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화’와 다르다. ‘화’가 순간적으로 치솟는 부정적인 어떤 감정의 에너지라고 한다면 ‘분노’는 아주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온 ‘화’의 덩어리라고 할 수 있겠다. 순간적으로 우리는 뒤덮는 감정 중 하나인 ‘화’는 평상시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내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지켜보는 훈련이 되지 않으면 ‘화’가 올라오는 즉시 그 감정에 휩싸여 버린다. 일단 ‘화’에 한번 휩싸이면 그 감정이 나를 휘두르는 대로 끝까지 휘둘리고 나서야 잠잠해진다. ‘화’라는 감정에서 빠져나오면 그때서야 마치 꿈에서 깬 것처럼 ‘가만,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했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 말(혹은 행동)이 꼭 옳은 거였나?’ 하고 상황을 다른 상황에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그 때는 대개 상대에게 차마 못할 말을 한 뒤거나, 관계회복에 상당히 시간과 에너지가 요구될 만큼 폭력적인 행동을 했거나 애초에 화가 났을 때보다 사태가 더 악화된 후다. 그래서 ‘화’라는 감정이 우리를 방문했을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그에 비해 ‘분노’는 더 뿌리가 깊다. 겨울에 눈 내린 곳에 또 눈이 내리고 또 눈이 내리면 나중에 날씨가 풀어져도 그 부분의 눈은 쉬이 녹지 않는다. 분노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 속에서 내가 반복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음에도 그 때 그 때 적절하게 그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을 때 그것은 하나의 에너지장이 되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자리 잡는다. 그 에너지장이 건드려지면 우리는 바로 폭발하게 되어 있다. 빵~ 하지만 감정적으로 폭발한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 내가 품고 있던 분노 위에 한 층이 더 쌓인다. 그래서 분노가 무서운 것이다.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감정 에너지가 아니기에 한번 터지면 파괴력도 어마어마할뿐더러,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거나 정신진환까지 앓게 된다.

 

 

<분노 조절하기> 이 책에 사실 많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 동안 분노나 화와 관련된 많은 책을 읽었고 심리학 서적마다 다르게 해석하는 것을 보았고 나름대로 내 자신에게 적용해보거나 실천해본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나의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분노의 뿌리는 끝이 없었다.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기 전에는 나는 내가 굉장히 밝고 쾌활하고 긍정적인 사람인 줄 알았다.(가끔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이상하게 심사가 뒤틀려 판을 뒤엎기는 했지만.) 하지만 어떤 계기로 내 마음, 감정패턴, 행동패턴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헤쳐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꼭꼭 숨겨두었던 분노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부모님에 대한 분노, 남자에 대한 분노, 친구, 가족, 사회, 국가, 지구, 더 나아가 신에 대한 분노까지. 엄청나더라.

 

 

