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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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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박완서
  • 출판사 : 작가정신
  • 발행 : 2020년 01월 21일
  • 쪽수 : 208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6026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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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문학과 시대를 향한 자상하고 진실된 증언
    박완서 문학, 그 시작과 마침
    “글을 쓸 수 있는 한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한국문학의 거목, 박완서 작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다


    작가 박완서의 “특별한 끝인사”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정확한 눈으로 진단하며 애정 어린 손으로 써내려간 작가 박완서. 그는 참된 스승이자 시대를 먼저 살아간 어른으로서 전쟁과 이념, 사랑과 상처, 계층과 계급, 여성의 삶을 충실하고도 진실되게 그리며 한국문학에 다시없을 뚜렷한 궤적을 남겼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박완서 작가의 타계 9주기를 추모하며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다시금 되새기자는 의미에서 작품 한 켠에 숨 쉬고 있던 저자의 생생한 육성을 한곳에 모아 엮은 책이다. 소설, 산문, 동화의 서문과 발문에 실린 ‘작가의 말’ 67편을 망라하여 연대순으로 정리한 이 책은 작품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소회뿐만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과 그에 대한 고찰 등을 더욱 솔직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작품의 초판과 개정판의 서·발문의 내용이 다른 경우 모두 수록했고, 내용이 동일할 때는 당시의 집필 및 시대 상황을 고려하여 초판의 것을 실었다. 권말에는 작가 연보를 수록하여 박완서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반추할 수 있으며, 장편소설, 소설집, 동화, 산문집, 전집 등 장르별로 구분한 작품 연보를 통해서는 박완서 문학의 폭과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작품 화보는 동아일보사에서 1970년도에 발간한 첫 책 [나목] 등 초기 작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요 작품의 초판과 개정판 표지들을 모두 실음으로써 박완서 문학의 장구한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정이현 소설가는 “‘작가의 말’은 지난한 집필 노동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정리하는 공간이자, 작가가 작품 밖으로 한 발자국 걸어 나와 건네는 특별한 끝인사의 자리”라면서, 박완서 ‘작가의 말’은 그를 닮아 “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도 과장하지도” 않고 “담백하고 당당하고 솔직”(「선생님이 계신 듯 가만히 책을 쓰다듬으며―작가 박완서를 기리며」)하다는 감상을 남겼다. 최은영 소설가는 “작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만나야 하고, 자기가 지닌 것 중 가장 괴로운 것을 마주하며 살아야 하고, 자신을 극복하고 갱신해야 하는 일”이며, “그 길을 피하지 않고 온전히 지나가신 선생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작가로 산다는 것―작가 박완서를 기리며」)고 이 책을 읽은 소감을 밝히고 있다.

    내가 쓴 글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거울인 동시에 나를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다. 거울이 있어서 나를 가다듬을 수 있으니 다행스럽고, 글을 쓸 수 있는 한 지루하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다. - 박완서

    출판사 서평

    박완서 작가의 ‘모든’ 책을 담다
    소설, 산문, 동화에 수록된 서문 및 발문 67편 망라
    작가 연보, 작품 연보, 작품 화보 수록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는 듯하다. 더 이상 어떤 질문도 드릴 수 없겠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완서 선생님이 여기에 계신 듯 책을 가만히 쓰다듬는다. ―「선생님이 계신 듯 가만히 책을 쓰다듬으며―작가 박완서를 기리며」 (정이현)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에 실린 67편의 글 안에는 작품의 집필 동기와 역사적·사회적 배경, 주제 등은 물론 작품에서 미처 못 다한 이야기, 탈고를 마친 후 그때가 아니면 담을 수 없었던 순간에 포착된 진정 어린 독백들이 담겨 있다.
    정이현 소설가의 말대로 박완서 작가의 ‘작가의 말’은 그를 꼭 닮았다. 그는 온몸으로 시대를 통과하며 겪은 역사적 참상들을 회피하지 않고 바라보면서도 “무의식적인 선, 무의식적인 믿음”([살아 있는 날의 소망(1990)]「책머리에」)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의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따스하고 담박한 기운은 그대로 작가의 말에까지 닿아 있다. [오만과 몽상](1982)을 펴내며 “그들이 오만의 시기를 넘기고 겸허를 얻기를, 몽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라고 지켜보았다”고 덧붙인 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젊은이들이 용기를 얻길 바랐으며, [아주 오래된 농담](2000)에서는 “돈에 대해서 말한다는 게 여성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게 돼버린 것도 독자가 눈여겨봐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덧붙여, 읽는 이들이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랐다.

