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두 번 가는 간송미술관 . 올해는 일정이 갑자기 변경되는 바람에 시월에 가지 못하고 말았다. 대신 간송을 읽는 것으로 대신한다. 내가 간송미술관을 알게 된 것은 십여년전 한 지인의 블로그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는 꽃이 활짝 핀 오월에 그곳을 다녀왔다.

간송은 1906년 종로4가 112번지 백부 전창엽은 두 아들(영기, 명기 )이 있었는데 동생 창렬이 자식이 없어 작은 아들 명기를 양보로 보냈다. 영기의 장남이 형설(15세)이고 뒤늦게 형필이 태어난 것이다. 명기에게도 후사가 없어 형필을 양자로 맞는다.

전영기는 무관으로 중추원 의원을 지냈고 배오개(종로4가)에서 미곡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무반들은 통상 어영청근처인 배오개에서 군비조달 겸 장사를 했다. 전형필의 외조부인 박태윤은 훈련원 첨정을 지낸 인물로, 같은 무반집안끼리 혼사를 맺은 것이다. 외숙부 박대혁의 3남1녀 중의 둘째가 박종화로 형필 보다 다섯 살 위였다.

박태윤의 사랑에는 유길준, 조진태, 한규설, 이승훈 같은 개화파 지식인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형필은 1917년 어의동 공립보통학교(효제 초등)에 들어갔으나 그해 조부 전창렬이, 두달뒤엔 친조모, 다음해엔 양부 전명기가, 또 친형인 형설이 급사하여 유일한 적손이 되었다. 1921년 외숙의 권유로 휘문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휘문에 재직하는 교사들이 민족의식이 투철했다고 한다, 이때 박종화는 시 전문지 <장미촌>창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월탄은 형필에게 필독서를 알려주고 이를 통해 역사와 만나게 된다. <연려실기술><동국통감><훈몽자회>같은 옛책에 더 끌리게 된다. 외숙 박대혁은 형필에게 독서의 방향과 목록을 알려준다. 그가 가문을 짊어질 적손이었기 때문이다.

휘문고보에서 형필은 토요일 특별활동으로 야구를 택했다. 친부 전영기는 서재를 만들어주고 ‘玉井硏齋’ 라고 지어주었다. 큰아들 형설의 급사로 아쉬워하던 그는 형필을 고성 이씨와 혼인시켰다.

1928년 여름 와세다대 법과대학 3학년 재학 중인 형필은 방학이 되어 종로4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휘문고보 시절 미술교사 고희동을 찾았다. 고희동은 제자 이마동을 통해 형필을 만나고 그에게 서예와 그림 뿐 만아니라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승을 만난 형필은 일제하의 재판정에서 왜놈 법을 섬기는 변호사가 되는 것에 대해 회의를 표명한다. 고희동의 말을 듣고 월탄을 다시 찾아가 상의한다. 며칠후 고희동은 형필을 데리고 오세창을 찾아간다. 이때 형필은 이미 전동(안국동)에서 예전에 구한 평양성 석편(이대박물관 소장)글자의 탁본을 준비하고 흰 두루마기 차림이었다. 위창은 당시 일본망명시절에 부인이 이사를 하다가 석편을 떨어뜨려 네글자가 부서져 버렸는데 그전의 탁본은 오롯이 석편전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선친 오경석의 탁본을 보고 놀란 위창은 그를 본 순간 ‘깊은 산속에서 흐르는 물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산골물 간澗 자에 <논어>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에서 松 을 따 ‘간송’이라는 아호를 지어준다.

간송이 와대를 졸업할 무렵 첫아들 광우, 그리고 친부 전영기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24세 때의 일이다. 형필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은 800만평(4만마지기)이 넘었다. 200평에서 쌀 한가마니가 나오니 , 한해 수확이 2만석이었다. 선친이 후해서 1년에 2만가마니를 거두었다. 당시 쌀 한 가마니가 16원 정도, 1년 수입이 32만원이었다. 당시 기와집 한 채가 천원이었다고 한다. 전답은 왕십리· 답십리·청량리·송파·창동·고양군·양주군·광주군·황해도 연안·연백·충청도공주·서산까지 있었다.

