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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느린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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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살아 숨쉬는 옹기의 문체, 느림과 늙음을 성찰하는 아름다운 균형!
    표제작인 〈아주 느린 시간>은 신도시에 사는 다섯 노인들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전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죽음을 애증어린 친구처럼 끼고 사는 모습들이 약여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중 다음의 두 대목은 압권이다. 먼저, 한국전쟁 전야의 가족사를 둘러싼 두 노인간의 화해 문제. 어릴 적 실수로 상대방 집안의 형을 사지로 몰아넣게 된 김노인은 마음의 묵은 빚을 갚으려 한다. 그러나 정노인의 다음과 같은 답변은 그 부채 청산 의지가 오만임을 통렬하게 지적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나는 느낀다네. 모든 걸 털고 해결하고 세상을 뜬다는 생각 자체가 무의미하고 사치스럽다고. 아니 주제넘어. 죽는 날까지 사람인 것이 사람의 노릇인데 완전 종결이 어딨어. 가당찮은 허영이지." 다음, 부인을 먼저 보내고 홀로 사는 것까지 멋져 보일 만큼 특출한 홍노인의 경우. 일본의 문학평론가 에토 준의 책을 읽으며 자신을 겹치고 혼자 이탈리아 요리 전문점에서 치즈 퐁 뒤를 음미하는 홍노인의 다음과 같은 독백(형식은 죽은 부인에게 건네는 말이지만)은 노년이 여전히 생생한 삶의 시간임을 감동적으로 전한다. "아무런들 과거를 볶아 먹거나 재탕하면서 살지는 않을래. 번듯한 직함을 시원섭섭하게 떨어내기는커녕 죽을 때까지 끌고 다니는 위인들 있지? 사실은 불쌍한 사람들이야. 냄새 나도록 낡은 그 망토를 벗는 날로 자기는 볼장 다 본다고 믿기 때문일 거야. 그냥 이렇게 있다는 확신이 나는 좋아. 사는 것이 어차피 별거더냐 생각하면 편하고, 거기서 꾸역꾸역 고개를 쳐드는 용기를 확인하는 순간이 더 좋아. 매사를 뒤집어보는 용기. 그게 진짜라고, 아까 그 사람도 말했어.”

    〈힘〉에서는 체력 증강에만 집착하는 노인의 동선을 줄곧 좇아간다. 담아내는 ||^늙음||^ 에 대한 자조는 작가 자신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얼핏 공평한 것처럼 교묘하게 가장된 ||^힘||^에 대한 테스트인 운동회에서 작가는 일인칭의 심리 진술을 통해 노인의 무력함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툭 던져놓는 한마디들이 일품이다. 치매를 "초월의 신천지가 눈앞이다"라고 눙쳐버리는 작중인물의 독백은 역설적으로 작가의 노익장을 새삼 상기시킨다.

    〈사진〉은 죽음에 대한 얘기다. 죽음이 삶의 대극으로 존재하는 것이아니라,또 하나의 현실일 뿐임을, 이 작품은 말해준다. "천만년 전이나 오늘이나 저마다 최초이자 최후의 실험자로” 될 수밖에 없는 죽음, 그 죽음이 던지는 공포에 대한 대화가 병원 영안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뒤에 이어지는 〈그들은 말했네>는 작가의 글쓰기의 모든 비밀이 들어 있는, 그리하여 최일남에게 ||^글쓰기의 반복성을 필연화하는’(김윤식, 문학평론가) 작품이다. 소장한 책들을 처분하려다가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 옛 추억이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룬다. 그중 세 권, 즉 『노신전집』 『국사대관』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에 담긴 사연이 책을 정리해야 하는 노인의 씁쓸함과 어울린다. 이 세 권에서, 김윤식은 최일남 소설세계의 근간을 발견한다. ||^절묘한 소설적 균형감각’을 획득한 작가, 또 그것을 흐트러짐 없이 지속해온 유일한 문사 최일남을 파악할 수 있는 소중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풍경〉은 최상위의 사회 지배층에서 한평생을 머물다 정년퇴직한 사람의 일상이 소재다. 직함이 없어진 노년의 눈을 통해 바라본 세상은 완전히 다른 세계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은 노인의 짜증이 시종 경쾌하게 이어진다.

    〈속삭임 외로움〉에서는 ||^소통’의 기능에 대한 독특한 성찰이 가벼운 어조로 펼쳐진다. 어느 컬럼니스트(아마도 작가 자신일 테지만)가 이발사와, 또 자기 글을 읽은 독자들과 나누는 대화들이 느릿하게 서술된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세상의 온갖 ||^요구들’과의 친화와 배타, 그 갈등이 작가 특유의 문체와 어울려 오롯하다.

    마지막 단편 〈띠〉는 평생 백면서생이었던 주인공이 조직의 위원장 자리를 맡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어깨에서 허리로 빗금을 그으며 걸친 하얀 띠의 의미를 캐물으며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비꼰다.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오늘까지, 변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웃지만 그 정취는 차라리 흥겹기도 하다. 해직 언론인이기도 한 작가의 모습을 떠올리는 즐거움도 만만찮다.

    목차

    1. 고도는 못 오신다네
    2. 아주 느린 시간
    3. 힘
    4. 사진
    5. 그들은 말했네
    6. 풍경
    7. 속삭임 외로움
    8. 띠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2.12.29~
    출생지 전북 전주
    출간도서 17종
    판매수 5,741권

    1932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3년 '쑥 이야기'가 [문예]에, 그리고 1956년에는 '파양'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소설집 [서울 사람들][타령][춘자의 사계][손꼽아 헤어보니][너무 큰 나무][홰치는 소리][누님의 겨울][히틀러나 진달래][그때 말이 있었네][아주 느린 시간][석류], 장편소설 [거룩한 응달][그리고 흔들리는 배][숨통][하얀 손][덧없어라, 그 들녘][만년필과 파피루스]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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