내 안에 그런 수많은 분노가 있고 그것을 녹여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노를 녹여내려면 일단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던 나는 내가 그토록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감정을 품고 있고 가끔씩 그런 감정을 표출하곤 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나는 늘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고, 자상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배려심 깊고, 누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다 알아서 처리하는 사람이어야만 했으니까. 내가 내 자신에 대해 ‘이래야 한다’고 만들어 놓은 틀들을 깨부수고, ‘저러면 안 된다’라고 금 그어놓았던 생각에 대해 유연해지면서 그 분노는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진행중이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 지금까지 심리, 상담학적 측면에서 접근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종교적인 해석을 통해 분노를 조절하고 녹여나가는 데 도움을 받고자 이 책을 펼쳤던 것인데... 사실 적잖이 실망했다. 그냥 이 분이 교단에서 신도들에게 하는 ‘말’들을 쭉 나열해 놓은 느낌이 들 뿐, 진심으로 이해받고 함께 아파하고 공감 받는 느낌이 안 들었으니까. 책은 읽는 사람마다 느낌이 다 다를 것이다. 이런 가르침? 이런 해석을 늘 접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말과 접근 방식이 편안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지적이고 해석적이고 교리적이라고 느꼈다. 서평단에 신청해 이 책을 받았으니 다른 누군가가 이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가져온 것인데... 내가 아니었으면 이 책을 맛있게 읽었을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들고, 책 내용을 가슴깊이 받아들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간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그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법에만 치우쳤던 다이어트 관련 도서 편식이 오랜만에 ‘균형’을 찾은 느낌이었다. <마인드 디톡스> 이 책은 말 그대로 ‘마음의 독소 제거’에 관한 책이다. 다이어트를 여러 번 시도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디톡스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무조건 안 먹기만 한다고 빠지는 게 아니라 몸 안에 있는 것이 잘 배출되어야 살도 빠지고 피부도 좋아지고 안색도 밝아진다는 것을. 그냥 안 먹고 빼기만 하면 변비 온다. 변비가 생기면 안색이 누래진다. 안색이 누래지면 백날 살 빠져봐야 하나도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건강해 보이지 않게 살 빼면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한다. 좋은 말보다는 부정적인 말. 너 그러다 쓰러진다, 얼굴색이 그게 뭐냐, 그러다 죽는다, 뭐 좀 먹어라, 설사약이라도 먹었냐, 어디 아프냐... 기껏 힘들게 빼서 자신 있게 힘주고 나갔는데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좋지 않은 말을 해대면 기운이 쭉 빠진다. 빼느라 고생한 마음이 보상받질 못하니 만나고 돌아와서 혼자가 되면 폭식 터진다. 나 고생 했으니까. 다이어트에서 ‘디톡스’는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몇 년에 걸쳐서 혼자 살을 빼보니 ‘바디 디톡스’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마인드 디톡스’였다.

 

 

2년 전 1년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해 혼자 12kg를 감량했다. 집에서 혼자 유튜브 동영상을 틀어놓고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했고, 처음엔 국민체조로 시작해서 몸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 가지 운동만 반복하고 질렸다 싶을 때 즈음 운동 시간을 조금 더 늘리거나, 조금 강도가 쎈 동작이 들어간 운동 동영상으로 바꿔가면서. 1월 7일에 운동 처음 시작했을 땐 혼자 5분간 맨손체조 했던 것이, 그 해 12월 말이 되니 1시간 반 동안 쉬지 않고 빡세게 요가를 할 정도가 되더라. 겨울인데도 땀이 흠뻑 날 정도로 고강도 요가였는데도.

 

그렇게 해서 12kg를 건강하게 감량하고 나니... 사람이 욕심이 생기더라. 몸무게에 비해 더 작은 사이즈의 옷을 입고, 옷태가 달라지는 걸 느끼니 ‘조금 더 빼봐?’ 하는 마음이 생기고, 이미 내 키에 비해 약간 슬림한 몸이었음에도 더 빼게 되더라. 식단을 더 철저히 관리하고 운동 시간을 더 늘리고. 그 때부터는 하루에 운동을 거의 4시간씩 한 것 같다. 아침에 1시간 요가하고 1시간 걷고, 저녁에 1시간 반 요가하고 30분간 또 케틀벨이나 108배를 하고. 나중에 무릎에 통증이 느껴지자 ‘아, 이게 아니구나.’ 싶어 그만뒀지만, ‘좀만 더!’, ‘앞에 4자 한번 달아보자!’ 하면서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내 자신을 보니 왜 여자들이 거식증에 걸리는지 알겠다. 먹고 싶은 욕구보다 더 날씬해지고 싶은 욕구가 강할 때 사람이 맛이 가더라. 난 전에 거식증 걸린 애들은 운동할 생각은 없고 그저 쉽게 빼려고만 하는 골빈 여자애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건강하게 살을 뺀 상태에서 더 빼려고 하는 걸 보니, 이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운동을 조금씩 줄이고 먹는 양을 늘리면서 몸무게가 4kg 정도 더 늘었다. 하지만 요가 시간을 좀 더 줄이고 근력운동을 새롭게 추가한 결과 4kg 더 늘었지만 12kg 감량했을 때와 동일한 사이즈의 옷을 입게 되었다. 체지방은 줄이고 근육량이 늘어나면서 몸무게가 늘어난 것이다. 아울러 1200대 초반이었던 기초 대사량이 1350을 찍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운동 마치고 인바디 검사를 해준 트레이너로부터 “이제 많이 먹어도 별로 찌지 않고, 적게 먹는다고 확 빠지지 않는 몸이 되었네요.”라는 소리를 듣고 인사하고 센터를 나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혼자 기쁨의 고함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내가? 내가? 평생 30사이즈 이하 청바지를 입어본 적이 없던 내가? 항상 배에 힘주고 다녔던 내가? 팔뚝살이 덜렁대 민소매는 꿈도 못 꿨던 내가?

