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 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 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 본문 179

 

 

*

이기호의 새 소설이 나왔다. 작년에 소설집 이후 이번엔 장편 소설이다.

제목은 <차남들의 세계사> 제목만 보고 난 장남이 아니라 차남으로 태어난 차남들의 슬픈

사연들을 모아놓은 채인가 했다. 그렇다면 다음엔 삼남들의 세계가 있고 장남들의 변명사가 있을

것인가. ㅋ 그러나 그 차남이 아니다. 첫째가 아니고 둘째인 남자는 아니고 애미 애비도 모르는

그래서 자신이 장남인지 차남인지 알 길 없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다만, 그는 택시는 모는 남자다.

그럼 이 차남은 차를 모르는 남자인가, 아니면 차가운 도시남자인가, 차를 타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는 남자인가 말이다. ㅋㅋ 어째든 차남들의 세계사이다.

 

제목을 놓고 괜히 이런 저런 단상에 빠졌다 펼쳐든 책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이기호 작가는 재미있는 작가다. 꽤나 말빨 아니 글빨이 있어주는 작가로 쳐주면서 유머감각이

있다고 일컬어지며 나름 새로운 관점이나 시도를 자주 해왔다고 생각한다. 이번 책에서도 그러하다.

각 챕터들마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이 이야기를 읽고 듣고 느껴보라고 권하고 있다.

처음엔 그게 나름 재미있었는데, 읽다 보니 살짝 거슬렸다. 뭐 후반부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읽었지만, 그게 이야기를 많이 흐리는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꽤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해보고자 하는 시도였으리란 생각은 든다. 아닐까나? ㅎㅎ

 

이 책의 배경은 전두환 통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이들은

믿지 않을 황당한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났고, 그 시절을 살았던 이들도 다시 돌아봐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일어났었나 하는 일들이 벌어졌던 시절이다. 벌서 그 시절이 30년이나 더 지난 시절이고

우리는 더이상 군인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된 시절에 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뭐 또다른 독재자의 따님이 대통령인 시절에 살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다.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고, 뒤로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알 수 없는 것이지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전두환 통치 시절을 살아가는 가난하고 힘없고 빽없는 한 사내의 이야기다.

"세상이 고수에겐 한 없이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지만, 대다수의 하수에게는 한없이 괴로운

생지옥일 뿐"이라고 영화 신의 한 수에서 그런 대사가 나온다고 한다. 그 말 참 명대사다.

있는 사람이 살기엔 이 세상이 얼마나 따뜻하고 즐겁고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나 없는 이가 살기엔

이 세상은 고역의 아수라장일 뿐이다. 아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건 더 없는 남자가 어느날

범죄자가 되고 빠져나올 길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책은 분명 페이지가 팍팍 나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그리 재미있지가 않다는 것이다. 왜냐 나 역시 주인공과 별 반 다르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역시 30년 전 그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마냥 그땐 그랬지 하면서 웃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웃긴 웃지만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하면서 읽게 된다. 파바박!! 페이지는 넘어가는데...

 

뭐,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이 책이 엄청나게 처절한 현실의 이야기라고 보면 그건 또 곤란하다.

이기호의 소설들의 다 그렇듯, 유머가 개그를 바탕으로 그리고 작가 틀유의 글빨을 날리는

이야기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황과 처지 그리고 힘없고 빽없고 배움도 부족한 주인공에

대한 슬픔을 깔고 가는 웃음이기 때문에 안쓰럽고 어처구니 없고 씁쓸하다는 거!

이기호의 새 장편 소설은 재미있지만, 웃지만 웃는게 전부는 아닌 뭐 그런 이야기였다.

아아~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나는 이기호 장펴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 였다.

- 다락방서 허뭄

 

 

선생님은 남과 다르려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만큼

똑똑한 분이다. 수업 시간에 항상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가에 대해.

하지만 자신이 치러야 하는 대가에 대해 결코 불평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더 돋보인다.

