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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반복

원제 : DIFFER'RENCE ET RE'PE 'T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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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 차이 그리고 반복 |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



    원래 들뢰즈의 국가박사 학위 청구 논문이었던 <차이와 반복>은 처음 출간될 무렵부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푸코를 비롯한 당대의 평자들은 이 저서를 사상사의 새로운 국면을 예고하는 획기적인 작품으로,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라고 평가했다. 이런 평가는 동료에게 보내는 주례사도, 출판사를 위한 상업적 포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이 책을 꼼꼼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수긍할 만한 감탄사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희귀한 재능과 열정, 초인적인 훈련과 시적 영감이 어우러진 참신한 감각의 철학적 기획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헤겔과 덩치를 겨루고 하이데거보다 멀리 이르고자 하며 니체의 반플라톤주의적 전회를 완성하고자 한다. 그렇게 완성된 기획은 데리다의 해체론적 차이의 철학과 대조할 만한 구축론적 차이의 철학을 이루고, 그 구축의 규모와 정교함은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을 족히 넘본다. 이 작품을 통해 구현된 철학자 들뢰즈의 모습은 철학적 전통 전체의 산맥과 형세를 뒤바꿔놓는 거인, 당대의 학문과 예술을 망라하는 종합적 체계의 설계자, 최고의 지혜를 꿈꾸는 비전적 전통의 계승자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 철학의 등장은 고전적 형이상학의 부활에 해당한다. 이는 이른바 '독단적' 형이상학에 대한 칸트적 해체론 이후 협소한 인식론에 몰두해온 서양 철학의 주류에서 볼 때는, 심지어 데리다적 해체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떤 퇴보이자 예외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해체론적 전통이 도달한 일정한 지점에서 새로운 높이의 형이상학을 펼쳐내고, 이를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명명했다. 이 경험론은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감춰져온 철학사의 보고들을 들추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수학자와 자연과학자들과 대화하면서, 또한 화가, 소설가, 시인들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범위를 넓혀간다. 이는 단순한 지적 과시도, 산발적이고 우연한 연상도 아니다. 형이상학은 세계의 밑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또 세계를 해석하는 가장 초보적인 도식이나 코드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과학이나 예술과 다르지 않다. 다만 형이상학자는 합리적 언어에 기대어 세계의 총체적 그림을 그리는 종합자일 뿐이고, 그가 합리적 언어를 초월하는 차원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 | 부정의 철학이 아닌 '긍정의 철학'을 위하여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 책에서 어떤 구도로 펼쳐지고 있는가? 어떤 도식을 끌어들일 때 그 복잡한 내용을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집약할 수 있을까? 서양 철학사에 익숙한 독자라면 칸트의 초월론을 들뢰즈의 철학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삼을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순수이성비판>은 감각을 다루는 감성론, 개념적 판단을 다루는 분석론, 초월적 이념의 세계를 다루는 변증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이와 반복>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들뢰즈는 개념적 매개와 재현의 빈곤성을 고발하는 해체론적 분석론(1장)을 선보이고, 감각적 경험과 심미적 경험을 일거에 통합하는 새로운 감성론(5장)을 통해 칸트의 감성론을 극복하고 있다. 또 이념의 세계가 감성적 사태와 개념적 사태의 실질적 발생 원천임을 말하는 새로운 변증론(4장)을 통해 칸트의 변증론은 물론이고 헤겔의 변증법과도 확연히 구별되는 길을 걷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새로운 분석론, 감성론, 변증론은 포괄적이고도 견고하게 짜여가는 새로운 시간론과 맞물리면서 근대적 전통의 토대 개념을 해체하는 현대적 토대론(2장) 안에서 종합되고, 나아가 근대적 사유 개념을 대체하는 특이한 인식론(3장) 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런 감성론, 분석론, 변증론, 토대론, 인식론 등을 세부로 거느리는 들뢰즈의 존재론은 이념적 세계를 개념적 세계 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세계 속에 둔다. 개념적 세계의 저편은 감성적 차원 안에 내재하고, 따라서 감성적인 것은 이미 개념적인 것보다 우월한 셈이다. 비전적 전통의 계승자 들뢰즈에게서 감성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은 이미 정신적이고, 처음부터 이상적인 요소를 머금고 있다. 물질은 이미 물질 이상의 물질, 정신적인 물질, 개념 이상의 물질이다. 이념적 함량 운동과 이어져 있는 감성이나 물질을 들뢰즈는 강도(强度, intensite)라 부르는데, 초월론적 경험론은 이런 강도의 세계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칸트와 니체는 물론이고 심지어 베르그손마저도 강도적인 것을 질적인 것과 동일시하고 있다. 그러나 들뢰즈적 의미의 강도는 질과 양의 이항대립에 선행하는 초월론적 사태이자 자신이 낳은 질과 양들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초월적 사태이다. 강도는 현실적 대상의 경험에 선행할 뿐 아니라 그 경험과 대상의 생성 자체를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초월론적이고, 재현적 사유와 개념적 매개를 깨뜨리는 힘을 지닌다는 의미에서 초월적이다. 강도는 결코 차분하게 거리를 두고 재현할 수 없는 어떤 불가능한 사태이고, 이 불가능한 사태는 사유 주체를 역설감과 지극한 수동성에 빠뜨리는 어떤 마주침의 대상이다.



