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나 동화책에서 가끔 만나는 소재인 [바꿔친 아이]에 대한 이야기다.

숲에는 파에리라는 요정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인간 아이를 훔쳐가서 자신들의 파에리와 바꿔친다. 
바꿔친 파에리는 인간 아이의 삶을 살아가고, 아이는 파에리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어찌보면 이 파에리들도 파에리 삶을 살아가기 이전에 인간이었던 자들이다. 거의 100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통스런 파에리의 삶을 살아내고 간신히 바꿔칠 아이를 찾아 다시 인간의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일지도 모르는 이야기.

주인공 헨리 데이는 엄마와의 다툼으로 집을 튀쳐나와 숲으로 도망친다. 이때 그는 파에리들에게 잡혀 피아노를 잘친 독일 아이인 파에리와 바꿔친 아이가 된다. 헨리는 파에리로 독일 아이는 헨리 데이로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인물이 자신의 입장에서 바뀐 인생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쓴 내용이 이 책의 이야기다. 
한명은 자신의 아이가 바꿔친 아이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때문에 고백하고, 다른 한명은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며 언제가 돌아올 그녀를 위해 기록해둔 것이다. 

외모적으로는 성공하였을지 모르나, 부모는 깨닫게 된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자살하고, 어머니는 결국 성장한 아들에게 이미 그가 진짜 헨리가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하지만 자신의 친아들처럼 큰 사랑을 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원래 자신의 삶이었던 독일 부모님에 대한 기억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가짜 헨리는 자신과 바뀐 진짜 헨리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편, 파에리들은 다시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순서를 지키면서 차례가 된 아이젤을 위해 고군분투를 하지만, 결국 아이젤은 바꿔친 아이의 삶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게 된다. 이때부터 파에리 무리들에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다른 인간으로 살아가는 고통보다는 이대로의 파에리 삶에 만족하며, 그곳에서 정든 친구들과 연인들을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익숙한 생활을 포기하기 싫었던 것이다. 게다가 옛날과 달리 너무 빨리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전처럼 부모가 많은 아이들을 낳지 않아 아이의 변화를 금방 깨닫게 되는 것도 문제가 되면서 이제는 다시는 인간 생활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항상 생각하며 살아가던 그들이기에 우연찮은 몇번의 만남을 갖게 되고, 결국 도서관의 화재로 인한 마지막 조우를 계기로 파에리의 삶에 동화된 진짜 헨리 데이는 자신의 이름을 가짜에게 남겨주면서 자신의 연인인 스펙을 찾아 떠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정말 바꿔친 아이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왜냐면 어느순간 다르게 다가오는 친구들이 기억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삶의 위치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내게 오랜 여운을 남겨줄 것 같다. 
악착같이 자신이 빼앗은 것을 유지하려는 자와 빼앗긴 것을 너그러이 주려는 자.. 나와 똑같은 자신을 마주보는 것.
많은 생각을 남겨준 소설이다. 재미있다. 

" 보에티우스는, 삶의 투쟁이란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며 인간은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줄거야.
  이 현자에 관한 건 미스 오하라한테 가서 물어봐. "
라고 베리누스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이라는 책의 내용에 모든것을 맡기며 살아가는 이그네이셔스 J. 라일리, 그러나 본인은 정작 이런 말에 전적으로 콧방귀를 뀌어 마땅한 인물로 현실적인 모든일에 전투적이고 혁명적인 사고로 대응하는 과대망상증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독특한 세계관을 빅치프 노트에 써내려가며 언젠가는 분명 이 글들로 현대인들을 교화시키고, 성공하고만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열심히 생각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느날 어머니의 관절염 진찰로 시내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이그네이셔스는 사고방식 못지않게 독특한 외모로인해 사복경찰 맨큐소의 눈에 띄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일단 그의 외모를 묘사해 보자면,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초록색 사냥모자가 살덩어리 풍선 같은 머리통 윗부분을 쥐어짜듯 꾹 덮고 있고, 거들먹거리는 파랗고 노란 두 눈이 꼼꼼하게 사람들을 뜯어보고 있으며, 트위드 바지와 체크무늬 플란넬 셔츠라는 색상조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으로 풍성한 몸뚱이를 잘 가려주고 불룩한 사막부츠로 마무리를 드리운다. 이런 범상치 않은 겉모습때문에 한명만 잡으면 승진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맨큐소의 표적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거왠걸~ 경찰도 한방에 보내버리는 마법같은 입담으로 겨우겨우 어머니와 함께 도주했건만, 저질체력과 미스 라일리의 알콜사랑으로 프렌치 쿼터의 음습한 카페에서 대낮부터 술과 이그네이셔스의 베턴루지 고행담이 시작되면서 독자는 서서히 그의 벨탄샤웅(세계관)에 젖어가기 시작한다.

