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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왈츠 : 세대를 초월한 두 친구, 문학의 숲에서 인생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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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영원한 문학청년 황광수와 정여울의 특별한 우정 이야기
세대를 초월한 두 친구의 문학과 인생

고인이 되어버린 황광수에게 보내는 정여울의 이별과 애도의 추도사

2021년 9월 29일 오전 9시 10분, 문학평론가 황광수가 향년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암 투병 중이었다. 황광수의 오랜 절친 정여울 작가는 충격과 슬픔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간 정여울 작가는 문학평론가 황광수의 마지막 원고를 정리하고 있던 차였다. 단 며칠의 시간이 더 필요했을 뿐이었다. 글을 다듬고 편집을 마무리하던 와중에 접한 부고. 문학평론가 황광수는 끝내 정여울 작가와 함께 쓴 《마지막 왈츠》를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애도의 시간을 추스를 새도 없이, 정여울 작가는 문학평론가 황광수가 남긴 미완의 글과 메모를 수습하여 《마지막 왈츠》를 새롭게 구성했다. 생전에 이 책을 마무리해 절친 황광수에게 힘이 되고팠던 정여울 작가는 그간 모은 원고에 〈황광수 선생님을 떠나보내며〉라는 글을 새로 더 써서 책을 마무리했다. 이 책 《마지막 왈츠》는 황광수와 정여울의 ‘우정의 향연’이자 정여울이 세상을 떠난 절친 황광수에게 보내는 이별과 애도의 추도사이기도 하다.

출판사 서평

32년 나이 차, 그들은 어떻게 절친이 되었을까
힘들 때마다 용기를 주던 친구의 온기가 지친 하루를 버텨내게 해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친구를 만나고 싶을까? 정여울 작가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일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친구란 무엇일까? 내가 슬플 때, 기쁠 때 편견 없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아도 우리에게만은 소중한 무언가를 간절히 공유하는 친구. 친구란 그런 존재가 아닐까.

44년생 완도 출신 문학평론가 황광수와 76년생 서울 출신 작가 정여울 사이에는 무려 32년의 나이 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정여울 작가는 주저 없이 문학평론가 황광수를 최고의 절친으로 꼽는다. 친구라고 해서 배울 것이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고, 스승이라고 해서 어려움을 털어놓지 못한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황광수와 정여울은 진정한 사우師友의 관계였다. 사우란, 스승이자 벗이며 벗이자 스승을 일컫는 아름다운 말이다. 문학평론가 황광수와 정여울 작가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문학평론가 황광수는 언제나 빛나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지만 절대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젊은이들보다 더 젊게, 또래 친구보다 더 거리낌 없이 아픈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따스한 친구, 그가 바로 황광수다.

영원한 두 문학청년 황광수와 정여울의 특별한 문학의 향연
마지막 순간까지 용기를 잃지 않는 친구의 눈빛이 끝내 나를 일으켜 세워

문학평론가라는 직업은 대중에게 여전히 낯설다. 하지만 문학청년 황광수는 평론이라는 것이 결코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글쓰기와 강연을 평생 해왔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 황광수와 작가 정여울이 나눈 편지, 인터뷰, 그리고 황광수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황광수의 편지 4통과 정여울의 편지 5통, 인터뷰는 계간 《민주》 2013년 가을호에 실린 글을 수정하고 다듬었으며, 그간 틈틈이 메모해둔 황광수의 에세이를 추려 40편으로 엮었다. 특히 에세이는 시적인 울림이 있는 아름다운 아포리즘으로 가득해, 평소 시의 형식으로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고인의 뜻을 존중해 원문 그대로 편집했다.