    들뢰즈가 자신의 철학을 초월론적 경험론이라 부른 이유는 여기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것은 결국 초월적이자 초월론적 지위에 있는 이 강도적 사태를 염두에 둔 명칭이다. 철학이 강도적 사태에 궁극의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강도적 사태가 존재자의 직접적 발생 원인이자 사유와 인식의 참된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생각한다면 들뢰즈의 철학에서 강도론이 차지하는 비중을 족히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들뢰즈가 '즉자적 차이', '차이 그 자체'라 부르는 것은 개념 안에 정돈된 차이도, 개념으로 묶이지 않는 잡다성도, 이념 안에서 꿈틀대는 부차모순이나 미분적 차이도 아니다. 그것은 개념적 차이도 이념적 차이도 아닌 강도적 차이일 뿐이다. 이 강도적 차이가 이 책에서 말하는 '순수한 차이'고, 들뢰즈의 반복 이론도 이 순수한 차이(발산과 탈중심화)에 상응하는 반복(전치와 위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들뢰즈의 존재론은 물론이고 이와 함께 가는 차이론, 반복론, 인식론, 토대론, 시간론, 주체론, 교육론 등도 강도론의 주위를 맴돈다. 들뢰즈의 인식론과 토대론을 형성하는 용어들도 모두 강도적 종합의 영역을 배경으로 하며, 이 책 2장에서 토대론과 함께 펼쳐지는 시간론과 수동적 종합 이론 전체도 강도적 종합의 영역을 지반으로 하고 있다. 들뢰즈는 자신의 철학을 긍정의 철학이라고 말하길 즐겼다. 그 긍정은 강도적 차이가 일으키는 종합을 일컫는다. 칸트 식의 이념적 종합이 문제틀을 정립한다는 의미에서 실증적이라면, 강도적 종합은 그런 문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해결을 모색한다는 의미에서 긍정적이다. 긍정이란 정확히 강도적 차이소들 사이에 일어나는 '공명'의 사태인 것이다. 이 작품이 어떤 체계를 이루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들뢰즈적 의미의 강도적 체계이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한다면 이 책은 인체의 모습을 띠고 있기도 하다. 가령 서론(「반복과 차이」)은 머리이고, 1장(「차이 그 자체」)과 2장(「대자적 반복」)은 두 팔이다. 또 3장(「사유의 이미지」)은 가슴에, 4장(「차이의 이념적 종합」)과 5장(「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은 배에, 결론(「차이와 반복」)은 두 다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책의 앞부분이나 뒷부분만을 읽는다면 들뢰즈 철학의 외양은 어느 정도 식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내장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전체에 대한 숙독과 이해가 필요하다.



