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의 첫 길은 혼자만의 길이다.

1. 책 뜯어 먹기

'단초(端初)'라는 것. 사람은 누구에게나 단초가 될만한 일들을 하나씩 간직하고 있다. 작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인간은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며 때론 새로운 단초로 말미암아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길을 걷게 되기도 한다. 잘 나가던 대기업 중견간부가 돌연 사표를 던지고 홀연 서울을 떠나 지리산 부락 주민과 동고동락을 하며, 한평생을 목수로 살아온 이의 장인정신은 한 국가의 대목장이 되어 서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에겐 단초라는 놈이 무척 큰 작용을 한다. 여기 아름다운 사람을 소개한다. 다소 괴팍한 모습의 중년, 요리와는 전혀 거리가 먼듯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사람이 좋고 강산이 좋아 요리를 하는 자연요리연구가 산당 '임지호'다.

서두에 '단초'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방랑식객]의 1장 '음식은 보은이다.'에 나타난 산당 임지호의 척박했던 사연 때문이다. 젊은 날 무일푼으로 전국을 떠돌던 시절 장터 할머니들이 아무렇게나 말아준 국수 한 그릇의 고마움을 잊지 못해 길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보은하는 심정으로 음식을 해주게 되었다는 그의 사연은 이제 우리의 현실에선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인심이라는 것 어찌 보면 지금도 실낱같이 시골에서나 흔적으로 남아 있겠지만 도시의 인심은 모두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린 시절 밖에서 뛰어놀다 목이 타면 아무 집에 들어 물을 얻어 마시고 아주머니는 세수라도 하고 가라며 양동이에 물을 길어주시곤 했지만, 지금에야 집안 문 함부로 열어주는 것조차 철저한 금기 사항이 되어 버렸으니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니던가. 요즘은 아마 문에 달린 잠금 장치가 거의 두 개 이상씩이라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어주는 임지호의 모습에선 향기나는 보은이 함께한다. 얼마 전 모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를 처음 알게 되었다. 첫인상은 딱 사진작가 아니면 책을 집필하는 작가의 모습이다. '쓸모없는 들풀은 없다."라는 말과 같이 그이 두터운 손은 집 담장 언저리에 솟아오른 풀들을 따내어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비비고 조무려 소박한 상을 차려낸다. 참 놀라운 광경이다. 사람은 외형만 보고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사뭇 그의 철학이 궁금해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호감이라는 것이지. 자연예찬론자와도 같은 작가의 철학은 뜻밖에 간단하다. 주위에서 자라는 풀이 바로 내 몸에 꼭 필요한 것이며 나아가 환경과 자연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각이 그의 지향점이자 철학이다.

이끼 국물에 두부를 쪄 먹고 버들강아지 풀을 감떡과 함께 하는 맛은 생각만 해도 자연의 풋풋함을 느끼게 한다. 비록 소박한 재료들로 버무려진 상이지만 음식의 시각 미는 타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자연 한 그릇을 밥상 위에 고스란히 올렸으니 이것이 바로 약이요, 인스턴트에 길든 우리 몸을 자연에 되돌려주는 의미 있는 보은이다.

2. 끄트머리

이웃과 나누는 보은과 몸에 베푸는 보은을 실천하는 자연요리연구가이자 방락식객 임지호. 그가 쳐다보는 시선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논두렁에 피어오른 풀과 꽃, 동네 어귀에서 만난 어린아이, 국거리 캐는 할머니에게까지 그의 깊고 아련한 시선은 오랫동안 여운이 길기만 하다. 방랑자의 첫 길은 혼자만의 길이다. 그러나 먼 훗날은 우리 다시 만나리라.

장독대가 있고 담벼락에 마늘이 걸려 있던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1. 책 뜯어 먹기

언젠가 고속도로를 달리며 보았던 한적한 농가와 농부의 풍경은 나와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던 모습이었다. 해가 뜨면 일어나 마을 논이나 밭으로 나가 온종일 일하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고된 몸을 이끌고 반겨주는 이 없는 집으로 향하는 모습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과 같이 생각되었다. 도시 사람들의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겐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삶이었으나 이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우매한 생각이 아니었던가 싶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 나 자신은 변하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뒷동산에 올라 봄나물을 캐던 기억과 쉽진 않지만, 귀농으로 도심을 떠나 새롭게 삶의 터전을 일궈가는 이들을 보면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변곡점에 서 있는 내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는 의미로 다가선다.

소박한 식재료를 찾아 떠나는 여행, [싱싱한 것이 좋아]는 단순한 기행이 아니다. 농부와 어부의 주름진 손과 얼굴의 주름은 우리네 부모님의 모습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친근과 인심으로 내어놓은 정갈한 음식은 한입에 털어 넣어도 목이 매일리 없는 손맛 그 자체이다. 자식 농사만큼 애지중지  했던 씨앗이 풋풋한 먹을거리로 자라날 때까지 성심을 다했던 그들의 땀에 우리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군시절 식당 내에 배식창구 위에 걸려 있던 조악한 농촌의 전경을 담은 그림. 농부의 땀과 피에 감사하자는 문구가 아직도 선명하거늘 나이가 들수록 감사한 마음은 커져만 간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마치 자연과 한몸이 된 듯싶다. 며칠 그들과 함께 지내온 듯 몸은 개운하고 새털처럼 가벼우며 마치 늘 그곳에서 살아왔던 착각마저 든다.