두 사람은 플라톤의 ‘향연’처럼 밤새도록 지속되는 아름다운 우정의 대화를 꿈꿨다. 사랑하는 스승 소크라테스와 함께 밤새도록 수다 떨듯 철학과 인생, 사랑을 이야기하던 당대의 그리스 사람들처럼.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황광수가 전립선암 판정을 받고 여러 차례에 걸친 큰 수술과 항암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두 사람만으로도 ‘향연’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한 사람이 병원에 누워있으니 향연은 자주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황광수와 정여울은 새로운 형태의 향연을 고안해냈다. 편지의 형식을 빌려 향연을 다시 시작한 것이다. 두 사람은 함께할 수 없지만 따로 또 같이,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향연을 이끌어갔다. 그리고 향연의 중심에는 언제나 문학이 있었다. 두 사람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끊어진 향연을 간절히 이어나가고자 했으나, 2021년 9월 29일 황광수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또 한 번 끊어진 향연을 다시 이어보고자 정여울 작가는 황광수의 미완성 원고와 미발표 메모를 토대로 새로운 향연을 시작했다. ‘문학’으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이 함께 시작한 우정과 지성의 왈츠, 그 결과가 바로 이 책, 《마지막 왈츠》다.

황광수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가르쳐 준 우정의 향연은 정여울 작가의 가슴 속에서 또 한 번 새롭게 시작되었다. 단지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나눈 문학의 향기와 여행의 추억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이 책이 꿈꾸는 또 다른 향연이다. 이 책은 결코 슬프지만은 않다. 두 사람의 우정은 단지 둘만의 인연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미래의 우정, 더욱 새로운 미래의 인연들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여울 작가는 황광수와 나눈 수많은 이야기를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안타까울 것 같아 이 책을 기획했다. 더 많은 독자와 또 다른 우정의 왈츠를 시작하고 싶기에, 이 책의 제목은 《마지막 왈츠》이지만 사실은 독자들과 시작하는 첫 번째 왈츠를 꿈꾸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뜻밖의 유머로 가득 찬 유럽 여행기도 등장하는데, 바로 정여울 작가와 황광수 문학평론가, 이승원 작가가 함께 떠난 유럽 여행에 대한 아름다운 에피소드다. 이승원 작가의 유머 넘치는 ‘우정출연’이 두 사람의 왈츠를 더욱 따스한 미소로 빛나게 한다. 두 사람의 우정의 왈츠가 세 사람의 우정으로 확장되었듯이, 이 책을 읽은 독자들과 정여울 작가의 만남이 또 다른 수많은 왈츠의 ‘군무’로 축제처럼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책속으로 이어서]
44년생 황광수와 76년생 정여울은 어떻게 이토록 절친한 벗이 되었을까요. 우리 사이엔 아무런 실용적 목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우정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었으니까요. 그저 함께 있기만 해도 좋았으니까. 그저 선생님을 멀리서 그리워하기만 해도 미소가 몽글몽글 피어올랐으니까요. /여울의 편지 1

요즘 나는 노년에 이르러 자연친화적으로 되어가는 것은 그 자체가 ‘자연의 생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자연에 대한 나의 느낌에 저항하거나 그것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요즘엔 모든 피조물이 슬프게 보일 때가 많아. /광수의 편지 1

살아갈 날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할 텐데, 심신이 괴로우니 고통이 없는 시공간을 상상하게 되나 봐. /광수의 편지 2

돌을 손에 쥐면, 때론 그게 지구의 뼛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해. 무엇보다 지구와 직접 접촉하고 있는 듯한 이 느낌이 좋아. /광수의 편지 3

다시 한 번 선생님의 단호한 일갈을, 마치 제우스의 번개처럼 제 머리 위로 강력하게 내리꽂히던 그 서릿발 같은 통쾌한 충고를, 간절히, 너무나 간절히, 듣고 싶어요. 사람들은 충고나 조언을 싫어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충고나 조언을 잘못했다가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다고들 걱정하지만, 저는 여전히 지혜로운 충고나 따스한 조언을 절실하게 필요로 해요. 저는 아무리 성장해도 한참 모자란 존재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여울의 편지 4

햇살이 눈부시다. 우주복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후드 달린 등산복과 무겁고 투박한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지구라는 행성을 처음 탐사하는 우주인처럼 무겁고 느리게 뒷동산을 걸어볼 참이다. /광수의 편지 4

나는 이론이 아니라, 작품과 역사적 현실을 연관 지어서 텍스트를 읽는 데 집중하고 싶었어. 역사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새겨지는 어떤 것이겠지. 그 역사와의 연관성을 서술하는 것이 비평이어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_황광수

