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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세계사 분권 세트(특별판) : 나폴레옹 전쟁은 어떻게 세계지도를 다시 그렸는가

원제 : The Napoleonic W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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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폴레옹 전쟁은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다룬 최초의 책
《나폴레옹 세계사》의 3분권 특별판 출간!

나폴레옹 전쟁은 결코 유럽 안에서 고립된 채 펼쳐지지 않았으며, 전 지구적인 반향을 낳은 대사건이었다. 《나폴레옹 세계사》는 나폴레옹 개인이나 나폴레옹 전쟁 자체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맥락으로 확대하는 책이다.
1792년에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은 180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름을 바꿔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궁극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23년간 이어졌다. 통틀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는 이 장기 무력 분쟁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대규모이자 고강도 전쟁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은 식민지와 무역로를 차지하기 위한 유럽 열강들의 세계적 투쟁이었고, 그 영향력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으로 뻗어나갔다. 나폴레옹은 직간접적으로 남아메리카 독립의 원인을 제공했고, 중동 지역을 재편했으며, 영국의 제국적 야심을 강화하고, 미국 세력의 부상에 기여했다.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폴레옹 시대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알렉산더 미카베리즈는 프랑스 혁명부터 시작해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그 이후까지의 시간을 훑고, 유럽 평원뿐만 아니라 미주, 서부 및 남부 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이란, 인도, 아시아, 지중해, 대서양, 인도양 등 전 세계 대륙에서 나폴레옹 전쟁이 영향을 미친 과정을 치밀하게 서술해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유럽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이 어떻게 전 지구를 뒤흔든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는지, 현대 세계의 토대를 쌓는 데 이 전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 서평

★ “이 책을 옆에 두지 않고는 앞으로 누구도 나폴레옹 시대사를 연구하지 못할 것이다.” - 나폴레옹재단 이사장 티에리 렌츠
★ “이전에 나온 그 어느 나폴레옹 전쟁사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진정한 걸작이 탄생했다.” - 《나폴레옹 전기》 저자 앤드류 로버트
★ “가장 흥미진진한 지구사, 21세기를 위한 나폴레옹 전쟁사.” - 요크대학 명예 역사학 교수 앨런 포레스트

“나폴레옹 전쟁은 전 지구적 사건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다룬 최초의 책

《나폴레옹 세계사》 분권 특별판 출간!
내용은 그대로, 휴대성은 높아진 보급형 에디션

2015년은 나폴레옹 전쟁 종식 200주년이었고, 2021년은 나폴레옹 타계 200주년이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최근 몇 년 사이 서구에서는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전쟁 관련 도서가 쏟아져 나왔다. 나폴레옹의 정원 가꾸기 취미에 주목하거나 그의 고질병을 다룬 도서가 나왔을 정도다. 하지만 나폴레옹 전쟁의 배경과 진행과정, 그 유산까지 종합적으로 다루며 이 전쟁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책은 소개되지 않았다. 나폴레옹 시대의 군사와 외교에 관한 방대한 연구 사례나 국제사의 관점에서 나폴레옹 전쟁을 다룬 책도 있지만, 여전히 확고하게 유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한계가 있다. 국내에서도 나폴레옹의 생애를 다룬 전기나 소설, 나폴레옹 전쟁을 군사사의 관점에서 다룬 책이 몇 권 있을 뿐이다.
20년 넘게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시대를 연구해온 알렉산더 미카베리즈는 프랑스 혁명전쟁과 함께 시작된 나폴레옹 전쟁이 결코 유럽 안에서 고립된 채 펼쳐지지 않았으며, 전 지구적인 반향을 낳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폴레옹 세계사》는 나폴레옹 개인이나 나폴레옹 전쟁 자체의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맥락으로 확대하는 책이다.