 

그 뒤로 꾸준히 운동과 식이조절을 병행해왔다. 한 5년 내 몸을 가지고 실험해보니 데이터가 쌓이더라. 나는 뭘 먹으면 바로 살이 붙는지, 무슨 운동을 하면 어느 부위가 잘 빠지는지, 뭘 하면 컨디션이 좋고, 살 빠지는 데 뭐가 가장 중요한지. 내 몸을 가지고 먹는 것 조절, 음식 종류 조절, 운동량 조절, 운동 종류 조절, 잠을 일찍 자보기도 하고 늦게 자보기도 하고, 채식을 해보기도, 육식을 해보기도, 생채식을 할 때도 있었고 1식을 할 때도 있었다. 먹는 것만 조절해서 살을 빼보기도 하고 운동만으로 감량도 해봤고 두 개를 조합해서 살을 빼보기도 하고... 책에서만 보고, 인터넷에서만 검색하고, tv에서 트레이너들이 나와 살 빠진다며 시연해 보이는 동작들을 보기만 할 때는 정말 그 모든 것이 ‘지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직접 내 몸을 가지고 시험해보니, 그게 나의 ‘경험’이 되고 ‘노하우’가 되더라.

 

하지만 건강하게 살을 빼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멘탈 관리’였다. 감정관리, 생각관리가 가장 힘들었다. 결국 음식 조절을 못하게 되는 이유는 내 마음이 불안정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였고, 마음이 불안정해지는 것은 내 멘탈이 불안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이나 상황 변화에 쉽게 휘둘리기 때문이었다. 백날 블로그에, 책상 앞에, 운전대에 ‘커피 마시지 말자’, ‘밀가루, 빵, 면 종류를 끊자’, ‘단 거 먹지 말자’ 써 붙여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은 하루를 마감하는 밤에만 유효할 뿐, 아침에 눈떠서 활동을 하며 갖가지 상황에 부딪히고 생각과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하면, 그것을 핸들링하기 위해 내 마음은 사력을 다하게 되고 도저히 핸들링이 안 될 때 나는 속으로 ‘단 거! 단 거! 단 거!’를 외치거나 ‘커피! 커피 한 잔만 마시면 살겠어!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혹은 프라푸치노)’를 외치며 음식으로 풀려고 하곤 했다. 그런 음식을 먹고 나면 당장 기분 나쁨은 좀 풀리지만 몸이 무겁고 뱃속이 편치 않은 느낌이 들었고, 그러면 후회감과 동시에 ‘내일은 하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해보지만 다음 날도 스트레스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내 마음은 또 먹는 걸로 도망치곤 했다.

 

그런 패턴을 반복해보니 결국 마음이 평온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운동을 많이 해도, 아무리 먹는 걸 조절해도 이 몸매를 계속 유지할 수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행착오를 반복해보니 1주일에 몇 kg빼는 거야 어렵지 않다. 2주일 빡세게 운동해서 팔뚝살, 허벅지 슬림하게 만드는 방법? 이제는 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변화한 것을 ‘유지’하려면? 마음이 편안해야 한다. 마음이 평온해야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지 마음이 불편하면? 언제든지 과거의 습관으로 도망가게 되어있다. 왜? 그것이 익숙하니까. 익숙한 것은 편하다. 마음이란 놈은 불편하면 언제나 ‘편안함’ 속으로 숨으려고 하게 되어 있다. 그게 장기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건 스트레스를 주건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편안하기만 하면 될 뿐.