민주주의는 현실 자체라기보다는 끊임없이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지향해야 할 이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록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민주주의라는 이상이 없다면 우리는 더 불행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_정여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걸 위해 삶을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작가들이 해야 할 일도 바로 그거라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주는 것이지. /인터뷰_황광수

사람들은 지혜로운 노년을 말하는데,
나는 왜, 그토록 많은 것을 온축한 노년이어야 마땅한 시기에
빗나간 욕망, 헐벗은 습관에 외곬으로 빠져드는 것일까? /에세이

나이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까마득히 창공으로 치솟아오를 때의 아슬아슬한 느낌, 파도 타는 자의 아슬아슬한 느낌을 음악처럼 즐겨야 한다. 파도를 타며 하늘로 솟아오르는 서퍼들처럼, 중심은 단단하되 가볍게 날아오르는 글을 쓰고 싶다. /에세이

“선생님, 혹시 백 년 전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려면 어떻게 갔을까요?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까요? 힘들기는 하지만 우리는 가두리 양식장 같은 비행기에 갇혀 열 시간 정도만 버티면 유럽에 도착하는데, 백 년 전 사람들은 어떻게 미국에 갔을까요?”
“글쎄다, 넌 알아?”
또 내가 잘난 척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선생님, 그게요, 일단 기차를 타야 해요. 남대문 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거죠. 거기서 배를 타고 일본 오사카로 가요. 그다음에 오사카에서 요코하마로 가는 거죠. 여기서 미국 태평양회사의 증기선을 타고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가요.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데 약 삼 주일 정도 시간이 걸려요. 정말 힘들게 가죠?”
“승원이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선생님, 제가 문학박사잖아요. 하하하. 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에서 주인공 옥련이가 미국에 갈 때 그렇게 가요. 그 소설에 보면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약 삼 주일 걸린다는 내용도 나오고요.”
“맞아, 우리 승원이가 문학박사였지. 하하하.”
선생님과 나의 대화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선생님과 정 작가는 문학과 인생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기 일쑤였고, 나는 언제나 문학의 본질이 아닌 문학의 ‘언저리’만을 이야기했다. 언제가 술자리에서 선생님과 정 작가는 내가 지은 필명을 듣고 크게 웃었다. 문학을 전공했지만 매번 문학의 언저리만 이야기해서 제 필명을 ‘언저Lee’로 짓겠다고. /황광수 선생님을 추억하며

선생님, 그곳은 많이 춥지 않으신가요. 선생님은 추위를 많이 타시는데, 그 차가운 관 안에 선생님을 홀로 내버려두고 돌아서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파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마스크를 쓴 제 양 볼 안쪽으로 자꾸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상실은, 이 결핍은 결코 무엇으로도 채우지 못하겠지요. 선생님이 한없이 낯선 존재인 저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해주셨듯이, 제가 먼저 사람들을 이해하고, 돌보고, 보살피겠습니다. 그들이 저를 꼰대라 놀려댈지라도, 그들이 저를 재미없다고 면박을 줄 지라도, 제가 먼저 사랑하고, 제가 먼저 다가가고, 제가 먼저 보듬어 안을게요.
선생님, 이제 고통 없는 곳에서, 굶주림도 슬픔도 원한도 없는 곳에서, 부디 향기로운 꿈을 꾸며 저를 기다려주세요. 제 몫의 사랑과 배움과 노동을 다 마치고, 저도 언젠가 그곳에 가겠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제 지친 어깨를 꼭 안아주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오늘의 이 슬픔을, 오늘의 이 고통을 꿋꿋하게 견뎌낼게요. /여울의 마지막 편지