    시대의 냉철한 목격자이자 따뜻한 서술자,
    박완서를 꼭 닮은 박완서 ‘작가의 말’


    뼛속의 진까지 다 빼주다시피 힘들게 쓴 데 대해서는 아쉬운 것투성이지만 40년대에서 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 풍속, 인심 등은 이미 자료로서 정형화된 것보다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인 증언을 하고자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 덧붙이고 싶다.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2002)]「책머리에―문학앨범을 다시 내면서」)

    박완서의 ‘작가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시대의 변화를 목격한 자로서의 책임감이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온 작가는 전력을 다해 시대를 증언하고자 했던 냉철한 목격자인 동시에 자연과 사람에 대한 온정적인 시선을 잃지 않았던 따뜻한 서술자였다. “6·25의 기억만은 좀처럼 원거리로 물러나주지 않는다. 아직도 부스럼 딱지처럼 붙이고 산다”라고 얘기하면서도 “나의 부스럼 딱지가 개인적인 질병이 아닌, 한 시대의 상흔”([목마른 계절(1978)]「후기」)이라는 진술은, 작품의 중요한 집필 동기이자 대작가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를 펴내면서는 전쟁 못지않게 비인간적인, 우리 사회에 팽배한 이기주의를 꼬집고, 소설집 [꽃을 찾아서(1996)]에서는 1985년에 계간 ‘창작과비평’이 폐간되면서 ‘창작사’란 출판사 이름으로 나왔다가 1996년에 다시 ‘창작과비평사’로 펴내게 된 “야만적인 시절”에 대한 곡절을 풀어내면서 창작의 자유가 그토록 ‘대견’한 것인 줄 몰랐던 자신의 안이함을 반성하기도 한다. 70년대 유신 말기 보문동 한옥에서 살던 시절 “견디기 어려운 말기 증세”로부터의 유일한 돌파구는 이야기뿐이었다는 고백([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1992)]「읽으시는 분을 위하여」)도 보인다. 그 밖에 새마을운동, 급격한 근대화와 물질적 부의 축적, 전체주의, 자연 파괴에 이르기까지, 무지막지하게 비집고 들어오는 시대의 씨줄을 이야기로 직조하면서도 그 속에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불어넣기를 끊임없이 꿈꾸었던 박완서의 작가적 긍지와 고뇌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형식과 내용에 얽매이지 않은
    가장 솔직한 작가의 육성을 만나다


    써지진 않는데 원고 독촉은 빗발칠 때는 아유, 지긋지긋해, 소리가 입에 붙어 있기도 했습니다. 언제나 이 노릇을 안 하나, 쓰는 노릇에서 놓여날 것을 상상만 해도 황홀한 해방감을 맛볼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뜻하지 않게 닥쳐온 무서운 고통과 절망 속에서 겨우 발견한 출구도 쓰는 일이었으니까요.([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책 뒤에」)

    마흔 살 당시로는 늦은 나이로 데뷔하여 문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으며 대작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까지, 억지로 꾸미는 바 없이 진솔한 작가적 자의식과 세계관도 그 어떤 글에서보다 더 정확히 드러나 있다. 1976년 첫 창작집인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를 내며 “얼마나 협소한 울타리에 갇혀, 제자리를 뱅뱅 돌며 밑도 끝도 없는 씨름을 해왔던가 알 것 같다”고 얘기한 박완서 작가는 이후로도 자신의 글이 “활자 공해에 보탬이 되지나 않을까” 저어하는 겸양의 모습을 보였고, 문학을 “죽는 날까지 나의 업(業)으로 삼을 자신마저도 종종 흔들린다”([배반의 여름(1978)]「책머리에」)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에게 “얄팍한 명예욕, 습관화된 매명으로 추하게 굳은 마음이 문득 정화되고 부드러워지”([나목(1985)]「작가의 말」)게 만드는 것 역시 문학이었다. 쓰는 일이 지겨웠다고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고통과 절망 속에서 겨우 발견한 출구도 쓰는 일”([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책 뒤에」)이었다는 고백이 그것이다.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연설문에서는 “소설의 거리材料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평범한 일상 속에, 버림받은 쓰레기 속에 외면당한 남루 속에 감추어진 추악한 것 속에서 소설의 거리는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을 수도 있”음을 작가는 강조한다. 통찰력과 연민, 열정적인 애정에 의해 이 거리를 주워 올리고, 주워 올린 후엔 객관적이고 냉혹한 마음으로 다듬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작가의 말’은 문학이 지나왔던 길을 반추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모색하게 만든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기어이 기억하고야 마는 사람
    우리가 사랑하는 작가,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며 강한 사람이란 모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느끼며 통과하고 기어이 기억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울고 웃고 망설이고 기대하고 감사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큰 작가로서의 선생님이 어쩐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선생님의 그런 인간됨이 아니었을까. 무게를 잡고 포즈를 잡는 일을 끝까지 경계하셨던 선생님의 솔직함, 가식을 떨친 말들 말이다. ―「작가로 산다는 것―작가 박완서를 기리며」 (최은영)

