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라니... 제목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요즘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참이었다. 비정상이 정상처럼 활개를 치고, 정상을 외치는 사람들은 내쳐지는 국가적 현실은 둘째치고라도, 내가 당장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되는 일을 계속 했어야 했으니. 종국에는 이 일을 하게 만든 상사가 미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혈변을 볼 정도로 상사가 미웠고 그 방식이 싫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직장생활 잘 하고 있었고 주변의 눈초리 따윈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잘 융화하는 것을 최대의 미덕으로 생각하던 나는 주변의 반응도 신경 쓰지 않고 잘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충격 자체였다. 상사인 그녀를 죽이든 내가 죽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치킨 게임(chicken gaem)을 매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몸이 망가질 지경에 이르렀지만 ‘나는 옳고 당신은 틀리다’는 내 틀을 조금도 바꿀 수가 없었고 ‘여기서 물러서면 나는 죽는다’는 위기감에 시달렸다.

그 즈음에 만난 저자의 이야기... 승승장구하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마음을 나눴던 오랜 벗의 죽음을 목격한 뒤 사회적으로 걸치고 있던 것을 모두 버리고 자기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짐만 지고 8년간을 걸었던 여자. 이 여자의 이야기에 가슴이 떨릴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저 여자처럼 다 버리고 싶다, 저렇게 버리고 떠나면 뭐가 나올까? 나는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에 아무 답도 얻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렇게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 그저 그렇게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되면 어쩌지? 책을 읽는 동안 오만 생각이 들었다.

 

책은 그녀의 특별한 자아 성찰적 사고나 철학적 사유에 관한 내용 보다는 실제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걷는 일정, 매일매일 일어난 일들,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나처럼 어떤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기대하고 읽기 보다는 당장 그곳을 걷겠노라 마음먹고 자료 서치 중인 사람들이 읽으면 세부적인 정보나 매일 매일 얼마나 걸을 수 있는지(물론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 사람이 걷는 속도나 거리를 알게 되면 일정에 대해 미리 가늠해보는 것이 가능하리라), 그 길을 걷는 동안 어떤 다양한 변수들을 만나게 되는지 실제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트레일 위에서의 삶은 행복의 기준을 상향시키기는커녕, 어마어마하게 끌어내렸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되돌아보면 

내게 진정 필요한 것이 얼마나 작은 지도 금세 알 수 있었다. 

먹을거리, 물, 온기, 궂은 날씨를 피할 장소,

 이 모든 것이 총 몇 킬로그램에 불과한 작은 배낭 안에 들어 있었다.

물론 내가 기대한 부분이 아주 채워지지 않은 건 아니었다. 책 속에 저 대목을 읽는 순간 눈물이 팍 쏟아졌다. ‘그래, 맞아... 별 거 없는데... 내가 뭘 그렇게 아등바등했을까...’

이 직장에 들어오고, 이 일을 시작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상사를 만난 것은 불과 두 달 전의 일이다. 두 달 전에는 이 직장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고, 이 일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지 못했으며, 세상에 이런 사람이 살든 죽든 나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두 달 후의 나는 이 직장에 목을 매고 있고, 엎어지던 자빠지던 상관없던 일이 아버지의 죽음만큼 중요해지고, 나와 아무 상관없는 ‘행인 1’이었던 상사가 이렇게 밉고 내 일상의 행복을 좌지우지 하는 존재가 되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때, 그 일의 존재조차 몰랐던 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되다니... 그럼 결국 직장, 일, 상사를 바꾸려고 할 게 아니라 그 세 가지 존재를 대하는 나의 ‘생각’만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다시 별로 중요하지 않고, 가족의 목숨이 걸린 마냥 간절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면 당장 하늘에서 벼락 맞고 소멸될 것처럼 두려워하며 전전긍긍 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모든 게 가볍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행복의 기준이 뭔가... 이 직장에 다니기 전에 내 일상의 기준은 뭐였나... 하루 세끼 굶지 않고 먹는 거, 가끔 친구들과 만나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거, 가족들과 함께 잠들고 아침에 눈뜰 수 있는 거, 철마다 다른 옷을 입을 수 있는 것, 좋아하는 산길을 걸을 수 있는 두 다리가 있는 것, 매일 매일 운동할 수 있을 만큼 체력이 좋아진 것... 그런 것들이 내 행복의 기준 아니었나?

