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돌아보면 하나의 모습으로 통합되어 있는 '지구촌의 꿈'이라는 것은 그 근원에서부터 한계와 문제점을 갖고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양성이라는 것이 생태계에 있어 긍정적인 호과를 가져다 주는 강점이 되는 것처럼, 인류의 문화에 있어서도 다채로움과 서로의 다른 점을 수용하려는 태도는 평화롭고 풍요롭고 조화로운 발전에 진정한 기초가 되는 것이다. (p26)

 

시간을 재는 경우에도 느슨하고 여유롭게 잰다. 1분 단위로 시간을 측정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내일 낮에 찾아올게" 혹은 "저녁쯤 찾아올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라다크 사람들은 그렇게 시간에 대해 넉넉한 여유를 남겨 놓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언어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표현들이 많이 있다. '공그로트'는 어두워진 다음부터 잠잘 시간까지'라는 뜻이고 '나이케'는 '해가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한낮'을 말한다. 또 '새의 노래'라는 뜻을 '치페 치릿'은 해가 뜨기 전 새들이 지저귀는 이른 아침을 뜻한다. 이 모두가 넉넉하고 친숙한 느낌을 주는 표현들이다. (p93)

 

한 농부의 풍작이 다른 농부의 흉작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다. 경쟁이 아닌 상호협조를 통해 경제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호발전과 통합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p120)

 

자아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착각은 아마도 깨달음에 이르는 데 있어 가장 커다란 장애가 되는 것일 것이다. 절대적이고 영원한 실체에 대한 믿음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욕망을 낳고 또 그 욕망은 고통을 가져오는 것이다. 분리된 자아와 분리된 사물에 대한 관념에 집착함으로써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찾고 있던 것을 얻는 순간 그 빛은 사라져버리고 우리는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만족스러운 순간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아주 짧은 순간일 뿐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영원히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p159)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그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고, 또 자신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들의 땅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친밀한 일상의 접촉관계를 통해 그리고 계절의 변화, 필요한 것들, 한정된 것들 등 환경에 관한 이해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연결되어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생활의 흐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별들이나 해와달의 움직임은 그들의 일상행활에 영향을 주는 아주 친근한 리듬이 된다.(p175)

 

 

 

이렇게 인생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의해 살아지고 있기 때문에 인생이 꿈처럼 허마하고 뒤죽박죽인 것입니다. (p16)

 

스님이 법당에서 청소를 하면 '스님이 청소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청소할 때는 청소부가, 농사를 지을 때는 그냥 농부가 됩니다. 장사를 하면 스남이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장사꾼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것이 <법성계>에서 이르는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입니다.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바꾸듯이 '스스로 성품을 지니지 아니하고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p175)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허우적대지 맣고 물에 빠진 김에진주조개를 주워보세요. 어차피 결혼한 김에, 어차피 자식 낳은 김에, 어차피 부도난 김에, 어차피 암에 걸린 김에, 어차피 늙은 김에 괴로워하지 말고 깨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게 좋흡니다. 늙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배신당했을 때만 깨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p182)

 

그래서 깨어있으려면 스스로에게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기 위해 있는가?를 늘 물어보고 자기가 그 목적에 맞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p201)

 

그래서 우리는 늘 정신차려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이것을 늘 살펴서 자기에게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천하 만물이 본래 내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티끌 하나 속에도 천지의 은혜까 있고 만인의 노고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 물건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필요한 사람이 있을 때 그 물건이 기꺼이 쓰이도록 할 수 있게 됩니다. (p248)

 

 

- 알 속에 갇힌 새끼가 그 연약한 부리로 껍질을 두드린다. 하지만 혼자의 힘만으로는 두꺼운 껍질을 깰 수는 없다. 어미 새가 동시에 밖에서 쪼아 준다. 새끼가 쪼는 '줄'과 에미가 쪼는 '탁'이 만나 이윽고 생각이, 생명이 병아리 소리를 내며 탄생한다. 삐악삐악, 작지만 우주의 생명이 태어나는 천둥번개의 소리이다.