그리하여 나는 이제 이별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별 따위, 작별이나 놓아버림 같은, 그런 무정한 것들은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에 가능한 그 어떤 이별도 생각하지 않는다. 선생님의 그 그렁그렁한 눈빛. 첼로처럼 낮지도 않고 바이올린처럼 높지도 않은, 딱 비올라처럼 미묘하게 적당한 높낮이로 오르내리는 감미로운 목소리. 심각한 이야기를 할 때는 일단 눈썹을 먼저 양 손가락으로 싹 쓸어올리고 양팔의 소매를 매만진 다음, 술상을 한 번 꼭 붙드는, 그 익살스러운 몸짓.
내가 신문에 글을 쓸 때마다, 아침 일곱 시쯤에 디지털도 아닌 종이신문으로 한 글자도 빠짐없이 다 읽어내신 다음, 부리나케 아름다운 감상평을 쓰셔서 긴 문자 데이터 메시지로 보내주시는 그 정성스러움. 내가 아마존 킨들로 전자책 사보는 법을 가르쳐드렸더니, 한 달 만에 영어로 된 전자책을 수백 권 구입해버리신, 그 무시무시한 학구열. “이제 돈도 데이터도 남아있질 않네.”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그 푸근함. 한국에 번역되지 않은 영어소설이나 독어책을 늘 끼고 다니시며 내게 그 아름다운 문장을 직접 번역하셔서 들려주시던 경이로운 문장력과 놀라운 외국어 실력. “선생님, 전 불어 못하잖아요, 이걸 어떻게 읽을까요.” 엉엉 우는 소리를 하는 나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불어판을 선물해주시며, 언젠간 꼭 읽을 거야, 믿어 의심치 않는 눈빛을 쏴주시는 그 잔뜩 기대감 부푼 얼굴. 이승원 선생님과 함께 우리 세 사람이 무려 두 달간이나 취재차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무려 사 킬로그램이나 빠지셨으면서도 단 하루도 흐트러지거나 힘겨운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그 초인적인 꼿꼿함.
그 모든 찬란한 황광수 특집 퍼레이드를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는 그 끔찍한 날이 오더라도, 우리 사이에는 ‘이토록 영원히 무지한 사랑’이 눈부시게 가로놓여 있다. 내 사랑은 무지하다. 그래서 비로소 완전하다. 내 사랑은 계산도 분석도 예측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토록 덜떨어진 사랑과 선생님의 그토록 완전한 사랑은 놀랍게도 완벽한 조합을 이루어, 이토록 눈부신 ‘마지막 왈츠’를 추고 있으니까. 선생님과 함께 마지막 왈츠를 추며, 나는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절대로 화내지 않는 사랑, 결코 서운하게 만들지 않는 사랑, 단 한 번도 배신하지 않는 사랑의 힘을. /에필로그

목차

책을 시작하며
44년생 완도 남자와 76년생 서울 여인, ‘절친’이 되다

프롤로그
일상 속 북클럽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둘만의 향연’을 제안하다

1. 편지
네가 있어서,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단다

2. 인터뷰
우리 사이엔 ‘문학’이 있으니까

3. 에세이
‘나’의 고통 한가운데, 비로소 ‘우리’가 있었다

에필로그
이별 같은 건, 생각하지 않습니다

황광수 선생님을 떠나보내며
여울의 마지막 편지

황광수 선생님을 추억하며
퉁방울눈의 사내들이 떠난 유럽 여행_이승원

감사의 말

본문중에서

“여울아, 이제는 그냥 이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어. 이제는 더 바랄 게 없어. 그런데 너와 약속한 그 책만은, 꼭 마치고 떠나고 싶었는데.” 내 주변의 사람들 중 가장 철저하게, 고통을 절대 내색하지 않는 그가, 내게 털어놓았다. 이번 생에 더는 바랄 것이 없으니, 그저 이 아픔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고. 나는 너무 놀라 수화기를 떨어뜨릴 뻔했다. 결코 이럴 분이 아닌데. 이렇게 다 놓아버릴 분이 아닌데. 참담한 고통이 그 아름다운 영혼의 척추를 부러뜨려버린 것일까. /책을 시작하며