    ▶ 내용과 형식의 강도(强度)적 통합 | 들뢰즈의 "철학 극장"



    이 작품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에서도 특이한 면모를 보여준다. 데카르트나 루소의 저작들은 발견의 순서와 분석의 절차를 따르고, 스피노자나 칸트의 저작들은 논리적 순서와 종합의 절차를 따른다. 하지만 들뢰즈는 여기서 이도저도 아닌 제3의 길을 따르고 있다. 철학 책의 구조에 대해 말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차이와 반복>의 경우 구조는 단순히 그 체계뿐만 아니라 내용에까지 촉수를 뻗치고 있다. 이 책이 따르고 있는 것은 강도적 종합의 순서이다. 이미 서론에 마지막 부분의 내용이 들어와 안-주름들을 만들고, 각각의 부분들마다 전체의 내용이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을 처음 여는 독자는 첫 대목부터 어떤 주름운동 속에 놓여 있는 재빠른 문장들 앞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을 것이다. 모호한 개념들이 혼잡하게 난무하고 있다는 느낌도 받기 십상이다. 머리말에서 들뢰즈는 이 책은 결론만 잘 읽어도 충분하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낭패를 볼 것이다. 결론은 분명 이 책 전체의 주요 내용을 반복하고 압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반복의 유희를 이해하고 거기서 펼쳐지는 주름운동을 즐기기 위해서는 앞부분들에 대한 독서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푸코의 지적처럼 이 책은 각 부분들마다 매번 새로운 장면의 무대를 연출하고 있는 "철학 극장"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런 비유는 각 부분들이 어떤 완결된 줄거리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어서 전체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그 나름대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하지만 각기 완결된 부분이나 계열들이 어떻게 짝을 맺고 공명하는지, 그런 공명을 가져오는 우발점은 어디에 있으며, 그 우발점에서 시작된 '강요된 운동'은 어떻게 그 계열들 밖으로 넘치는지 등을 헤아릴 때만 우리는 이 책을 완전히 읽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 번역은 반역이 아니다 | 한국 인문학 번역서의 전범(典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은 개념적으로 재현될 수 없는 사태, 능동적으로 구성되지 않고 명석 판명하게 표상되지 않는 사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재현 이하의 사태는 언어의 잠재력을 극단적으로 실현하는 고도의 문체에 대해서만 자신이 드러날 기회를 허락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내용과 그것을 말하는 방식을 떼어놓고 생각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가 공들여 고안해낸 섬세하고 복잡한 구조는 그것들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하나의 유기체적 전체로 통합한다. 이 책에서 구사된 들뢰즈의 문체는 간결하며 강렬하고, 자유자재로 속도를 통제하며, 통상적인 독서에 요구되는 몇 배의 집중과 밀착을 필요로 한다. 독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문체는 어떤 난해의 장벽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내용 자체를 포기할 구실로 삼기 십상인데, 그럴수록 옮기는 이의 과제와 의무 또한 커질 수밖에 없다. 민음사에서 처음 <차이와 반복>의 한국어 판을 출간키로 결정한 것은 꽤 오래전의 일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번역자를 물색했으나 대부분이 고사하였고 몇 사람은 실제로 번역에 뛰어들었으나 얼마 못 가 손을 들었다. 자칫 이 땅에 발 딛지 못할 뻔했던 <차이와 반복>이 우리 독자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김상환 교수(서울대학교 철학과)의 공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젊은 프랑스 철학 연구자 가운데에서도 가장 빼어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인물인 김상환 교수는 2000년 가을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착수해 3년 반 동안 퇴고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결실을 낳았다. 그동안 번역보다는 연구와 저작 집필에 힘써온 그는 원전에 대한 완전한 이해 없이 부실한 번역서가 양산되고 있는 한국 인문학 번역계의 풍토를 경계하며, 훌륭한 번역서 한 권은 저서 한 권에 못지않다는 신념과 희생적인 노력으로 이 책을 번역했다. 문법의 차이가 너무 큰 외국어일 경우 문체상의 생동감을 옮긴다는 것은, 명쾌한 수준에서 우리말의 활력을 되살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김 교수는 들뢰즈의 이 작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들뢰즈의 원문이 전해주는 신선한 충격과 강렬한 에너지를 최대한 살리려 애썼으며 때로는 시를 번역하는 기분으로 원래의 문법적 구조마저 무시하는 과감한 의역(意譯)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옮긴이의 독서 경험을 반영하는 역주 수백여 개가 추가되었다. 또한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은 해제에서는 동양의 태극문(太極紋)으로써 들뢰즈의 존재론을 풀어나가며 독창적인 해석을 전개한다. 이는 전체의 내용을 개괄하는 간단한 지도로 삼기에 손색이 없는 것으로, 이 두꺼운 저작을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한 옮긴이의 세심한 배려이다.




