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만 나면 스마트폰으로 달려가는 내가 떳떳치 않아.

그런 내가 싫고 마음에 안 들어.’

‘그럼 하지 말아야지!’

‘근데 그게 잘 안 돼...’

‘뭐야, 이미 습관이 된 거야? 너 그 정도밖에 안 돼?!!’

 

 

뭐야, 이 책... 이 부분에서 이미 난 이 책을 내가 쓴 줄 알았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나에게 수없이 되뇌이는 대사가 고대로 나와 있었으니까. 나는 나만 매일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하고 매일 피곤에 쩔어 출근하면서 나에게 저주와 폭언을 퍼붓는 줄 알았다. 수녀님도 이러실 줄이야...

 

 

수녀님이 내리신 처방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었다. 내 안에 무엇이 부족하길래 스마트폰을 통해 그걸 채우려 하는지 스스로 찾고, 적절한 방식으로 그걸 채워야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지지 그러기 전에는 스마트폰 중독에서 벗어나는 대신 또 다른 것으로 대치하는 등 ‘고통의 돌려막기’ 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수업 중에도 조금 재미있으면 듣는 것 같더니 조금 어렵거나 난해하거나 지루한 파트에 접어든다 싶으면 바로 스마트폰에 손이 간다. 얼러도 보고 달래도 봤지만 소용없다. 그냥 계속해서 반짝이는 자극을 향해 움직일 뿐. 마치 동물들처럼.

 

 

학교 밖에서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본다. 마찬가지다. 직장이 있건 없건, 시간적 여유가 있건 없건, 가방 끈이 길건 짧건 대부분의 어른들이 스마트폰에 한번 빠지면 엄청난 시간을 쏟아붓기 전에는 그만두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인터넷 쇼핑은 물론 스마트폰 게임, 음란물, 음란 채팅까지 특정 장르(?)에 지나치게 빠져 자책하고 자학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내 자신도 그 중에 한명이다) 모두 그 짓으로 시간을 보내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도 계속하게 된다고 한다. 왜일까...

 

 

스마트폰 중독은 단순히 욕구나 자제력의 문제를 넘어선, 심리적 공허함을 대신하기 위함이 아닐까? 스마트폰으로 하는 활동이 그 공허함을 채워준다고 믿기 때문에 계속 붙잡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면 할수록 사실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 고통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은 그것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준다고 믿기에 계속 하는 것이 아닐까?

 

 

매일 밤 일찍 자리라 마음 먹고 씻고 자리에 누워 스마트폰을 켜면 새벽 2시까지 하는 내 자신을 돌이켜보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잠자리에 누웠던 나는 무엇이 모자라다고 느꼈을까... 하루 중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스마트폰을 통해 ‘마음에 드는 것’을 반대급부로 채우려 한 것일까... 인터넷 뉴스며 유튜브 동영상을 끊임없이 파도타며 넘나드는 내 진짜 마음은 무엇일까?

 

 

첫째는 ‘공허함’인 것 같다. 하루가 너무 공허해서, 바삐 일했지만 하나도 내 시간인 것 같지 않고 내 일인 것 같지 않은데 그저 바쁘고 힘들기만 해서 그대로 하루를 끝내기엔 너무 억울하고 공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스마트폰이라도 켜서 여기저기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댓글을 남기면서 ‘여기는 내 구역’, ‘이건 내가 한 일’, ‘이건 내가 한 말’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려 했던 것 같다. 마치 개가 길을 가다 수시로 멈춰서 서 오줌을 싸며 자기 구역이라는 것을 다른 개들에게 알리려고 하듯이.

 

 

두 번째는 ‘슬픔’인 것 같다. 하루 종일 나를 감싸안고 있는 감정은 ‘이게 아닌데...’ 하는 감정이었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똑같이 공격하며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사람이 내 공을 가로채도 마음이 편치 않고, 그 사람이 내 공을 가로챈 것을 들켜 남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도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를 일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공격하려드는 동료를 보면서 ‘사람이 왜 그럴까...’ 하는 슬픔, 그 동료에게 이용당하거나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발 앞서 움직이는 내 자신을 보면서 느끼는 슬픔, 자기의 뒷공작에 말려들어가지 않는 나를 보며 억지로 웃고 축하하는 척 하는 동료를 보며 느끼는 ‘모든 인간은 선하다’라는 내 근본적인 믿음에 무너지는 데 대한 슬픔... 그 슬픔을 메꾸기 위해 나는 유튜브 속 짧은 영상들이 주는 자극과 재미에 빠져든 것 같다.

