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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축된 언어의 예술, 시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창의성을 과감없이 발휘한다. 그 속에 담긴 감성과 사색이 독자를 시의 세계로 끌어들여 문학적 감수성을 깨운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저자의 다양한 시 작품을 감상해보자.

강연호(시인, 원광대 교수)
박하현의 시에서 서정의 본질에 충실한 작품들은 대개 모성의 형상화를 동반한다. 가령 ?가시의 세계?에서 제시된 상상력인 “흉터 없는 아픔” 역시 모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정서일 것이다. ?어쩌면 박하현의 시집 『저녁의 대화』가 제안하는 ‘대화’에 참여하다 보면 문득 흉터 없는 아픔이 슬쩍 자리를 바꿔 앉아 아픔 없는 흉터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흉터는 때로 기억의 훈장 역할을 한다. 다 잊고 살다가도 남은 흉터가 기억을 환기시켜 없는 아픔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니까. 문득 몸에 박혀 마침내 “하나같이 살이 된” 가시처럼, 모성은 말 그대로 세상의 가시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흉터 없는 아픔을 간직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흉터 없는 아픔이라니! 곰곰 생각해보면 이 수일한 표현이야말로 바로 서정시의 본질적 운명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특히 오늘날 디지털의 전면적인 진군 앞에서 속수무책인 시는, 그러나 그 속수무책의 글쓰기를 통해 흉터 없는 아픔처럼 세상에 스며든다. 그리고 흉터 없는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간직하고자 한다. 마치 모성처럼 말이다. 시집 『저녁의 대화』는 그렇게 스며들어 하나가 된, 흉터 없는 아픔의 기록으로 읽을 수 있다.

권 온(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지난 시간을 지내다?는 박하현의 이번 시집을 대표할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시이다. “프”나 “ㅡㄹ” 같은 작은 표현에 집중하는 시인은 언어 장인(匠人)으로서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 그녀는 “벌교와 대전”이라는 “두 문자”에 집중하는데, 이 두 개의 문자는 “엄마와 딸”로 변주된다. 각각 ‘과거’와 ‘현재’를 가리키며 서로 연속성을 확보하는 두 문자는 “도무지 가깝지 않은” 관계이고 “사이”이다. 하지만 그 두 개의 문자가 바로 천륜이고 인연이며 삶이자 인생이다. 시는 그러한 위대한 진실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숭고할 수 있다. 우리는 박하현 시인이 앞으로도 위대하고 숭고한 시의 길을 굳건히 걸어갈 것임을 믿는다.

1부

지금 사과해 - 19
게으르게 천천히 - 20
흙의 서시 - 22
약속이 있었겠지요 - 24
툭, 감이 왔다 - 26
기린 - 27
참나무 - 28
그 점 - 29
아는 체 - 30
머리 왜? - 31
시선視線 - 32
도마 우정을 생각함 - 34

2부

4월 - 39
소리 일기예보 - 40
배우의 길 - 41
저녁의 대화 - 42
진리의 내조 - 44
오래?마음을?기울였던 - 46
그녀의 흔들의자 - 48
기척 - 50
색다르지 않게 - 52
나무 사람 - 54
베니스 드 빌레 - 55
미망未忘 - 56
하루의 뒷모습 - 58

3부

어긋난 기억의 힘 - 63
핵 고요 - 64
참신성을 앓다 - 66
다시 3월 26일 - 68
봄 새 - 69
총을 겨누며 - 70
굴비를 읽다 - 71
사려니 숲 - 72
거미 봄 - 73
포도 먹는 법 - 74
만리포 우체국 - 76
지난 시간을 지내다 - 78

4부

벗어나는 중심 - 83
가시의 세계 - 84
끝 믿음 - 85
춘곤 - 86
수요일의 컴퓨터 - 88
가로등이었네 - 90
샛노랑 - 91
통화 - 92
꽃숨 - 94
대동해 해변에서 - 96
36점 5도 - 98
시월 스무하루를 부탁해 - 100
벨에어 이층 방 - 102

해설 / 강연호(시인, 원광대 교수) -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