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집에 비해 만화책이 많은 편이라 심심할 때 아이들은 만화를 한권씩 꺼내 보곤 한다. 좋아하는 만화는 보고 또 보고 몇번을 계속해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특별한 책을 만났다. 바로 사계절 출판사 <달고나 만화방> 시리즈 '너의 목소리'이다. 표지에서부터 뭔가 심상치 않다. 미래의 이야기인가? 뭔가 억압된 사회를 나타내는 듯 표지에서부터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몇천명은 수용할듯한 건물, 그 안의 일류학생들은 로봇처럼 움직이며 일사불란하다. 같은 소리와 언어만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학생들은 본인의 이름이 아닌 주어진 번호로 불린다. 잘못된 행동과 잘못된 말을 하면 반성의 방으로 가게 된다. 마스크가 벗겨진 사나의 얼굴, 그런데 입이 없다. 입이 없으니 진짜 말하는 건 아니고 학생들이 하는 생각을 저절로 읽혀지는 시스템인건가? 아예 쓸데없는 말을 못하게 입을 없애버린 걸까? 이 학교에서는다치고 약한 학생은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지며 학교에 손해라고 생각한다. 마을에서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고 아이들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사나는 동생 온이를 찾기 위해 일류 학교에 직접 찾아왔다. 일류 학교에 간 아이들은 마을에서 살았던 기억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그들이 시키는대로 만들어내는 인간이 되어간다. 생각을 조종하는 약물을 먹게 해 아이들은 생각이 멈추고 시키는대로만 하게 된다.

친구와 형인 사나(온이는 형인줄 모르지만)의 도움으로 마을을 찾게 된 온이, 자신이 누구인지 찾게 되어 목소리도 되찾게 된다. 겁많던 아이 온이는 일류학교 아이들에게 꽃향기를 전해주기 위해 용기 내어 다시 학교로 들어가고, 머리가 굳어 가던 어른들도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기억을 찾고 가족들을 만나 마을은 다시 색을 찾기 시작한다.

획일화되고 질서정연한 일류학교는 지금 우리 학교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자신의 생각과 목소리를 억압받는 학교, 우리는 말 잘 듣고 어른들이 하라는대로 잘 하는 아이들이 길러내려 한다. 이러한 생각이 강해지면 정말 일류학교 같은 곳이 생겨날 수도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없는 가정, 학교, 마을...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꽃이 피지 않는 암흑세계처럼 색깔도 없고, 생기도 없는 곳이 되어버릴 것이다. 아이들의 희망이다. 그 아이들 개개인이 내는 다양한 목소리와 생각들을 들어주어야 한다.

어른의 말을 듣게 하지 말고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자.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넘쳐나도록...

<칠칠단의 비밀>이 방정환 탄생 100돌을 맞아 개정판으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전 책은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계몽소설의 느낌이 강한 그림이었는데 새롭게 개정되면서 김병하의 그림으로 훨씬 세련되어졌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겠다.

칠칠단의 비밀...

탐정소설이라 하니 한때 재미나게 읽던 셜록홈즈가 떠오르기도 한데, 과연 방정환 선생님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셨을지 궁금증이 더해지기도 했다.

<동생을 찾으러>와 <칠칠단의 비밀> 두 편의 이야기 모두 여동생을 찾기 위해 두려움과 무서움을 이겨내고 쫓고 쫓기는 모험을 통해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오빠가 등장한다.

