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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만들어진 영화중 사랑에 대한 답을 아주 솔직하고 대담하게 표현한 프랑스 영화
어떤 젊은 여자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쏘아보는 듯한 신경질적인 눈빛 그리고 그녀가 처한 지금의 조건이 뭔가 불만스러운 듯 육감어린 입술을 지긋이 다문 채 턱을 괴고 있는 파랑색 포스터의 영화
프랑스 누벨 이마쥬의 기수 장 자끄 베넥스의 베티블루 37.2。는 원래 `86년 제작되었으나 `91년 감독이 원하는 대로 3시간 5분으로 복원되는 특이한 경로를 거쳤다. 우리나라에서도 `87년 개봉 당시 1시간 40분 정도의 분량으로 개봉되었고 이번에 1시간 25분 가량이 추가된 그 버전을 무삭제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영화는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는 헐리우드 서사구조와는 다르게 처음 베티와 죠르그가 언제 어떻게 만났는지 말이 없다. 중요하지도 않은 신분, 학력, 재산 따위의 쓸데없는 조건들이 없으니까 자유스러워 보이고 공감대를 넓힌 효과가 나타난다.
주연배우 베아트리체 달(베티)과 장 위그 앙글라드(죠르그)는 20대의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혼신을 다해 표현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서로 뒤엉키는 육체적 탐닉을 통해 사랑의 강렬함을 표현했으며 순수해서 상처받기 쉬운 베티의 불안정함를 끝까지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한 죠르그는 사랑의 부드러움을, 그를 지독하게 사랑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자해한 모습의 베티는 극도의 절망감을 나타낸다. 그만큼 사랑은 깊은 거니까...
스무살에 처음 본 베티는 평상시에 생기있고 발랄하지만 내면에 불쾌하거나 불만족스런 감정이 생겨 울화가 치밀 때면 집안 물건을 던지거나 때려부수고 심하게는 원인 제공자에 대한 신체적 공격이나 자신에 대한 자해를 해서라도 풀어야하는 광기의 다혈질 캐릭터로 여겨졌다. 하지만 서른살에 다시 만난 그녀는 삶에 대해 너무 순수해서 방황이 많았던 우리 20대의 자화상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무엇이 될지, 사회에 진출하면 무슨 일을 하고 살지, 경제적으로 타인에게 멸시받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존경을 받고 싶은 당당한 위치에서의 "나"를 원했던 힘 없던 우리를 말이다. 그녀는 그 소망을 죠르그의 방갈로나 직업, 그리고 그가 써놓고 숨겨둔 소설로써 이루고 싶어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아무 희망 없어보이는 방갈로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꿈을 꾸기 위해서 파리에 도착한 그들은 친구의 식당에서 서빙도 하고 죠르즈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도 하고 임신의 희망을 가지며 지냈건만 되돌아온 건 세상의 냉정함뿐이다. 그렇게 둘의 사랑(삶)을 담기에는 세상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들의 모습이 계획성 없이 무모해 보이고 비현실적인 사랑의 단면을 보여주기에 이건 아니야라고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베티와 죠르그는 한 때 순수했지만 세상살이에 좌절한 바로 우리 자신을 비쳐주는 거울이기에 그냥 대면하고 있기에는 왠지 모를 서글픔이 있다. 매일 우리는 세상과 싸워나가며 살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한 상처는 우리를 태어난 본질로부터 무뎌지고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그렇지만 역시 사랑은 아름다운 것. 그런 처연함이 있기에 오늘도 많은 젊은 남녀가 사랑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영화에는 그런 슬픔 말고도 몽환적인 가브리엘 야레의 음악과 시각적인 영상미를 담고 있다. 사랑의 정서적인 배가(倍加)를 위하여 장밋빛 붉은 노을에 섹스폰의 곡조를 띄우며 더위에 지친 여행객들을 부르는 방갈로의 나른한 풍경이나 죠르그의 방갈로를 감싸듯 뒤덮은 푸른 밤(이때 필름을 쥐어짜면 정말로 푸른 빛깔의 물이 철철 흘러넘칠 듯하다.)이 세상을 잊은 듯 평화롭게만 보이고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조건과 손익의 계산으로 상처받은 우리의 영혼을 어루만져 치유한다. 베티의 스무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벽난로 앞에서 사랑을 나누는 그들의 육체는 담박하고 투명해보이며 죠르그의 아이를 임신할 수 없다는 충격으로 머리를 마구 자르고 립스틱으로 자해적인 화장을 한 베티의 모습을 보고서 식탁에 마주 앉아 붉은 소스를 얼굴에 바르며 일체감을 표현한 죠르그의 그것은 마냥 비현실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가슴 저린 구석이 있다... 그래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모습이 행위에서 투영되고 반사되고 있음을 응시하면서 하나임을 깨닫는 본질적인 것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