- 본문 160

 

 

 

*

남과 다르고 싶다고 바라는 건 남과 똑같다는 반증이다. 남과 다른 사람들은

남과 다르길 바라기 보다 그저 평범하고 싶기를 바라게 되니까.

사람은 왜 그렇게 가지지 못하는 것에 집착하게 될까.

 

십대 때는 어른들이 우스웠고, 세상이 만만했다. 사춘기 시절이란 세상과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자기 자신 마저도 개똥같다고 여기게 되는 시절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그래도 좀 잘생긴

개똥 좀 괜찮은 개똥이 아닐까 하고 착각하게 되기도 하는 시절이기도 하고. ㅋ

 

허나 돌아보면 고민을 하고 상처를 받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던 그 시절을 그래도 나름

그럭저럭 잘 지내왔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럭저럭 많이 무너지지 않고 지나갈 수 있던 데에는

친구가 있었고, 책이 있었고, 가뭄에 콩나듯이지만 멋있다고 생각한 어른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개똥같은 어른 중 하나네.. 하는 씁쓸한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도 좀 괜찮은 개똥일라나. ㅋㅋㅋ

 

매튜 퀵의 소설<용서해줘, 레너드 피콕>을 읽었다. 매튜 퀵의 소설은 이번이 두번째인데,

전에 읽은 것은 < 보이21>  http://guana76.blog.me/90185962492 이었다.

그 소설은 농구를 소재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한 책이었는데 그때도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번책, 이 책의 주인공도 십대다. 이 책 역시 성장소설로 생일날 친구를 죽이고 자살을 하려고

계획한 레너드 피콕의 이야기이다. 매튜 퀵은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다루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읽다 보면 잊고 있던 그 시절의 심리와 까칠함 불안함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아, 그랬지..

하고 그 때의 그 불안함이 마음 안쪽에서 스믈스믈 떠올라 물을 흐린다. ㅋㅋ

생일 날, 친구를 죽고 자살하기로 마음먹은 레너드 피콕, 결론은 기대와 같으면서 또 달랐다.

섵부른 교훈도 희망도 없이 그렇게 말이다. 자세한 건... 음.. 읽어보시라.

 

어른이 되어도 세상은 여전히 개똥같고, 사람들도 여전히 재미없고 때론 엿같은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끔 멋있고, 또 즐거운 이들을 만나게 된다. 불안하고 불행한 날들 사이에 빛나는

한 때들을 소중히 하는 법을, 어른들은 어찌어찌 겨우 익히게 된 존재들이니 말이다.

 

책에서 초반에 어른들은 자유를 이용해서 행복을 추구하지 않느냐고 묻는 게 나온다.

그 부분에서 양심에 찔릴 어른들이 많을 것 같다. 어릴 때 그렇게 바라던 어른이 되었고, 그때 우리들이

바랬던 그런 자유들을 얻게 되었는데 우리들은 왜 그 자유를 행복을 추구하는데 쓰지 않고, 다른

구속을 향해 쓰고 사는지 말이다... 자신있게 나는 행복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아마 그런 어른이 제일 멋진 어른일 것 같다. ㅎㅎ

 

<용서해줘 러너드 피콕>은 <보이21>에서도 그랬지만, 10대의 감성과 사춘기의 혼란스러움을

잘 그래내는 작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의 감정들이 마음속에 떠오를 것이다. 책은 390

페이지가 넘어서 꽤 두껍네.. 하고 시작했는데 페이지가 팍팍 넘어간다. 작가가 문장을 끝내주게 써서

라고 말하기에는 편집이 한 페이지에 글자가 많지 않게 해 놓아서이다. 물론 이야기도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데 분명 일조하고 있다. 이야기는 꽤 흥미롭고 재미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편집 때문에