 

30살이 넘은 아들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무거운 직책으로 인한 어머니의 과음은 결국 음주운전 사고를 일으키고, 그간 놀고먹던 이그네이셔스가 돈을 벌러 나가야만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제부터 독특한 그의 세계관은 빅치프 노트가 아닌 그와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마구마구 읊퍼지게되고, 급기야 하나 둘씩 언제 터질지 모르는 팝콘처럼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찌보면 이 모든 일이 그와는 정반대의 사고방식을 지닌 귀여운 애인 머나 민코프 때문인지도 모른다. 빚을 갚아야하는 중차대한 목적보다는 그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에게 일자리를 찾고, 무언가를 저질러야 한다는 행동을 불러일으킨다. 

 

미워할래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이그네이셔스... 이런 특이한 캐릭터는 정말 처음이다. 
일반인들에 절대 지지 않는 상당한 지식을 소유한 그지만, 자신의 유문(위와 소장을 연결하는 부위)에는 한없이 약해지는 그를 어떻게 다짜고짜 미워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론, 남들과는 다른 사고를 가졌기에 주변 사람들과 심지어 어머니와도 어울어질 수 없는 비운의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캐릭터 만큼이나 독특한 내용의 소설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뭐라 단정지어 말하기 힘든 소설은 처음이라는 역자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말이지 철두철미한 독창성으로 독자들을 웃기고, 씁쓸하게 하며, 두꺼운 책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작가 ’존 케네디 툴’ . 책을 읽으면서, 그의 삶을 이그네이셔스의 삶에 투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1937년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튤레인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과정을 밟던 중 미 육군에 징집되어 복무하면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고, 제대 후 고향에서 원고를 완성시켰으나, 유명 출판사에서 출간을 거절당하고, 출판사들의 퇴짜와 어머니와의 불화로 심한 우울증과 편집증에 빠져들었다. 외톨이, 재담꾼, 인기 강사였지만, 1969년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런 그의 배경으로 외모나 세계관은 주인공과 다를지 모르나 내용중 어머니와의 불화나 갈등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묻어난게 아닐까 한다.결국 허구속의 이그네이셔스가 어머니로부터 도망친 것처럼, 본인은 자살이라는 선택으로 현실이라는 고통과 굴레에서 벗어나게 된것일까. 어찌되었든, 작가는 못생겼지만 똑똑하고 지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코믹을 선사하며, 뉴올리언스의 모습과 1960년대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만약 내가 미국인이었다면, 그리고 뉴올리언스의 생활상을 조금 알고 있다면, 이 책의 참 맛을 더욱 잘 느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두서없는 긴 사설이 되었지만, 결국 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 당장 읽어보세요. " 이게 정답일 것이다. 
이 책을 만난것에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앞발의 두두러기를 긁적이면서 유문의 상태를 점검하고, 축축한 콧수염으로 애인의 머리칼 냄새를 맡는 이그네이셔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와~! 먹먹하다. 갑자기 파릇파릇하고 열정적이었던 그 시절이 속절없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하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깨닫고 자유다운 자유를 진정으로 얻게 되는 바로 그 시절, 대학시절을 다룬 소설들을 만나면 가끔 울컥하게 된다. 왠만한 일로는 울컥않는 사나이지만, 어찌어찌 이런일이 생긴단 말인가.
눈부시게 반짝반짝한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 기억나는 몇가지 특정한 것들이 있다. 
그건 마음맞는 친구들, 축제들, 미팅 & 소개팅들, 취미생활들 그리고 그 모든것을 포함하는 동아리에서의 활동들.
동아리라는 것이야말로 대학생활의 꽃이요, 휴식이며 작은 사회라고 생각된다. 
동아리라는 작은 조직을 이끌어가기 위해 목표(그것이 허접거리에 불과할지라도)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려고 똘똘뭉쳐 노력했던 일들과 선,후배들과의 추억들이 그립고 그리워졌다. 그리고 동아리 생활의 백미인 축제기간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 거리다. 
이렇게 가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내게 [키켄] 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공감하는 소설이다.