    박완서 작가에게 ‘작가의 말’은 형식과 내용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었던 장소가 된다. 또한 본문에서 모두 밝히지 못한 속엣말을 담아 작품에 깔린 사유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완서 문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원고 청탁에 시달리며 “채찍질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나의 한계”([오만과 몽상(1982)]「후기」)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억누르는 온갖 드러난 힘과 드러나지 않은 음모와의 싸움은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살아 있는 날의 시작(1980)]「후기」)이라고 단언했던 그는 소박하고 평범한 개인이되 문학이 걸어갈 길까지를 제시한 참된 스승이었다.
    읽는 이를 먼저 맞이하며, 그리고 어떤 때는 떠나보내며 따뜻한 안부와 염려를 실어 보냈던 박완서 작가의 말을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에서 다시 마주하면서, 우리는 박완서라는 그리운 작가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게 될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타이르듯이 들려주는 목소리(호원숙) 4

    작가 박완서를 기리며
    선생님이 계신 듯 가만히 책을 쓰다듬으며(정이현) 8
    작가로 산다는 것(최은영) 10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5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7
    나목 19
    나목 21
    나목 24
    휘청거리는 오후 26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29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31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33
    혼자 부르는 합창 35
    창밖은 봄 36
    도시의 흉년 43
    목마른 계절 45
    목마른 계절 46
    배반의 여름 50
    마지막 임금님 51
    살아 있는 날의 시작 52
    오만과 몽상 54
    오만과 몽상 57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60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63
    서 있는 여자 67
    그 가을의 사흘 동안 70
    꽃을 찾아서 77
    꽃을 찾아서 78
    사람의 일기 80
    침묵과 실어 81
    유실 8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86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88
    살아 있는 날의 소망 89
    미망 90
    저문 날의 삽화 93
    나의 아름다운 이웃 95
    나의 아름다운 이웃 96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 99
    박완서 문학앨범 102
    우리 시대의 소설가 박완서를 찾아서 104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05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08
    꿈꾸는 인큐베이터 110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112
    부숭이의 땅힘 115
    부숭이는 힘이 세다 117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119
    한 길 사람 속 120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22
    모독 125
    잃어버린 여행가방 128
    어른 노릇 사람 노릇 129
    너무도 쓸쓸한 당신 130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133
    어떤 나들이 136
    그 여자네 집 138
    자전거 도둑 140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142
    아주 오래된 농담 144
    두부 146
    옛날의 사금파리 148
    보시니 참 좋았다 150
    나목에 핀 꽃 152
    그 남자네 집 154
    호미 157
    친절한 복희씨 159
    세 가지 소원 160
    이 세상에 태어나길 참 잘했다 161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164

    작가 연보 166
    작품 연보 184
    작품 화보 188

    본문중에서

    그렇지만 한 예술가가,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 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 빈 최전방 도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 '나목(1976) - 후기' 중에서/ p.20)

    나는 내 작중인물에게 내가 그들을 창조하면서 지워준 운명대로 살게 할 수밖에 없었다.
    실상 내가 독자가 관심 있게 봐주기를 바란 것은 누가 행복하게 되고 누가 불행하게 됐나보다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허성 씨 가家의 조용한 몰락에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 '휘청거리는 오후(1977) - 후기' 중에서/ p.27)

    아이들은 이미 나의 24시간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어린애가 아니었다. 아이들에게도, 남편에게도 집 밖에서의 일이 더 많이 있고, 그 일은 점점 확대되어 가는데, 나는 그들을 보살피고 기다리는 게 전부고 그 일이나마 하루하루 놓쳐가고 있다는 깨달음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나도 뭔가 나만의 일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같이 열정적인 여자가 계속 그 일정을 가족에게만 쏟는다면 종당엔 가족관계를 지옥으로 만들 것이 뻔했다.
    ( '창밖은 봄(1977) - 작가 자신이 쓴 박완서 연보' 중에서/ p.39)

    이 거대한 도시가 하룻밤 새 텅 비고 인기척의 완전한 진공상태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그대는 상상할 수 있는가. 그때 내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로 그래, 언젠가는 이걸 소설로 쓰리라, 이거야말로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집념하고는 달랐다. 꿈하고도 달랐다. 그 시기를 발광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정신의 숨구멍이었고, 혼자만 본 자의 의무감이었다.
    ( '목마른 계절(1978) - 작가의 말' 중에서/ p.46)