고소한 굴과 명품 달걀,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토종벌을 장난감 삼아 놀았다는 이의 해맑은 담소는 여름 저녁 별빛 쏟아지는 툇마루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마실 꾼을 연상케 한다. 요즘 현대인들은 어쩌다가 유기농산물에 목을 메고 살게 되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철분, 비타민, 하루 칼로리 권장량 등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저 밭에서 바로 따서 내어 넣은 풋고추, 산자락에서 갓 채취한 표고버섯, 바다에서 바로 건저 올린 싱싱한 멸치, 생각만 해도 몸이 활력을 되찾은 듯 축 늘어진 어깨와 허리가 곧추 펴진다.

2. 끄트머리

얼마 전 주말, 점심을 햄버거로 해결했다. 내겐 두 달에 한 번 먹을까하는 별미지만 요즘 들어 느끼한 것이 속이 부대낀다. 제아무리 싱싱한 재료로 만들었다고는 하나 우리 입맛과는 다른 것만큼은 확실하다. 요즘 아이들이야 인스턴트 식품에 익숙하다. 그들도 나이가 들면 달곰한 것보다는 씁쓸한 것과 깊은 여운이 남는 우리 것이 체질적으로 맞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할 터, 부모들은 너무 닦달하지 마시라. 시간과 정성으로 빚어낸 먹을거리. 그 시작은 싱싱한 것에서 출발한다. 장독대가 있고 담벼락에 마늘이 걸려 있던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우리 아이들이 논다고 꾸짖지 마라.

1. 책 뜯어 먹기

그 할머니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크시다. 게다가 욕도 잘하는 욕쟁이 할머니에 호랑이 할머니다. 회사 근처에서 밥집을 하고 계신 할머니. 문에 들어서자 "너 뭐 먹을래?" 하신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자리에 앉아 주문을 하고 나니 저쪽 테이블에서 "할머니는 목소리가 왜 그리 크신가요? 정정하십니다."라며 한 중년 나이의 남자가 묻는다.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이 퍽 인상적이다. "너도 아들놈만 일곱을 키워봐라." 커지는 건 목소리요, 느는 건 욕이란다. 이제 장성한 아들들이 모두 중년의 나이가 되어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로서 자식 뒷바라지는 성공적으로 마친 게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다. 퇴근 후 이 밥집에 들러 항상 문안 인사를 드리고 간다고 하니 할머니의 양육 방법에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게 아닌지 싶다.

여름 방학이다. 창문을 거의 열어두고 생활을 하는지라 윗집과 아랫집에서는 쉼없는 아이와 엄마의 전쟁 탓에 주말 낮잠도 제대로 청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가 한 살을 더 먹을수록 엄마의 목소리는 두 톤씩 올라가고 아이가 사춘기 무렵에 이르면 어느새 소프라노 성악가가 되어 있다. 아이들 양육은 부모의 책임이란 말이 맞다. 가끔은 부모의 무지함에서 비롯한 양육 방식에 대한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부모의 양육과 인성교육에 잣대를 만들어 문제점을 보완하며 개선하는 일련의 과정들로 교정이 가능하다.

시대가 변해서일까. 과거 우리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이 복잡 다난하다. 탈근대화 과정 속 혼란스럽고 두렵기만 한 현실이 현대에 들어 불안감은 더욱 증폭된다. 부모의 입장이라면 가장 공감 가는 것이 아이들의 양육에 관한 막연한 불안감이 아닐까 한다. 부모와 자녀의 동반 성장을 돕는 7가지 지혜가 담긴 [너와 함께 자란다]는 많은 것을 생각게 한다. 철학적 이론과 가치를 아이의 양육에 끌어들임으로 다소 어렵거나 생소하게 여겨질 것이라는 기우는 본문을 시작으로 사그라진다. 동양권 문화가 아니라 다소 생경한 예가 보이지만 작가가 주장하는 양육과 충실한 부모 되기는 타문화권의 그것과 하나이다. 참 어렵다. 우리 때야 부모의 명을 거역하면 한 대 맞고 하교 후 배고프면 돌도 씹어 먹으며 산이나 들로 뛰어다니다 밤늦게 귀가하곤 했는데 요즘 아이들이야 어디 그러한가. 부모의 그릇된 사고로 그저 최고만을 강조하고 아이의 심리적 상황을 배제한 채 지난날 못 이룬 제 꿈을 이루려 아이에게만 강요, 대리만족을 일삼고 있으니 일부 새장 속에 갇힌 아이들을 보면 암담하고 가엾고 또 불쌍타.

2. 끄트머리

요즘은 아이들 양육서에도 심리와 철학이라는 학문이 널리 통용되기 시작한다. 이젠 시대의 조류에 따라 요구되는 양육의 지침도 서서히 변화되겠지만 가족이라는 공간에도 심리와 철학이 빼곡히 박혀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고상하기는커녕 머리만 지끈거린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가정과 사회는 제 가슴에 손을 얹고 깊은 반성을 해야 한다. 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우리 아이들이 논다고 꾸짖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