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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습속 : 마쓰모토 세이초 장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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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시간의 관성을 거역하는
    세이초의 새로운 추리 '시간의 습속'
    '점과 선' 제2탄, 명콤비 도리카이와 미하라가 다시 만나다.

    '점과 선' 제 2탄. 그러나 후일담 아닌 새로운 시작 '시간의 습속'
    시간의 상투성을 비웃는 범인의 알리바이, 재결합한 '점과 선' 명콤비의 분투기

    4년 만에 재회한 도리카이 형사와 미하라 경위

    '시간의 습속'은 1961년 5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잡지 '여행'에 연재되었다. 세이초가 이 잡지에 '점과 선'을 연재한 게 1957년이니 정확히 4년 만이었다. 실제 소설 속에서도 '점과 선'에서 발생한 사건으로부터 4년 뒤라는 설정이다. 새 연재에 앞서 마쓰모토 세이초는 '점과 선' 시절의 주인공 도리카이 주타로와 미하라 기이치를 재회시키기로 결정한다. 전 생애를 걸쳐 750편의 저서(이 가운데 장편소설은 100편)를 남긴 작가가, 동일 인물을 연이어 출연시킨 것은 '시간의 습속'이 처음이었다.
    '시간의 습속'은 범인을 미리 상정하고 그 범인의 알리바이를 깨뜨려가는, 이른바 ‘알리바이 허물기’ 소설이다. 범인 미네오카 슈이치는 ‘축제’에서 찍었다는 사진의 ‘필름’을 강력한 알리바이로 삼고, 미하라 경위는 그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미네오카의 이동 경로를 추리를 통해 재구성한다. 또한 어긋난 출세욕에 저지른 업무상의 배임 행위를 살인의 동기로 제시해서 고도 성장기의 출세 지향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를 드러내고, 범인의 조력자를 ‘게이’로 설정해서 변화한 사회의 성 풍속을 그리는 등, 사회파 작가다운 관점이 소설의 요소요소에 잘 투영되어 있다.

    아저씨 형사들의 리얼 분투기

    가급적 상상을 배제하고 작중 인물의 인간성을 중시한 세이초의 작품에 신처럼 전지전능한 명탐정은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에는 사건의 진실을 추구하는 주인공이 있는 것으로 족하다. 따라서 당장 눈앞에 떨어진 불똥을 치우기에 급급한 회사원이건, 검사 같은 전문직이건, 또 본편에 등장하는 형사와 같은 직종이건, 그의 작품에서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시간의 습속'의 주인공인 미하라 경위와 도리카이 형사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이들에게는 셜록 홈즈처럼 단서 하나로 상대를 간파하거나, 안락의자에 앉아서 범인의 트릭을 깨부수는 능력 따위는 없다. 초반에 범인을 가려내는 안목의 날카로움이나 인간성에 대한 통찰은 상당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은 오랜 현장 경험에서 연마된 생활형 형사일 뿐이다.
    가령, 미하라는 하루에 커피 세 잔은 꼭 챙겨 마시고,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단골 찻집에서 진하게 내린 커피를 마셔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이다. 또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인의 머리를 탓하기도 한다. 한편 도리카이는 “방 두 칸짜리 집의 툇마루에서 화분 대여섯 개를 키우는 것이 유일한 취미”인 사람으로, 쉰둘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정력적으로 출장을 다니는 강철 체력의 소유자다. 생각해보면 왠지 우리 곁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인물들 아닌가. 바로 이런 점들은 독자들이 세이초의 작품에 친근함을 느끼는 요인이기도 하다.

