상을 받는 시대에 살다 보니 이젠 그저 무덤덤하다. 이중섭의 삶은 고단하고 짧았다. 그 때문일까. 사후, 그의 작품이 옥션에서 국내 작가의 작품으로는 최고가를 기록한 사실은 반길만하나 고 이중섭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내 관련 단체들 간의 티격태격은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이럴 땐 어처구니가 없다고 해야 한다.

황소 그림, 군동화, 은지화... 그를 대표하는 단어이자 그의 삶이며 그의 인생 전반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슨 인생이 이처럼 비루하고 모질단 말인가. 책을 읽으며 느낀 생각이다. 예술인의 삶이 모질고 각박하다고는 하나 이처럼 불운이 삶 내내 떠나질 않았으니 하늘도 무심하다. 바보화가 몽우의 [이중섭을 훔치다]에는 백석의 시가 자주 등장한다. 이중섭과 동시대를 살아가서인지 등장하는 백석의 시는 시대상을 어림잡게 한다. 특히 '몽우'는 우리 민족의 최고 시인 '백석' 평전까지 집필했으니 그의 시에 대한 사랑은 남달랐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몽우'는 누구인가. 그가 이중섭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부터 작품을 처음 접할 때까지 그의 삶에도 굴곡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찌 보면 몽우는 이중섭을 닮아가려고 몸부림치는 결핍마저 지니고 있다. 이중섭은 부성애에 대한, 몽우는 모성애에 대한 결핍 말이다.

세상의 전부처럼 사랑하던 아내와 아이들이 떨어져 지독히도 외로웠던 이 남자는, 처량하지 않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존엄성을 가진 사람이자 사내로서의 감정!...p.72

의례 평전이라 하면 자신의 업적을 위해 과장되고 부풀려진 내용이 반영되어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평전도 참 여럿 읽어댔다. 난 [이중섭을 훔치다]라는 작품을 평전으로 받아들였다. 이 책을 읽으며 장단점 두 가지를 발견했는데, 우선 단점으로는 '몽우'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과 사상이 전편 그대로 드러난다. 전혀 조심스럽거나 두려움 없이 본인의 생각을 설파하는 까닭은 이중섭에 대한 확고한 사랑과 집념의 결과였으니 그 누가 지적하거나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장점이라면 등한시해왔고 무관심했던 막연한 동경의 대상인 이중섭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우리에게 제시해줬다는 측면에서는 반길만하다.

2. 끄트머리

[이중섭을 훔치다]라는 책에 대해 접근하려면 우선 작가 '몽우'에 대한 이력과 작품 활동 전반에 대해 들춰내야 한다. 그의 정신세계와 시대정신이 이중섭이라는 거장과 시대를 관통해 조우하려는 모습은 젊은 화가의 의무이자 숙명이다. 참으로 멋진 일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