벽돌집에 붙잡힌 순희를 찾아내어 중국인들과 끝까지 맞서 싸워 동생을 구해내는 창호와 일본인 곡마단에 같이 붙잡혀 지내다가 외삼촌을 극적으로 만나 탈출을 시도하여 동생 순자를 구해내고 비밀범죄 단체 칠칠단의 음모까지 알아낸 상호는 당시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소년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방정환 선생님은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닥친 고난을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스스로 그 고난을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두 편의 동화를 통해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두 편의 이야기 모두 어려운 상황임에도 도와주는 이들이 나타난다. <동생을 찾으러>에서는 창호의 학교 선생님과 동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순희를 구출해낸다. < 칠칠단의 비밀>에서는 기호라는 통역을 맡았던 학생이 중국까지 가서 제일처럼 함께 해주고, 한인협회의 도움을 받으며 또 극적으로 아버지까지 만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이야기 속에서 약간은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동생을 구해내려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고 절실했기에 주위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나타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것을 통해서 방정환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외세에 의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우리 민족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우리 민족 모두가 이렇게 서로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씌여진 이야기이지만 읽는 내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 구성도 한 몫 하겠지만 아픈 역사속의 한 부분이라 더 그러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동화의 세계를 떠나 현실 세계에 한 발짝 들어선다고 한다. 생각이 깊어지고 우리역사와 사회, 문화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는 시기이다. 이러한 때에 칠칠단의 비밀처럼 건전한 탐정소설을 아이들에게 찾아주는 것도 우리의 역할인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인만큼 사랑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좋은 책을 알아야 아이들에게 권해줄 수도 있다. 책만 읽어라 하지 말고 아이와 함께 좋은 책을 찾아 읽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가끔 머리를 식힐 때 동시집을 읽는다. 동시 속에 들어가면 머리 아팠던 일들 모두 잊고 나도 어린애가 된 듯 하다. 읽으면서 혼자 실실~ 웃기도 한다. 동시를 쓰는 시인들은 어린 아이 같다. 시집의 제목처럼 같이 놀자고 내 마음을 자꾸 건드린다.

이번엔 아들 녀석을 내가 건드렸다. 같이 동시 읽자고...잠자리에서 동시를 한 편, 한 편 읽어 주었다. 동시를 먼저 읽어 주고 제목 짓기를 해봤다. 비슷한 제목이 나오기도 하고, 전혀 다른 제목이 나오기도 한다. '토요일' 시는 '주말'이라 하고 '우리 엄마 좀 말려 주세요'는 '엄마의 수다', '엄마도 남이다'는 '엄마는 치사해'라 한다. 두 묶음까지는 내가 읽어주고, 세 묶음부터는 아들이 내게 읽어 주었다. 엄마가 했던대로 동시를 읽어주고 제목을 지어보라 한다. 만만치 않다. 힌트까지 주며 정확히 맞추라고 하니 자꾸 성가시기도 했다. 내가 자꾸 건드렸더니, 아들도 나를 자꾸 건드리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집 한 권으로 우리는 여러 번 깔깔 웃었다. 그걸로 되었다.

동시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 한 편씩을 골라 봤다.

아들이 고른 시는 <토요일>, 우리 집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ㅎㅎ

피곤하지도 않고

주말도

하루 남은 날

소파에 누워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빈둥빈둥

숙제도 거의 다 했고

내일도 쉬니까

좋다

엄마 심부름도 하기 싫고 

TV도 보기 싫다

게임도 별로다

그냥 누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참, 좋다

 

내가 고른 시는 <끌어당겨>

꽃 속에는 자석이 들었나 봐

자꾸 나를 끌어당겨

내 눈 속에 자석이 들었나 봐

자꾸 꽃을 끌어당겨

꽃과 나는 오래전에 토막 난

자석인가?

서로 자꾸 끌어당겨

얼굴을 맞대고 코를 벌름거려

봄이 오니 꽃들이 자꾸 나를 끌어당긴다. 그래서 자꾸 밖으로 나가고만 싶어진다. 일하기 싫고 놀고만 싶어진다. 꽃 속에 자석이 들어 있었나보다. 나가지 못할 때는 자꾸 창문을 연다. 나를 끌어당기는 꽃을 찾으려고...

해설에서 강정연 작가가 '세상을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면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 것처럼 동시집 속에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자꾸 마음을 건드리는 동시들을 만났다. 혼자가 아니라 아들과 함께여서 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