세계대전 이전의 세계대전,
나폴레옹 전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1792년 프랑스 입법회의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은 1803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름을 바꿔 1815년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이 궁극적으로 패배할 때까지 23년간 이어졌다. 통틀어서 ‘나폴레옹 전쟁’으로 불리는 이 장기 무력 분쟁은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사에서 가장 대규모이자 고강도 전쟁이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로 길이 기억되는 보로디노 전투에는 30만 명이 넘는 병사들이 참전했고, 열두 시간의 싸움으로 3만 5천 명의 프랑스군, 4만 명 이상의 러시아군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다. 100여 년 뒤 5만 8천 명의 사상자를 낸 1차 세계대전의 솜 전투만이 이 파국적인 규모에 버금갈 정도다.
압도적인 규모와 범위의 이 전쟁을 설명하려면 물론 여기에 이름을 부여한 인물을 이해하는 작업이 필수다. 그러나 “말을 탄 세계 정신”만이 이 전쟁의 시작과 끝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폴레옹 전쟁은 이미 18세기 유럽 국가 체제의 불안정성과 지정학적 요인 안에 그 씨앗을 품고 있었다. 따라서 나폴레옹 개인의 중심성을 뼈대로 삼으면서도 18세기 유럽의 국제 질서라는 맥락과 그 전 지구적 파급효과로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에서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시작부터 179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의 집권까지의 혁명기를 개관한다. 이 시기를 들여다보지 않고서는 나폴레옹 전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부분은 나폴레옹 전쟁의 여러 사건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펼쳐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또 지리적으로 보여준다. 혁명전쟁으로 프랑스가 획득한 것을 공고히 하려는 나폴레옹의 시도들과 그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살펴보고, 종국적으로 유럽 대륙 전체를 집어 삼키게 될 프랑스-영국의 긴장관계에 초점을 맞추며, 스칸디나비아와 발칸반도, 이집트, 이란, 중국, 일본, 남북아메리카 대륙 등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들을 다룸으로써 나폴레옹 전쟁이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했는지를 실증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나폴레옹 제국의 몰락과 전쟁 이후의 세계를 폭넓게 둘러본다. 이 시점에 이르러 나폴레옹 전쟁은 아시아에서는 거의 해소되었으므로 서사의 초점은 유럽과 북아메리카로 이동하여, 나폴레옹의 패배와 빈 회의의 소집으로 막을 내린다.

혁명은 어떻게 전쟁이 되었는가
18세기 유럽의 국제질서와 나폴레옹 전쟁

혁명 프랑스는 1792년 봄부터 전쟁에 휘말려들었다. 프랑스는 혁명이 이룩한 것을 수호하고자 했고, 전쟁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군대는 혁명의 결과들을 이웃 나라로 퍼뜨렸다. 하지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장군이 권좌에 부상하면서 프랑스의 전쟁 목표는 영토 팽창과 유럽 대륙에서의 패권 장악이라는 전통적인 정책들로 회귀했다.
1804년 프랑스 황제로 선언된 나폴레옹은 1805년과 1810년 사이에 유럽 열강의 세 차례 동맹을 분쇄한 뒤 에스파냐의 대서양 연안선에서부터 폴란드 평원까지 뻗은 대륙으로 지배권을 확대했다. 그 과정에서 프랑스 군대는 유럽의 중요한 변화들을 촉진했다. 그 변화는 오스트리아의 한 정치가가 묘사한 대로 “혁명의 체현”으로 인식될 만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은이 미카베리즈는 나폴레옹 전쟁을 혁명적 투쟁의 지속으로만 인식해서는 안 되며, 18세기 국제질서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18세기 유럽의 열강들은 끊임없이 세력 균형을 추구하면서 저마다 제국적 야심을 펼치기 위해 식민지 확대 경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 과정에서 7년 전쟁이 벌어졌으며, 이 전쟁에 패한 프랑스는 식민지를 상실하고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여야 했다. 그 후유증으로 프랑스 혁명이 터졌고, 뒤이어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이 전개됐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통해 새로운 국제 질서를 창출하고, 유럽에서 프랑스의 헤게모니 권력을 수립하고자 했다. 나폴레옹 프랑스의 야심을 꺾고자 유럽 열강은 동맹을 맺고 일곱 차례에 걸쳐 대불동맹전쟁을 벌인다. 이 전쟁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된 프랑스와 영국의 대립은 사태의 추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두 열강은 유럽만이 아니라 남북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오스만 제국, 이란, 인도, 인도네시아, 필리핀제도, 지중해와 인도양에서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다.
20여 년이 넘게 이어진 두 열강의 대결은 사실상 제국 건설 과정에서 벌어진 투쟁이었다.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서 강한 군사력으로 패권을 장악하고, 영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대륙 봉쇄 체제를 실시했다. 영국도 지구적인 상업 제국을 건설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국의 경제력과 해군력을 휘두르며 프랑스에 맞섰다.
이 책에 수록된 29개의 세밀한 지도는 나폴레옹 전쟁이 미친 지구적 영향을 보여주는 시각적 증거다. 1789년부터 1815년까지의 세계를 담은 지도들은 빼곡하게 수록된 지명들이 전쟁의 양상에 따라 국경선을 넘나들고 속령을 바꾸었음을 보여준다.

