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란 제목은 오래 전에 들었지만 이제야 읽게 되었다. 큰아이가 중학교에서 입학하면서 읽을 책들을 찾다가, 이 소설을 구매했고 마침내 읽게 된 것이다. 소설은 순박하면서도 책임감이 강한 12살 소년 로버트와 부지런한 농부이자 가장 솜씨 좋은 도살꾼이었던 아빠 헤븐 펙을 중심으로 1940년 무렵 미국 버몬트의 시골가정에서 벌어지는 잔잔한 일상을 그리고 있다. 셰이커 교도로서 검소한 삶을 살아온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단하지는 않아도 곱씹어 보면 여운을 남겨주는 말들이 많았다.

12살 로버트는 태너 아저씨네 암소가 새끼를 낳는 것을 도와주다가 그만 팔을 심하게 물리고 만다. 하지만 고마움의 표시로 태너 아저씨가 암퇘지 한 마리를 선물하고, 로버트는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돼지에게 핑키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 후 아빠와 로버트 그리고 이웃을 둘러싼 소소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면서, 로버트는 아빠의 이야기와 자신의 경험들을 통해 삶을 조금씩 배워나간다. 로버트에게 가난하지만 셰이커 교도로서의 삶을 실천하는 아버지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멘토 그 이상의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은 바라보기에 참 좋은 곳이야. 그리고 돌아가기에도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어.” (97쪽)

“다음 봄에는 제대로 할 수 있겠지. 로버트. 뭐든 제대로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야. 어설프게 두 번 하는 것보다 확실하게 한 번 잘하는 게 낫단다.” (163쪽)

“그건 나도 마찬가지란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게 있다. 필요하다고 모두 다 사는 건 아니라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다 해서 다 따라 할 필요는 없어. 네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더 중요해. 겉보다는 속이 중요하단 말이다.” (167쪽)

 

로버트는 핑키를 데리고 태너 아저씨를 따라 러틀랜드에서 열린 박람회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에게는 러틀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처럼 생각되었는데, 핑키가 가장 예절바른 돼지에게 주는 파란 리본을 받자 더없이 자랑스러워한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고 로버트에게 열세 살이라면 어른이 되기에 충분한 나이라며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아빠의 병이 더욱 심해져 사슴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해 겨울을 나기 힘들어지자, 새끼를 가질 수 없는 핑키를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된다. 로버트는 쇠지레가 돼지의 두개골을 치는 순간 핑키를 죽이고 평생 수많은 돼지를 죽인 아빠가 밉기만 했다. 도망쳐서 소리치며 마음껏 울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이었다는 것을 알기에 아빠를 이해한다.

 

아빠가 허리를 펴며 잿빛 겨울 하늘을 등지고 우뚝 일어섰을 때도 나는 아빠 손을 잡고 있었다. 아빠가 나를 내려다보더니, 눈길을 다른 데로 돌렸다. 아빠는 다른 한 손을 들어 소매로 두 눈을 훔쳤다. 나는 아빠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193)

 

무슨 뜻인지 짐작이 가지 않던 책 제목의 의미는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빠는 돼지 잡는 일을 한다는 것, 그런 아빠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는 것이 그 암시가 될 것이다. 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이란 바로 아빠가 세상을 떠나던 날을 가리키는 것이니…. 폐가 많이 안 좋아서 헛간에서 자야 했던 아빠는 이듬해 5월 3일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오늘 아침에는 푹 주무세요. 일어나지 않으셔도 돼요. 내가 아빠 일까지 다 할게요. 더 이상 일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제 푹 쉬세요.” (194쪽)

“아빠는 식사하러 오지 않으실 거예요. 오늘 아침엔 안 오세요. 앞으로도 계속….” (195쪽)

 

로버트는 열세 살이 되어 이제 엄마와 캐리 이모보다 키가 더 컸는데, 5월에 아빠가 죽음을 맞이한다. 로버트는 자신이 하던 일에 아빠가 하던 일까지 모두 마치고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아빠의 죽음을 알리고 장례를 치른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빠. 아빠랑 보낸 13년은 정말 행복했어요.”(206)

 

전체적으로 크게 가슴을 뛰게 하지 않으며 잔잔하게 일상을 그려가던 흐름은 아빠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그리며 참았던 감정을 한꺼번에 분출하게 한다. 열세 살 로버트는 의젓하게 아빠의 죽음을 맞았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는 절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나이로 중학생 정도일 텐데, 자신의 일뿐 아니라 집안에서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무척이나 어른스러워 보인다. 이제 로버트는 자신에게 삶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자 친구였던 아빠의 죽음을 겪으며 듬직한 열세 살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라 생각한다. 비슷한 나이이지만 아직 어리게만 보이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노란 표지의 <쉬는 시간의 여왕>을 손에 쥐는 순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참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책의 두께도 별로 부담스럽지 않은데다가, 글의 양이 너무 많거나 적지 않고 적당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글이 너무 길면 긴 호흡으로 책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고, 지나치게 짧다면 내용이 부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이 많은 그림책과 일반 책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에 딱 적당한 분량이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내용도 처음 학교에 간 아이들의 일상을 잘 반영하고 있어,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사회성과 읽기 능력을 길러 준다는 ‘사각사각 책읽기’ 시리즈의 목적에도 잘 맞는 책이라 생각한다.

마르고는 언제나 학교에 꼴찌로 도착한다. 수업시간에도 딴 생각만 하고 시험지도 가장 늦게 낸다. 심지어는 3 더하기 2가 몇이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혼자만 32라고 답을 적어내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마르고가 언제나 1등으로 도착하는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운동장이다. 마르고는 무슨 놀이를 해도 늘 재빠르게 행동했는데, 선생님은 마르고가 뛰고, 달리고, 구르고, 춤추고, 줄을 넘고, 물구나무를 서고, 구슬치기를 하고, 고무줄놀이를 하고, 말타기 놀이를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깜짝 놀란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선생님은 마르고를 부르는데….

