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하고 달~콤한 연애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설이든 영화든 친구의 경험담이든 연애 이야기는 언제나 설레고 즐겁다. 여기 또 한편의 새로운 연애 소설이 있다. 아리카와 히로의 [고래남친]. 
[고래남친]은 일본 자위대원이라는 환경에서 저마다의 고진감래를 담은 독특한 군인들의 연애담이다. 
정말 읽으면서 군인들이랑 연애를 하면 이런 상황에 처하겠구나~ 하는 실감나는 남과녀의 심리묘사가 그 재미를 더해준다. 
내가 아리키와 히로를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들이 언제나 읽고 나서도 한동안은 가슴속에 남아있는 묘한 매력때문인데, 이 책에서도 요런 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녀의 가장 재미있는 라이트 노벨은 역시나 [도서관 전쟁]인데, [고래남친]의 어느 편에서는 주인공만 다른 도서관전쟁을 보는 듯한 느낌이 오버랩되었다. 밀고 당기고 감추려하고 드러내려 노력하는 우리의 주인공들을 보면서 '음... 나도 이런때가 있었는데.' 하는 기억들이 마음에 차오르는 것은 꽤나 기분좋은 감정이다.

그럼 살짝 맛배기로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고래남친], 책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단편중 가장 재미있는 소설인 이 연애담은 단체미팅의 땜빵 자리를 메우기 위해 참석한 사토코는 그곳에서 가장 잘생긴 꽃미남 주선자와 사귀게 된다. 하지만 그는 잠수함을 타는 해상 자위대원. 한 번 연락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고, 그나마 몇 달에 한번 오는 문자는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다. 사랑한다, 좋아한다는 말로도 부족한 힘든연애에서 그녀는 무작정 남친을 기다려야 한다는 위기감만이 존재하고, 급기야 회사의 재수없는 도련님이 찝쩝거리기까지 하는 난처한 상황에 직면한다. 과연 그녀는 고래같은 잠수함의 멋진 남친의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롤아웃], 이번엔 항공자위대 소속의 군인과 항공기를 제작하여 납품하는 여직원과의 화장실이라는 말하기 뭐한 애매한 장소를 두고 펼쳐지는 연애담이다.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하면 전혀 풀리지않는 팽팽한 긴장감을 살짝 맛볼 수 있으며, 역시 힘든 상황에서 여자의 편을 확실하게 들어주며 해결해주는 남자는 언제나 멋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통쾌하게 풀어낸 이야기다.

 

[국방연애], ㅎㅎ 이것이 바로 도서관전쟁을 연상케 한 육상 자위대원들의 연애담이다. 남자들만 바글바글한 군대안에서 여자 군인들의 인기는 얼굴과는 전혀 비례하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을 받게 되지만, 우위적인 입장에 처한 여자 군인들은 높은 계급의 남자 군인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허나 도도하고 뻣뻣하고 시건방지지만 빈틈이 보일때는 무지막지하게 귀여운 이 여군을 눈독들인 겁없는 동기가 있었으니, 여군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미이케 삼조를 좋아하는 노부시타 삼조.
가장 친한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남자로 보이기 시작하는 이야기의 또다른 버전이 여기 있었으니... 그들의 모습을 흐믓하게 만날 수 있다.

 

[여친은 유능해], 잠수함을 타는 해상 자위대원 나츠키는 한마디로 문제아 대원이다. 즉 전시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지만, 역시 평상시엔 골치아픈 대원. 그는 방위청에서 근무하는 싹싹하고 일 잘하고 예쁘고 나이어린 여친을 둔 행운아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그녀에게 무지무지 부족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쉽게 결혼하자는 말을 못하는데, 알고보면 그녀의 여친은 자기 고집만 부리고 다른 사람말은 전혀 안듣는 굉장히 피곤한 스타일. 눈에 콩깍지가 씌인 나츠키가 그녀의 단점을 깨닫게 되고 결국 그녀에게 청혼할지 그 귀추가 주목되는 연애담. 참고로 이 스토리엔 [고래남친]의 귀여운 커플의 현재 상황을 덤으로 읽을 수 있다.

 

[탈책 엘레지], 이건 우리나라의 국방에서도 가끔씩 들려오는 연인때문에 탈영한다는 바로 그 이야기다. 자신의 탈책 경험을 바탕으로 신입 자위대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키요타 이조. 좋은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자신은 아직도 10년이나 지난 뼈아픈 연애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초년병과 다름없다. 과연 이 연애초보자를 구해줄 아리땁고 배려심 깊은 여인이 나타날 것인가?

 

[파이터 파일럿 그대], 여성 파이터 파일럿인 미키는 항상 남편에게 집과 딸을 맡기고 훈련을 나가야 한다. 게다가 시부모의 잔소리까지. 남편은 그녀를 지켜주려고 애쓰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을 항상 가지고 있는 미키. 그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의 5살 생일때 그녀만의 독특한 애정선물을 준비하는데, 흔히 볼 수 없는 여성 자위대원의 모습을 만나는 새로움이 있는 연애담.