    ▶ 들뢰즈의 세기 | "니체 이후 우리는 어떻게 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 - 질 들뢰즈



    질 들뢰즈는 동시대의 어떤 철학자와도 달랐다. 르몽드 지의 언급처럼 굳이 분류하자면 그는 반역의 철학자이다. 들뢰즈는 언제나 기존의 철학적 사조나 학파의 외곽을 맴돌았고, 철저히 자유인이고자 했다. 그는 유목민이다. 그에게 들어맞을 법한 딱지를 붙여놓으면 그는 이미 이를 비웃으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후였다. 단지 철학을 학습하고 해석했던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철학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다. 그는 정지와 경직을 경계했으며, 미래를 창조하고자 했던 철학자적 열정이야말로 그의 철학의 원동력이었다. 다른 철학자의 이론에 의거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와 자신의 독창적인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철학이라는 그의 신념은 항상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자 했던 들뢰즈 철학의 바탕이 되었다. 그의 철학은 스피노자에서 니체에 이르는 철학적 계보의 연장선에 서 있으며, 이원론적인 모든 휴머니즘의 종말을 고하고 내재성의 철학의 도래를 선언하고자 한 일련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철학사 전체를 자신의 관점에서 재편하고 당대의 급진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철학의 변형을 꾀했다는 점에서 들뢰즈는 20세기의 헤겔이라 할 수 있다. <차이와 반복>은 협소한 전공에 매몰되기 쉬운 오늘날의 연구 풍토에서도 새로운 철학은 여전히 학문들 간의 경계를 뒤흔들 만한 역량에서 탄생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중요한 사례이다. 이런 점과 관련해서 어떤 이는 철학과 수학이 만나는 대목에 경탄하고 어떤 이는 시와 문학작품들을 자유로이 끌어들이는 대목에 찬사를 보낸다. 사실 철학이 인간 사유의 범위를 개척하고 확장해가는 전위적 위치를 차지하는 시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철학은 보통 다른 분야에서 이미 성취된 사유의 높이를 다시 따라잡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왔다. 오늘날에도 정신분석학은 물론이고 인접 학문과 예술은 기존의 인식론적 범주들이나 존재론적 구도로서는 해명하기 힘든 대단히 복잡한 현장에서 씨름하고 있다. 이미 우리를 둘러싼 정치경제학적 현실 자체, 이 현실의 핵을 이루는 자본-기술의 결합체는 웬만한 철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괴물로 변신한 지 오래다. 그만큼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사변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36년 만에 한국 땅에 다다른 이 책이 현실이 일으키는 가파른 관념의 파고를 넘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때때로 유용한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목차

