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 그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구름, 몽글몽글한 캐릭터,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평온 그 자체의 이미지지만 인상만큼은 무척 강렬해서 ‘지브리’라는 이름을 보고 특유의 그림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그래서 처음 <지브리의 천재들>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당연히 이 책은 토토로, 포뇨, 가오나시 등의 초기 캐릭터 일러스트나 채색 전의 배경과 같은 이미지가 곳곳에 배치되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8 페이지 남짓의 대표작 포스터를 제외하면 100% 글로 구성된 책이었다. 본격적으로 읽기 전에는 그 부분이 못내 아쉬웠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지브리의 그림 이면에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 깊게 빠져들었다.

주로 지브리의 작품 하나하나가 탄생하기까지의 에피소드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관객에게 평온함을 안겨주는 작품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긴박하고 처절한 작업을 통해 탄생되는 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유머 포인트가 도처에 깔려 있어 뭉클 했다가도 피식 거리게 되는 기묘한 긴장감이 유지된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과 같이 국내에서는 그렇게 인지도가 높지 않은 작품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올 때면 또 이걸 봤다는 묘한 자부심 같은 것이 발동해서 은근 반가운 마음이 든다(아~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아시는구나~). 거의 모든 작품이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도 참 신기한 포인트.

애니메이션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의 지브리를 만날 수 있어 지브리 찐팬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다음에 문제가 된 것은 제목이다. <붉은 돼지>로 정했다고 말하자 가와구치는 “네…? 돼지라구요?”라고 한 채 잠시 뒷말을 잇지 못했다. 회사로 돌아가서 그는 여직원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들 “네? ‘붉은 노래’요? 제목 좋은데요?”라고 좋아했다고 한다.(일본어로 돼지는 ‘부타’이고, 노래는 ‘우타’이다) – p120

평소에 홍보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미야(미야자키 하야오)가 웬일로 내 방을 찾아왔다. “스즈키 씨, 왜 가오나시로 홍보하지?” “이건 치히로와 가오나시의 이야기 아닌가요?” “뭐?” 그는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치히로와 하쿠 이야기잖아…?” 홍보 관계자뿐만 아니라 감독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만드는 당사자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다. – 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