 

트레일을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먹을거리와 물, 건강을 해치지 않을 만큼의 온기와 잠시 궂은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장소, 그것뿐이라는 작가의 깨달음처럼 나도 내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은 직장에서 빨리 자리 잡고, 과업을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상사로부터 전폭적인 지지와 서포트,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몸 건강히, 하고 싶은 일을 내 손발을 직접 움직여 할 수 있는 것, 가족들과 웃으면서 잘 지내는 것, 그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단순한가... 얼마나 간단한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게 그것뿐이라면, 그것으로 족하다면 나는 이미 다 가지고 있다. 매일 아침 요가로 하루를 시작하고 퇴근 후 운동 센터에서 운동할 수 있을 만큼 몸이 건강하고, 기존에 내가 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가족들과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나는 이미 행복한 사람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뭔가를 더 찾아다니거나 가지려고 아등바등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단순한 깨달음이... 나에게 얼마나 큰 평온감을 안겨줬는지 모른다. 늘 나에겐 뭔가 부족하고 모자라니 더 채워야 하고 더 가져야 한다는 조바심, 지금 이 수준에서 만족하지 말고 더 뛰어야 한다는 압박감... 달리고 달려도 결코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나의 목표치를 보며 좌절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다 가지고 있었고 이미 충분히 행복한 ‘나’였다.

 

저자는 8년을 걸은 뒤 깨달은 것을, 나는 저자의 생생한 이야기를 글로 들으며 깨달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 책의 미덕은 이것이다.

감사하다. 

나를 ‘늘 부족한 마음’이라는 지옥에서 꺼내준 것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미있게 살 순 없을까?”

‘글쎄올시다... 좋아하는 일이 계속 좋기만 할런지...’

처음 이 책을 만났을 때 이 도발적인 제목에 나도 모르게 냉소적으로 되뇌었다. 왜냐면 나는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나의 첫 직장생활 당시, 어릴 때부터 쌓이고 쌓였던 많은 문제가 터져 나왔다. 개인적인 문제 뿐 아니라 가족 내적으로도 문제가 있었고 거기다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원하는 일인지, 잘하는 일인지, 이 일을 해서 즐거운지, 20년 뒤에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을지 도무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매일매일 죽도록 일하고 퇴근해도 마음은 허했고 좋은 결과물을 얻어도 다음 프로젝트 때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불안하기만 했다.

불확신, 불안, 초조함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나는 여느 직장인이 그렇듯 영화, 쇼핑, 뮤지컬, 여행 등으로 풀었고 월급의 상당 부분을 쏟아 부어도 그 때 뿐 내 안의 공허함은 결코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개인 상담을 받게 되었고, 나는 상담사의 권유에 따라 직장을 그만두고 ‘나란 인간이 과연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는 데 시간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서 큰 기쁨과 보람을 맛본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뒤로 다른 사람을 직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직종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일 해왔다. 그럼 나는 지금 행복한 인간인가?

Nooooooooooooooo~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작은 것에 스트레스 받고, 예민하고, 성질 급하고, 속에 화가 많고, 직장에서 이 사람 저 사람 치받고 다니는 ‘문제적 인간’이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한다면서 한편으로는 동료와 크고 작은 감정적 소모전을 벌이는 내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스스로에게 실망했는지...

‘나는 애초에 이런 일을 하면 안 되는 인간인 건가...’

‘나 자신도 덜떨어진 인간이면서 누가 누굴 돕는다는 건가...’

‘오히려 상대를 더 망치게 되는 건 아닌가...’

나 자신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한다는 사람들이 벌이는 작태에 대해 실망과 환멸을 느껴가던 즈음 이 책을 만났다. <좋아하는 일만 하며 재미있게 살 순 없을까?>를 읽는 동안 내내 삐딱한 자세를 유지했다. ‘당신이 뭘 알아?’ 하며.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이렇다. 특히 어쩌면 저자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기에 더욱... 그러다 '구제 불능인 나와 친구 되기'라는 책 말미에 이르러 드디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인생의 힘든 시기에는 존경할 수 없는 자신과 마주치고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로 나중에 자기혐오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초조해서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 탓에 실수를 거듭합니다. 인생의 힘든 시기에는 반드시 이럴 때가 있습니다. (중략) 그럴 때 자신의 나쁜 면도 보게 됩니다. 남을 질투하거나 성공을 초조하게 갈망하는, 존경할 수 없는 자신과 마주치겠지요. 불안해하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나, 세상의 시선만 신경 쓰는 나, 평균 이하의 생활을 하는 나, 잘 안 풀린다고 화를 내는 나, 이런 나와 몇 번이나 마주칩니다. 그런 자신이 싫어집니다. (중략) 초조하고 불안해서 지나치게 부정적인 나, 열심히 해도 결과가 안 나온다고 짜증을 내는 나, 약하고 꼴불견인 나에게 관용을 베풀 수 없습니다.

