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월든”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소로우나, 철학자 니체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랄프 왈도 에머슨이 자신의 여러 이론과 철학들을 집대성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주요 저서인 “경험”과 “운명”을 별도로 일독하지 않았다고 해도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전반적인 삶의 주장을 거의 알 수 있다고 보인다.

 

에머슨이 주장하고 있는 이른 바 “초절주의”란 무엇인가?

이름만으로는 그 실체를 짐작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중도에 입각한 자주적 삶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로우가 월든 호숫가에 집을 짓고 자연으로 돌아간 생활을 실천하고자 할 때 그 땅의 소유주였던 에머슨은 기꺼이 소로우에게 땅을 제공했으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데서 그가 주장하는 자연 철학의 일단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에머슨은 결코 자연 속에 묻혀 문명에 반하는 생활을 하는 것으로 삶이 실현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를 지향하면서 종교적으로도 모든 것을 포용하는 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종교는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후에 목회자의 삶을 그만두게 된 것도 많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함께,

인간은 신의 의지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끝없이 신의 의지에 반항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부과된 운명적이고 압제적 환경으로부터 벗어나 발전을 지향하게 된다는 그의 생각을 니체가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초기 미국 개척자들이 이룬 수많은 문명들이 사람들을 점점 물질 숭배로 흐르게 만드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자연주의를 주장하였지만, 예수와 석가, 그리고 동, 서양의 사상이 그의 초절주의를 싹 틔우게 한 자양분이 되었다.

 

우리가 에머슨을 읽을 때 절대 경계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에머슨의 초절주의를 일방적인 자연주의로 곡해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에머슨은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문명화보다는 그것이 초래할 물질숭배를 염려하고 있을 뿐 문명의 혜택이나 발전은 한 번도 거부하지 않았다.

따라서 에머슨은 인간들에게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지나친 물질주의나 지나친 정신주의 모두가 인간의 행복한 삶에 장애가 된다고 보고 있다.

정신과 물질이 적절한 형태로 균형을 유지할 때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월든 호숫가에서 행한 소로우의 자연으로의 귀의는 에머슨의 철학을 곡해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이 후로 에머슨의 철학이 수많은 오해를 받게 만든 원인 제공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러한 말을 남긴 것인가? “위대한 것은 오해받는 법이다”라고.

 

에머슨은 현재의 생활과 일을 충실히 수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잘 살아가는 것은, 균형을 잘 잡고 지금 여기, 지상의 삶에 충실한 것이며 “현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라고.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보고 귀에 낯익은 이야기 아닌가?

다시 한 번 음미해 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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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가을이 한창 익어가던 무렵이었던가?

이 책의 저자인 지그프리트 렌츠가 향년 88세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읽으며 마음이 바빠졌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징집, 탈영, 전쟁포로가 되기도 하였으며 전후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칭송받던 지그프리트 렌츠의 사망 기사는 아직 그의 작품을 일독하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이 책을 바로 주문하게 만들었다.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히틀러 집권 당시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억압 받는 예술가와 국가 권력과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일독하다 보면 한나 아렌트를 떠올리게 된다.

2차 대전 후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전범 재판을 참관하고 나서 쓴 <에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보고서에서 그가 언급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끔찍한 살인과 악행을 저지른 전범의 얼굴은 냉혹한 살인마나 광기에 물든 미치광이가 아니라 지나치게 평범한 우리 이웃의 중년 남성 얼굴을 하고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고 있음에 경악한 ‘악의 평범성’.

 

한나 아렌트가 전범 재판소에서 본 평범한 악의 얼굴을 이 작품 속에서 다시 발견하게 된다.

북독일 외딴 마을인 루크뷜 파출소장이었던 아버지가 미술 창작 금지 조치를 당한 친구 화가에게 이 금지령 준수 여부를 감시는 임무를 수행한 것을 두고 누가 비난할 수 있을 것인가?

 

화가가 자신의 신념대로 창작의 자유를 외치며 국가의 창작금지에 맞서 왔다면, 창작 금지 조치에 대한 엄격한 감시는 파출소장에게 부여된 임무였기 때문에 자신의 업무를 누구보다 더 충실하게 따랐을 뿐이지 않는가?

비록 스스로의 감옥에 빠져 종전 후까지도 창작금지 감시 업무를 지속하려는 파출소장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전범 아이히만의 얼굴을 떠올려 보지만 그것이 선인지 악인지의 판단은 쉽지 않다.

