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된 시간,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한 방황의 노래들
학원을 앞에 두고 발길을 돌릴 때나
갑작스런 폭우로 후텁지근한 버스 안에 같혔을 때나
지하철 연착으로 발이 묶일 때나
수능을 마치고 일없이 방 안을 서성거릴 때나
아이스크림 가게 안에 안개가 피어날 때처럼
뜻밖에 맞닥뜨리게 된 낯선 공간에서
뜻밖에 찾아온 잉여의 시간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며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열 아홉, 그 빛나는 시간을 위태롭게 바라보는
모든 청춘들에게 보내는 다섯 편의 짧은 이야기.
나는 수능을 약 50여일 남겨두고 실제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자기 직전까지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가장 큰 화제는 공부, 그 다음 '수능 끝나고.'
두번째 이야기 '미아'에서 M이 늘 입에 '수능 끝나면'을 붙이고 사는 걸 보면서
딱 지금 우리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수능 끝나면 맛있는 거 먹자, 수능 끝나면 어디 가자, 수능 끝나면 ….
사실 아직 수능이 안 끝나서인지는 몰라도,
이 소설들에 묘사된 것처럼 아직 심각한 정체를 겪고 있지는 않아서
미아 외에는 크게 공감되는 내용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물론 5개 중에 3개가 대학생, 재수생, 수능이 끝난 수험생의 이야기라
그럴 수도 있지만.
또 중간 중간 오글거리는(…) 내용들도 있어서 현실과 조금 거리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
하지만 소설의 전부가 화자의 내면 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조금씩 와, 공감된다 혹은 날카롭다 싶은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은
"그런데 우리가 정말로 같은 길을 걷고 있을까?
나의 풍경과 너의 풍경이 같지 않아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
.
"난 있지, 어떨 땐 내 눈이 보고 있는 것이 밖이 아니라 내 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
같은 길을 걸으면서도 기억하는 풍경이 각자 다르다는 것.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각자의 머릿 속과 마음 속이 다르다는 게 신기하더라.
그리고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 미아와 폭우를 제일 재밌게 읽었는데,
미아는 가만히 글자를 따라가다보면
진짜로 어둑한 새벽에 방 안에 혼자 앉아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전화번호부를 뒤적이며 이름 하나를 천천히 곱씹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폭우는 재수생에 완전 감정 이입되서
마지막에 그 여대생이 말 걸었을 때 완전 울컥 … ㅠ.ㅠ
책도 가볍고(그러니까 물리적인 무게가) 가격도 저렴하고
자기 전에 삼삼하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