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와 운동량의 곱은 플랑크의 작용양자보다는 더 작아질 수 없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한 줄로 요약한 말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우리에게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한 학자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천재 물리학자로서 나치의 핵 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이른 바 ‘우라늄클럽’의 핵심 멤버였다.

이 책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여러 여정들과 함께 나치 치하에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스스로의 변론서이기도 하다.

동료들의 수많은 권유에도 미국으로 망명하기를 거부하고 결국 나치의 핵개발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것은 과학자로서의 떳떳한 신념에서 나온 행동이지만 자신에게 보내는 의문의 시선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인간적인 고뇌일 것이다.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끝내 독일을 떠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이 공포의 시대는 끝나면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 땅에 머물러 먼 미래를 위해서 무언가 준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강요되는 타협 때문에 뒤에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며, 때에 따라서는 법의 제재를 받는 일도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이 일은 꼭 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

하이젠베르크는 종전 후에도 독일의 핵 재무장에 대해 반대하며 이른 바 “괴팅엔 선언”의 주역으로 나서기도 했다.

 

그는 과학자로서 현실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기도 한다.

나치의 비밀 프로젝트를 자신의 연구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고자 했으며

핵무기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막대한 개발 비용 때문에 개발되기 힘들 것이며 그 전에 전쟁이 히틀러의 패배로 끝날 것이라는 조금은 현실 인식이 부족하고 순진성까지 발견하게 된다.

 

하이젠베르크라는 인물은 물론 원자물리학이라는 분야도 전혀 생소하여 여러 개념들과 난해한 명제들은 이해가 불가능했고 한 페이지를 넘기기에도 벅차 도중에 덮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너무나 힘겨워 머리를 식힐 겸 다른 소설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멕시코 출신 작가인 호르헤 볼피의 소설 “클링조르를 찾아서”였다.

그런데 문제에 대한 답이 있었다.

 

이 소설이 바로 하이젠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나치 독일의 핵 개발 비밀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것이다.

나치 독일과 미국이 핵 개발을 위해 극한의 경쟁을 해 오던 당시 하이젠베르크의 행적을 생생히 묘사되어 있었고 이 책 속 저자의 진술과도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였다.

그 소설을 읽고 비로소 하이젠베르크라는 인물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학생들이 역사 속 인물을 역사책이 아니라 역사 만화를 보면서 쉽게 이해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저자는 핵개발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어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며 세계대전이 종말을 고하는 것을 보며 말한다.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이 원칙이 항상 반복해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다는 역사의 진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고.

 

그는 마지막까지 격랑의 시대를 온몸으로 감당해 왔지만 시대를 주체적으로 변형시킬 수 없었던 아쉬움보다는 학문을 발전시켜 나가며 끊임없이 전진할 인류에 대한 과학자다운 확신에 차 있다.

“사람은 항상 커다란 드라마 속의 관객이면서도 공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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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레타리아에게 떨어진 개인적. 사회적 재난은 모두 노동에 대한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본문 33p]

 

우리는 가끔 유명인사들의 가족사를 훔쳐보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저자 “폴 라파르그”는 가장 합당한 인물 중의 한사람이다.

“칼 마르크스”의 사위,

이보다 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인물이 어디 있겠는가?

 

1942년 쿠바에서 출생하여 의학 공부를 위해 파리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갔다가 칼 마르크스의 딸 라우라와 결혼하며 평생을 장인인 마르크스의 추종자로 살아갔다.

라파르그는 프루동주의적 배경과 자유주의적 성향, 그리고 혈기 방장함 그리고 자율성 등은 여러 면에서 바쿠닌과 아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마르크스의 열렬한 전도사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숙명이었다 할 것이다.

 

이제는 라파르그 고유의 개념으로 정착되어 있는 “게으를 수 있는 권리”는 프랑스 생펠라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1883년에 씌어졌다.

자본주의에 맞선 프롤레타리아들에게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엉뚱한 이론을 설파했다.

프롤레타리아들은 자본가들에게 끊임없이 노동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스스로를 노동의 올가미 속에 옭아매고 노동에 중독되었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그러한 노동 중독에 이르게 된 배경에는 종교적인 역할도 한 몫을 했다.

칼뱅주의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의 여러 종파는 노동하여 부를 쌓는 것을 신의 은총의 표현으로 가르쳐 오지 않았는가?

 

라파르그는 노동자들 스스로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신성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동 시간을 최대한 줄이고 나머지 낮과 밤을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노동은 하루 최대 세 시간으로 제한하고 관리할 때만 유용하며 노동은 단지 게으름의 쾌락을 위한 양념에 불과하다고.

