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낮이 끝나야 하나요?” “낮이 끝나면 해는 어디로 가나요?” “바람이 그치면 바람은 어디로 가나요?” “민들레 꽃씨가 바람에 날리면 어디로 가나요?” “산은 봉우리를 넘으면 무엇이 되나요?”

아이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누구나 좋은 아빠 엄마를 꿈꿀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아이의 질문에 한껏 자상한 표정을 지으며 친절하게 대답을 해 준다. 그런데 아이의 질문은 끝이 없다. 아주 간단한 것에서부터 때로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까지 말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다. 마치 참을성을 확인하고야 말겠다는 듯이 같은 물음을 두 번 세 번 해 대서 우리의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내게 한다. 급기야 우리는 본색을 드러내서 아이에게 쓸 데 없는 것을 묻는다며 윽박지르거나 은근슬쩍 그 자리를 모면하려고 한다.

‘바람이 멈출 때’는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자연의 신비와 철학의 세계로 인도하는 책이다. 이 책에는 끝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아이와 그러한 질문에 자연의 무한한 신비를 풀어 대답하는 엄마가 나온다. 아이의 질문이 만만찮지만 엄마의 대답은 자상하기만 하다. 마치 우리가 늘 꿈꾸었던 모습 그대로 말이다. 엄마의 대답은 어른들이 읽어도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게 느껴지고 우리들이 잊고 있던 신비한 자연의 이치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한다. 아이들을 위한 철학 동화일 뿐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철학 동화이기도 하다.

“그래야 밤이 올 수 있으니까. 저길 보렴. 밤이 시작되고 있지. 밤은 달과 별, 그리고 어둠과 함께 너를 위해 꿈을 준비하고 있단다.” “낮은 끝나지 않아. 어딘가 다른 곳에서 시작하지. 이곳에서 밤이 시작되면, 다른 곳에서 해가 빛나기 시작한단다. 이 세상에 완전히 끝나는 건 없단다.

‘바람이 멈출 때’의 아름다움은 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이 책의 글을 빛나게 하는 것은 신비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스테파노 비탈레의 그림은 편안한 듯하면서도 때로는 우리를 생각에 잠기게 하고 때로는 우리의 상상력에 날개를 더해 준다. 어떤 그림은 유치한 듯하고 또 어떤 그림은 은은하면서도 꿈꾸는 듯하다. 이 책은 철학을 녹여낸 시적인 글과 그에 딱 어울리는 그림으로 이루어진 매우 아름다운 그림책이다.

'눈 오는 날'은 칼데콧상을 받은 그림책으로, 눈이 내렸을 때의 즐거움과 신비감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책이다. 겨울날 아침, 눈을 뜬 피터는 온 세상을 하얗게 덮고 있는 눈을 보고 밖으로 나간다. 빨간 옷을 입은 피터는 발자국을 만들고 나무 막대로 선을 그리기도 하며 자신만의 모험을 시작한다. 눈사람을 만들고, 미끄럼도 타며 즐겁게 지낸 피터는 한 줌 한 줌 눈을 뭉쳐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주머니의 눈이 녹은 것을 발견한 피터는 슬퍼하며 잠이 들고 해님이 눈을 몽땅 녹여 버리는 꿈을 꾼다. 이튿날 펄펄 내리는 눈을 보며 피터는 활짝 웃고는 친구와 함께 쌓인 눈 속으로 걸어간다.

이 책에는 첫눈 오는 날의 설렘이 잘 표현되어 있다. 눈은 그저 눈이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셈이다. 눈에 대한 아이의 신비감과 상상력은 눈의 색깔을 빨강과 파랑과 보라 등 무지갯빛으로 바꾸어 놓는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의, 하늘에서 내리는 다양한 색깔의 눈과 그 속으로 걸어가는 피터와 친구의 모습은 신비로워 보인다.

피터는 아이들의 심리를 잘 보여준다. 피터가 온갖 발자국을 내며 걸어가다가 나무 막대를 들어 선을 그리며 걸어가는 모습, 그러다 나무에 쌓인 눈을 톡톡 건드리다가 머리에 쏟아진 눈을 맞는 모습을 아주 잘 그렸다. 집에 들어오기가 아쉬워서 눈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돌아온 피터, 그런데 눈이 다 녹은 것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 얼마나 좋았으면 눈이 모두 녹아버리는 꿈까지 꾸었을까?