쉬는 시간보다 공부 시간이 더 좋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다’가 정답이 아닐까? 공부 시간에는 맥없이 앉아 있거나 꾸벅꾸벅 조는 아이들도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만 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기운차게 뛰어논다. 아니 쉬는 시간만큼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다 공부 시간에 하품만 하던 아이들이 마음껏 활개를 펼 수 있는 시간일 것이다. 아마도 어느 학교에나 쉬는 시간만 되면 온통 자기 세상이 되는 쉬는 시간의 왕이 있지 않을까? 마르고 역시 공부 시간이 아닌 쉬는 시간이 더 즐거운 ‘쉬는 시간의 여왕’이었다.

쉬는 시간을 주름잡는 마르고를 부른 선생님은 무슨 말을 했을까? 선생님이 한 말은 간단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 말을 알아들은 마르고는 수학 시간과 국어 시간에 귀가 빨개질 정도로 열심히 공부해 보기로 한다. 마침내 받아쓰기를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되고, 제일 친한 친구 시몽이 좋아하는 책을 전부 읽는데 성공한 마르고, 그래도 역시 제일 좋은 것은 쉬는 시간이라니 과연 ‘쉬는 시간의 여왕’답다. 그래도 이제는 ‘쉬는 시간의 여왕’만이 아니라 ‘공부 시간의 여왕’도 되었으니 더 즐겁다. 공부를 하는 많은 아이들이 공감할 듯하고, 또 그 중에는 이 책 속의 마르고처럼 쉬는 시간만이 아닌 공부 시간에도 최선을 다하는 아이가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마르고! 네가 쉬는 시간에 하는 것처럼 공부 시간에도 힘차고, 재빠르고, 활기차게 행동하면 어떨까? 선생님 생각에는 네 학교생활이 훨씬 더 신나고 재미있어질 것 같구나!”

‘내 동생 앤트’라는 책의 제목을 처음 접한 것은, 2004년 9월 25일자 신문을 통해서이다. [독서치료-마음의 상처, 책으로 다스려요]라는 코너에서 ‘형을 미워하는 동생, 동생을 구박하는 형’이라는 부제로 ‘내 동생 앤트(보림)’와 ‘장난감 형(시공주니어)’, ‘동생의 비밀(문학과지성사)’을 소개한 것이 내 눈에 띄었다. 다른 애들에 비하면 순한 편이라 스스로 위로하기는 하지만, 우리 집 두 녀석이 매일같이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이제는 참기 힘들 정도이다. 게다가 형이 평상시에는 동생을 많이 예뻐하면서도, 마음에 안 들 때는 사정없이 쥐어박고 차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동생을 이해하도록 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장난감 형’은 그림이 내가 좋아하는 취향이 아니었고 해서 ‘내 동생 앤트’를 사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난관에 부딪힌 것은 큰애가 시큰둥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파주 어린이책 한마당’에 갔을 때, 사자고 몇 번이나 권해 보았으나 동물이나 공룡, 괴물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 아이가 끝내 싫다고 해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몇 번을 생각해도 책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다음 주말에 다시 갔을 때는 아이의 의사를 묻지 않고 책을 사 갖고 돌아왔다. 혹시 한쪽 구석에 처박힌 채 영원히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 그런데 다행히 아이는 책이 재미있단다. 10월부터 시작한 독서상을 받기 위해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책의 내용을 정리하던 녀석이 ‘내 동생 앤트’를 그리고 있던 거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거기다가 동생 녀석도 그림이 마음에 드는지 서로 보겠다고 싸우니 잘 된 건지, 아닌지….

일단 책은 ‘개구리네 한솥밥’처럼 폭이 좁고 긴 편이다. 이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좀 더 폭이 넓은 책을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좁은 책은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다른 책들 사이에 파묻혀서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이다. 종이는 두껍고 제본은 튼튼한 편이다. 하지만 책을 쫙 펴 놓고 보기는 불편하다. 책은 ‘침대 밑의 괴물’, ‘앤트와 거미’, ‘앤트와 아기 돼지 삼형제’, ‘사랑하는 앤트 올림’의 네 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침대 밑에 괴물이 있다는 동생을 귀찮아하기도 하고(이 때 침대 밑으로 나온 괴물의 발이 인상적이다), 형이 한 숙제에 거미처럼 생긴 거꾸로 드러누운 강아지를 그려 놓기도 하는 동생에게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 동생을 이해해 주는 상당히 사려 깊은 형이다. 그런데 아빠, 엄마는 일방적으로 동생의 편만 들고 있고, 또 표정은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차갑게 그려져 있다. 이 대목에서 아무래도 나는 반성을 해야 할 듯하다.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래도 작은애보다는 큰애를 야단치는 경우가 더 많으니 말이다. 동생의 엉뚱한 주장과 고집에 화를 내다가도 그래도 자신의 동생을 감싸주는 멋진 형, 그리고 그런 형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동생의 모습은 참 부럽다.

참 그리고 이 책의 다른 매력은 그림이다. 침대 밑으로 삐죽 나온 괴물의 발이나, 동생의 터무니없는 말과 행동에 골이 잔뜩 난 형의 모습, 그리고 동화책을 읽어줄 때 나오는 바나나 돼지나 수박 늑대의 모습은 남녀를 떠나서 좋아할 만하다. 이 책의 속편격인 ‘강아지가 된 앤트’도 함께 읽으면 참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