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낭만을 모른다. 다 추억이 그리워서 그러는데.

1. 책 뜯어 먹기

휴가다. 휴가인데 딸아이는 개학이다. 휴가 신청을 하고 회사에 비상이 걸려 뒤늦게 얻은 휴가. 책을 읽다 보니 하루가 지나고 이제 이틀째로 접어들었다. 어제저녁 짐을 꾸리고 오늘 출발 예정이었으나 아침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급하단다. 급하단다. 요즘은 시간관리를 하지 못하여 여간해선 짬을 낼 여유가 없다. 이번 휴가가 기회인데 물 건너간 듯 싶고... 경제가 어렵다고는 하나 수많은 인파가 여행지로 몰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저리 미어터지는 곳에라도 가려는걸까 라는 생각을 한다. 더군다나 대중매체에서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1박 2일도 한몫을 톡톡히 해낸 것 같다. 다시 손에 쥐어진 여행 관련 서적을 만지작거리며 올 휴가도 아쉬움속에 보내련다.

학창시절 일요일에 빼놓지 않고 다니던 곳이 산이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그때는 취사 행위가 가능하여 찌게 거리와 삼겹살을 장만하고 커다란 배낭에 코펠과 버너 등을 챙겨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하곤 했다. 3시간 코스의 북한산에 오르면 약수를 길어 밥을 짓고 동무들과 오순도순 모여 담소를 즐기는 것이 낙이었으니 일요일만 바라보며 한 주를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체의 취사 행위가 금지된 산. 자연을 위하는 일이라 찬성하지만 그 이후 내게 등산은 끝이다. [캠핑요리 절대가이드]에 소개된 요리를 보고 있자니 첫 생각이 저 재료들을 손질하는 일이며 기름에 튀기거나 소스를 만들고 찌고 등등 번거로워 어떻게 해먹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친다. 일단 캠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먹을거리이니 나가서도 주부들에게 민폐 안 끼치고 남편들이 솔선수범하여 요리사가 된다면 기꺼이 응해줄 만도 하겠다.

그런데 요리의 종류가 대단히 많다. 180가지의 메뉴와 조리법은 물론 캠핑 요리 장비의 사용법과 관리법, 요리에 사용되는 다양한 향신료와 바비큐 용어 등 캠핑 요리에 관한 모든 것이 소개되어 있어 캠핑 여행에 꼭 필요한 필수품으로 한몫 단단히 한다. 특히 기존 외국 서적을 번역하여 출간된 캠핑 요리 레시피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캠핑 요리 레시피를 연구하고 개발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인다. 추러스 구이, 비어캔치킨, 마늘구이와 목살 바비큐 등 한 끼 식사로도 좋지만 내겐 안줏감으로 더 요긴할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여행지에서 좋은 요리와 좋은 대화라. 생각만 해도 식감이 돌고 행복하다.

2. 끄트머리

이 책에 소개된 요리를 집에서 해먹는다면 맛과 재미가 반감될 터이지만 생전 처음 보는 요리도 많은지라 외식이 경제적으로 부담된다면 가정에서도 손쉽게 부산떨며 실력 발휘도 가능하겠다. 그러고 보니 야외 캠핑이라는 말도 참 오랜만에 듣는다. 텐트치고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모닥불 주변에서 도란도란 나누던 추억, 요즘은 그 추억이 우리 곁에 시나브로 다가왔다. 멀리 떠날 것도 없다. 한강 둔치에 마련된 야외 캠핑장에 간다고 한다면 멀쩡한 집 놔두고 뭐하는 짓이냐고 하겠지만 너희는 낭만을 모른다. 다 추억이 그리워서 그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