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전쟁이 일어나면 여자는 남자에 비해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는다. 전쟁터에 나간 남자를 대신해 후방을 지켜야 하고,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며, 온갖 부역에도 동원된다. 여자들은 전쟁터에서 조국을 위해 싸우는 남자들을 자랑스럽고 존경스럽게 여기는 동시에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조국의 여성'이 되어야 하는 의무를 강요받는다. 남성에 의한 순결 이데올로기는 전쟁 중에도 수그러들지 않으며, 그것에 길들여진 여자들은 적군에게 무방비로 노출된 상황에서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다시 한번 시달려만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베를린에 거주하던 한 여성의 일기를 묶은 것이다. 베를린에서 처음 전투가 벌어지던 날 시작된 일기는 계속된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를린의 모습과 민간인들의 처참한 생활상을 서술했다. 하루하루가 죽음과 맞서야 하는 날들, '회오리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바로 다음 순간을 예측하지 못하는 불안한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 계속된다. 무차별적인 폭격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다름아닌 굶주림이었다. 배급은 점차 줄어들고, 남은 것이라곤 썩어가는 감자나 길에서 뜯어온 쐐기풀뿐이다. 거기에다 “독일인들을 8주 동안 굶기기로 결정했으며, 아이들은 죽어 자빠지고, 노인들은 짐승처럼 풀을 뜯어 먹고 산다”는 둥의 갖가지 소문은 남아 있는 자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원래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신여성의 출현은 근대성의 주요한 표상이었다. 예를 들어, 전근대 사회에서 외모가 전통적 기준으로 표준화되었다면, 근대 사회에서의 외모는 근대적 자아를 성찰적으로 투사하는 데 중요한 요소였다. 짧은 다리와 통통한 몸, 쌍꺼풀 없는 눈을 가진 전통적 여성상 대신, 길고 곧게 뻗은 다리와 늘씬한 키, 단발로 자른 머리를 당당히 쳐들고 걷는 신여성의 몸은 그 자체가 근대성을 나타내는 기표로 작용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이화여전과 같은 근대 학교제도, 카페와 같은 도시의 소비문화, ‘숍 걸’, ‘버스 걸’ 등 신여성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근대와 맞물려 분석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대성의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전통과 근대의 상호작용에 주목할 때, 신여성만큼 근대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존재도 없다. 신여성의 정의와 실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지만(2장 참조), 대개 근대적 지식을 갖추었느냐 아니냐로 정의할 수 있다. 특히 1920년대에 두드러졌던 신여성에 대한 찬미는 근대에 대한 동경에서 비롯했다는 점에서 근대의 표상과 관련된 모든 것이 곧 신여성의 표지로 인식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근대성의 외피를 뒤집어씀으로써 남성 중심성에 도전하였던 신여성과 이에 대해 전통이라는 이데올로기로 거세게 대응하였던 주류 사회의 반발을 직시함은, 서구의 근대도 일본의 근대도 아닌 ‘우리의 근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아기를 적게 낳는 사회적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점점 미혼모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입양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게다가 미혼모에게만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것이 현 사회의 분위기다. 그리고, 피임에 대한 지식이 없고 부주의한 여자고 결론을 짓는 경우, 성폭행을 당한 뒤 병원에 가거나 범죄자를 고발하지 않고 공포에 휩싸인 채 임신된 사실을 은폐하고 뱃속의 아기를 키워 오면 어리석은 여자로 지목되어 비난의 화살이 오히려 피해자인 여자 쪽으로 돌아온다. 즉, 원치 않는 임신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의 잣대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 안타깝게도 미혼모, 성폭행으로 임신된 아이, 경제적 환경 때문에 출산을 두려워하는 산모... 임신과 출산이라는 축복에 가득 차야 마땅할 일이 오히려 절망이 되는 이들을 위해 살아온 저자가 그간의 경험을 글로 옮겼다. 출산 자체를 고통스러워해야만 했던 산모들의 절망을 함께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 저자와 주변 사람들, 산모와 아기의 땀과 눈물이 묻어난다. 아무도 원하지 않더라도, 그 태어남만으로도 세상에 내려진 또 하나의 축복임을 증명하는 아기들의 환한 미소는 읽는 이들에게 감동과 열린 마음, 생명에 대한 재인식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라일라 모이지히는 임신을 숨기고 그로써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여성들과의 만남을 보고한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섬뜩하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이며 한편으로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