 

 

변화를 ‘유지’하려면 결국엔 ‘마음을 다스리는 법’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어디서 도움을 받을까 찾아 헤매던 중에 이 책 <마인드 디톡스>를 만나게 됐다. 읽으면서 밑줄 칠만한 곳이 너무 많았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다보니 인간관계에서 미묘하게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잦았다. 때로는 말로 잘 풀었지만, 대게는 ‘내가 그 때 이렇게 쏘아붙일걸~ 바보같이 왜 참았지?’, ‘다음에 만나면 한방 먹여야지!’ 하면서 혼자 이불속 하이킥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 좋은 사람인 척 하면서 속에 쌓인 분노,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마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데도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속에 쌓이고 쌓여 그것이 폭식이나 과식,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 내 몸과 마음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터져나오곤 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 심하게 다투었다면, 내 내면에 존재하는 분노를 제거하라. 

누군가가 나와 다른 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그렇게 분노할 필요가 있는가?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 현실이다.”

 

“하나, 그 사람도 나처럼 인생에서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

둘, 그 사람도 나처럼 인생에서 고통을 피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셋, 그 사람도 나처럼 슬픔, 외로움, 절망을 겪어 왔다.

넷, 그 사람도 나처럼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섯, 그 사람도 나처럼 인생을 배워가고 있다.”

 

인간관계와 관련해 책 곳곳에 인용된 구절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나만큼이나 상대도 행복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드니 ‘절대악’ 내지는 ‘적’으로만 느껴지던 상대에게 묘하게 연민의 감정이 생기면서 분노와 미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마음들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작가가 비만에 대해 내린 정의가 참 속시원했다.

 

“비만이라는 상태는 내가 불만을 가진 다른 모든 상황이 불러일으킨 결과다. 그리고 그 불만스러운 상황의 바탕에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모습이 되려고 애를 쓰고, 그런 나를 사랑하도록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러한 나의 행동과 노력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맞다, 맞는 말이다. 내 스스로 결단을 내려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의 종류와 양을 선택하고, 무거운 엉덩이를 바닥에서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운동을 했었는데... 매순간 내가 나를 일으켜 세우고 무엇을 먹을지, 언제 먹을지, 얼마나 움직일지, 어떻게 움직일지를 결정했는데 그럼에도 내 눈은 늘 밖으로 향했던 것 같다. 저 사람처럼, 저 몸매처럼, 저 옷에 맞춰서...

 

그 외에도 밑줄 그은 페이지가 너무 많다. 서평을 쓰기 위해 일독한 지금, 사실은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마음이다. 한번 읽어서 될 내용이 아니다. 두 번, 세 번, 읽고 싶다. 책 속에 있는 내용이 내가 모르는 내용들이냐? 아니다. 다 아는 말이고 어느 책에선가 읽어본 구절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인드 디톡스>가 그토록 마음에 다가온 것은 그 구절이 단순히 책 속의 ‘글’이 아니라 가슴에서 느껴질 만큼 내가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는 소리이다.

 

 

“절대 후회하지 마라.

 

좋았다면 추억이고,

 

나빴다면 경험이다.”

 

이 한 구절을 가슴에 새긴 것 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었다!

 

 

 

 

 

 

 

 

 

“나에게는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한 구절을 읽는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한 번도 내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완벽주의자였다. 잘하는 부분도 있었고 잘 못하는 일도 있었다. 당연하다. 난 인간이니까. 다 잘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머리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감정적으로는 내 스스로에게 모든 것을 다 잘하라고 윽박지르곤 했다. 물론 주변에서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러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아주 어릴 때부터 내 스스로 ‘나는 모든 걸 잘해야 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물론 잘해야, 인정받아야, 칭찬받아야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는 존재감이 부각될 수 없으리라 믿고 아주 어릴 때부터 애를 썼다. 사랑받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애를 써야 누구든 나를 돌아봐주었고, 나를 돌아봐줘야 내 욕구가 충족되었다.

