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의 기억 중 유난히 커다란 공간을 차지하는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내게도 특정 시기의 즐거움이 그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슬픈 기억들이나 화나는 혹은 무서운 기억들을 덮어버릴 정도로....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드는 그 계절이야말로, 환상적인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기차길 모험도 떠나고, 혼자 버스타고 교회도 가보고, 텐트에서 잠도 자보고, 이별도 경험하고, 따돌림도 당해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고... 이렇게 수도없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정말 기막힌 날들이었다. 

민들레와인.... 이곳에도 더글라스 스폴딩의 특별한 추억들이 담겨있다. 
특히 그에게는 여름날의 연례행사인 할아버지의 민들레 와인 담그기. 언제나 그 시기가 다가오면 할아버지는 민들레를 따고, 기계를 돌리고, 와인병에 번호를 매기고 그곳에 민들레 와인을 차곡차곡 담는다. 소중한 여름을 담아두는 것처럼...
사계절의 비율은 비슷비슷하겠지만, 유난히 좋아하거나 집착하는 계절은 언제나 빨리 흘러가기 마련이듯이, 그때의 사건들과 생각들을 잊지 않기 위해 민들레 와인에 여름날의 햇살이 고스란히 녹아든다. 겨울이든, 가을이든, 봄이든 그리운 여름이 떠오를때면 언제라도 와인을 통해 꺼내볼 수 있으니까.

이 책에서는 12살 남자아이의 여름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느날 문득 숲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뜬금없는 발견을 한 이래로 모든것이 달라보이는 삶. 작은 것 하나에서도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과 동시에 죽음에 다가간다는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주변을 다르게 인식하는 한 남자아이의 성장을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성장이란것이 너무나 아름답고, 소중하고, 시적이다. 그리고 내 지난날을 떠오르게 한다. 그때의 향기로운 냄새마져도.

한편한편을 읽어내려갈수록, 더글라스의 추억에 매료되고, 혹은 작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실로 이 책의 내용들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어린시절의 이야기에 환타지적 감성을 곁들여 무친 샐러드같다. 
그 상큼함과 달콤함이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느낌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그리워하게 해주는 그전의 작가의 소설들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비슷하나 현실과 환상의 비율이 다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원래 SF를 좋아해서 아무생각없이 작가의 이 책을 고른것인데, 정말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뿐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아름답고, 아름답다는 말을 반복하고 싶다. 과거에 대한 향수에 목말라 있던 듯하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이 줄줄 이어져서 정말 재미있고, 설레였던 책이다. 언젠가 나도 지금보다 훨씬 나이들면 더이상 기억이 희미해지기 전에 어린시절 이야기를 적어보고 싶다. 지금은 사라지고 만 장소와 추억들이지만 내 기억속에는 언제나 살아있는 영화이니까.

꿈을 이룬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물론 사람마다 꿈은 다르다. 그 다르다는 것이 크기의 차이일 수 있고, 무게의 차이일 수 있고, 시간의 차이일 수 있고, 주관적인 기준의 차이일 수 있다. 말로 표현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꿈이라하면 지금 일하는 곳에서 최고의 가도를 달리며 다른 사람보다, 혹은 자신의 기준보다 위를 향해 줄기차게 올라가는 성공을 뜻할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독특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것도 정말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이루기 위한 노력 말이다. 

이 이야기는 벤자민 미의 가족들이 그런 일을 차근차근 이뤄나가는 모습을 그려준다. 
그 일이라는 것이 바로 동물원을 사는 것이다. 와~ 말로만 들어서는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큰 동물원의 주인이 된다니. 그리고 야생 동물들의 주인이 된다니... 또 매일아침 눈을 뜨면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다. 매년 벗꽃이 피는 봄이오면 난 동물원을 찾는다. 차가 무지하게 막히고, 사람이 복작거리는 불편함이 있어도 봄바람과 막 잠에서 깨어난 동물들을 만난다는 설레임이 훨씬 강하니까. 이렇게 동물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정말 흥미롭게 다가온다. 

남프랑스에서 헛간을 사들이고 이곳에서 예전부터 꿈에 그리던 삶을 살아가던 칼럼니스트 벤자민 미.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이들과 아름다운 부인 캐서린이 있다. 영국에서의 삶을 뒤로하고, 한적한 프랑스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중이던 그에게 커다란 소명이 다가온다. 동물원을... 벤의 가족들이 직접 운영할 수 있는 동물원 소식이 느닷없이 다가온 것이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절대 가능치 않던 일, 형제간에 불화를 일으킬 수 있는 일, 발을 대딛을수록 수렁에 빠질 수 있는 일이 그들에겐 꿈이었고, 꿈을 이뤄가는 길이었고, 현실이었다. 보통사람들에겐 힘들어보이는 일이지만, 가족간의 믿음과 노력과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드디어 망해가던 동물원이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이 탄생과정이 만만하지 않다. 돈 문제도 시급했고, 맹수가 탈출을 하고, 죽기도 하고,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지기도 하며, 쥐들이 들끓는 집의 생활과 오물천지로 인한 공기오염도 경험하며, 직원들간의 불화도 발생하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도 떠나보내게 된다. 그래도 불행끝엔 언제나 무지개너머 황금 항아리가 있는 것처럼, 변함없는 긍정적인 믿음과 사람들의 노력과 헌신으로 동물원은 서서히 다트무어 동물공원으로 변신하게 되고, 벤의 동물원이 되어가고 있었다. 벤저민만의 동물원이 아닌 온가족인 벤의 동물원으로.... 