 

그러한 마음은 미술 창작 금지를 당한 당사자인 화가 난젠의 말을 통해서도 일부 발견된다.

어떠한 바람도 풍차를 돌릴 순 없을거야. 막스, 분노조차도. (...) 기다려보자구. 날개가 윙윙 돌아갈 날이 꼭 올 거야.[1권. 42p]

 

파출소장의 아들이기도 한 주인공 지기는 이에 대해 마지막까지 물음을 던지지만 그 답변은 화가에게서도, 아버지에게서도 받지 못한다.

그 해답은 그 물음을 듣는 모든 사람이 각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중도에 방향을 바꾸어 더 나은 것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 어째서 그들은 맡겨진 임무 수행에 그다지도 광잉충성한 걸일까?[2권, 305p]

 

나치 독일의 역사를 더듬다 보면 우리의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인들은 나치의 과오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지속적으로 교육해 왔다.

이 소설 또한 그러한 반성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에 비해 일제 강점기의 잔재 청산과 올바른 역사관 정립에도 성공하지 못한 채 경제성장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위해 어물쩍 덮어버리고 일본의 과거사 인식을 비난하고 반성만을 촉구하는 현실을 지켜볼 때는 가슴 아플 때가 있다.

독일의 지속적이며 엄격한 반성과 교육을 보면서 우리의 대응이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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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작가라고 불리는 미셀 투르니에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데뷔작인 소설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통해서였다.

그 소설은 실망 그 자체였다.

“로빈슨 크루소”의 제목만 바꾼 프랑스 버전 “로빈슨 크루소”라고나 할까?

그것을 소설이라고 출간한 사람이나 그 소설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을 수상한 프랑스 문학계 역시 이해하지 못할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소설도 이미 여러 나라에서 출간된 예가 많으며 창작성과 작품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게 되었지만 나의 무지는 아직도 그것을 온전히 수긍하기는 힘들다.

 

미셀 투르니에는 파리 근교 작은 마을에서 공동묘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교회의 부속 사제관에서 독신으로 살고 있다.

어느 매체에서 김화영이 이 “예찬”을 언급하면서 미셀 투르니에를 극찬하하는 것을 보고 (그 때는 김화영이 그 책을 번역했다는 것을 미처 알지못했기 때문에) 저 정도의 극찬이면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다시 책을 펼치게 되었다.

독서에 있어서는 역시 귀가 얇아야 좋구나 하는 점을 또 한 번 느꼈다.

 

제목 그대로 저자의 시선에 들어온 다양한 사물과 관심사에 대한 “예찬”이다.

그가 바라보고 예찬하는 대상은 생활에서 보고 듣는 거의 모든 것을 망라한다.

미셀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을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것은 저래서 좋다. 또 그것을 그러함으로 또한 좋다.’는 식으로 ‘예찬’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스스로는 왕성한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무릎을 탁 치며 어쩜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해와 관심의 다양함과 쾌활하면서도 유머 넘치는 글은 상쾌한 바람과 같다.

 

동물들의 걷는 모습인 측대보와 대각보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부터 프랑스의 특징인 ‘신선함’의 개념과 한 잔의 맹물 속에 담긴 본질적인 싱거움의 진수를 말하다가도 평생 한 모금의 물도 마시지 않고 살아간다는 포도주의 산지인 고향 이야기로 넘나든다.

대홍수 때 노아는 방주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나 산타클로스의 원형이 되었다는 네 번째 동방박사의 가정은 얼마나 신선한가?

또한 연극 중에서 가장 가슴을 찢는 슬픈 사랑의 장면은 수전노가 돈을 넣어둔 상자를 도둑 맞고 괴로워 아우성치는 장면이라는 말은 어떤가?

 

렘브란트보다 코끼리가 보기에 낫다는 이유로 미술관과 동물원 중에서 동물원을 구경하기로 했다는 류의 미셀의 유머는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그러한 유머 속에 담긴 삶의 지혜가 우리의 시선을 자꾸만 멈추게 만든다.

그것은 오래 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써 두었을 만큼 초연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생긴 넉넉한 여유에서 오는 성찰일 것이다.

삶에 있어 가장 진지한 순간들이란 바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때이므로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할 때 얻어지는 것이라는 말이나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준다는 말 등은 쉽게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니다.

 

이러한 투르니에의 엄청난 호기심과 깊은 성찰을 김화영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표현한다.

투르니에는 언어의 숲속에서 홀린 아이처럼 산다.

미셀투르니에, 예찬, 네번째동방박사, 방드르디태평양의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