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문이란 이름의 해적판 씨리즈로 나온 사조삼부곡. 고려원이라는 지금은 없어진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 한때는 말도 안되는 가격으로 거래가 되었었다. 절판이 된 책이고 사람들이 여전히 많이 찾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려원판 영웅문이 중고서점에서 꽤 비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몽고의 별이란 부재를 달고 나왔었던 영웅문1부의 원래 제목은 사조영웅전. 8권으로 정식 번역되어 출간 되었다니 김용의 애독자로서 정말 기쁜일이다. 또한 38권의 분량으로 사조영웅전을 만화로 그린 이지청씨가 소설에도 삽화를 넣어주고 있으니 더욱 반가운 일이다. 

   재능은 아둔하지만 예의 바르고 정의로운 소년 곽정은 모험끝에 최고의 고수가 되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착한 심성으로 인한 것이다. 답답할 정도로 착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는 곽정에 비해 그의 연인 황용은 매우 똑똑하고 영악하다. 그래서 곽정을 꼼짝못하게 하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때는 듬직한 곽정을 믿고 의지하며 그의 뜻을 따른다. 
유명한 구음진경, 화산논검이 처음 등장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리고 오대고수 동사, 서독, 남제, 북개, 중신통이 등장하고 일양지등의 무술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중국 영화를 보다보면 김용의 소설에서 봤었던 무술이나 비급이 나온다. 주성치의 영화에서도, 잘 알려진 여러편의 무협영화등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그의 작품 천룡팔부에서 일양지가 등장하고, 영웅문 시대 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조영웅전 후에 씌여진 작품이다. 게다가 작가의 오류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건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다. 인터넷등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는 이야기 들이다. 

   영웅이 없는 시대에 인기 연예인이나 협잡꾼 같은 정치인이 영웅대접을 받기도 한다. 돈이 많은 사람도 그렇다. 영웅은 어떻게 보면 있어야 할것 같기도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영웅이 필요 없기도 하다. 영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살아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희생당한 역사도 상당하다. 사조영웅전의 영웅 곽정은 애국지사와 정의감으로 뭉친 인물이다. 게다가 끝없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재능이 뛰어난 황용이나 양강은 금방 배우는 것을 곽정은 끙끙 거리며 겨우 배운다. 그러나 곽정은 토끼를 이긴 거북이와 같다. 끊없는 노력과 좋은 성품으로 인한 운수, 인연으로 인해 최고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곽정은 공과 사를 구분할줄 아는 사람이다.  어릴적 몽고에서 징기스칸의 도움을 받고 자라고 몽고에서 장군까지 지내지만, 몽고가 중국을 침략했을때는 가장 앞장서서 싸우기도 한다. 몽고에서 의형제를 맺은 쿠빌라이나 혼인을 약속한 그의 동생의 약속을 저버리기도 한다.  신의가 없어서 그런것이 아니라 대의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게 되는 것이다. 

  웃기는 것은 소설에서 반청복명을 주장하는 것이다. 청나라를 반대하고 명나라를 복원하자는 구호인데, 동북공정을 내세우고 있는 지금의 중국과 맞지 않는 이야기다. 당시 청나라는 중국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으며 오랑캐라고 불렀다. 발해의 후예나 거란등의 후예로 이루어진 것이 청나라이니 우리나라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걸 아는 중국은 고구려를 중국의 역사라고 주장한다.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침략으로 소실된 우리나라의 기록말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의 흔적을 찾게 되니 한심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코 고구려나 청나라는 중국의 역사라고 할수 없다는 것은 그들의 사서에 더 잘나와 있다. 
사조영웅전은 중국에서 역사소설로 인정하고 있지만, 우리의 시점에서 보면 그냥 무협지다. 중국인이 쓴 소설이니 그들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재미는 있으니 역사적인 사실은 그냥 가설로만 인식하고, 재미만 즐기면 될것이다.

 

   난 일단 무협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군대에서 사고가 생겨 군병원에 입원했을때, 너무 할일이 없었다. 병원에서 만난 후임이 무협지를 무척 좋아하는 녀석이었는데, 너무나 재미있게 보길래 몇마디 물어 봤다. 그리고 병원내에 있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보게 되었는데, 처음 본것이 바로 사조영웅문이었다. 

그후로 한달동안 김용의 책에 푹 빠져 있었다. 그의 소설은 폐인을 양산하는 연속극처럼 사건전개는 짜증이 나면서도 계속해서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넓은 중국 땅에서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왜 그렇게 많은지. 살다보면 국내에서 조차 그런일이 드문데 드 넓은 중국땅에서 우연히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극 전개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리라. 