    트릭을 위한 트릭은 쓰지 않는다

    트릭을 쓰되, 트릭을 풀기 위한 수사 과정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세이초의 기본 방침이었다. 이런 바탕을 깔고 있는 세이초의 소설들은 자연히 세태를 반영하게 되었고, 늘 ‘추리’보다는 ‘사회파’라는 타이틀에 더 무게가 실리게 되었다. 그의 미스터리 소설들이 전후 일본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다른 미스터리 작가들이 ‘완벽한 트릭’을 짜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당대의 현실을 그리는 일에 소홀했던 것에 비해, 마쓰모토 세이초는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형식 위에서 ‘지금 여기’를 묘사할 줄 알았다.
    하지만 트릭을 구성하는 그의 능력이 출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점과 선'에서 도쿄 역 4분간 트릭을 선보여서 세상을 놀라게 했듯이, 그의 작품들 중에는 ‘본격 추리’라고 불릴 만한 트릭 중심의 작품군이 분명히 존재한다. '점과 선'과 같은 시기에 저술된 '눈동자의 벽', 전후 일본의 혼란상을 한 개인의 실종 사건으로 형상화한 '제로의 초점', 한센병 환자에 대한 사회적 멸시를 미스터리로 승화시킨 '모래그릇' 등은 트릭의 빼어남으로 독자들을 흥분케 한 작품이다. 이번에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시간의 습속'도 이런 계열에서 시공간에 대한 상투적 관념을 깨부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와 시대상 묘사,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시간의 습속'에서는 트릭의 도구로 ‘필름’, ‘비행기’, ‘기차’라는 세 가지 장치의 조합을 선보인다. '시간의 습속'이 쓰여진 1960년대는 일본이 한창 고도성장의 박차를 가하던 때로, 급격히 늘어난 경제적, 시간적 여유 덕에 여행붐이 일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카메라가 대중들에게 폭넓게 보급되었고, 기차 여행이 일반화되었으며, 보통 사람들의 비행기 이용도 증가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서 '시간의 습속'의 범인 미네오카 슈이치는 기차와 비행기를 자유자재로 갈아타면서 자신의 알리바이를 공고히 한다. 또 살해당한 피해자 도이 다케오는 운수업계의 업계 신문 발행인, 미네오카는 택시 회사의 간부라는 사회적 위치로 설정되었다. 즉 이 소설은 현대화에 따라 기간 시설이 확고해져서, 사람과 물류의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관련 산업이 번창하던 시대를 그려냈던 것이다. 재미있게도, 세이초는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당시에는 생소했던) 비행기의 탑승법, 새롭게 개통한 특급열차의 운행 시간 등을 다룬다. 또 주인공 미하라의 관점을 빌려 텔레비전이라는 신문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장치들은 오늘날의 시점으로 볼 때 조금 예스럽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한편으로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의 풍경을 회상케 하면서 독자를 아련한 감정으로 이끌기도 할 것이다.

    '시간의 습속'의 줄거리

    가나가와 현에 있는 사가미 호수에서 근처 여관에 머무르던 남녀 여행객이 산책을 간다고 하고는 자취를 감춘다. 수색 결과 남자는 교살 사체로 발견되고 여자는 홀연히 사라지고 없었다. 피해자는 운수 업계 신문 발행인 도이 다케오였다. 사건을 맡은 경시청의 미하라 경위는 관련 인물 중 가장 혐의가 없는 택시 회사의 전무 미네오카 슈이치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미네오카에게는 사건 당일 규슈 동북단에 있는 메카리 신사에서 거행된 연례행사를 관람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찍었다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러나 미하라에게는 이 알리바이가 뭔가 석연치 않다. 하지만 미네오카가 사가미 호수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데 미하라는 매번 어려움을 겪고, 조사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때 후쿠오카의 미즈키에서 교살로 추정되는 젊은 남성의 사체가 발견되고, 후쿠오카 서의 도리카이 주타로 형사는 미네오카가 타인의 명의로 정기권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고심에 고심을 더한 살인’인 만큼, 미네오카는 난공불락의 성에 숨어서 미하라를 비웃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증주의를 채택하는 형법의 원칙상, 어느 정도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범인을 법정에 세울 수 없다. 미하라는 추리에 추리를 거듭하면서 집요하게 범인의 알리바이를 깨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마지막까지 그의 덜미를 잡는 것은 범인이 축제 현장에서 직접 찍었다는 사진의 필름이었다.

    본문중에서

    오후미가 장지문을 열었다. 손님은 이불에 얼굴을 반쯤 묻고 있었다.
    “깨셨어요?”
    손님이 눈만 뜨고 있었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깼는데, 뭐지?”
    “손님 앞으로 전보가 와서요.”
    “전보? 아아, 여기 묵는다고 말해두었더니 보냈나 보군. 어디 줘보게.”
    손님이 이불 속에서 한쪽 손을 내밀었다.
    오후미는 앉은 자세로 다가가서 전보를 건넸다.
    누운 채 전보를 펼쳐 보던 손님이 갑자기 놀란 듯 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뭐, 죽었다고?”
    (/ pp.22~23)