자신을 다시 찾은 형필에게 위창은 역대 서화가들의 인명사전 <근역서화징>과 <근역화휘>를 보여준다. 일본 망명 후 귀국한 그는 만세보와 대한민보 신문사사장으로서 백성들에게 세상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나, 일제에 의해 그도 여의치 않자 일본으로 유출되는 조상의 얼인 진적서화를 지키기로 결심한다. 위창은 <근역화휘>를 주며 자신의 안목으로 그림 한 점을 구해오는 숙제를 준다.

형필은 관훈동 한남서림의 백두용 주인을 찾아갔다. 한남서림은 형필이 고보 때부터 드나들던 곳이다. 그는 위창이 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겸재의 그림을 찾는다고 부탁한다. 그런데 백두용은 운영상의 곤란을 토로하며 인수를 부탁한다. 위창 앞에 내민 그림은 겸재의 <인곡유거>였다. 숙종대부터 조선에는 진경산수화가 등장하는데 겸재가 뛰어났다. (명․ 청 교체시기에 청의 문화보다 조선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자긍심이 일반화됨) <근역서화징>에 강세황이 ‘겸재가 동국 진경을 가장 잘 그렸다’고 쓰여 있다. 위창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우여곡절에 휩쓸리지 말고 오래 조상들의 얼과 혼을 모으고 간수하는데 만 매진할 것을 당부한다.

당주동쪽에서 광화문 쪽으로 가다보면 3층 건물에 ‘조선미술관’이 있었다. 오봉빈이 운영하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청전 이상범과 심산 노수현을 만난다. 두 화백은 동아일보와 중외일보에 삽화를 그리고 있었다. <풍림독조>와 <장수산 천불봉>이 그들의 대표작이다.

조선고서화 진장품 전람회가 1930년 3월에 동아일보 강당에서 있었다. 오봉빈이 기획한 것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전시기획자로 평가된다. 육당의 ‘안평대군의 사경’ , 위창의 ‘상공시집’, 오봉빈의 ‘단원 풍속도’, 박재표의 ‘강희안의 산수화’와 ‘이상좌의 나한도’, 박영철의 ‘오원의 2폭병풍’, 윤정하의 ‘정약용 해조’등 보물급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형필이 수장가로서 데뷔한 날인 셈이다.

1931년 1월부터 4월까지 도쿄 우에노 미술관에서 조선의 문화유산 400여점을 보여주는 전람회가 열린다. 이때 일인수장가로부터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매물로 나온다.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김종서, 정인지, 서거정의 발문이 쓰여진 가로 106센티 , 세로 38센티 크기로서 3만원을 호가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훗날 덴리대학의 수장품이 되었다.

백두용은 형필에게 수장목록 ‘심재장서’를 건네주며 한남서림을 넘긴다.

1933년 수장품을 흩어지지 않게 지키기 위해 성북리 선잠단 근처에 최초의 개인박물관을 건립에 들어간다. 설계는 박길룡이 했다. 그는 총독부 근무시절 시인 이상의 상사이기도 했다.

형필은 청자를 보는 눈이 취약한 이순황을 통해 진고개의 ‘온고당’ 주인인 신보 기조를 소개받는다. 1933년 11월 오사카 야마나카상회 석조진열장에서 석조물 야외 경매가 개최되는데 목록에 통일신라 3층석탑, 고려3층석탑, 석조 사자탑, 조선 석등이 나와 있었다. 이중 통일신라 3층석탑(고려석탑으로 밝혀짐)과 석등이 귀국하게 된다.

형필은 외종형 월탄과 함께 익선동의 김용진가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好古有時搜斷碣, 硏經婁日罷吟詩’(옛것을 좋아해서 때로는 깨진 비석을 찾고, 경서연구를 여러 날에 끝내면 시를 읊는다.)의 예서체를 만나는데 곧 석파에게 주는 추사의 글씨였다. 이외에 추사의 <난맹첩>과 혜원의 <미인도>, 혜경궁 홍씨의 궁서체를 접한다.