그런 나 자신을 바라보기가 괴로워집니다. 그래서 아예 하고 싶은 일에서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달아나더라도 이번에는 그렇게 도망치는 자신이 더욱 싫어집니다.

마치 요즘 내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는 듯한 구절에 그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맞아... 다 아는데... 나도 이런 내 모습을 다 아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아는데... 왜 난 그렇게 못하는 거지? 왜 그렇게 안 하는 거지? 그러면서 매일 아침 출근해 남을 돕겠다고 천연덕스럽게 좋은 말을 늘어놓고...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거야...’

한참 그렇게 울다가 다음 챕터를 보니,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그 길의 일인지가 되는 장밋빛 성공 스토리가 아니어도 됩니다. 물론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진정으로 만족할 만한 이야기인지 마음에 남는 이야기인지는 결과와 그다지 관계가 없습니다. 결국 이야기의 핵심은 영화나 소설, 만화처럼 스토리 자체에 달려 있으니까요. 해피엔딩이지만 시시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새드엔딩이어도 참 좋은 결말이라고 여겨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처럼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절대적인 답이 없습니다.

순간 가슴에 쌓였던 모든 짐이 내려놓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어쩌면... 어쩌면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만나면, 그 일을 능숙하게 되면 무조건 행복하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천직(天職)을 찾는데 골몰했고 실제로 천직을 찾았다. 하지만 내 기대처럼 결코 에브리 타임(every time), 올웨이즈(always) 행복하지 않았다. 첫 직장 때처럼 스트레스 받고 혼란스럽고 화나고 싸우고... 나의 미성숙함과 마주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때 가졌던 의문과는 분명 차이가 생겼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고 하는 동안 즐겁다는 것, 10년 뒤, 20년 뒤에도 이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이 일을 내가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서 즐겁고 보람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것으로 된 거 아닐까?

내 인생 이야기는... 나의 ‘직업 탐험의 세계’는 시중에서 날개 돋힌 듯 팔리는 자기계발서의 찬란한 결말과는 다른지도 모른다.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무엇이 ‘해피’한 엔딩인지 모르는 거 아닌가? 새드한 엔딩이면 어떤가? 이걸 보고 “아... 정말 좋은 결말이었어.”라고 누가 이야기 하는가? 남이? 가족들이? 친구가? 직장 동료가? 그 사람들이 나의 인생, 나의 엔딩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보는가가 아닌가?

내가 원하는 결말이 모든 사람이 “잘 살았어!” 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엔딩인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결말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누군가가 알아주는 결말인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결말은... 모든 과정이 아름다웠던 결말이다. 내가 원하는 결말은 그 길을 걸었던 과정, 과정이 맛있었던 결말이다. 남이 어떻게 보는가와 상관없이, 매 순간 내가 맛을 음미하며 걷는, 결말보다 과정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내가 바라는 진정한 엔딩이다.

그럼 이제 답은 정해졌다. “즐기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나의 서투름을, 내가 아는 만큼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을. 내가 얼마나 이 일을 잘하게 될 지는 상관없다. 내가 롤 모델로 삼은 분보다 잘하게 될지 그보다 못하게 끝이 날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이 길을 걷는 동안 내가 즐겁고 행복한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한 거다.

간절하지 않을 때 이 책을 만났다면 아마 ‘흐응~’ 하고 콧방귀 한번 뀌고 말았을 것이다. 대충 훑어보고 ‘으응~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간절할 때, 정말 스스로가 한심해보이고, 사방이 막혀있는 듯 느껴질 때 만난 이 책은... 그야말로 동아줄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자기비하의 늪에 빠져 익사하기 직전의 나에게 세상이 던져준 동아줄. 너무 고맙다. 너무 고맙다.

기나긴 인생, 절대로 장점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인생의 전환기에는 반드시 자신의 약한 부분이나 추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중략) 스스로에 대해 너무 초조해하지 마세요. ‘제구실은 조금 못해도 인간미가 있지’라며 자신의 단점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보세요. 존경할 수 없는 자신에게 관용을 베풀어보세요. 그런 진정한 자기애가 있어야 인생을 바뀌기 위한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구체불능인 나와 친구가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아무리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일대 전환을 하는 힘든 시기에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라고 또 한번 위로의 말을 던져준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자네, 일은 재미있나?”