예전에 폭설이 내린 다음날 아이와 밖에 나갔을 때, 추위에 손이 꽁꽁 얼었으면서도 눈사람 만들기, 발자국 만들며 걷기, 눈싸움하기를 하던 기억이 난다. 유난히 감기에 잘 걸리고, 벙어리장갑을 낀 두 손이 시려 보여 들어가자고 했더니, 안 춥다며 더 놀겠다던 우리 아이의 모습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어 좋다.

바리데기! 일곱째 딸로 태어나자마자 버려졌으나 부모를 소생시키고, 죽은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오구신이 된 바리데기! ‘동명왕 신화’와 더불어 가장 풍부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 서사무가 ‘바리데기’는 내가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이야기이다. <바리데기>를 읽으며 제일 큰 관심사는 과연 ‘바리데기’의 이야기를 어떻게 오늘의 현실에 부합시킬 것이며, 그것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바리데기는 4,000년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가 잊고 지내던 반쪽의 공간 북한과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아픈 현실을 배경으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누구보다도 북한의 현실을 잘 알며, 소외된 자의 아픔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작가는 새로운 ‘바리데기’ 이야기를 통해 남북의 분단만이 아닌, 더 근본적인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한 전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바리는 청진에서 ‘진, 선, 미, 정, 숙, 현’에 이은 일곱째 딸로 태어나 어머니에게 버려졌지만 개 흰둥이가 보살펴 목숨을 건진다. 그러던 중 다섯 살 무렵 장질부사를 앓고 난 뒤부터 들리지 않던 소리들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는데, 역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던 할머니는 이런 바리를 진정으로 아껴주고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 아버지가 무산으로 전근간 뒤 한동안 좋은 시절이 있었지만 계속되는 폭우와 기근 그리고 외삼촌의 사업 결손으로 인한 여파로 인해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가족들은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가게 된다. 바리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난 뒤, 발 마싸지를 배우고 정착을 시도하나 운명은 바리를 머나먼 영국으로 이끈다.

바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한 연립주택에는 방글라데시인 루나 언니, 나이지리아에서 온 부부, 중국인 요리사와 필리핀인 청소부, 스리랑카인 가족, 폴란드인 가족, 파키스탄에서 온 압둘 할아버지, 태국 학생 부부, 불가리아인 노부부 등 각각 다른 종교를 지닌 여러 민족들이 모여 산다. 작가는 ‘세상이나 한 사람이나 다 같다.’는 할머니의 대답과 ‘우리 옷과 음식이 서로 조금씩 다르듯이 그건 살아온 방식이 다를 뿐이다. 우주의 섭리는 하나로 모인단다.’는 알리 할아버지의 말을 통해서 다름이 아니라 같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도 시간을 기다리고 견뎌야 한다는 것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223쪽)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286쪽)

<바리데기>에 그려진 세상에는 가난과 질병, 욕망, 미움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집합체인 전쟁과 같은 요소들이 가득하여, 마치 야차와 아귀, 수라들이 들끓는 지옥과 같은 느낌을 준다. 신화 속의 바리데기가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해 서천에 가 생명수를 구하듯이, 바리의 여정도 바로 생명수를 찾기 위한 대장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미움은 바로 자기가 지은 지옥’이라는 말처럼 지옥조차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바리가 찾는 생명수도 머나먼 곳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의 삶을 행복하게 할 생명수는 늘 밥해 먹고 빨래하는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아마도 그 생명수를 세속적인 말로 풀어본다면 아마도 ‘희망’이 아닐까? 판도라의 상자 맨 밑바닥에서 날아가지 않고 남았던 바로 그 희망 말이다. 바리의 삶은 힘겹지만 그 곁에는 늘 할머니, 칠성이, 미꾸리 아저씨, 샹 언니, 루 아저씨, 압둘 할아버지와 알리 등의 선한 사람들이 있다. 우리의 힘이 되는 따뜻한 사람들 속에 우리가 찾는 생명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