 

그런 삶에 백기를 든 것이 첫 번째 직장생활 3년차 때 즈음이고 두 번째가 지금이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의 그 감정의 회오리가 10여년이 지난 요즘 다시 반복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책에 관심이 갖는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 자립과 의존의 심리> 제목만 봤을 때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니 정신 차려!’ 하는 자기 계발서의 흔한 동기유발형 문구 같지만, 가토 다이조라는 저자명을 읽는 순간, 그 정도 수준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느낌이 왔다. <나는 내가 아픈 줄도 모르고>,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심리학>,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등 전작들을 관심있게 봤던 작가이기에 믿음이 있었다.

 

처음부터 74page까지는 정신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봤다. ‘나는 왜 자립하지 못하는가’, ‘의존하려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무조건적인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수라장을 두려워한다’는 타이틀 아래 지금 고민에 잠겨 있는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의존과 공포를 직시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마음의 지주’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겉으로는 독립적이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사실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고민하느라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불유쾌한 결과를 책임지고 싶지 않아 차라리 남이 결정해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많고, 늘 버림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며 예의와 미소, 친절로 나 자신을 포장한 채로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항상 유지하려 하는 것, 그러면서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고 지내지 못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불만을 갖고 있는 나에게 꼭 들어맞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75page, 100page가 넘어가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 알아, 안다고!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속에서 열불이 터질 만큼 책은 계속해서 심리적으로 자립하지 못하고 늘 타인에게 의존하고 책임지길 두려워하고 그러기에 감정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홀로서기를 못하는 인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확 던져버릴까 할 때 즈음, 194page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대목부터 실질적인 해결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온통 문제를 낱낱이 까발려놓는 수준이어서 초반에는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지만 중반부터는 ‘그래서 해결책이 뭔데?’는 의문이 떠오르고, 뒤로 갈수록 ‘아, 그래서 어쨌다고!!! 답을 줘, 답을!’ 속에서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었다.

 

 

저자는 모든 마음의 문제가 자신에게 ‘마음의 지주’가 없기 때문이며 그 마음의 지주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게 아주 구태의연할 수 있지만, 사실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나는 무척 다가왔다. 가슴 깊이 다가왔다.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든다. 아침이면 정해진 시간에 일어난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매우 당연한 생활을 한다. 이것이 기분이다. 그러나 에너지가 부족하면 당연하고 평범한 생활도 어긋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당연한 생활을 하지 않으면 에너지를 잃는다. 따라서 당연한 일이 어긋나거나 어떤 악순환이 시작되려는 조짐이 보일 때에는 즉시 생활을 바꾸어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고, 아침이면 알람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자신에게 마음의 지주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면 일단 당연하고 평범한 생활을 통하여 마음의 지주를 세워야 한다.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 일류 대학에 가면 행복할 것이다, 마음의 지주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행복의 의미를 모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행복을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10만 원짜리 값비싼 밥을 먹으면서 행복을 느낀다. 그 결과, 신경증에 걸린다.”

 

 

맞는 말이다. 늘 무언가 어긋난 느낌이 들고 잘못된 것 같고, 내 자신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이 들고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리기 시작할 때 나를 보면, 일단 생활패턴이 엉망이 되어 있을 때였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자고. 대개 핸드폰이며 컴퓨터, 그 외 내가 즐기는 것들로 밤늦게까지 깨어 있는 생활을 장기간 반복했을 때 저런 감정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돈, 일류대학, 그리고 과시형 소비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하는 패턴은 간판 좋은 직장 다닐 때 많이 해봐서 잘 안다. 한 끼에 10만원, 20만원, 백화점 한번 가면 100만원씩 써대도 결코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이 물질 위주의 세상에서 물질을 가지고 ‘이걸 하면 즐겁다더라.’ 하는 일은 다 해본 것 같다. 그리고 ‘물질로는 결코 진정한 만족감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내 몸과 마음으로 확인했다.