이야기의 끝은 계속 진행중인 해피엔딩이다. 개인이 운영하는 동물원이라... 생각만으로도 더욱 친근하다. 
왠지 이곳에 가면 언제나 방문객들을 환영하는 벤저민의 미소가 반길것 같고, 귀여운 아이들이 뛰어와 손을 붙잡고 재규어인 소버린을 소개시켜 주겠다고 하며, 애덤이 운영하는 맛있는 점심이 기대되며, 한적하고 여유로운 자연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읽는내내 인상깊은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이 어떤 연기를 펼칠 지..
그리고 동물 친구들의 명연기 또한 기대되긴 마찬가지다. 잔잔한 가족영화라 액션영화만큼의 흥행을 보장할 순 없겠지만, 내가 책에서 받은 느낌을 눈을 통해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보며..
벤의 동물원이 항상 번창하길 바래본다. 

찰스 유... 나는 타임머신 수리공이다. 
지금 이 현재의 시간이 어느 시점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누구나가 그렇듯 타임머신을 타게 되면 미래보다는 과거의 후회되는 사건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과거의 상황을 바꿔보려고 노력하지만 그럴때마다 문제가 생기게 되고, 문제에 직면해 있다보면 어딘가 다른 시공간으로 빠져버릴 수 있다. 그 찰나, 내가 고객들의 과거로 찾아가게 되고 그들에게 과거는 바라볼 수만 있을뿐 바꿀수 없다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진리를 설명하며 그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업무가 내 주된 일이다. 

내겐 TM-31이라는 타임머신이 있고, 그 안엔 사랑스런 컴퓨터인 태미, 냄새나는 허나 실존하지 않는 로봇개 에드가 있다. 
물론 내겐 가족도 있다. 언제나 행복한 1시간짜리 프로그램의 타임루프에 갖혀있는 어머니와 어딘가로 갑자기 사라져 버린 아버지가 있다. 멀리 떨어져 계신 두분이지만, 언제나 난 그분들을 생각한다. 특히 행방이 묘연한 아버지, 그분이 어디계신지 무엇을 하고 계신지가 주된 관심사다. 타임머신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만날 수 없는 그분 말이다.
 
현재 난 10년동안이나 이 타임머신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지금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혹은 미래인지 모를 시점들을 여행하다가 타임머신에 문제가 생긴것을 발견하고, 진짜 현실 세계에 잠시 정차하게 되었다. 
집에 가는길에 엄마에게 들렸지만, 우울한 불평과 내 짐만 반길뿐이다. 짧은 일정이라 어색한 만남을 뒤로한채 집으로 향했고, 바로 잠들었건만, 늦잠으로인해 타임머신 수리완료시간까지 도착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왠걸~ 저 앞에 난데없이 나와 똑같은 인간이 타임머신에서 내리는 게 아닌가. 순간 그 만남을 피하고 싶었는지 총으로 그의 가슴을 냅따 쏴 버리고 만다. 당황한 나머지 난 그의 타임머신에 뛰어들게 되고, 그는 내게 "책이 열쇠...." 라는 알수 없는 말을 남긴채 우리는 그렇게 이별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일인가?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렇다. 난 미래의 나 자신을 죽이면서 이상한 타임루프안에 걸려든 것이다. 이상한 타임루프란 이 시간을 기점으로 계속 나 자신을 만나고 죽이고, 그의 타임머신에 타게 되는 현상 말이다.
언제부터 내가 타임루프안에 갖히게 된 것인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이제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떠올렸다. 제목만큼이나 독특하고 엉뚱하며 유머러스한 소설.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소설이다. 찰스 유의 책도 이 책만큼 제목이 독특하다. 하지만 전혀 다른 SF 이야기를 들려준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우리에게 지구를 지키기 위한 전 우주적인 모험을 선사했다면, 찰스 유는 주인공의 인생을 지키기 위한 난해한 과학용어들로 가득한 모험을 선사한다. 
이 책은 SF를 가장한 한 남자의 성장일기다. 어릴 적 아버지의 일을 이해하지 못한 채 헤어지게된 그분을 그리워하는 30세 주인공. 그의 불완전한 심리가 결국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표출되면서 미래를 포기하고 아버지와 함께한 과거속으로 뛰어들어 혹시라도 남겨져 있을 단서를 찾아 타임머신이 도달할 수 없는 시공간을 떠돌게 된다. 어쩌면 이 미지의 여행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업보이자,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열쇠인 것이리라. 

결국 SF세계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란, 방황하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과거와 미래의 시간보다는 현재, 이 시간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분명한 현실세계의 진실이 SF세계에서도 진정한 열쇠인 것이다. 
변호사 출신이라 딱딱 떨어지는 현실감이 강한 문체를 선보일 것이라 생각했건만 오산이었다. 이 소설, 조금은 어렵고 난해하고 철학적이다. 난 찰스 유의 SF세계에서 겨우겨우 안전하게 살아남았다. 
타임머신을 소재로,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새로운 느낌의 소설을 찾고 있는 독자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불어넣어 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