나폴레옹 전쟁이 현대 세계에 남긴 유산

지구적 맥락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살피다 보면 그 전쟁이 유럽 내부보다 해외에 훨씬 더 장기적 영향을 미쳤음이 드러난다. 결국 나폴레옹은 패배했고 그의 제국은 유럽의 지도에서 지워졌지만, 같은 시기에 영국은 인도 지배를 공고히 하고, “희망봉부터 혼곶까지” 자국에 도전할 만한 세력을 일소하며 세계적 강국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또 북방에서 전개된 전쟁으로 노르웨이와 핀란드의 지위가 바뀌면서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재정렬이 이루어졌다. 미국은 1776년에 시작한 독립의 과정을 1815년 전쟁으로 마무리하면서 서반구에서 진정한 탈식민 강국으로 부상했다. 에스파냐 아메리카 제국은 본국이 나폴레옹 전쟁의 격랑에 휘말리면서 해체의 길을 밟았다. 또 나폴레옹이 탄생시킨 라인 연방이 독일 연방으로 확대, 변형되면서 독일 통일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오스만 제국은 유럽의 세력 다툼에 엮이는 사이 이집트와 발칸반도 등 속주에 대한 지배력이 한층 약해졌다. 이집트는 사실상 반독립국이 되었고, 19세기는 물론 20세기 들어서까지도 발칸 지역을 유혈로 얼룩지게 할 독립 운동의 기나긴 흐름도 이때 시작되었으며, 유럽 외교의 중심 의제에 ‘동방문제’가 대두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의 파급효과는 이란과 중앙아시아에까지 미쳤고 이로써 19세기 내내 전개될 영국-러시아 세력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의 무대가 갖춰졌다.
나폴레옹 전쟁이 세계지도만 다시 그린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 유산들 외에도 중앙 권력의 강화, 징집제, 민족의식의 고취 등 나폴레옹 전쟁의 정치적·사회적 유산 역시 광범위하고 오래 지속되었다. 그중에 어떤 것들은 우리 곁에 말 그대로 여전히 남아 있다.