 

 

가장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가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 ‘새로움’ 혹은 문제를 해결하는 빗장을 여는 열쇠가 된다. 언젠가 지금도 현역에서 활동 중인 유명 모델의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는데 그 분야에서 탑의 위치에 오른데다 성격적으로도 오지랖이 넓어(나쁜 의미가 아니다) 후배들의 인생 상담을 자주 받곤 하는데, 한숨과 눈물로 후배들이 자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소리가 “니 방이면 먼저 청소해, 이 가시나야!”라는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이 여자애, 생각 제대로 박혔네!’ 맞다. 방이 엉망인데 그 마음인들 말짱할 리가 없다. 책상 위가 쓰레기장인데 머릿속이 질서정연할 리가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안 한다. 그래서 문제는 더 꼬이고 해결은 어렵게만 보인다. 하지만 일상의 가장 당연한 부분부터 직접 손, 발을 움직여 바로잡아 나가기 시작하면 해결책이 팟하고 떠오르거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곤 한다. 규칙적인 생활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거. 그게 몸과 마음에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리고 먼 데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 둘러 둘러 빙 둘러 돌아오지만 우리는 결국 나 자신, 내 바로 눈 앞, 내가 살고 있는 ‘지금-여기’로 돌아온다.

 

그 외에도 아주 간단해 보이지만, ‘말’로만 받아들이면 뻔하게 느껴지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심장을 쿵쿵 두드리는 듯한 작가의 말이 이어진다.

 

 

#줄곧 ‘당했다’고 생각하지만 잃어버린 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생각에 매인 사람은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만이 존재할 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수십 년 전의 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다. “그건 내 선택이었어.” 이렇게 당당하게 인정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다. “그건 내 책임이었어.” “그래. 그건 내 판단이었어.” 당당하게 책임을 지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하면 나아갈 길이 열린다.

 

 

##“내가 불행한 것은 모두 부모 책임이야.”

이렇게 불평만 하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보면 세 살까지의 인간적 환경은 분명히 큰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나는 인간에게 두 번째 생일이 있다고 믿는다. “지금 나의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부모가 아니라 내게 원인이 있기 때문이야.”라고 결단을 내릴 때,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 “부모만 원망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라고 깨닫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해.”라고 결단을 내린다면 그 순간이 두 번째 생일이다. 이때부터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길이 열린다. 이것이 인간의 존엄을 건 결단의 순간이다.

 

###열 명의 부모가 있다고 하자. 대부분은 사랑하는 능력이 없는 부모다.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역할로서는 ‘동메달’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어머니도 일에서는 ‘금메달’일 수 있다. 어머니에게 사랑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일은 잘할 수 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남자이건 여자이건 슈퍼맨은 없다. 사람은 자신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의 원인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나의 인생이야.”라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자립의 시초가 된다.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괜한 열등감은 백해무익이다.

 

이런 해결책(?)을 과거에 몰랐던 것이 아니다.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 아는 말이고 책에서, 누군가에게, TV에서, 인터넷에서 누누이 듣고 보고 알고 있었던 문구다. 하지만 다 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진짜 내 가슴을 두드리는 순간.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이 ‘마음’에 스스륵 녹아드는 순간. 이 책은 꼭 필요한 순간에 내게 온 것 같다. 뻔한 말을 뻔하지 않게 듣는 것, 그것은 뻔한 말을 요령 있게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꼭 필요한 순간에 그 책을 만나는 ‘타이밍’이 더 중요한 것 같다. 갑자기 뚝 끊기는 것 같은 결말도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고민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마음의 지주를 얻는 것으로 고민을 정리하고 완화시키는 것은 가능하다.”는 작가의 마무리 글에서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