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뱉고 싶은 많은 단어들이 아른거리는 가운데 작가의 책 속 글로 대신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내 시간이 하나도 아깝지 않은, 언제나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운, 적어도 나에게만은 타임파워를 가진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p235] 그렇다. 믿고보는, 내게는 티켓파워의 힘을 지니고 있던 강세형 작가의 이번 책은 다소 와닿지 않던 것도 사실이지만, 세 번째 이야기가 출간되었다는 사실 자체로 반가운 마음이 크다.
작가의 전작들처럼 제목 한 번 기막히다. 나를 의심한다는 것은 내가 본 것, 아는 것, 기억하고 믿는 모든 것들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염두해둔다. 100% 진실과 옳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때론 확신에 가득 차 답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는 살아온 세월동안 보고 듣고 자란것에서 더는 의심하지 않기에 이르른 어른이 되버린 탓이다. 사실과 거짓, 진실과 환상, 현실과 꿈의 경계는 어느새 나만의 선을 그어놓은걸까. 불변의 진리를 읊고 있는 늙어버린 내 자신에게 작가는 말한다. '머릿속을 맴도는 수많은 기억들과 수많은 말들, 수많은 이야기는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내 안의 나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게 아닐까'라고-
이제 와 그 시절을 추억하며 써 내려간 내 글들을 보고 있으면 나조차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나, 그 시절에 행복했나? 하지만 역시 기억은 조작되고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어서, 그 시절이라고 힘든 일이 없었고 고민거리가 없었을 리 없다. 다만 그것은 이미 지나쳐 왔을 뿐. 지금의 힘듦이나 고민 또한 언젠가는 또 지나갈 것처럼.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이니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많은 것들이 결국은, 언젠가는, 지나가는 것을 봐 왔다. 내 맘처럼 완전한 해결은 아닐지 몰라도 결국은, 언젠가는. -p161
기억의 조작- 흩어진 조각들을 짜맞추고 있노라면 이것은 실제 일어난 사건인지, 내가 만들어낸 망상인지 분간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순간의 '나'는 어디에 있는걸까?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상상속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를 미화시켜 포장하고, 나에게 유리한 입장만을 토해낼지도 모른다. 그것이 더는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고 덮어내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책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듯 나를 아리송하게 만든다. 작가에게 묻고 싶다. '정말 있었던 일이었나요?' 조금은 놀랍고, 또한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이야기가 불현듯 내게도 찾아든다.
* 우리는 이제, 만나지 않는다. 우리 두 사람 중 누구 하나가 대단히 큰 잘못을 해서도 아니었고, 우리 두 사람이 이제 너무 멀리 살게 돼서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저, 각자 어른이 됐을 뿐이었다. 각자, 다른 어른이. 그것도 내가 아직 어른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각자, 다른 어른이 -p131
* 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아니야 아니야, 너 아직 행복한 거 아니거든?' 나의 행복을 부정당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지금 잠시라도 이곳에 앉아 숨을 고르며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고 싶은데, '그러다 너 뒤처진다. 넋 놓고 있지 마. 더 분발하라고. 너한테 모자란 게 지금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꾸만 더 더 앞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p193
나는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 자꾸만 더 앞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 갈피를 잡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다 주저 앉기를 여러번,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행복한 어른이 되는 길이 참으로 멀고 고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