 

 

지금 이 리뷰를 남기면서도 매우 슬프다.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협동과 화합 대신 자기만 돋보이면 그만이라고 40평생을 살아온 동료의 고단했을 삶에 대해... 그런 마음을 안쓰러워하면서도 결코 뒤처지기는 싫어하는 나의 약함에... 그 모든 인간의 마음이 안쓰럽고 슬프고 안타깝다. 이 책을 한 번 더 읽어보면 나아지려나... ‘중독’이 문제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늘도 중독으로 빠져드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정말 늦은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싶을 것이다. 이 말은 코메디언 박명수 씨가 한 말이니까. 우리네처럼 책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Never too late. 늦은 것은 하나도 없다. 깨달았을 때 시작하면 된다." 이 말이 훨씬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두 말 다 옳다. 아차, 늦었다 싶을 때는 정말 미루고 미루다 어떤 문제가 곪고 곪아 터진 상황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라도 해결할 수밖에 없으니까.

 

“NEVER TOO LATE."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은 39살 가을에 접어들어서였다. 그 때 당시 나는 직장 생활은 물론 인간관계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보고 있을 때였고 내가 이 세상과 인간에 대해 갖고 있던 성선설(性善說)이 박살이 난 상황이었다. 무엇을 믿어야할지도 모르겠고 누구 말을 따라야 할지도 불분명한 상황에서 마흔을 앞둔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섰었다. ‘이대로 살던 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다 부정하고서라도 바뀔 것인가’

 

 

답은 하나였다.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 한 마디로 내 인생이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에 비해 늦건 빠르건 속도는 중요치 않았다. 남과 비교해서 많건 적건 그것조차도 의미가 없었다. 그저 내 눈 앞의 장애물은 내가 제거해야 했고 나를 힘들게 만드는 것이라면 벗어나야 했다. 거기에 남의 시선이나 평가, 처리 속도나 결과물의 크고 작음 따윈 중요치 않았다. 내 인생이니 내 손과 발을 움직여 내가 벗어나야 했다.

 

 

이 책은 늦게라도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술을 연마한 사람도 있고 늘 마음의 짐처럼 생각했던 무언인가를 즐기게 된 사람도 있다. 나로 말하자면 영어와 일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것이 꿈이었다. 여행다닐 정도는 하지만 정말 심도깊은 대화를 나누기엔 부족했기에 나는 그 어떤 기능보다도 일본어와 영어 회화를 잘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게 정말 내게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영어와 일본어가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대답은 NO. 필요치 않다는 것이 내 답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회화보다는 내가 원하는 분야의 전문서적을 빠르게 읽어낸 뒤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사용할 수 있는 독해능력이지 회화가 먼저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그렇게 차일피일 미뤘던 것인가...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바로 그 동안 그렇게 읽고 싶었던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영문판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느리든 빠르든 나는 에크하르트 톨레의 책을 영문으로 읽고 있다. 한글 번역본도 훌륭했지만(류시화 씨가 번역했다. 그의 번역은 정말... 영문으로 봐도 한글로 봐도 ‘벗어남’이 없다), 영문의 맛이란... 게다가 저자인 에크하르트 톨레가 녹음한 오디오 파일과 함께 들으니 그 깊이는 배가 되었다.

 

 

“해야 할 이유라 한 가지라도 있으면 해라. 안 할 이유 수천가지 찾지 말고...” 내가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어른이 평소 늘 하시는 말씀이다. 그래, 배워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으면 지금 당장 시작할 일이다. ‘내 나이가 몇인데... 지금 공부해봤자 얼마나 하겠어... 내가 박사가 될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나 주겠어?’ 이건 모두 ‘안 할 이유’ 찾기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다. 내 인생에서 이걸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하는 거다. 왜? 내 인생이니까. 남이 뭐라 하든 지가 내 인생 살아줄 것도 아니고, 살아줄 수도 없다. 그것이 부모든 배우자든 자식이든간에. 결국 작은 나무 상자 안에 들어가는 건 나 혼자니까.

