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2권은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까지 '한니발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포에니 전쟁'을 다루고 있다.

포에니 전쟁은 1차 포에니전쟁과 2차 포에니전쟁으로 나뉘고 2차 포에니 전쟁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1차 포에니전쟁은 시칠리아 섬에서 치러졌는데 로마인들의 창의력이 돋보인 싸움이다. 해전을 치러보지 않은 로마인들은 거기에 약할 수 밖에 없고 변변한 배도 갖추지 못했다. 로마인들은 해전에 능한 카르타고와의 싸움을 위해 적군의 배를 연구하고 여기에 창의력을 더해 '까마귀'라는 것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이쪽 배에서 적군의 배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주는데 해전에 약한 로마인들이 적군의 배로 건너가 육지전을 치르는 방식이다. 1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의 승리로 끝나고 로마는 시칠리아섬의 지배권을 얻게 된다. 여기에서 전에 없던 '속주'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2차 포에니 전쟁 중기에 드디어 희대의 명장 한니발이 등장한다.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젊은 지휘관이다. 한니발의 아버지는 로마에 진 것이 철천지 한이 되었는지, 아홉 살의 어린 한니발을 데리고 다니며 로마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준다. 이런 조기교육에 힘입어 청년이 된 한니발은 누구도 상상치 못한 대장정을 시작한다. 코끼리 떼와 병사들을 거느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육로로 로마에 침투하는 사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돋보이는 한니발의 통찰력과 지휘력은 '명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하다. 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 이름 붙이는 데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게 만든다.

한니발은 로마를 직접 치기보다는 로마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가 로마의 동맹국들을 포섭하는 방식을 이용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로마의 진가가 느러난다. 전쟁에서 이겨도 패전국을 속국으로 삼지 않고 동맹을 맺어 그 독립성을 인정해준 로마의 쿨한 정책이, 한니발의 회유 속에서도 대부분의 동맹국들이 로마와의 의리를 지키는 것으로 돌아온다. 때문이 명장 한니발도 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한니발 전쟁 중기에 이르러 드디어 로마에서도 한니발을 대적할 만한 명장이 등장했으니 그가 바로 스키피오다. 한니발의 가장 큰 불운이라면 저자도 말했듯이 수제자가 자국이 아닌 적국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전투력 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인 스키피오는 한니발이 적국으로 건너가 싸움을 걸었듯이 그도 카르타고로 건너가 싸움을 거는 방식을 택한다. 드디어 자마전투에서 한니발과 맞서 크게 승리한다. 여기에는 사람 좋고 서글서글한 스키피오의 매력젹인 성격도 한 몫 하지 않을 을까 하는 나의 사심도... 사실 스키피오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던 누미디아의 왕이 의리를 지킨 것을 보면 없는 얘기도 아니다.

한니발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의 영향을 받았고 스키피오는 한니발의 영향을 받았고, 적군과 아군을 막론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하는 명장들의 모습이다. 나중에 스키피오와 한니발에 회담장에서 나눴다는 대화가 유명하다.

스키피오가 한니발에게 최고의 명장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첫째가 '알렉산드로스', 둘째가 '피로스', 셋째가 '나 한니발'이라고 말했다. 스키피오가 다시 묻는다. '만약 당신이 나를 이겼다면?' '그럼 내가 첫째가 되었을 테지.'

 

두 명장이 퇴장하고 난 후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서로 강화를 맺었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카르타고는 로마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역사는 (혹은 저자는) 카르타고의 멸망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카르타고는 그저 자신의 권리를 좀 주장했을 뿐이고, 로마는 카르타고를 멸망까지 시킬 생각은 아니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리고 로마도 점점 '엄격한 제국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만약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또한 카토가 장수를 누리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나는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100년 뒤에 재건된 카르타고에 로마인이 건설한 대규모 상수도관의 유적을 보고 나서, 로마인이 카르타고를 재건하기 위한 '사회간접자본'투자에 그토록 힘을 쏟고, 로마가 존속하는 동안 줄곧 재건된 카르타고가 아프리카에서 손꼽히는 도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진다. (458 쪽)-

 

-역사가 '리비우스'도 한니발 전쟁에 할애한 지면을 돌이커보고, 이 전쟁이 로마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가를 새삼 재인식했을 정도다. 카르타고의 멸망까지 포함하여 로마인의 지중해 재패는 모두 한니발 전쟁의 여파였다.....지중해 전체를 이토록 짧은 기간에 로마인의 '우리 바다'로 만들어버린 장본인도 결국 한니발이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460 쪽)-

 

-나이가 사람을 완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공이 사람을 완고하게 만든다. 성공자이기 때문에 완고한 사람은 변혁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되어도,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 때문에 다른 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워진다. 따라서 근본적인 개혁은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성공에는 가담하지 않았던 사람만이 달성할 수 있다. 흔히 젊은 세대가 근본적인 개혁을 성취하는 것은 그들이 과거의 성공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21 쪽)- 

 

