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꽤나 지루한 책들을 읽고 있었던 나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은밀한 세계사>.
무엇이든지 원래의 이야기보다 숨겨진 이야기나 그 후의 이야기가 기대되고 재미있는 법.
"밤이 무척 깊었습니다.
모닥불에 장작을 두어 개 더 던져 넣고, 아이들에겐 자러가라고 합시다.
그리고 이제 우리끼리 소곤소곤, 어른들만의 은밀한 역사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로 시작되는 작가의 말에, 누군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아주 흥미롭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14가지의 역사이야기.
야사라고 생각했으나, 신뢰할 수 있는 문헌과 사진, 그림 등이 존재하는 당당한 정사(正史)라는 점~!
우리가 알고있는 유명한 동화들 중에 실은 미화된 것들이 있다는걸 알고있는지?
원작동화인 『해,달,그리고 탈리아』를 통해 본 『잠자는 숲 속의 미녀』는 생각보다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의식없는 탈리아를 강간하고 아이까지 낳게 했는데, 심지어 강간범이 유부남이며
원래 부인은 남편에 의해 산 채로 불에 태워지고 피해자가 가해자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
동심을 파괴하는 잔혹동화에 가깝지만 난 어른이니까.
어머어머...하면서도 흥미롭게 읽었던 듯.ㅋ
이 밖에도 『빨간모자』 와 『피노키오』의 원작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 알고 있는 이야기와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림에서 눈에 띄는 그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꽤나 민망하지만(실은 뭐 그닥 민망할것도..ㅋ)중세 유럽 남성들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템인
'코드피스(=샅보대)'에 대한 것도 알게되었다.
당시 의복의 특성상 필요했던 부분이 남자들간의 자존심경쟁으로 인해 점점 커지고 화려해졌으며
최대한 크게 보이기위해 빈 공간을 활용해 주머니를 달고 보석,열쇠,손수건,무기 등을 넣어다녔다고 한다.
심지어 음식까지..(작가 왈..'누구먹으라고 음식을 거기다가...'ㅋㅋ)
야하고 천박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자신감 넘치는 젊은 청년'의 상징이었다고!
윤냥과 함께 읽은 <왕자와 거지>에 나왔던 헨리8세와 에드워드 왕자를 여기서 볼 줄이야..
미남도 아닌것 같은데 결혼을 여섯번이나 했다기에 도대체 왜? 했더니
역시나 비결은 어마어마한 코드피스에 있었나보다.
『안네의 일기』에도 원작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왜 안했을까?
그저 글솜씨가 좋은 유대인 소녀의 안타까운 일기에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일 것이다.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아버지에 의해 편집되고 출간된 것이 우리가 읽은 내용인데
일기의 원본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나 이성에 대한 관심 등 평범한 사춘기소녀들이 가지고 있을법 한
내용들이 담겨져있다.
누군가 읽으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사적인 공간이기에 꽤나 직접적인 표현들이 쓰여졌는데
수업에 사용되기엔 너무 선정적이라고 항의하는 학부모가 있었을 정도라고 하니 상상해보시길.
14가지 이야기 사이에는 '살짝 더 은밀한 세계사' 두 가지가 더 포함되어있다.
옛날옛날에 전쟁포로들을 거세하여 돌려보내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여인이 그 사람앞으로 용기있게 나서서 했던 이야기가 감탄을 자아낸다.
"남편에겐 눈도 있고 코도 있고 손과 발도 있습니다. 그것들른 남편의 것이니 자기가 저지른 죗값으로 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나으리, 부디 적법한 제 소유물인 그 부위만큼은 남겨주시길!!"
이렇게나 흥미롭고 호기심 넘치게하는 역사이야기라니~!!
마치 모닥불 앞에 모여앉아 솜씨있는 이야기꾼에게 밤새도록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은 듯 하다.
문체 자체도 이야기하듯 쓰여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끼게 되는 듯.
금기와 금단을 넘나드는 어른들의 역사이야기를 담은 세계사이지만
당시의 문화, 시대적인 배경, 사람들의 생각들까지 만나볼 수 있었기에
혹여나 '단지 재미만을 위한 책이 아닐까?'라는 걱정까지도 날려주는 책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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