펼쳐놓으니 포스가 상당하다. 오늘은 시즌 1을 먼저 본다.

3권 표지의 주인공인 김현수는 은퇴한 목수로서 블루 엔젤스의 감독이다. 오찬호 못지않게 시끄럽고 가벼울 때가 있지만, 야구와 팀원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정말 최고다! 이 감독님 때문에 울고 울었던 것이 몇 번인가.

<퍼펙트게임>에는 야구의 땀내와 흙먼지, 살아가는 고단함이 절절이 담겨 있다. 일요일에 만나서 야구 할 기대로, 힘든 일주일을 버텨가는 기다림이 담겨 있다. 결과와는 상관없이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울고 웃으며 이들과 같이 걷다 보면 어느새 야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겨 있을 것이다.

음식 관련한 책을 좋아한다. 한때는 요리 잡지를 정기구독한 적도 있는데, 요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였다. 실려 있는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는 것까지 나아가지 않는다면 요리책과 요리 잡지는 무용지물이지만, 나는 그냥 보고 군침을 삼키고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좋다.

<음식강산 1>(2013, 박정배 지음, 한길사 펴냄)도 그래서 읽었다. 산해진미 중에서 이번 1권은 '해', 즉 바다 생물들을 담아서 부제가 '바다의 귀한 손님들이 찾아온다'다. 바다 생물들은 생김새와 맛이 너무나도 다양해서 신의 창의성에 감탄하게 된다.

저자 소개부터 해야겠다. 방송 PD, 출판사 대표,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 등 다양한 일을 해왔고, 내가 정기구독했던 요리 잡지를 비롯해 다양한 매체에 음식 관련한 칼럼을 연재했다. 여행과 음식을 담은 책도 다수 펴냈다.

그래서 400쪽이 넘는 이 책은 2년간의 식행(食行)을 담아 맛과 멋과 지식이 듬뿍 배어 있다. 저자를 사로잡은 것은 문어, 대구, 바다장어, 민물장어, 전어, 홍어, 과메기, 도루묵, 명태, 꼬막, 굴 해서 총 11종이다. 작게는 28쪽에서 많게는 58쪽까지 차지하니, 하나하나의 설명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저자가 산지를 찾아가 실제로 겪고 찍고 먹은 이야기, 문헌에 등재된 지식 이야기, 다양한 맛집과 산지의 특징 비교, 사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주 익숙한 '명태'를 보자. 언제부턴가 살아 있는 명태가 잡히지 않아서 현상금까지 걸렸다는 이 명태는 생태, 동태, 북어 등 상태도 다양할 뿐 아니라 이름도 정말 다양하다. 우선 '명태'라는 이름은 이유원이 1871년에 지은 책 <임하필기>에 '명천에 태가라는 성을 가진 어부가 낚은 물고기'라 해서 이름이 지어졌다는 구절이 나온단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부북일기>이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북어가 등장한다. 명란젓과 창란젓 소개에 이어, 북어계를 평정한 황태를 소개하고 덕장을 직접 찾는다. 황태탕과 삼태탕을 먹는 것은 필수고, 황태의 역사까지 알려주고 있으니, 자료 조사에 들어간 품이 엄청나겠다.

생생한 해산물과 항구 사진들, 맛있어 보이는 음식 사진들,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 어디서나 참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 생물을 죽이는 것도 사람이지만 살리는 것도 사람이다. 명태처럼 자취를 감추었던 대구와 도루묵을, 인공 산란과 방류로 살려냈다니 말이다.

씨를 말리는 것이 아니라 먹을 만큼만 적당하게, 그들도 살고 사람도 사는 소비가 필요하다. 보이는 것마다 먹고 싶어서 침을 흘리며 할 말은 아닌가?

나는 맛집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지 못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좋지만, 기다리는 수고를 들이기는 아깝기 때문이다. 음식 만들기도 부담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나는 음식을 진정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대신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2012, 박찬일 지음, 푸른숲 펴냄)는 내게 딱 맞는 책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셰프가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추억을 풀어내니 말이다.

저자는 요리 솜씨만큼이나 글솜씨를 인정받는 셰프다. 나는 <백년식당>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국밥, 돼지갈비, 설렁탕, 추어탕, 빈대떡 등 너무나도 익숙해서 특별할 것 없는 요리를 내는 식당을 찾아가, 100년을 이어온 내공을 이야기하는 글에는 깊이와 정성이 있었다. 요리뿐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는 애정이 있었다.

이번 책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에는 그런 애정이 더 깊다. 그가 겪은 맛들과 추억이기 때문이다. 견습 생활을 한 이탈리아 시칠3리아의 요리 스승인 주세페가 소개하는 토끼 요리와 초콜릿 소스 이야기, 소 내장을 넣은 햄버거 이야기 등 이국적인 것도 있지만, 가깝게는 국수와 수박 화채, 만두, 마늘까지 정말 다양한 소재들에서 기억을 불러낸다. 1부는 국내 편, 2부는 외국 편, 3부는 문학 편이겠다.

1부 국내 편의 '수박과 화채'를 보자. 냉장고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고, 비닐봉지마저 없었다. 화채에는 얼음이 생명이니, 동네 얼음집에서 덩어리 얼음을 사서 새끼줄로 묶은 다음 녹기 전에 집으로 달려온다. 숟가락으로 떠낸 수박에 얼음을 넣어 화채를 만들면 수박 한 통으로도 일가족이 먹을 만했다. 저자의 수박 화채에는, 없는 살림에 저자의 집에서 곁방살이를 했던 외숙모의 추억이 곁들여 있다. 거기에다 수박을 익혀 먹는 서양 요리법도 추가된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외식이 지금처럼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짜장면과 돈가스가 정말 별미였다. 살아 있는 닭을 잡고 털을 뽑고, 백숙으로 만든 후에는 닭을 분배하는 데 아버지의 권위가 들어 있었다. 일본의 라멘에서는 샐러리맨의 쓸쓸한 어깨를 떠올린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맛의 세계를 돌다 보면,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저절로 뱉게 된다.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먹고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