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어 본 정유정 작가의 소설.
그녀의 작품들에서는 매번 다른 악인들이 등장한단다.
그 중 가장 진화된 악인이 <종의 기원>의 주인공으로 그려졌다.


피냄새에 잠에서 깨는 유진.
발작을 시작 하기 전, 그에겐 늘 피비린내가 찾아오기에 발작전구증세라고 짐작하지만,
집 안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누군가'를 밝히며 드러나는 진실들..
발작 증세 후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유진은,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을 마주하며
망각에 가려져있던 사실들을 대면하게 된다.
단 3일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읽을수록 빠져들게 만들었다.


「유진은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였다. 먹이사슬로 치자면 포식자.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 패스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259p」
'그날 일'로 인해 검사를 받고 정신과의사인 이모에게서 내려진 진단.
이후로는 어떤 약인지도 모르는 약을 복용하며 부작용에 시달리고 하고 싶은 일까지
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보호와 감시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사실 잘못된진단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약을 먹지 않고 부작용을 겪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일들이 아닐까.
진단으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망가졌을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

하지만 이야기에 빠져들 수록  「비로소 나는 해독의 실마리를 찾았다. 더하여 내가 무엇에 끌리는가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겁먹은 것에게 끌렸다 188p」 나,  「내 몸은 소리를 죽이기 시작했다. 숨 쉬듯 욱신대던 뒤통수가 평온을 되찾았다. 숨소리는 목 밑으로 잦아들고, 갈비뼈 안에선 심장이 느리게 뛰었다. 배 속에선 공처럼 구르던 긴장이 사라졌다. 오감이 날을 세웠다. 몇 미터 거리가 있는데도, 겁먹은 것의 축축하고 거친 숨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세상이 엎드리는 기분이었다. 모든 것들이 길을 열고 대기하는 느낌이었다. 283p」 부분이 처음 느꼈던 것과는 다른 섬칫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는 학습되어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맹수'와도 같았다.


며칠 상간으로 여러 명을 죽인 살인기계가 되어버린 유진.
의식이 없던 처음과 대조적으로 이후의 살인은 매우 치밀하고 계획적이다.
선택의 순간에서 감정을 배제하고 오직 목적과 비용의 상관관계만 따졌을 뿐.

 

 

 

작가의 말에 인용된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의 의견이 인상적이다.
「인간은 살인으로 진화했다. 인간은 생존하도록 태어났다.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는 진화과정에 적응해야 했고, 선과 악이 공진화했으며, 그들에게 살인은 진화적 성공(유전자 번식의 성공), 즉 경쟁자를 제거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이 무자비한 '적응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우리의 조상이다. 379p」

악은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으로,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하길 바라며 썼다는 <종의 기원>
푹 빠져서 읽었고 다시 읽었지만, 생각해본적없는 '악'이라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생각하려니 어렵기도 했던 책.

 

 

 

 

 

종의기원, 정유정, 사이코패스, 성악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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