 

알콩달콩 예쁜 사랑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표지도 알록달록 너무 예쁘다. 
상황은 다르게 굴러가지만 역시 사랑을 하는 남,녀의 모습은 어디서든 다 똑같다. 
코로 봄바람이 솔솔 들어오는 요즘, 설레임이 필요한 독자들에게 슬며시 권해본다. 

 

약속장소를 항해 가는동안, 버스 안의 사람들을 바라본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창밖을 보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어떤 것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향해가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지만, 중간에 내리기도 하고, 끝까지 가기도 하면서 서로 다른 목적지로 나아간다. 
이 책은 이런 흐름과 비슷하다. 다만 공간이 아닌 시간의 동일함이 주어진다는 차이뿐.
서로 다른 10명의 사람들이 같은 시간인 3일 동안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사람들의 삶이 궁금한 나에게는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였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 그들은 과연 어떤 알찬 시간을 보냈을까?

 

내게도 온전히 날 위해서 쓸 수 있는 3일이 주어진다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책속으로 빠져본다. 
역시나, 이 곳의 사람들도 여행을 많이 선택했다.
가고 싶었던 곳을 가기위해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는 이도 있고,
어릴적 그리운 향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고향집으로 가는 이도 있고, 
바쁜 일상을 접고, 미래에 꿈꿔왔던 살고 싶은 곳을 찾는 이도 있고,  
우연한 인연으로 모르는 사람들을 찾아 떠나는 이도 있고, 
여행자금회수의 목적으로 쇼핑을 떠나는 이도 있다. 
목적이 있든 없든 여행은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설레임이라는 에너지로 충전시켜 주면서 삶에 행복을 전해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또 다른 이들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오로지 휴식을 위해 보내기도 하고, 요리에 올인하기도 하며, 하고 있는 일에 더욱 전념하기도 한다. 이렇듯 서로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생각들도 다 다르다. 그들의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누군가의 생활에서는 공감되는 부분을 찾았을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을 만났다는 기쁨도 살짝~ 느껴보았다.

 

그리고, 글 쓰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의 3일을 읽을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확실히 그런 이들은 표현력이 남다르다. 
이 책은 내가 주말에 즐겨보는 방송인 [다큐멘터리 3일]의 10명분을 흥미롭게 시청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옴니버스 에세이류를 찾아 읽다보면 지친 생활에서 사람사는 냄새를 킁킁 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해본다. 
다음에는 소모에서 같은 직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른 이야기들도 만나보고 싶다.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의 색채가 강하게 풍겨나오는 책이다.
연애소설이지만, 절대 그런 느낌이 없는 에세이나 논평같은 책이다. 이번에는 사랑과 전기(위대한 누군가의 삶을 집약한 책)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있다. '사랑과 인간관계의 3부작'이라는 나머지 두 소설인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우리는 사랑일까]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두 소설은 남과 여라는 각각의 독립된 객체가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뤘다면 [너를 사랑한다는 건]은 제목처럼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바라보는 관점으로만 서술되어 있다. '나'라는 인물이 '이사벨(여주인공)'이라는 인물을 오롯이 알가가는 방법을 전기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러나 이 전기의 서술방식이 일반적인 전기의 방식이 아닌 마르셀 프루스트적인 방법, 즉 작가의 객관적 접근이 아닌, 굉장히 주관적인 접근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물을 보거나 익숙한 향기, 음악을 들었을때 갑자기 떠오르는 어린시절의 추억을 전기의 형태로 '나'는 이사벨이 어떤 여자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런 방식을 다루면서 기존의 전기작가들과 그들의 글쓰기 방식에 대한 '나'만의 독특한 의견도 덤으로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나'가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왜 이런 전기를 쓰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그전까지 '나'의 사고 방식 때문이다. '나'는 굉장히 자신만을 아끼고, 남의 이야기에 절대 공감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이유때문에 전 여자친구로부터 결별 선언을 받게 된다.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차에 서점에서 남을 100%로 공감하며 알아가는 전기를 발견하면서 내가 새로운 여자친구의 삶에 대한 전기를 쓰면 그녀를 온전히 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런 생각과 함께 '이사벨'을 만나게 되고, 처음부터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에게 공감하기 위해 그녀의 세세한 습관과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과 심지어 그전에 만났던 남자들까지의 추억들을 낱낱이 들려준다. 그러면서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과 사랑하는 것사이의 미묘한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누군가를 알아가는 것이 사랑하는 것과 100% 동일하면 얼마나 좋을까... 마는 결론은 그렇지 않다라는 것. 
이사벨을 이해하고,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역시 그녀를 알다가도 모르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고, 점점 그런 부분들이 많아지면서 그 차이를 존중하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사벨의 사랑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결국 이사벨로부터 결별 선언을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모르는 남,여가 만나 하나씩 알아가며 이해하고 인내하고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들이 조금만 어긋나거나 변질되면 어느순간 물거품이 되는 아슬아슬한 곡예같은 것이다. 이런 사랑을 남자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야기가 독창적이긴 하지만, 사랑은 역시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해석이 더 재밌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보다는 작가의 새로운 관점을 들여다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리고 이 책 또한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가 담겨 진듯하니 알랭 드 보통의 젊은 시절의 연애를 살짝 맛 보았다는 짜릿함에 만족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