병원에 구비된 김용의 소설을 모두 읽고 난후, 다른 무협지에 손을 댔다. 그러나 한권을 제대로 못읽었다. 김용의 것에 비해 너무 유치하고  뻔했고 재미도 없었다. 무협지라곤 김용것 밖에 안읽었는데 벌써 무협지가 지겨워 진것일까? 그러나 수년이 지난후에 읽은 김용의 작품은 다르다. 고로 난 무협지라고 하면 김용의 작품만 읽는다. 

  김용의 소설은 거의 다 읽어 보았다. 그중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들을 꼽으라면 신조협려와 영화 동방불패로 알려져 있는 소오강호다. (소오강호에 동방불패가 등장하지만 내용은 매우 다르다)
  
  신조협려는 사조삼부곡의 전편인 사조영웅전과 이어진다. 사조영웅전에서 악당이자 주인공 곽정과 의형제였던 양강의 아들 양과가 주인공이다. 아버지의 죄를 누우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양과는 아버지와는 달리 의협심과 정의를 가지고 산다. 성격이 격하고 약아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결국엔 나라에 큰 공을 세우는 천하 무적의 영웅이 된다. 


   김용의 작품은 같은작품을 매년 드라마로 제작할만큼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양과의 사부이자 연인인 소용녀는 그야말로 천하제일의 미녀라고 할수 있다.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녀 배우 유역비가 그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스승과 제자가 연인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큰 죄와 같은 행위이다. 지금도 비난을 받을만한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고 동굴에서만 살아온 소용녀와 세상이 정해놓은 규칙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거칠것 없는 사나이 양과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일일뿐이다. 그로 인해 그가 사랑하고 존경하는곽정등에게 훈계를 듣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곤욕을 치루기도 하지만, 나라에 큰 공을 세워서 문제를 불식시킨다. 

너무 자세하게 이야기 하면 재미가 없다. 이 책을 읽을때 사전 정보를 모른다면 그런것 따위는 알아볼것도 없다. 그래야 더 재미있게 읽을수 있으니까. 사조 삼부곡은 이어지는 스토리 이지만 따로 봐도 별로 관계가 없다. 사조영웅전과 신조협려는 이어지지만 3부격인 의천도룡기는 거의 별개의 이야기다. 
무협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서구 근대화의 물결과 일제의 압박속에 지식인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했다. 사대부들은 한문을 사용하여 의사를 표시했고, 언문이라 비하된 한글은 일반 민중이 사용했다. 그래서 판소리 문학등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든 문학행위는 한문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양근대문화가 들어오면서 문학인들은 한문을 이용한 문학행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한문으로는 대중들과의 소통이 어려움을 알게 되었으나, 한글로 문학행위를 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행위였다. 언어에 대한 고민은 언어의 과도기(1890~1905)를 가져왔다.

이것은 이식된 근대에 의해서 급변하는 정세속에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같은 노력이었다. 

 

 1896년 독립신문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한글로 신문을 발간하는 새로운 실험을 하게 된다. 왕중심이 아닌 일반 대중과의 소통이 중요한 근대에 대한, 그당시로는 새롭고 의미깊은 시도였던 것이다. 처음으로 띄어쓰기가 삽입되는 것도 이때이다.

[한길사 - 한국근대민족문학사 /김재용외]에서 인용함.

 

 세종대왕께서 민중들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셨지만, 사대부층들은 한글을 비하하고 이시기 이전까진 한문으로만 문학행위를 해온것이다.물론 이전에도 판소리 소설이나 홍길동전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한글을 사용하고 한글로 문학행위를 하게 된것은 이때부터이다. 

 

  이때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후까지도 문학인들은 새로운 언어로 문학행위를 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을 해왔다. 우리가 지금 누구나 한글을 사용하고 한글로 책을 읽게 되는 것, 그리고 많은 문학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당시 문인들의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거나, 또는 더 빠르게 찾아왔을 것이다.

 

 

  이시대 대표적 문인중의 하나인 이태준은 적극적인 식민지 저항문학을 하진 않았지만, 그당시 고난을 겪는 많은 민중들의 모습을 그대로 작품속에 투영하였으며, 현실반영과 문학의 예술성이란 두마리 토끼를 잡기위해 노력한 이시대 대표적인 소설가이다. 그의 노력은 현대소설의 기반을 쌓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소설외에도 그의 문학과 예술성에 대한 고민을 거듭한 결과, 한국최초의 문장론에 대한 체계적 교육서이자, 지금도 계속해서 여러출판사에서 발간되고 있는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출간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태준은 장편보다 단편에서 강세를 보였는데 그당시 시하면 정지용이요, 소설하면 이태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길 정도로 그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라 하겠다.