지은이 알렉산더 미카베리즈는 20년 넘게 나폴레옹 시대를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이 시대에 대한 세계적 시각이 시급함을 느꼈기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했다. 나폴레옹 연구에 관한 공헌을 인정받아 국제적 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과거와 최신의 자료를 망라하며 수년간 연구와 숙고를 거듭해왔다(270여 쪽에 달하는 주석과 참고문헌이 이를 방증한다). 그 덕분에 세상에 드러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유럽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전쟁이 어떻게 전 지구를 뒤흔든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는지, 현대 세계의 토대를 쌓는 데 이 전쟁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서문
감사의 말

1장 혁명적 서곡
2장 18세기 국제 질서
3장 1차 대불동맹전쟁, 1792-1797
4장 라 그랑 나시옹의 형성, 1797-1802
5장 2차 대불동맹전쟁과 그레이트 게임의 기원들
6장 평화의 의례들, 1801-1802
7장 전쟁으로 가는 길, 1802-1803
8장 파열, 1803
9장 코끼리 대 고래 : 프랑스 대 영국의 전쟁1,8 03-1804
10장 황제의 정복, 1805-1807
11장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 유럽과 대륙 봉쇄 체제
12장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쟁탈전, 1807-1812
13장 대제국, 1807-1812
14장 황제의 마지막 승리
15장 북방문제, 1807-1811
16장 사면초가의 제국 : 오스만 제국과 나폴레옹 전쟁
17장 카자르 커넥션 : 이란과 유럽 열강1, 804-1814
18장 영국의 해외 원정, 1805-1810
19장 영국의 동방 제국, 1800-1815
20장 서방문제? : 아메리카 대륙 쟁탈전, 1808-1815
21장 전환점, 1812
22장 프랑스 제국의 몰락
23장 전쟁과 평화, 1814-1815
24장 대전쟁의 여파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1장 혁명적 서곡, 31쪽
1792년 2월 17일 영국 총리 윌리엄 피트는 하원에서 정례 예산안 연설을 했다. 그는 나라의 상황을 논의하면서 비록 영국의 번영이 확실히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유럽의 상황을 살펴볼 때 이 나라의 역사상 우리가 15년간의 평화를 합리적으로 예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도 없습니다”라는 유명한 예견을 내비쳤다. 그러나 두 달 뒤에 영국을 20년 동안 수렁으로 끌고 가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피트의 연설문을 읽고 있노라면 총리가 어떻게 그토록 잘못 짚을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왜 영국이 15년의 평화가 아닌 23년의 전쟁을 겪게 되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의 역할은 어떤 평가를 내려도 과대평가가 아닐 것이다. 1789년의 사건들이 불러온 혁명 10년은 프랑스에 제도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정치적 전환을 가져왔고 유럽 전역과 그 너머에까지 영감의 근원과 증오의 근원으로 똑같이 작용했다.

3장 1차 대불동맹전쟁, 1792-1797, 105쪽
1793년 봄 영국과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에스파냐, 나폴리를 비롯해 대다수의 유럽 국가들은 1차 대불동맹에 가담했다. 영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프랑스 공화국은 이 투쟁에 새로운 차원을 도입했는데, 바로 바다였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어느 쪽도 이렇다 할 해군 자원이 없었지만 영국은 최고의 해군 강국이었고 이제 그 방대한 해군 자원을 이용해 프랑스의 상업적·군사적 목표물을 노렸다. 동맹 세력은 새로운 공세를 개시했다. 영국은 프랑스 상선을 공격하고 해상 운송을 금지했고, 프로이센은 라인란트의 마인츠를 포위했으며, 오스트리아는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를 수복하고자 했다. 프랑스는 3월 18일 네르빈던에서 패배했고, 오스트리아는 브뤼셀을 탈환했다.

6장 평화의 의례들, 1801-1802, 203쪽
프랑스에서 통령 정부(1800~1804)는 19세기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인 시기였다. 혁명은 이제 끝났다. 급진적 자취들은 싹 치워졌고, 교회는 다시 문을 열었으며, 망명 귀족들은 귀환이 허락되었다. 화해와 질서 회복이 급선무였다. 이러한 정책들은 새 정부에 대한 공적 신뢰를 얻는 데 도움이 되었고 보나파르트가 일련의 개혁에 착수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 개혁 정책들이야말로 그의 경력 가운데 가장 건설적이고 항구적인 유산을 남겼다. 이 정책들의 핵심 요소는 혁명 성과의 보존과 질서 회복을 합친 것이었다. 국가 재정의 안정성은 활발하게 적용된 중앙집권화의 결과였다. 보나파르트는 혁명의 전형적인 유산이었던 선출 공무원과 지방 자치를 중앙에서 임명한 관료─도에는 지사, 구에는 부지사, 시와 코뮌에는 시장─들로 교체했는데, 이 관료들은 이후로 줄곧 프랑스 행정 체계의 중심으로 남았다.