    미하라 기이치는 회답서를 한참 들여다봤다. 회답 내용보다도 도리카이 주타로라는 이름이 그리워서였다.
    도리카이 형사와는 4년 전 미하라가 수사2과에 있을 때 담당한 어떤 사건 이래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작년 5월에는 도리카이 형사가 하카타의 돈타쿠 축제를 보러 오라고 권해서 후쿠오카에 놀러가기도 했다.
    미하라 경위는 도리카이 형사의 인품에 끌렸다.
    요즘은 수사가 현대화하면서 고전적인 타입의 형사도 점점 줄었다.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 pp.53~54)

    미하라는 생각할수록 알 수가 없었다.
    언젠가 후쿠오카의 도리카이 형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인간은 절대 틀림없다고 믿어버리면 언젠가 그것이 마음에 맹점을 만듭니다. 착각하고 있으니까 바로잡을 생각조차 들지 않지요. 이 점이 무서운 겁니다. 아무리 괜찮다고 믿었어도 다시 한 번 그 믿음을 깨뜨려볼 일입니다.”

    어디서 착각한 걸까?
    (/ p.83)

    미하라는 도쿄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열차 뒤쪽 이등칸에서 가방 하나를 들고 내리는 도리카이를 본 순간, 미하라는 도리카이도 꽤 늙었구나 싶었다. 얼굴 주름이 훨씬 깊어졌다. 작년에 규슈에서 만난 뒤로 1년 만이다. 쉰을 넘으면 노화도 빠르게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가장 눈에 띈 건 양쪽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것이었다. 뺨 언저리의 살도 약간 빠졌다.
    도리카이는 그렇게 달라진 얼굴에도 벙글벙글 웃음을 띠며 미하라 앞으로 걸어왔다.
    “오래간만입니다. 일부러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잘 오셨습니다. 드디어 도리카이 형사님과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됐네요.”
    (/ pp.235~236)

    “음. 뭔가 증거가 될 만한 게 있을까요?”
    “증거요?”
    야마오카는 형사한테 의심을 받은 기분이 들었는지 갑자기 말투가 강경해졌다.
    “그거야 사진을 봤으니까요.”
    “사진이요?”
    “가지와라는 카메라에도 취미가 있거든요. 메카리 제사를 찍은 사진을 보여줬어요.”
    오시마 형사의 귓가에서 벌레 수천 마리가 일제히 울어대는 것 같았다.
    “어떤 사진이었죠?”
    (/ pp.267~268)

    “고객이 직접 오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고객이 슬라이드 필름을 사진관에 맡긴 경우에 사진관에서 한꺼번에 찾으러 오는 일은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일일이 찾으러 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미하라가 말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확인해주시겠습니까? 가지와라의 필름을 정말 후쿠오카로 보내셨는지 어떤지.”
    주임은 묘한 얼굴을 했지만, 미하라의 말을 듣고는 응접실을 나갔다.
    이번에는 20분쯤 기다렸다.
    주임이 얼굴을 긁적이며 돌아왔다.
    “말씀하신 대롭니다. 장부를 봤더니 가지와라 씨 본인이 직접 찾으러 왔었네요.”
    미하라와 도리카이가 시선을 마주쳤다. 그것은 승리의 표정이었다.
    (/ pp.303~304)

    저자소개

    마쓰모토 세이초(Matsumoto Seicho)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09.12.21~1992.08.04
    출생지 일본 기타큐슈
    출간도서 103종
    판매수 5,428권

    '일본 문학의 거인', '일본의 진정한 국민 작가', ......이런 수식어로도 마쓰모토 세이초(1909년~1992년)를 전부 표현할 수 없다. 보편적인 테마로 인간을 그리고, 역사와 사회의 어둠을 파헤치려 했던 세이초의 창작 영역은 픽션, 논픽션, 평전, 고대사, 현대사 등 무궁무진했다. 41세 늦은 나이로 문단에 들어선 뒤 82세에 숨을 거두기까지 세이초는 '내용은 시대의 반영이나 사상의 빛을 받아 변모하여 간다'는 변함없는 신념을 가지고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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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자대학교 철학 학사
    도쿄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현재는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옮긴 책은 마쓰모토 세이초의 [일본의 검은 안개] [점과 선] [잠복], 구로사와 아키라의 [구로사와 아키라, 자서전 비슷한 것], 사키 류조의 [복수는 나의 것]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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