거간꾼 장형수는 지방도시의 양반집을 돌며 고서화를 수집하는데 어느 날 용인에서 송병준가의 머슴이 종이뭉치로 군불을 때는데 확인해보니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없기 때문인지 그것은 겸재가 72세때에 그린 <해악전신첩>이었다.

심래영의 친척 심환지가 찾은 심사정의 <촉잔도>가 8미터 두루마리 하폭에 담겨 장대한 경관을 이루는 그림이 발견된다. 이 그림은 이인문의 10미터짜리 <강산무진도>와 함께 조선후기의 거작이라고 한다.

1934년 가을 그는 세키노 다다시가 쓴 <조선의 건축과 예술>에 소개된 혜원 신윤복의 풍속화 두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런데 그 그림은 조선은행 옆 도미타상회 주인이 죽은 후 오사카 야마나카 상회에서 일괄 구입해 버렸음을 신보로부터 듣게 된다.

야마나카 상회는 그림 30점에 5만원을 요구했다. 신보는 형필에게 너무 마음 상해하시지 말고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라고 위로한다. 형필은 신보와 함께 오사카로 날아가서 흥정 끝에 30점을 2만5천원(요즘 시가 75억원)으로 일괄 구입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월하정인><기방난투><쌍검대부>등이 들어있는 <혜원전신첩>을 되찾은 일화이다.

팔당의 낚시하는 할아버지가 중간상인에게 물고기를 넘겨 서울로 팔려갔다. 벌이가 시원찮아 할머니는 봄이 되면 나물을 캐고 가을이면 참기름을 짜 살림에 보탰다. 어느 날 할머니는 땅속에 박힌 흰색 병을 발견했다. 참기름을 담기에 안성맞춤인 목이 긴 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만 비슷한 병이 무더기로 나왔다. 참기름을 팔 때 그 병에 넣어주니 광주리행상 개성 댁도 참기름을 한 병 샀다. 황금정의 일본 단골손님 집에 가서 팔았다. 일본 안주인은 옆 건물의 골동품상점하는 남편을 불러 참기름 병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때까지 일본인은 조선백자를 잘 몰랐다. 이 백자는 돌고 돌아 모리 고이치 라는 수집가에게 180점 3천원에 넘어갔다. 이것이 <청화백자 양각진사철채 난국초충문병 국보 제294호>이다.

1936년 형필은 고려청자 20점을 소유한 일본에 거주하는 영국인 개스비로부터 한옥400채값 40만원(현재가 1200억원)을 주고 찾아온다.<청자원형 연적><청자기린형향로><청자오리형연적><청자상감포도동자문매병>등이 그것이다.

1940년 여름 형필은 훈민정음 타령을 하는 김태준 (1905~1949, 국문학자, 사상가)를 만났다. 그는 <훈민정음>매각을 통해 경성콤그룹의 활동자금을 충당하려고 했던 것이다. 김태준은 형필에게 자기집안 것이 아니고 처갓집인 광산 김씨 종택 긍구당에서 빌려왔다는 사실과 언문책 소지자를 엄벌하던 연산군시절 부득이 첫머리 두 장을 찢어버렸다는 것이 지어낸 말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형필은 김태준이 천원을 달라고 하자 만원을 주었다. 김태준은 훈민정음을 보관하고 있는 이용준의 주소와 이름을 전형필에게 건넸다. 마침내 <훈민정음.은 33장 1책의 목판본으로 그동안 애타게 찾았던 해례본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간송이 아니었으면 <뿌리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을 우린 알지 못했으리라. 이정명은 우리보다 먼저 간송을 만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주요지정 문화재목록-

<청자상감운학문매병><훈민정음><동국정운><금동삼존불감><청자압형수적><혜원풍속도><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백자박산향로><금동여래입상><청자상감모자합><괴산외사리석조부도><전문경오층석탑><서울시지정문화재 제28호 삼층석탑><서울시지정문화재 제29호 석조팔각승탑 >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