9장 코끼리 대 고래 : 프랑스 대 영국의 전쟁, 1803-1804, 317쪽
결국에는 나폴레옹 전쟁으로 알려지게 되는 범유럽적 분쟁은 프랑스와 영국 간 분쟁, 육상 강대국이 해상 강대국과 맞붙은 친숙한 광경─코끼리 대 고래로 출발했다. 유럽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해군을 보유한 영국이 해상에서 압도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한편 프랑스는 부지런한 지도자가 이끄는 당당한 육군을 보유했다. 어느 쪽도 상대편의 안방으로 들어갈 처지는 아니었다. 프랑스 해군은 혁명기의 형편없는 상태에서 회복하려고 여전히 고생하고 있었던 한편, 영국 육군은 대불동맹전쟁이라는 불가마를 뚫고 나온 노련한 프랑스 병사들을 이길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힘들었다. 두 열강 중 어느 쪽이 이길지는 두고 볼 일이었다.

11장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 유럽과 대륙 봉쇄 체제, 412쪽
많은 이들이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로 꼽는 대륙 봉쇄 체제는 이따금 주장되는 것만큼 비합리적이지 않았다. 그것은 가장 단순한 형태로서, 프로이센 군사 이론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면,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즉 기존의 군사적·정치적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적 수단을 활용하려는 시도였다. 이 점에서 그것은 나폴레옹이 집권하기 훨씬 전에도 줄곧 시도되었던 전통적 정책들의 지속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유럽의 지배적인 경제 신조인 중상주의는 부를 얻기 위해서는 무역 흑자를 통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부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과 프랑스 둘 다 중상주의 정책을 추구했고 경쟁국들의 수출을 제한하고 자국의 수출을 장려하고자 공격적으로 활동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영국-프랑스 간 경제적·군사적 경쟁관계는 1786년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이든 조약의 체결로 잠시 중단되었지만 조약은 영국에 더 유리한 것으로 널리 여겨졌고, 어쨌거나 혁명의 발발로 곧 무의미해졌다. 혁명전쟁이 시작되면서 프랑스와 영국 둘 다 이전의 무역 통제 정책들로 복귀했을 뿐 아니라 중립국과의 무역을 제한하는 데로까지 확대했다.

20장 서방문제? : 아메리카 대륙 쟁탈전, 1808-1815, 881쪽
다른 어느 지역보다 에스파냐령 아메리카는 나폴레옹 전쟁의 지구적 파급효과를 잘 드러낸다. 나폴레옹 전쟁의 전통적인 서사에서 대체로 간과되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에스파냐 제국의 붕괴는 유럽의 정치적 격랑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동방문제가 오스만 제국의 운명이라는 핵심 문제를 중심으로 돌아갔다면 거기에 상응하는 ‘서방문제’, 즉 에스파냐와 그 제국의 영토를 중심으로 한 문제가 있었다. 나폴레옹 전쟁 동안 이 광대한 제국은 산산조각 났고 이후로 줄곧 세계 정치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에스파냐 식민지의 엘리트층은 한 세대 전 북아메리카의 엘리트층처럼 유럽에서의 혼란의 순간과 정치적 허약성을 놓치지 않았고 식민 지배에서 독립해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선언했다.