몇 년 전에 로마인이야기를 5권까지 읽고 덮어두었던 것을 1권부터 다시 꺼내들었다. 책 속의 메모를 보니 이 책을 읽은 것이 2008년이었나보다. 다시 읽으니 새롭기도 하고 부분적으로 전에 읽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소제목처럼 1권에서는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국하고부터 이탈리아 반도 전체를 통일하는 기원전 260년 무렵까지의 일을 싣고 있다. 이걸 보면 로마는 500년 가량의 세월을 거쳐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의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로마는 로물루스가 건국하여 1대 왕이 된 후 일곱 명의 왕을 낳는다. 7대까지는 왕정시대인 셈인데, 왕의 임기가 종신이기는 하지만 세습이 아니라 왕이 죽고나면 새로 선출한다는 데서 새롭다. 7대 왕인 '거만한 트르퀴니우스'가 쫓겨 난 후로는 공화정이 수립된다. 최고 지도자인 두 명의 집정관과 원로원, 민회로 이루어진다. 대통령이 두 명인 셈인데, 임기는 1년이다. 두 명의 대통령이 의견을 수렴하여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이 지금의 사고방식으로 생각한다면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들의 유연한 사고방식 덕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일곱 개의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작은 소도시에 불과했던 로마가 세력을 넓혀가는 모습에서도 매우 합리적이고 유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부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그 민족을 노예로 삼는 것이 아니라 로마의 시민으로 인정해 주었다. 그리고 전쟁에 패한 지도자에게도 징계를 내리지 않는다. 또, 죄를 지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나라로 망명하면 더이상 벌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쿨하기 짝이없는 로마인이다.

물론 로마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켈트족이 침입했을 때는 크게 패하여 오랜 기간동안 쌓아올린 로마의 역사가 그야말로 공든 탑 무너지듯 후퇴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하나 다시 일으켜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기원전 수백년인 이 때 상하수도가 정비되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도로를 정비했고, 합리적인 정치제도와 법률까지 갖출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그 때 고조선이었을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이처럼 방대한 자료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 안타깝다.

책의 뒷 표지에 보니 저자는 로마가 있을 수 있는 바탕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 왜 2천년 전에 살았던 이들의 로마관이 나에게는 더욱 휘감겨오는 것일까. 그것은 첫째, 로마가 융성한 원인을 정신적인 것에서 찾지 않은 태도다. 나 자신도 융성은 당사자들의 정신이 건전했기 때문이고, 쇠퇴는 정신이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논법을 납득할 수가 없다. 그보다 융성의 원인은 당사자들이 만들어낸 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 그들은 기독교의 윤리나 가치관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기독교 가치관을 통해 로마를 보아서는 기독교를 몰랐던 로마인을 이해할 수 없다.

셋째, 프랑스 혁명이 드높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이념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념의 방해를 받지 않으니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그만큼 쉬워진다. 이래서는 안된다는 따위의 생각이 강해지면 그것과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체제에 아무리 좋은 면이 있어도 이념젹으로 양립할 수 없는 체제라는 이유만으로 그 좋은 면에는 눈을 감아버리게 되는 법이다.' 

 

이제 1권이 끝났고 로마는 이탈리아 전체로 세력을 넓히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2권에서 한니발과 포에니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이어 <농담>을 읽었다. 밀란 쿤데라의 처녀작이라고 하는데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책이다.

체코의 공산주의를 배경으로 루드빅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책의 부제를 내맘대로 붙인다면 '루드빅의 허무한 복수극', 아니면 '더럽게 재수없는 남자' 쯤으로 해두면 어떨까.

제목처럼 모든 사건의 발단은 루드빅의 '농담'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여친을 놀리기 위해 던진 농담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빅.' 이 말 한마디로 루드빅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강제 입대하여 광산으로까지 끌려간다.

세월이 흘러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는 데 큰 역할을 한 제마넥에게 멋진 복수를 꿈꾼다. 제마넥의 아내 헬레나를 유혹하여 그에게 복수하려 했으나 이런 거대한 음모(?)는 제마넥이 헬레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젊고 멋진 여친을 대동하고 나온 데서 무너져버린다. 그의 복수극이 농담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치 모파상의 '목걸이'에서 '그 목걸이는 가짜였어'하던 그 반전과 맞먹는 허탈감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루드빅에게 이용당했음을 안 헬레나가 자살을 시도하지만 진통제가 아닌 변비약을 먹고 화장실에서 벌이는 처절한 사투는 농담을 넘어 하나의 코미디를 연출한다.

 

웃어넘겨야 할 말 한마디는 거대한 폭풍이 되어 날아오고, 가장 비장하고 진지해야 할 부분은 농담처럼 가벼워지는 아이러니한 이야기. 이거야 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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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득 내가 당에서 축출당했던 그 사건을 불가피하게 그녀에게 이야기하게 된다 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것이 아득히 멀고 너무도 문학적이 이야기로만 비추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의 물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것 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가겠는가. -p378-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 버리고 만다. 그 신화는 날이 갈수록 신화의 원인이 되었던 주요 인물들로부터 분리되어 버린다. 그 인물들은 사실상 (자동 보도는 멈추지 않고 계쏙 앞으로 움직인다.) 더 이상 예전의 그들이 아닌데, 복수의 신화 속에서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제 예전의 얀이 아닌 다른 얀이 역시 예전의 제마넥이 아닌 다른 제마넥 앞에 서 있는 것이며, 내가 그에게 날려야 하는 따귀는 다시 되살릴 수도 다시 복구할 수도 없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만 것이다. -p396-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