30년대 발표한 그의 작품전반에서는,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같은 것이 묻어난다.

「불우선생」(1932),「영월영감」(1938),「복덕방」(1937)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노인들은 하나같이 불행하기 짝이 없다. 재산을 탕진하고 여관을 전전하면서도, 올곧은 선비의 모습을 잃지 않는 송노인을 그린 「불우선생」조카에게 돈까지 빌려 금광에 투자하지만 끝내 금광사고로 죽게 되는 「영월영감」잘못된 정보에 속아 딸의 돈을 날리고 끝내 자살하고 마는「복덕방」의 노인들이 모두 그러하다. 이러한 경향은 이태준의 아버지가 6살 때 어떤 소식을 듣고 비명횡사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을 작품속에 투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노인들의 처절하고 절망적인 모습을 그리면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작중 화자의 시선이 연민과 따뜻함으로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도 그런 추측을 뒷받침 해준다.

 

 

「달밤」(1934)의 산만하게 떠들길 좋아하는 신문 보조배달부 황수건은, 학교 급사로 있을 때 학무국 시학관을 잡고 쓸데없는 잡담을 하다 쫓겨난 못난이다. 노란수건이라는 별칭을 가진 그의 꿈이라고는 원배달부가 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보조배달부에서 조차 밀려나고, 작중 화자의 돈을 받아 시작한 참외장사도 말아 먹는다. 고마움을 느낀 황수건은 포도를 훔쳐서 화자에게 주지만 오히려 포도값을 물어주게 만든다. 화자는 그 포도를 아껴먹어가며 수건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가마귀」(1937)의 ‘그’는 친구별장에서 얹혀 지내는 처지다. 그곳에서 시한부 폐병 환자인 여성을 만나 연민과 사랑의 감정을 느낀 그는, 여성이 두려워 하는 죽음과 그것을 상징하는 까마귀 한마리를 잡는다. 까마귀를 불길하게 생각하는 여성에게 배를 갈라 그냥 새일 뿐인 것을 보여주려 하지만, 여인은 죽고 쓸쓸함만 남게 된다.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잡지사에 취직한 청년이 에로물을 취재하다 매음굴 소녀들의 참상을 보게 되는 「아무일도 없소」(1931), 도시로 유입된 유농민들의 처절한 삶을 그린「꽃나무는 심어놓고」(1933), 만주로 이주한 창권과 가족들의 치열한 다툼과 정착을 그린「농군」(1938)등에서도 나타난다. 암울한 운명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치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역시 연민과 동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농군」에서는 감정이입이 자제되고 창권과 가족들의 실상을 그대로 리얼하게 표현하는 것에 더욱 중점을 두는 것과, 개인적인 불행에서 벗어나 집단적인 방향으로 생존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다른 작품들과 차별되는 점이다. 그러나 소외된 민중들을 중점으로 서술하는 것은 여전하고, 그것이 사회의 부조리와 참상을 고발하는 것이므로 같은 의의라고 볼 수 있겠다.

 

 

그 외에도 그는 작품을 통해, 속물적 지식인들에 대한 혐오감도 드러낸다

 

은행본점에 취직된 것을 자랑하는 지인을 따라간 사은회를 난장판으로 만드는「고향」(1931)이나, 방향전환을 권하는 김에게 유리잔을 던지는「패강냉」(1938), 친구 강군의 변절에 대한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그려낸「서글픈 이야기」등이 그런 경향을 잘 나타내는 작품들이라 하겠다. 특히「서글픈 이야기」는 변절된 강군을 만나게 된것이 차라리 그가 죽었다는 소식보다 못하다“는 대사를 통해 반감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찌기 고아가된 그는 여러곳을 돌아다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 유학하고, 일본에서 단편 오몽녀를 발표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후 30년 동안 단편 60여편과 중·장편 18편, 수필 수편을 발표했으며, 출판·언론인으로도 활동했다.

 

  아주 오래전 작품인데도 이시대 다른 소설들에 비해 읽기가 쉬운 것이 장점이다. 지금봐도 손색이 없는 소설들이긴 하지만, 지금의 소설들과 비교하여 평가 절하하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란다. 그때의 시대적 상황과, 새로운 언어로서 문학행위를 하는 초창기의 개척행위였다는 것을 염두하고 보는 것이 바른 자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