    머리말



    서론 | 반복과 차이

    1. 차이 그 자체

    2. 대자적 반복

    3. 사유의 이미지

    4. 차이의 이념적 종합

    5.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

    결론 | 차이와 반복



    참고 문헌

    들뢰즈 연보

    옮긴이 해제 | 들뢰즈 존재론의 기본 구도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차이의 즉자 존재가 자기 자신을 숨기는 것과 차이가 재현의 범주들 안으로 떨어지는 것은 똑같은 조건들 아래에서 벌어지는 사태이다. 그렇다면 차이가 '분화소'에 해당하는 이 즉자 존재를 전개해가는 것은 어떤 조건들에서인가? 차이는 어떤 조건들에서 가능한 모든 재현을 넘어서서 차이나는 것을 회집하는가? 우리가 볼 때 체계의 첫 번째 특성은 계열들을 이루어내는 유기적 조직화에 있는 듯하다. 하나의 체계는 둘이나 그 이상의 복수적인 계열들을 기저(基底)로 삼아 구성되어야 한다. 이때 각 계열은 자신을 이루는 항들 사이의 차이들에 의해 정의된다. 만일 우리가 계열들이 이러저러한 힘의 활동에 따라 서로 소통하기 시작한다고 가정한다면, 이 소통을 통해 일군의 차이들은 다른 일군의 차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체계 안에서 어떤 차이들의 차이들이 구성되는 것이다. 이 두 번째 등급의 차이들은 '분화소'의 역할을 떠맡고 있으며, 다시 말해서 첫 번째 등급의 차이들을 일정한 관계 안에 묶어놓는다. 이런 사태는 특정한 물리학적 개념들을 통해 적절하게 표현되고 있다. 다질적 계열들 간의 짝짓기, 거기서 비롯되는 체계 내적 공명, 거기서 비롯되는 강요된 운동등이 그것인데, 이 운동의 진폭은 기저 자체의 계열들 밖으로 넘친다. 이 요소들의 본성은 함께 성립하는 두 가지 차이를 통해 규정될 수 있다. 그 요소들이 속한 한 계열 안에서 성립하는 차이와 한 계열에서 다른 계열로 이어지면서 성립하는 차이의 차이가 그것이다. 이런 차이들은 곧 어떤 강도(强度)들이다.그 고유한 특성 안에서 볼 때 강도는 그 자체가 어떤 차이에 의해 구성된다. 하지만 이 차이는 다시 다른 차이들에 의해 형성된 차이다. (E-E' 에서 E는 e-e' 를, e는 ε-ε' 를 배후로 한다.) 해당 체계들의 강도적 본성 때문에 우리는 이것들의 명칭에, 가령 기계 체계, 물리 체계, 생물 체계, 심리 체계, 사회 체계, 미학 체계, 철학 체계 등등과 같은 명칭에 선입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물론 각 유형의 체계는 아마 저마다의 특수한 조건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조건들은 위에서 언급한 특성들에 부합하고, 그런 가운데 각 경우에 적당한 구조를 그 체계들에 제공한다. 가령 단어들은 특정한 미학체계 안에 있는 참된 강도들이다. 개념들 또한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어떤 강도들이다. 프로이트가 1895년에 작성한 그 유명한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구상」에서는 생물심리학적 삶이 그와 같은 강도적 장(場)의 형식을 통해 제시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강도적 장 속에서는 자극이나 흥분들에 해당하는 어떤 규정 가능한 차이들, 그리고 길 트기에 해당하는 어떤-규정 가능한-차이들의 차이들이 분배되고 있다. 그러나 체계들 일반의 세 차원을 구현하는 것은 무엇보다 프시케의 종합들이다. 사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묶기(하비투스)는 흥분의 계열들을 짝짓고, 에로스는 거기서 비롯되는 각별한 상태의 내적 공명을 지칭한다. 그리고 죽음본능은 강요된 운동과 구별되지 않고, 이 운동의 심리적 진폭은 공명하는 계열들 자체를 넘어선다. (이로부터 죽음본능과 공명하는 에로스 사이에 진폭의 차이가 생긴다.) 다질적인 계열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나면, 이로부터 체계 안에서는 온 갖 종류의 귀결들이 따라 나오게 된다. 가령 가장자리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 번개나 천둥처럼 사건들이 터져 나오고 현상들이 번득인다. 어떤 시-공간적 역동성들이 체계를 가독 채우고, 그런 가운데 짝지은 계열들의 공명과 그 계열들 밖으로 남치는 강요된 운동의 진폭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 체계에는 어떤 주체들이 서식한다. 그 주체들은 애벌레-주체인 동시에 수동적 자아들이다. 왜 수동적 자아들인가? 이는 그들이 짝짓기와 공명들에 대한 응시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애벌레-주체들인가? 이는 그들이 역동성들의 지지대이거나 인내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강요된 운동에 필연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순수한 시-공간적 역동성은 오로지 생존 가능성의 극한에서만 체험될 수 있다.