페이지가 너무 두꺼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ㅋㅋ

이 책의 미덕은 사춘기의 심정을 잘 담아낸 성장의 이야기면서 현실의 지점을 핑크빛으로 포장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 같다. 청소년을 다룬 소설들 중 많은 책들이 미래를 포장하고 성급한 결론으로

넘어가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현실감각이 특히 더 좋았다. 그게 <보이21>하고는 또 다른 점이

아니었나 싶다. 영화도 만들어진다는데...근래 미국서 제일 잘나가는 작가라는데, 영화는 글쎄.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근래 두 권 새롭게 만나게 된 작가 매튜 퀵. 가볍고 즐겁게 읽히는 작가임은

분명한 것 같다.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이 그 때 그렇게 바라던 그 모습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사춘기를 잘 넘어온

어른들(^^;;;)도,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있는 애들도 읽으면 어떨까 싶은.

매튜 퀵의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 다락방서 허뭄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하고는 싫다. 아무렇게나도 싫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본문 62에서

 

 

*

사람들은 누구나 외롭다.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무하고나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쉬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화란 것은 쉽지 않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나누는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대화는 더더욱. 대화 보다 문자가 편하고 카톡이 더 편한 세상.

우리는 대화를 상실했다. 우리는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대개는 아무하고나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할 때가 더 많다. 그런 것들로 시간을 보내느라

진정 대화를 할 시간을 잃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할 할 시간을,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대화할 시간을.... 말이다.

 

쥘리 보니의 <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를 읽었다. 프랑스에서 건너 온 이 소설은

평범하지 않는 이력을 가진 작가의 화제성과 평론가들의 호평 속에서 프낙 대상을 수상하면서

등장했다고 한다. 처음 제목을 읽었을 때 나는 이 문장이 비유라고 생각했다. 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라니... 알듯 말듯 하지 않은가, 그런데 책을 읽고는 놀랐다. 왜냐, 그녀는 정말로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비유가 아니었어... ㅎㅎ

 

밴드를 하면서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던 베아트리스는 한 순간에 불타오르는 그런 삶을

동경하면서 집시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그런 삶에도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순간이 오고, 그녀는

생활과 현실을 위해 산부인과에서 간호조무사의 일을 시작한다. 그녀 자신도 두 아이의 엄마였고,

한 아이를 사산한 엄마였기에 산부인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춤을 추는 자유분방한 자신을 간호사의 복장 안에 숨겨야 했고,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보지

못하는 갑갑한 시스템 안에서 서서히 시들어 가고 있다...

 

생명이 태어나는 감동의 장소이면서, 생명이 시들어 사라지는 장소이기도 한 산부인과. 모성과 광기와

사랑과 증오와 환희와 절망이 교차하는 산부인과는 여자로서의 자신을 마주하면서 삶과 죽음을 맛보는

곳이기도 하다. 누구나 현실의 갑갑함에 둘러싸여 영혼이 시들어간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책은 그런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여성성과 삶과 죽음과 증오와 현실이 환희와 감동과

포장과 알맹이가 뒤엉킨 이야기이기도하다.

 

이 책의 원제는 <2호실>이다. 소설 속 베아트리체에게 중요한 곳이다. 그녀가 돌아다니는 모든

방들에는 각기 다른 여자들의 삶과 죽음이 들어 있고, 어떤 곳은 환희를, 어떤 곳은 절망을, 어떤 곳은

괴로움을 담고 있다. 우리들의 삶이란 그런 방들을 순례하는 일과 참 닮지 않았는가. 알몸으로 자유

롭게 비상하던 베아트리체가 간호조무사로 삶 속에 갇혀 버린 후 10년, 그녀는 다시 그 곳에서 벗어난

다. 날개를 단 영혼이 어디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설 속 주인공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고 했지만, 분명 그녀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사소설이다. 소설은 그녀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그녀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니다. 여자의 삶과 자유를 잃은 영혼과 생명과 죽음의 걸죽한 굿판의 춤 같은 소설

쥘리 보니의 <나는 알몸으로 춤을 추는 여자였다>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