 

라파르그의 이와 같은 노동 시간 축소와 여가의 선용이 사회적 생산성을 높였다는 것은 많은 기업과 국가에서 직접 적용하여 입증된 사항이며 이를 위해 기계들의 새로운 힘을 이용하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라파르그의 주장이 노동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불순한 외침이라는 일부의 주장과 노동에 대한 경멸이라는 주로 읽힐 수 있다는 우려 역시 또 다른 선동에 다름 아니다.

 

1세기도 훨씬 전에 주장한 라파르그의 ‘게으를 수 있는 권리’ 개념이 21세기 지금에 와서도 공감이 더 커져가는 것은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고 오히려 심화되어 가는 노동현실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백마가 질주하는 것을 문틈 사이로 얼핏 바라보는 정도의 시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일본의 속담 같이 짧은 우리의 삶을 언제까지나 노동 속에 묻어버릴 것인가?

 

이런 철지난 광고 카피는 어떤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빵에 대한 걱정은 다시 돌아온 다음에 생각하면 될 일, 왜 그런 걱정을 앞당겨 하여 오늘도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가?

고학력 실업이라는 우리의 또다른 현실을 생각해서라도 더욱 여가를 즐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마련된 휴식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이며 줄어든 시간은 더 많은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테니까.

 

자, 이제 일손을 멈추고 구부린 어깨를 펴고 저 높은 하늘을 한 번 쳐다보자.

예수님도 말하지 않았던가.

하늘을 나는 새와 들에 핀 꽃을 바라보라고(마태복음 6장 26,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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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작가 중 하루키만큼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작가도 드물다.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독자들 뿐 아니라 출판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느낀다.

하루키가 가진 파괴력은 다른 출판사의 매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일 것이다.

가령, 야심찬 기획으로 신간을 출간했는데 하루키의 신작이 동시에 출간되는 바람에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묻혀버린다든지 하는 사태가 올 수도 있으니.

 

이번만 해도 그러한 정황은 곳곳에서 감지되었다.

그의 작품이 나오기 한참 전부터 그와 관련된 가십이 언론을 통해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 소설집 속의 단편 중 하나인 ‘드라이브 마이 카’를 일본에서 출간하였을 때,

홋카이도의 한 마을인 ‘나카톤베쓰’라는 마을에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불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버린다고 썼다가 해당 마을 주민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주민들에게 사과를 하고 다른 지명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작품에는 ‘나카톤베쓰’를 ‘가미주니타키초’라는 지명으로 바꾸었지만 이 지명은 이 사태의 영향으로 하루키가 창작해 낸 가상의 지명이라 짐작된다.

 

이 작품 “여자 없는 남자들”과 관련하여 눈에 띄는 기사가 하나 더 있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 이르렀는데도 하루키는 아직도 작품성보다 여자와 연애라는 진부한 스토리만 주구장창 하며 인기를 얻고자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기사였다.

국내 작가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기사이며 작품 소재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작가를 폄하하는 기사를 쓴 용기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상실의 시대”를 시작으로 하루키의 모든 작품에는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 있다.

사랑과 이별 그리고 죽음을 소재로 하며 주인공은 독신남인 프리랜스로서 음식을 잘 만드는 미식가에다 째즈를 좋아한다.

하루키 자신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그려놓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독신남만 빼고.

 

이 소설집에 담겨 있는 일곱 편의 작품들도 큰 틀에서 그런 구조를 벗어나지 않았다.

“상실의 시대”로 대표되는 하루키풍의 소설이 주류를 이루며 남녀의 만남과 이별, 죽음 등의 옛 기억을 회상하는 소설이다.

‘기노’라는 작품만이 예외적으로 “태엽감는 새”와 흡사한 구조를 가진 작품이었다.

 

이 소설의 제목으로 쓴 ‘여자 없는 남자들’은 맨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다.

모든 작가들은 제일 중요시 하는 작품을 대개 제목으로 삼기 마련이다.

저자가 말하는 ‘여자 없는 남자들’은 어떤 의미일까?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한 여자를 깊이 사랑하고, 그 후 그녀가 어딘가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다.

(...) 그리고 한번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되어버리면 그 고독의 빛은 당신 몸 깊이 배어든다.

(...) 설령 그 후에 다른 새로운 여자와 맺어진다 해도, 그리고 그녀가 아무리 멋진 여자라고 해도(...)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그러한 남자들에 대해서 한없는 연민의 정을 보낸다.

여자 없는 남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그것 여자 없는 남자들이 아니고서는 이해하지 못한다.

너무나 통속적이고 진부한 스토리지만 우리네 삶이 원래 한없이 통속적이지 않은가?

하루키는 이러한 통속적인 소재인 사랑과 이별 속에 삶의 본질이 있다고 보는 작가이다.

 

달을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보며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할 지점은 손과 달 중 어디일까?

그 통속적인 소재를 가지고 하루키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가 진정 무엇인지를 생각해 봄이 우선 아닌가.

 

무라카미하루키, 여자없는남자들, 하루키단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