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왕으로 군림하는 나라 아르미안.

이 만화를 읽기 전까지는 아르미안이 실존하는 나라의 이름인지도 몰랐던 나는

초능력을 사용하는 네 자매가 나오는 이 만화를 그저 '판타지 만화'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읽다보니 성경에도 등장하는 나라라고 하여 뒤늦게 무식을 반성했다.

그만큼 여성이 왕이 될 수 있는 나라가 흔치 않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아무튼 주변국들이 남성을 왕으로 추대하고 있는 시대에도

아르미안은 '원래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여성을 왕으로 추대한다.

그런 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장녀인 레 마누가 왕이지만, 장래 레 마누의 왕위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괘가 나온

막내 샤르휘나가 레 마누에 의해 추방당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판타지 모험물의 색채를 띄게 된다.

다른 자매들에 비해 샤르휘나 이야기에 판타지 요소가 더욱 많은 듯한 느낌이랄까?

(일단 신마를 타고 다니고, 신들도 많이 나오고, 초능력도 제일 강해보이는...) 

아스파샤를 보고 뭔가가 생각날 듯한 바헬. 그러나 떠오르지 않고...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데다 그새 다른 여자까지 생겨버린 바헬을 보고 슬픔에 잠긴 아스파샤.

레 마누는 그런 아스파샤를 보며 '스와르다에 이어 왜 너까지 이런 불행을 겪는 것이냐'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 말대로입니다.

아무래도 이 만화에서는 누군가를 너무 사랑하면 사랑한 만큼 슬픔에 빠지게 되는 법칙이 있나 봅니다.

네 자매 중에서는 그나마 정치하느라 사랑할 시간이 없는(?) 레 마누와

모험하느라 바빠서 아직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샤르휘나, 이 두 사람이

비교적 무탈(?)하게 살고 있는 것 같네요...(이 만화에 나온 이상 결코 삶이 무탈할 수는 없지만...)

신일숙님의 [파라오의 연인]도 최근에 읽었는데, 여기서도

사랑에 올인한 다이아나는 아무리 착하고 능력이 많아도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되고

사랑을 그저 이용할 뿐이었던 시링은 악하고 무능력해도 결국 잘 살게 되더라고요.

부조리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건가 봅니다.

신일숙님의 만화를 보면 사랑도 좋지만 너무 올인하지는 말고 자신의 삶을 살자,

사랑 때문에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사랑의 약자'가 되지는 말자는 교훈을 얻게 되네요.

리할 같은 남자를 잊지 못하는 스와르다도 답답했지만(대체 얼마나 대단한 남자라고?)

레 마누를 사랑하면서도 인정하지 못하는 리할의 우유부단함이 제일 답답했는데, 

이번 권에서 드디어 리할이 자신 때문에 스와르다가 처형되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리할은 엄청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아직도 레 마누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럼에도 레 마누에게 돌아갈 수 없는 나약한 자신이 가장 밉다고 말합니다.

한편 아스파샤는 꿈에 그리던 바헬과 드디어 재회하게 되지만,

아스파샤와 사랑했던 기억을 잊고 다른 여자의 연인이 되어 살고 있는 바헬을 보고 충격에 빠져 쓰러집니다. 

스와르다와 아스파샤가 사랑에 목숨을 거는 타입이라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

그냥 레 마누처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남자를 이용하거나

샤리처럼 사랑에 일절 관심도 없이 모험하느라 바쁜 타입이

어쩌면 더 살아가기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