책 제목을 보는 순간 ‘이건 봐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오랜 프리랜서 생활을 끝내고(사실 ‘프리랜서’라 쓰고 ‘걸뱅이’라 읽어야 맞겠지만), ‘조직’이라는 곳에서 한 달 반째 일하던 참이었다. 어떤 상황이었을지는 더 길게 쓰지 않아도 다들 짐작이 갈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정말 비효율적이고 틀린 방법인데 그 동안 조직 내에서 통용되었던 방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매일 매일 자행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속이 뒤틀리다 못해 이 모든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만든 선임을 죽이고 싶을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왜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될까?’ 의문을 품고 있는데 오로지 처음 그 방법을 만들어 낸 선임 혼자만 행복하고 편하고 용기를 내 그 방식에 이의한 사람은 소리 소문 없이 관련 업무에서 손 떼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자리와 방법을 견고하게 쌓고 있었다. 얼마나 화가 나던지... 그 사람을 미워하며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기존 프로세스를 바꿔보려고 죽도록 일했고 그 결과 일 처리 속도는 확실히 빨라지고 ‘조직’ 내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나의 포지션을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지만, 나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다. 몸이 피곤한 것은 둘째 치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든,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없는 양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선임이 미워서 죽을 지경이었다.

‘저 인간만 없다면... 저 인간만 사라진다면...’ 나도 모르게 그런 마음으로 매일매일 일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무리 일의 결과가 좋아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나는 점점 불행해져갔다. 세상에 누군가를 미워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그러던 와중에 ‘내가 일 처리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근본적인 인식에 이르렀고 해답을 찾는 와중에 <자네, 일은 재미있나?>라는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아인슈타인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The definition of INSANITY is to do the same thing over and over, and respect the different result.” 너무나 가슴에 깊이 와 박혀서 영어 원문을 늘 외우고 다닌다. “한글로 번역하면 미친 짓의 정의는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가! 그런데 나는 그 바보 같은 짓을 몇 십 년을 반복하고 있다. 늘 같은 부분에서 사람과 부딪히고, 늘 같은 문제에서 번번이 화가 나고... 늘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상대를 공격하거나, 아니면 상황에서 회피해버리거나. 때론 겉보기에는 문제 해결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상대에 대한 공격을 교묘하게 포장한 것이거나, 회피하는 패턴의 일환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런 내게 이 책에서 가장 큰 목소리로 이야기 한 것은 “매일 매일 달라지라!”는 것이었다. 과거보다 더 나은 사람, 훌륭한 사람으로 변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제 했던 양에서 조금만 더 많이 해보거나, 피해버린 것이 있다면 조금 시도해본다든가, 문제가 생겼다면 답을 궁리해본다든가 그저 어제와 ‘조금 다르게’ 해보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간단한 말인가... 하지만 실제로 나는 얼마나 그렇게 살고 있는가... 그냥 그것이 가장 ‘익숙’하고 ‘간단’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고통과 불행, 스트레스로 밀어 넣고 있으면서 같은 방식을 얼마나 되풀이하고 있는지...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문제는 실험을 하라는 신호인 셈이야.

그리고 각 실험은 세상에 던져진 질문인 셈이고.

그리고 각기 그 답들은 하나의 여행이라네.

인생이 알아서 여정을 짜도록 놓아두게나.

자네가 할 일은 짐을 가볍게 꾸리고 사진기를 가져가는 정도라네.”

책 속에 등장했던 맥스 엘모어라는 현자(賢者)가 주인공에게 들려주는 말은, 어쩌면 나에게 해주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미워죽겠는 그 선임이... 내가 가지고 있던 인간에 대한 오랜 고정관념을 깨라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거라고... 나만의 방식, 다수가 선호하는 방식만이 정답이 아니라 그저 사람마다 ‘다른’ 방식이 있는 것뿐이라고... 그저 나와 다를 뿐인 것을 ‘저 사람은 틀렸다’고 정의내리고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화내고 싸우며 결국 상대가 링에서 물러나든 내가 자진해서 흰 수건을 던지고 내려오든 그렇게 파괴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이끌어갔던 방식을, 문제를 해결했던 패턴을 이제 그만 끝내라는 신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이 참 고맙다. 직장에서 이렇게 힘든 상황이 아니었으면 이 책은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장 목마른 부분에 시원한 단비를 내려준 이 책, 직장 책장에 꽂아두고 두고두고 읽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