 

 

“우리 안에 있는 부모의 에너지가 활성화 상태라면 삶을 자기 주도적으로 이끌겠다는 바람은 소용없다. 행동 치료와 정신 분석이 갖는 한계가 바로 이 지점이다. 정신 분석으로 부모와 관련이 있는 고통의 원인을 알 수 있지만, 환자의 두려움을 없애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부모의 에너지가 우리 안에 깃들어 기생하는 한 자유를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책을 놓고 박수를 쳤다. 드디어... 드디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는구나. 그 놈의 정신분석... 내 주변의 어줍잖은 상담가들... 특히 칼 로저스의 딸에게 배웠답시고 현실 세계에서 누구도 자신에게 상담을 의뢰하지 않았는데 일상생활 중에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상담사가 내담자 이야기를 듣듯 반응하는 그 돌팔이들에게 정말 질린 나로써는 정신분석의 한계를 까발리는 이 대목에서 통쾌함마저 느꼈다.

 

심리상담은 만능이 아니다. 일정 부분, 자신이 모르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서 상담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스스로를 고통으로 밀어넣는 자기 자신의 패턴과 습관을 어느 정도 발견했으면 이제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공짜심리에 빠진 많은 사람들이 ‘상담쇼핑’을 시작한다. 상담을 통해 맛보았던 ‘아하!’ 순간을 잊지 못해 그러한 ‘아하!’하고 깨닫는 순간들이 늘어나면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에서 벗어나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 이 상담사 저 상담사,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을 돌아다닌다.

 

그 중에 나름 많이 배웠고 머리 좋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빠지기 쉬운 덫이 정신분석이다. 과학적으로도 너무 논리정연하고, 원인과 결과가 딱딱 들어맞기 때문에 마치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 양,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대단한 착각이다. 문제를 ‘안다’는 것이 그 문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담배를 끊는 방법(전기담배든 사탕이든 침이든 약이든)을 안다고 해서 담배가 저절로 끊어지는가?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문제를, 상담은 이리 꼬고 저리 꽈서 인간의 심리 안에 뭐 대단한 거라도 있는 양, 인간이 받은 상처가 불치의 병이라도 된 양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물론 이것은 상담 이론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상담사의 문제일 확률이 높지만)

 

상담은 ‘학문’이다. 학문은 ‘참’이 아니다. 인간이 머리로 일구어낸 것 중에 참이 있던가? 왜 상담이 자기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발견하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기는지... 10년간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신분석 5년 받고 자기 자신에 대해 2,000매짜리 책 한권을 완성한다 한들 자기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현실적, 직접적, 물리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반가웠다. 직접적으로 두려움에 직면하지 않고서는 그 부분을 결코 뛰어넘을 수 없음을... 단정적으로 말해줘서 반갑고 또 고마웠다. 내담자들 돈이나 빼먹고 자기가 치료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헛된 기대를 심어줘서 자기 옆에 붙어놓고, 또 ‘말 잘 듣는 내담자’를 만들어 자신의 추종자로 부리고... 사람 마음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 이런 나쁜 상담사들의 면전에 대고 “그게 아니야!”라고 일갈하는 듯 해서 속이 다 후련했다.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 적당한 치료 사례나 에피소드를 늘어놓고 이론만 설명해놓은 심리상담서에 지친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쉽게 가는 길은 없다. 부모가 싸놓은 똥이든 내가 싸놓은 똥이든 어차피 눈 앞의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 똥 냄새가 안 나도록 온갖 방부처리를 하고 마스크와 고무장갑을 이용하여 어떻게 하면 한 번에 떠서 재빨리 비닐봉투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똥 냄새가 나면 바로 치울 일이다. 이 간단한 논리는 청소든 인간의 마음이든,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든 어디에나 적용된다. 진리는 늘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