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혼자 있기 좋은 날>(2015,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예문사 펴냄)로 아쿠타가와상에 대해 소개했고, 이번 주에는 <플라나리아>(2016,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예문사 펴냄)로 나오키상에 대해 소개하겠다.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은 둘 다 일본 문학 잡지인 <분게이슌주>를 창간한 기쿠치 칸이 1934년에 만들었다. 아쿠타가와상은 1927년 사망한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려 만들어져서 주로 순수문학 작품에 수상되고, 나오키상은 1934년 사망한 일본 소설가 나오키 산주고를 기려 만들어져서 주로 대중문학 작품에 수상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뚜렷하게 구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평이다.

<플라나리아>는 2001년에 제124회 나오키상을 받은 작품으로, '플라나리아', '네이키드', '어딘가가 아닌 여기', '죄수의 딜레마', '사랑 있는 내일'이라는 다섯 작품이 실린 작품집이다.

표제와 같은 '플라나리아'는 25살 때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오른쪽 가슴을 절제한 '나'가 주인공이다. 수술받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호르몬 주사를 맞고 약을 먹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나는, '유방암 환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가족과 연인을 힘들게 한다. 그러면서 다음에는 아무리 잘라도 죽지 않고 다시 재생되는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을 연민스러워하며 현재의 고통에 머무른다고 할까.

'네이키드'는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가게에 전념하다가 남편에게 버림받고 이혼당한 '나'가 주인공이다. 너무나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성공의 길에서 떠밀려 내려오자, 손뜨개 인형을 만들고 인형 옷을 만드는 등 시간만 때우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일에 대한 제안을 받고, 예전 직장 부하 직원이던 '루저' 스타일의 남자 치비켄과 만나면서 삶의 여유와 성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딘가가 아닌 여기'는 남편이 구조조정을 당한 후 아이들 학비 때문에 슈퍼마켓에서 야간 근무를 하게 된 주부의 이야기이고, '죄수의 딜레마'는 대학 박사 과정으로 공부 중인 남자와 사귀면서도 결혼은 부담스러워하고, 직장 일과 관련된 남자들과 바람을 피우는 여자의 이야기다. 심리학에서 나온 '죄수의 딜레마'는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써 큰 처벌을 받는 이들의 심리를 말한다. 마지막 '사랑 있는 내일'은 유일하게 남자가 화자인 소설인데, <심야식당> 마스터가 생각나는 차분한 이야기였다.

누구 하나, 잘나가는 사람이 없다. 병에서 마음으로는 회복하지 못한 사람, 성공과 사랑 모두에서 멀어진 사람, 엄마와도 아이들과도 갈등을 겪는 사람,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 작은 선술집을 운영하는 사람. 이 소소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일상은 그야말로 소소하고 앞날도 불투명하지만, 세상에 대한 작은 희망이 간간이 들어 있다. 책 앞에 실린 나오키상 심사평에는 ''사람은 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라는 근원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시원시원한 문장으로 매력적인 단편을 만들어냈다'고 묘사된다. 일하러 가는 길에,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일하는지 다시 생각했다.

요즘처럼 먹는 것에 관심이 쏠리는 때도 없는 듯하다. TV를 틀면 여기저기에서 먹방이 줄을 잇고, 스타들이 맛집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는 것을 구경하는 데서 벗어나, 이제는 연예인들과 셰프를 꿈꾸는 이들이 직접 만들고 비법을 나눈다. 최불암 님은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매주 '한국인의 밥상'을 차려내고, 얼마 전 시작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상금 2억 원을 걸고 최고의 셰프를 뽑는다.

그러나 음식은 단순하게 생존을 위한 열량과 맛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그 안에 정치를 담고 있다. 김영삼 대통령 하면 완도 멸치로 국물을 낸 칼국수가 떠오르고, 박정희 대통령 하면 암살되던 날 거나하게 차려놓은 술상이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미움을 받아 단두대에 올랐다.

<음식이 정치다>(2016, 송영애 지음, 채륜서 펴냄)의 저자는 머리글에서 '음식이 정치고, 정치가 음식이다'라고 말한다. 국민들이 잘 살게 하는 데는 음식도 중요하지만 정치도 중요하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이밥에 고깃국 먹게 해주겠다'라는 공약이 회자되었고,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글에서 펼쳐놓는 '우리나라 음식과 정치의 공통점', 즉 '지역색이 뚜렷하다, 연대가 필수적이다, 자극적이어야 살아남는다, 고유의 맛과 향기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한다'라는 점에 공감이 간다. 마지막 공통점은 이제 제발 사라져야 하지만 말이다.