    공교롭게도 책 뒤에 붙이는 글을 쓰려는 참에 KBS의 〈이산가족찾기〉가 한창이라 연일 눈물 마를 날이 없다. 그 이름에 아직도 생생한 원한이 서린 청천강에서, 임진강에서, 흥남 부두에서, 미아리고개에서, 거제도에서 헤어졌다 삼십몇 년 만에 만난 혈육이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할 때마다 덩달아서 오열을 걷잡을 수가 없다. 내가 소설로 만든 비극보다 현실의 비극이 훨씬 처절했다. 영상매체의 기동성과 박진한 현장감은 상대적으로 언어의 무력을 통감케 한다.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7) - 작가의 말' 중에서/ p.63)

    결혼이란 제도는 꼭 있어야 하는 걸까? 결혼에 의해 생긴 가정이라는 우리 사회의 기본 단위가 반드시 지킬 만한 것이고 어떤 이유로도 침해받아서는 안 될 신성한 것이라면 그것을 지킬 책임이 왜 아내에게만 지워져야 하는 걸까?
    ( '서 있는 여자(1985) - 작가 후기' 중에서/ p.67)

    소설의 거리材料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 속에, 버림받은 쓰레기 속에 외면당한 남루 속에 감추어진 추악한 것 속에서 소설의 거리는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오다가다 우연히 얻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삶에 대한 꾸준한 통찰력, 따뜻한 연민, 때로는 열정적인 애정에 의해서만 그것을 볼 수가 있고 주워 올릴 수가 있습니다.
    ( '침묵과 실어―이상문학상 수상작가 대표작품선 6(1987) - 제5회 이상문학상 수상연설문' 중에서/ p.81)

    너무 따지고 신경 쓰는 지적인 보살핌 대신 저절로 우러나는 포근한 사랑을 마음껏 쏟아주는 게 어떨는지, 물질적인 보살핌이나 간섭은 자칫하면 넘칠 수도 있지만 사랑은 넘치는 법이 없으니까.
    사랑받는 사람만이 다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것으로 봐서 사랑도 일종의 교육이 아닐는지.
    ( '살아 있는 날의 소망(1990) - 책머리에' 중에서/ p.89)

    여기 모인 글들은 거의 70년대 말에 집중적으로 씌어진 것들입니다. 유신 말기였죠. 그때 우리는 보문동에 있는 한옥에 살았는데 동네 사람들이 40계단이라고 부르는 층층다리 밑이었습니다. 동회에서 그 계단 윗동네에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공지사항을 알리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머릿속을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것처럼 한동안 멍했습니다. 특히 새벽부터 울려대는 “잘살아보세, 우리 모두 잘 살아보세”라는 노래에 잠을 깨면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울고 싶기도 했구요. 그때도 전 소설가였으므로 이런 견디기 어려운 말기 증세로부터의 돌파구는 이야기를 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1992) - 읽으시는 분을 위하여' 중에서/ p.99)

    노망들 걱정만 빼면 이순이 넘은 나이도 살맛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잔잔한 날도 많았건만 들끓는 풍파를 헤치고 겨우 도달한 것 같은 이 평화와 자유도 지키고 음미할 만한 경지라고 생각한다. 과찬이나 과공도 평화를 해친다. 늙으면 조금 모자라게 먹어야 속이 편한 것처럼 칭찬이나 공경도 넘치는 것보다 모자라는 것이 훨씬 속 편하다. 아무리 좋은 것으로부터라도 과녁이 되는 것보다는 언저리에 수굿이 비켜나 있는 것이 좋다. 쓸쓸하기 때문이다. 노후의 평화의 진미는 쓸쓸함 속에 있다.
    (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제25회 동인문학상 수상작품집(1994) - 수상 소감' 중에서/ p.112)

    또 책을 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내 자식들과 손자들에게도 뽐내고 싶다. 그 애들도 나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참 좋겠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自閉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 나를 지탱해주는 이 양다리가 아직은 성해서 이렇게 또 한 권의 책을 묶을 수 있게 된 것을 스스로 대견해하고 있다. 늙어 보인다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고, 누가 나를 젊게 봐준 날은 온종일 기분이 좋은 평범한 늙은이지만 글에서만은 나잇값을 떳떳하게 하고 싶다.
    (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2010) - 책머리에' 중에서/ p.164)

    저자소개

    생년월일 1931.10.20~2011.1.22
    출생지 경기도 개풍
    출간도서 246종
    판매수 349,238권

    1931년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나 1950년 숙명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같은 해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으나 한국전쟁이 일어나 학업을 중단했다. 1970년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나목』 『미망』 『휘청거리는 오후』 『목마른 계절』 『도시의 흉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등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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