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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의 이번 시집 전반부와 중반부에는 지리적 공간으로 바다와 계절적 시간으로 겨울, 후반부에는 시인의 정신적 가치로서 불교 제재의 시들을 밀도 있게 배치하고 있다.
바다를 공간으로 한 시편들은「가을, 감포바다」,「창포바다」 등인데, 바다는 시인이 거주하고 있는 인근 생활환경과 관련이 깊은 소재다. 아마 유년, 소년기의 바다체험이 내면화되고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어서, 바다가 시의 제재로 친숙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바다 관련 시편들에서 파도의 움직임과 바닷가 지형, 주변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중략)… 김인수 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제재는「이모 점방」「겨울 운흥사」 등에서 보여주는 불교관련 된 것들이다. 시인이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거나, 불교를 신앙으로 가지고 있어서일 것이다. 절 이름을 제목으로 가져오거나 일상 생활경험을 시로 진술하면서 불교용어를 적절하게 활용하여 사찰의 정취를 묘사하거나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푸른빛을 기다린 적이 있다.
오지 않았다.

붙들고 섰던 풍경은 무너져가고
감정의 침전이 길었다.

이제 분분한 길에서 내려
단출한 행장으로
저 푸른 은하,
언어의 바다를 건너가고자 한다.

세 번째 연두 창을 가만히 연다.
쏟아져 드는 햇살
하 밝다.

이동백(시인)
김인수 시인의 시는 대체로 서정성이 짙은데, 그 바탕에는 기다림이나 그리움의 정서가 쓸쓸하게 깔려 있다. 시의 경향을 이렇게 이끌어 가면서도 그는 제재를 비유적 이미지로 형상화함로써 주제를 에둘러 제시하고, 시상의 입체화를 통하여 시의 외연外延을 넓힌다. 아울러 그는 참신하게 언어를 운용할 뿐만 아니라, 제재를 연관성이 먼 소재와 과감하게 결합하여 시를 개성적 미의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그의 시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독해야 한다.

고증식(시인)
처음 김인수 시인의 시집을 펼쳤을 때 그녀는 길 위를 떠돌며 노래하는 여행자라고 생각했다. 시집 곳곳에는 골목을 나선 그녀의 역, 절, 산, 계곡, 강, 바다를 지나 섬까지 이어지는 고단한 여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겨갈수록 그것은 단순한 여행자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의 무늬가 켜켜이 아로새겨진 비문으로 읽혔다. 그녀가 도처에서 마주한 대상들을 향한 섬세한 언어들은 그동안 잊혀져가던 아스라한 기억들을 소환하여 우리를 환기시킨다. 이 시집 속에는 빛나는 많은 시들이 있지만 한쪽으로 밀려나 어느새 ‘지상에서 멀어진 것들’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은 시편들이 더욱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리하여 그녀가 이 시집을 비문삼아 우주를 향해 큰 절을 올리는 자리에 나 또한 함께 서고 싶어지는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가을, 감포바다
비밀
겨울 강에서 울다
낙타

플로라
겨울 통신
눈, 저 새하얀 장벽들
쌍임이
노을꽃
결별訣別
섬진강에 두고 온 이름
산역山驛
가을 승객
쉿
골목 안
조선 동박새 얼어 죽었다

제2부
첫눈
귀거래사歸去來辭
여행자
고단한 기억
이모 점빵
어머니의 자리
창포바다
오십천
소문
늦저녁
수덕사 풍경風磬
어떤 고집
강구역
낮달
12월
처서處暑

제3부
정오正午
빗소리를 듣다
소설小雪
침묵의 전언
외출
늪
기별奇別
망풀
연화댁
달 항아리
붕어섬
향산재香山齋
가우도
봄날
민들레
백반白飯

제4부
빈 터
연화도
봉정사
무릉도원교武陵桃源橋
오래된
푸른 눈발
불영사 계곡
백모화白茅花
오동꽃
거짓말
천상별원天上別院 달산
소금산
보길도
만송정萬松亭
법흥사 7층 전탑
겨울 운흥사

해설 겨울과 바다, 그리고 불교 제재의 수용 공광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