저자는 '음식의 정치', '정치의 음식', '배반의 음식', '화합의 음식'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로 우리나라 정치와 역사, 사회, 문화를 다양하고 맛깔나게 담아냈다. '음식의 정치'는 멀리는 조선 시대 임금님의 수라상에서 가까이는 안철수 의원의 라면 값 파문까지 음식에 정치를 담은 내용들이 들어갔다. 반면 '정치의 음식'은 871억 원이 들어갔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영부인의 '한식 세계화 사업'부터, 무상급식에 반대함으로써 아이들 밥그릇에 '가난의 주홍글씨'를 붙이려고 했던 오세훈과 홍준표까지, 정치에 음식을 이용한 이야기들이 나열된다. 돈이 들어 있는 사과박스도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배반의 음식'은 정치인에게 던지는 응징인 계란, 정경유착을 상징한 사카린 밀수 사건, 김영삼 대통령의 칼국수, 북한 김정은의 에멘탈 치즈까지, 현실을 무시한 정치인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지막으로 '화합의 음식'은 훈훈하다.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 떼 방북은 지금 읽어도 혁신적이고 감사한 사건이었는데, 그때와 지금 북한의 식량 사정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전북 구례 운조루의 쌀뒤주와 경주 최 부잣집의 베풂은 여전히 회자되며, 붕당 정치를 없애고자 한 탕평채, 조화와 상생의 비빔밥은 지금도 본받아야 할 덕목이다.

내가 원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음식이 정치다>를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가 음식 스토리텔링이라는 독특한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전주대학교 식품산업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시니 그 내공에서 나온 것일 테다.

앞으로 국민과 나라를 모두 살리는 음식과 정치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나오키상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은 일본의 소설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기려 만들어졌다. 1935년에 시작되었고, 1년에 두 번, 순문학을 하는 신인이나 무명 작가들에게 주어진다. 같은 해에 시작된 나오키상은 대중문학을 하는 신진 작가들에게 주어진다.

<혼자 있기 좋은 날>(2015, 아오야마 나나에 지음, 예문사 펴냄)은 2007년에 제136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품이다. 작가가 1983년생이니, 겨우 24살에 이렇게 큰 상을 받은 것이다. 2012년부터는 군조신인문학상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니, 젊은 나이에 문학성을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혼자 있기 좋은 날>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은 이제 곧 스무 살이 되는 아가씨, 미타 지즈다. 고등학교 선생님인 엄마가 중국으로 교환 유학을 가게 되면서, 엄마가 '숙모님'이라고 부르는 오기노 긴코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문패도 없는 작은 집,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집, 키운 고양이들의 사진 스물세 장이 벽에 걸려 있는 집. 할머니 혼자 사는 집답게, 스무 살 아가씨 미타에게는 너무나 느리고 너무나 조용하고 너무나 고즈넉하다. 여기로 이사 오고서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아르바이트하며 만난 후지타와도 잠깐 사귀었다 헤어진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감 부족은 그들의 소소한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 드러나고, 긴코 할머니와 엄마에 대한 적대심으로 구현된다. 그러나 미타가 물건을 훔치는 것을 알면서도 아는척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여준 할머니 덕분에, 그리고 중국 유학에서 만난 중국인과 결혼하기로 한 엄마에게서 독립하기로 마음먹은 덕분에 미타는 훌쩍 자란다. 이제는 남자 친구에게 기대지 않고도, 엄마의 보호 없이도 혼자서 설 수 있다.

이 책은 작고, 한 페이지에 글이 20줄 들어가 있는데도 이 '혼자 있기 좋은 날'은 170쪽밖에 안 된다. 격정적인 사건도 없고, 미타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서 자칫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상을 돌아보자. 가슴 떨리는 사건은 그렇게 많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지 않은가. 이 작품이 받은 '아쿠타가와상 심사평'이 책 맨 앞에 실려 있는데, '젊은 여성의 허무감에 깃든 고독', '조금 늘어지는 듯한 소설의 흐름이 청춘의 나른한 생명력을 표현하는 리듬으로 변한다'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와서 공감하게 된다. 방학과도 같은, 자궁 속과도 같은 그 1년을 미타와 함께 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