21장 전환점, 1812 (923-924쪽)
19세기의 두 번째 10년대에 이르자 나폴레옹은 지난 천 년 동안 누구도 이룩하지 못했던 것을 해냈다. 바로 유럽 대륙의 패권을 거머쥔 것이다. 프랑스 치하 영토의 면적 측면에서 1810년은 나폴레옹 제국의 정점이었다. 전년도에 오스트리아가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은 아드리아해 연안을 따라 남쪽으로 지배력을 뻗쳤고 동생인 루이가 프랑스의 이해관계보다는 네덜란드의 이해관계에 더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네덜란드 왕국을 프랑스 제국 직속으로 편입시켰다. 북해 해안을 따라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면서 프랑스 자체만 130개 도에 달한 한편(원래는 83개 도), 제국의 권위는 광대한 영역에 뻗어 있었다. 덴마크 반도의 발트해 바닷가부터 이탈리아와 달마티아의 아드리아 해안선까지, 에스파냐 안달루시아부터 러시아 제국의 경계까지, 나폴레옹은 사실상 대륙에서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제국의 강성함과 안정성의 표면 아래로는 여러 가지 걱정스러운 징후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21장 전환점, 1812 (946-947쪽)
그리하여 한 영국인 목격자가 표현한 바로는 “세계 역사에 기록된 가장 혹독한 6개월의 전역戰域”이 막을 내렸다. 정말이지 그렇게 어마어마한 군사와 방대한 거리, 병참상 난관들이 개입되고 그렇게 짧은 기간 안에 결정적인 결과가 나온 전쟁의 실례도 드물다.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 제국에 참사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제국은 전에도 시험에 들었지만 이전의 어느 실패도 러시아에서 당한 패배의 규모에는 근접하지 않았다. 대육군은 전멸하다시피 했다. 침공에는 궁극적으로 60만 명가량이 투입되었지만─주력 침공군은 45만 명이었고 나중에 약 15만 명의 증원군이 더 불려왔다 ─12월에 네만강을 다시 건넌 병사는 10만이 채 못 됐다. 50만 명의 병력 손실 가운데, 아마도 무려 10만 명 정도는 이탈병일 것이고 12만 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나머지는 질병이나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또는 혹독한 환경에 노출되어 죽었다. 그만큼 파국적인 것은 군사 장비의 손실이었다. 나폴레옹은 약 1300문의 대포 가운데 920문을 잃었고, 기병은 사실상 일소되었다. 훈련된 말 대략 20만 마리가 러시아 벌판에 쓰러져 있었다. 포병과 기병 어느 쪽도 향후의 전역 동안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22장 프랑스제국의 몰락 (1021-1022쪽)
1814년 5월 30일에 서명된 파리 조약은 6차 대불동맹전쟁을 공식 종결시켰고, 22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 대륙 전역에 “항구적인 평화와 우호”가 찾아왔다. 이 조약을 기안하면서 동맹 세력은 세 가지 주요 질문을 고려했다. 프랑스가 전전 영토와 위상을 보유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가, 아니면 프랑스의 권력을 영구적으로 깨뜨리기 위해 영토의 상당 부분을 박탈해야 하는가? 전 대륙을 10년 가까이 착취한 프랑스인들에게 똑같은 취급을 하고 배상금을 물려야 하는가? 동맹 세력은 전후 유럽의 안정과 평화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저자소개

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저] 신작알림 SMS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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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사 및 조지아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이자 나폴레옹 연구자. 루이지애나주립대학의 유럽사 교수이자 북미에서 가장 큰 희귀도서 컬렉션 중 하나인 제임스 스미스 노엘 컬렉션의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케임브리지 나폴레옹 전쟁사(Cambridge History of the Napoleonic Wars)》의 편집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1999년 조지아에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연구를 위한 ‘조지아 나폴레옹 소사이어티’를 공동 창립했다. 나폴레옹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2000년 미국으로 이주해, 2003년 플로리다주립대학 ‘나폴레옹 및 프랑스혁명 협회’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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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역서로 『탐험가의 스케치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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