그것을 그리스말로 하면 유레카이다. 뭔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더 큰 바깥의 힘이 견고한 껍데기를 쪼아 균열을 일으키는 것. 그 순간을 심리학자들은 유레카 모멘트 혹은 '아하 체험'이라고 부른다. (p38)-

 

-콩 세 알을 심어서 하나는 새가, 하나는 벌레가, 하나는 인간이 먹는 따듯한 마음, 자연과 인간이 손잡고 사는 조화로운 세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하늘을 나는 새는 쫓아버리고, 땅속의 벌레는 농약과 제초제로 죽인다.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과연 콩 세 알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p169)-

 

-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는 말은 단순히 먹는 것을 유물적인 것으로 본 것이 아니다. 마치 노동을 노예의 것으로만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농업은 천지인의 콩세알의 조화였던 것이다. 농업은 '생명자본'의 교과서였다. (p171)-

 

- 이것이 나의 금어가 아닌 금붕어의 발견이다. 내가 <흙속에 저 바람 속에서>를 쓸 때 '황토흙'이라고 해놓으면 으레 편집 교정원들은 흙 자를 뺀다. '무너진 황토흙'이라고 해 놓으면 '무너진 황토'라고 말한다. 하다 만 것처럼. 어떤 다른 나라의 말이라 하더라도, 아마도 우주인이 와서 우주의 말을 쓰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그 배꼽을 남긴다. 그러니까 동해라고 하지 않고 '동해바다'라 하고, 처가라고 하지 않고, '처갓집'이라 하고, 역전이라 하지 않고 '역전앞'이라 한다. (p246)-

 

-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한국의 금붕어라는 말 속에 붕어라는 이름을 살렸다. 세계 사람들이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한국만 금붕어 조상의 흔적을 남긴다. 마치 서양의 빵이라는 말에 떡이라는 말을 붙였듯이. 이것이 금붕어 이름의 발견이다. (p247)-

 

- 생명이란 무엇인가. 잘 길들여진 인공의 공예품 같은 금붕어에서 그 야성을 보는 것이다. 가축, 애완물, 문명인 모두에게 배꼽의 추억과 같은 생명의 신비함이 잠자고 있다. 그것을 흔들어 깨워라. 나는 지금 생명이 무엇인지 어떤 이론이나 실험을 통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믿지도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생명이란 바다에서 보쌈으로 붕어를 잡고 그것을 손으로 잡았을 때 마치 물고기가 그물에 걸린 것처럼 은빛 비늘을 파닥거리면서 꼬리를 치던 그 감각. 비릿한 냄새, 비늘 하나하나가 햇빛처럼 반짝이며 파닥거리는 그 생명의 진동에서 나는 생명이 무엇인지를 느꼈다. 손바닥으로 전달되는 싱싱한 생명에 자석처럼 끌리는 힘. 전기를 쏘인 것처럼 찌릿하게 오는 그 신선함. 그것은 아마도 몇 십 억년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일 것이다. (p262)-

 

-물 속의 지느러미가 바다 밖에서는 날개가 되는 이 놀라운 변화. 날치의 지느러미가 날개로 트랜스폼 된다는 것! ....바다에서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을 때는 이러한 비약, 초월, 뛰어넘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이 공간으로의 비약 후에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새가 아니라 물고기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높이, 멀리 활공하는 날치라 할지라도, 그것은 물을 떠나서는 생존할 수 없는 물고기의 본성을 간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초월하려고 하고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무엇인지를, 내가 누구인지를 마치 날치처럼 수면을 박차고 뛰어올라서 인식하고 다시 물속으로 돌아갑니다. 날치가 아닌 수중에서만 갇혀 지내는 물고기들은 그런 의식을 지닐 수가 없습니다. 오직 날치만이, 그 날치 같은 존재들만이 죽지 않고 결정의 바다에서 불가능한 또 다른 세계의 공기, 하늘로 뛰어오르는 그 비상한 도약의 힘, 초월의 힘 그리고 그 수면 위를 유영할 수 있는 의지와 몸짓을 지닐 수 있습니다. (p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