    훌륭하게 구성된 주체, 독립성과 능동성을 띤 모든 주체는 이런 체험 조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따라서 이 순수한 역동성을 통해 죽음에 이를 것이다. 이는 이미 발생학이 가르쳐주고 있는 진리이다. 그 진리에 따르면, 오로지 배아가 견뎌낼 수 있는 한에서만 어떤 체계적인 생명 운동들이 있을 수 있고 또 그 운동들이 미끄러지거나 비틀릴 수 있다. 이런 운동들을 감수하지 못하는 성체(成體)는 갈기갈기 찢긴다. 어떤 운동들은 그저 견뎌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 앞에서는 누구나 수동적인 인내자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한에서 이 인내자는 다시 어떤 유충이나 맹아(萌芽)일 수밖에 없다. 진화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퇴화를 겪은 것만이 진화하고, 말하자면 안으로 말린 것만이 밖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악몽은 아마 깨어 있는 사람도, 심지어 꿈꾸는 사람조차 견뎌낼 수 없는 어떤 심리적 역동성일 것이다. 그것은 단지 꿈꿀 겨를도 없는 깊은 잠에 빠진 사람만이 견뎌낼 수 있는 역동성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철학 체계의 고유한 역동성을 구성하는 사유가데카르트의 코기토에서 그렇듯이 깔끔하게 구성되고 완성된 어떤 실체적 주체와 묶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사유는 오히려 애벌레-주체를 규정하는 조건들 안에서만 견뎌낼 수 있는 이 끔찍한 운동들에서 나온다. 체계는 오로지 그런 주체들만을 허용한다. 왜냐하면 그런 주체들만이 강요된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고, 그런 가운데 그 운동을 표현하는 역동성들의 인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철학자조차 자신의 고유한 체계의 애벌레-주체일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체계는 단지 체계 밖으로 넘쳐나는 다질적 계열들에 의해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체계의 차원들을 구성하는 짝짓기, 공명, 강요된 운동 등도 체계를 온전히 정의하지 못한다. 그 체계에 서식하는 주체들이 있어야 하고, 그 체계를 가득 채우는 역동성들이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이 역동성들로부터 개봉되는 질(質)과 연장들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체계란 무엇인가/ p.264-267

    저자소개

    Gilles Deleuz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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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르본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파리 8대학에서 미셸 푸코의 뒤를 이어 교수 생활을 하다가 1987년 은퇴했다. 일찍부터 철학사를 해석하는 뛰어난 역량과 독특한 관점을 인정받았다. 근대적 이성의 재검토라는 1960년대의 큰 흐름 속에서 서구 사상의 2대 전통인 경험론과 관념론을 새로운 차원에서 종합하는 시도를 보여주었으며, 현대 학문과 예술에 철학적 깊이를 더하는 활발한 작업을 통해 철학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1968년에 발표된 <차이와 반복>에서는 해체론적 전통이 도달한 일정한 높이 위에서 고전적 형이상학을 부활시켰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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