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김훈의 글과 문체를 좋아한다.
그의 책이 나오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듯이 읽어왔다.
역설적이게도 그가 쓴 책에 대한 감상은 거의 적어보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글에 대한 경외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감상을 쓴 이후 두 번째 감상을 적어보는 책이다.
두 권 모두 해외여행을 갈 때 들고 갔던 책이었다는 우연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이번에 가지고 나갔던 “자전거 여행 1”은 초판본이었는데 여행 도중 잃어버려서 아쉬운 대로 재출간된 책을 구해서 마저 읽은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다.
김훈의 글은 겨울 나목을 닮아 있다.
싱그런 이파리와 가는 줄기는 모두 훑어버리고 헐벗은 뼈대만이 앙상하게 남은 겨울나무.
김정희의 세한도 속의 나무가 떠오르게 만든다.
소나무인지 잣나무인지 알 길은 없지만 오직 존재 자체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그 세한도 속의 헐벗은 나무를 김훈의 문체가 닮아 있지 않는가?
김훈은 사실을 서술할 뿐 묘사하지는 않는다.
주어와 서술어로 이루어진 단문으로 모든 사물을 서술하는 김훈 글쓰기 기준은 모든 글에 적용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칼의 노래”의 유명한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이다.
김훈의 그러한 앙상한 글쓰기는 오랫동안 신문기자로서 생활해온 데서 영향 받았을 것이다.
그의 글은 친철하거나 다감하지 않다.
독자를 위한 배려 같은 것은 애초에 없었기에 그런 기대 자체가 무리이다.
그저 사실 자체를 묵묵히 서술할 따름이다.
하지만 사물을 따라가는 그의 시선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물들은 그 시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움찔거리며 멈칫 물러난다.
김훈은 그 물러나는 사물들의 뒷걸음질에도 일말의 틈을 주지 않고 끊임없이 몰아쳐 지평선과 수평선 너머까지 쫓아가 기어이 굴복시키고자 하는 강포함마저 느껴진다.
그러한 끈질긴 시선으로 끄집어 낸 단문들은 독자들을 불편하고 껄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그의 문체는 소설과 수필, 역사와 지금을 가리지 않고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다 보니
수필에 약간의 줄거리만 첨가하면 소설이 되고 소설의 줄거리만 걸러내면 수필이 될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이것이 김훈의 또 다른 한계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란다.
베르베르의 모든 글이 “개미”로 귀착되는 것과 같이 김훈의 모든 글이 “칼의 노래”에 닿아 있다고 하면 억지스런 설정인가?
“자전거 여행1”은 2,000년 8월에, “자전거 여행2”는 2,004년 9월에 출간된 것을 목차를 수정하여 재출간하였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김훈을 싣고 온 산하를 달렸던 자전거 ‘풍륜’이 있었다.
‘풍륜’은 이미 노쇠하여 이름 없는 고철로 사라져 갔지만 그가 온 몸을 던져 주인을 싣고 산하를 누볐던 자취는 이 책 속에서 영원히 남아 있다.
자전거로 여행 후 쓴 여행기지만 김훈의 문체 덕분에 일반 여행기와는 전혀 형태와 맥락을 달리하는 새로운 수필이 탄생하였다.
김훈의 문체를 부러워할수록 내게 맞는 문체와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조급한 마음은 깊어만 간다.
그런 나의 조급함을 김훈은 이렇게 말했던가?
글은 천부적 재능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인내를 가진 지속성으로 쓰는 것이라고.
하루에 다섯 장이라도 매일 몇 년을 쓰다보면 써진다고.
글은 오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며, 써지는 것도 아니고 기어이 써야 써지는 것이라고.
글은 소금이 아니므로 ‘오는’ 것이 아니며, 글에는 손이 없으므로 ‘써지는’ 것이 아니라 기어이 내가 ‘써야’ 비로소 써지는 것임은 알겠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는 그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쓰고 싶지만 써지지 않는 글을 쓰기 위해서 오늘도 이렇게 자판을 두드려 보지만 아직 이것은 글이 아니라 글처럼 보이는 그 무엇이니.
김훈,
칼의노래,
자전거여행1,
자전거여행,
한강자전거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