 

키켄... 독특한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세이난전기공과대학의 기계제어연구부의 동아리명을 줄여부른 이름이다. 
또한 위험이라는 일본말의 발음이기도 하다.
신입생 모토야마와 이케타니는 게시판에 붙은 눈에띄는 동아리 광고를 보고 궁금해하던중 "제군들~!"하고 부르는 친근한 말투의 키켄부장 우에노의 인도하에 동아리방에 입성하고, 광고에서 알려진 그대로의 쾌적한 환경과 다양한 편의 시설에 고개를 끄덕이며 커피까지 접대받은 후 얼떨결에 가입하게 된다. 
뭔가모르게 불안하다 싶은 마음이 지배적이었지만, 친구 이케타니의 말인 '키켄과 적이되면 골치 아파진다' 는 위협에 그대로 눌러앉게 되고만다. 두명을 손쉽게 자기부하로 만든 부장 우에노와 차장인 오오가미는 본격적인 신입생 유치 설명회에서 모토야마와 이케타니를 멋대로 부려먹으며 활용한 결과 운동장에서 폭탄을 폭발시키는 기염을 토하며 9명의 정예요원인 키켄을 이끌어나가게 된다. 선배인 우에노와 오오가미의 특이한 별명에 맞는 특성들을 마주하며 입을 다물수 없는 상황을 조금씩 겪게되고, 자신들도 모르게 그들과 키켄에 동화되며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대학시절의 특별한 추억들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작가 아리카와 히로는 요런 독특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몇가지 에피소드로 들려준다. 
그것이 바로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것도 여자의 시선에서 본 남자들의 모습이지만, '옳지옳지' 하며 완전 공감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예를들면 그냥 재미삼아 하던 사소한 일에 갑자기 경합이 붙어버리면서 죽자고 덤벼버리고 마는 그런 모습들 말이다.
아리카와 히로는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게 마른 볏짚에 불 붙여준 장본인이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에 재미와 감동을 삽입하여 자연스럽게 풀어가는 장점을 가진 작가다. 
라이트 노벨류라고 보이지만, 그속엔 언제나 가슴을 뒤흔드는 감동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아리카와 히로를 찾고 또 찾게되는 이유다. 
언젠가 내 평범한 삶에서도 그러한 감동이 찾아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이라고나 할까?

 

이 소설에는 개성 강한 친구들이 등장한다. 언제 어디서나 이런 친구는 한명쯤 존재한다싶은 녀석들 말이다. 
그러한 인물들이 서로 대립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키켄을 성장시켜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 또한 이 책에서 맛볼 수 있는 매력이다. 각각의 에피소드의 맨 마지막에는 키켄의 추억들을 들려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인물의 정체가 누구인지..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역시 이 책에서 빠질 수 없는 매력은 에피소드 시작페이지마다 그 장의 특징을 보여주는 만화다. 
등장인물의 모습을 눈으로 보게 해준것도 고마운데, 마지막 페이지에 소소한 감동을 숨겨둔 작가의 아이디어가 좋았다. 
아, 마지막으로 표지를 빼놓을 수 없는데, 만화일지도 모른다는 추측과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알겠다는 의미심장한 미소따위는 버려라. 하지만, 유심히 봐두면 도움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이 서평을 마친다.

 

 

p.s. 모든 책의 끝부분에 '함께해주신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는 작가의 인사말은 언제나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