이 책은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나눈 아주 오랜 ‘우정의 왈츠’다. 내 능력이 닿지 못해, 선생님의 마지막 체력이 허락하지 못해, 그 수많은 우정의 대화들을 미처 다 갈무리하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 선생님의 모든 말씀은 왈츠처럼 우아하고 예의 바르며 기품이 넘쳤다. 뼈아픈 실수를 돌이켜볼 때조차도, 두 눈 질끈 감고 싶은 지독한 상처를 회상할 때조차도, 무시무시하게 어려운 문학작품과 철학이론에 대해 설명해주실 때조차도. 선생님이 그 부리부리한 눈망울과 가냘픈 손가락으로 내게 가르쳐주시던 ‘내가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한 모든 이야기는 위대한 지성의 왈츠였다. 아직 내가 한참 모자란 사람이기에, 차마 왈츠를 대등한 입장에서 출 수는 없었다. 선생님이 능숙하게 리드하고, 나는 선생님의 발을 여러 번 밟으며 멋쩍게 웃는다.
선생님의 발가락은 유난히 얇고 살이 없어서, 내가 형편없는 스텝으로 선생님의 발을 밟을 때마다 으스러지게 아플 것 같지만. 선생님은 나 때문에 황당하셨을 때도, 나 때문에 괴로우셨을 때도, 단 한 번도 나를 야단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다. 다만 우아하게, 다만 눈부시게, 그저 ‘다음 왈츠’를 추자고 하셨다. 나를 비난하고 괴롭히면서도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래’라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고 했던 파렴치한 사람들과 달리, 선생님은 절대로 화내지 않는 사랑, 결코 얼굴 붉히지 않는 사랑이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주셨다. 선생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에는 본래 그 어떤 어둠도 없음을. 어둠조차 참아내는 사랑을 강요하는 세상 앞에서, 선생님은 어둠 없는 사랑의 티 없는 모범답안을 보여주셨다. /프롤로그

나는 이제야 안다.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그 모든 어둠의 기억조차도 햇살처럼 환하게 변신시켜버리는, 선생님의 그 무한한 다정함이 진짜 사랑임을. 어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세상에서 자꾸만 까이고, 무시당하고, 짓밟힐 때도, 선생님은 변함없는 예의바름과 믿을 수 없는 친절함으로 내 모든 슬픔과 분노를 지극히 존중해주셨다. 선생님은 내가 연인에게도 친구에게도 받지 못했던 그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되돌려주시면서도, 그것이 ‘특별히 나에게만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아마 선생님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은 사람이라면, 선생님의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이라면, 분명 알 것이다. 인간 황광수는 자신에게 불친절한 모든 사람에게, 온힘을 다해 친절하고 다정하기 위해, 끝까지 투쟁하였음을. /프롤로그

내가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약간의 두려움이 있었다. 나에게는 세대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용기나 대화의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삼십여 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우리가 우정을 쌓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선생님은 나에게 먼저 마음을 열어 보여주셨고, 까마득한 후배인 내가 쓴 글을 매번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격려와 지적도 해주셨다. 나는 선생님의 글과 말을 통해 전후세대의 트라우마를 이해할 수 있었고, 선생님은 나의 글과 말을 통해 여성의 시각과 나의 세대의 문제의식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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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황광수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44

저자 황광수는 1944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고,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민중서관, 을유문화사, 지식산업사, 한길사 등의 출판사에서 20년 가까이 편집 일에 종사하였고, 월간 『사회와사상』, 계간 『민족지평』, 『내일을 여는 작가』, 『실천문학』 주간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작가회의에서 편집위원장, 문화정책위원장, 민족문학연구소장으로 활동했다. 현재 계간 『자음과모음』 편집위원,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이다. 1981년 「현실과 관념의 변증법―金光燮論」을 발표하며 비평에 입문, 30년 남짓 평론가로 활동해오고 있다. 평론집으로 『삶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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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76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4년 봄 '문학동네' 에 '암흑의 핵심을 포복하는 시시포스의 암소―방현석론' 을 발표하며 평론가로 데뷔했다. 이후 '공간' , '씨네21' , 'GQ' , '출판저널' , '드라마티크' , '주간한국' 등에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글을 썼다. 지은 책으로 '미디어 아라크네' , '아가씨, 대중문화의 숲에서 희망을 보다' , '내 서재에 꽂은 작은 안테나' , '모바일 오디세이' , '국민국가의 정치적 상상력' (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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