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토요일은 산악회 정기 등산에 참석하기로 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3년 가까이 참석을 못했다가 모처럼 참석하기로 한 산행이다.

 

신고 있던 등산화가 낡아 얼마 번 새 등산화를 구입했다.

등산화는 미리 길을 좀 들여야 한다고 해서 아침 출근길에 신고 나오는데

그동안 신었던 등산화가 눈에 띄었다.

그 낡고 오래된 등산화를 보니 문득 묘한 감회가...

 

돌아보니,

그 등산화는 군대 제대 후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구입 했으니 25년이 되었다.

25년이라니!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한 가지 물건을 사용하면 주구장창 쓰는 성격이라

그렇게 되고 말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이상할 일도 아니다.

등산화라는 것이 일반 신발처럼 매일 신는 것도 아니고 매주 마다 등산을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보면 25년 동안 한 가지 등산화를 사용했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니요,

요즘 신발들은 낡아서 사용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증이 나서 바꾸는 것이 다반사니 그것이 이상할 일만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내 삶의 절반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함께 한 그 등산화는 이제 바닥은 닳고 낡을 대로 낡아 버려질 처지가 되었다.

 

한 때,

무엇으로도 해소할 길이 없었던 세상에 대한 원망과 울분을 혼자 산으로 쏘아 다니며 토해냈던 적지 않은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나를 신기우고 수많은 산들을 다니며 내 곁을 지켜 주었던 그 등산화는 주인의 모든 원망과 분노들을 고스란히 혼자 들어주고 묵묵히 감당해 주었다.

 

온 몸을 바쳐 주인에게 봉사하고 이제는 낡고 병든 몸이 되어 스러져 가야 할 운명에 처했지만 아무런 원망도 없이 저렇게 담담하게 있는 등산화를 보니 마음 한켠에서 울컥하는 감회가 솟아오름을 억제할 수 없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을 보면,

그 책을 쓰기 위해 그를 태우고 온 산하를 누볐던 ‘풍륜’이라는 자전거는 이미 고철로 폐기되어 사라져 버렸지만 그 흔적만은 책 속에 오롯이 남아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자전거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나 또한,

그 낡은 등산화는 이제 사라져 가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내 곁을 함께 지켜주었던 그에 대한 고마움은 차마 잊지 못하여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새로 구입한 등산화가 너를 대신해서 앞으로 나의 25년을 또 지켜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부디 잘 가시라.

많이 고맙고 감사했다.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너의 큰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니

내 오랫동안 그 고마움 잊지 않고 마음에 새기고 있으마.

 

25년을 나와 함께 한 오랜 친구여, 부디 평안하게 영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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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박정희’란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가난’을 벗어나게 만든 구원자의 모습과 악랄한 독재자의 이미지라는 전혀 상반된 두 이미지 중에서 어떤 것이 박정희의 참 모습일까?

 

우리 사회에서 먹고 살기 힘들 때마다 어김없이 몰려오는 박정희 향수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후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다.

자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잘 살게 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박정희 신드롬을 더욱더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박정희 신드롬 이면에 존재하는 박정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박정희의 얼굴을 화장까지 다 지우고 민낯 그대로를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이 책의 부제를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시대’라고 붙여 놓았다.

그가 박정희와 유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만주군 출신인 태생적 한계 때문에 눈에 가시 같았던 독립군 출신 장준하의 실족사 역시 박정희에게 의심의 시선을 돌린다.

사법살인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민청학련 사건과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건들은 박정희의 암묵적 동의와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 것라는 상당한 적의를 보이기까지 한다.

 

박정희의 ‘유신’은 그가 숭모해 온 일본 제국주의와 메이지 유신을 그대로 따왔으며 10.26의 서곡으로 이름하는 YH 사건과 부마항쟁 등과 함께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암투와 갈등이 폭발하여 김재규의 10.26 대통령 시해로 이어졌으며 광주 민주화운동 학살 사건 역시도 박정희가 길러낸 군부 적장자들에서 비롯된 만행이기 때문에 그 뿌리는 박정희에게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저자는 특이한 주장 한 가지를 제기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날인 10월 26일은 조선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의 총에 맞은 날과 같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이토의 제삿날과 군사독재의 상징인 박정희의 제삿날이 같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이 말 속에서 숨어 있는 의도는 자명해 보인다.

그는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로 상징되는 보수우익 의사의 계보 마지막 자리에 김재규의 이름을 올리고자 한다.

 

저자는 ‘박근혜 후보에게 드리는 공개장’이란 글에서

박근혜 후보가 5.16과 유신에 대한 시비를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하였던 말에 대해

당사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고 국민들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정희의 평가를 아직은 역사에 맡겨 놓아야 한다는 말은 우리 사회에서 상당부분 수용되고 있다고 보인다.

아직은 박정희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기에는 그 시간의 무게가 너무 짧다.

우리가 그를 지금 당장 평가하고 재단해야할 절박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진실을 알리고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만 자칫 서두르다 보면 또 다른 왜곡을 가져올 것을 우려한다.

 

그런 측면에서 김재규를 보수 우익 의사의 마지막 계보로 올리고자 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으며 성급해 보인다는 생각도 우매한 독자의 개인적인 판단일 뿐인가?

 

역사는 아직 다 씌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 역사는 한 자씩 기억을 더듬고 있다.

역사는 항상 행복보다 불행에 더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이 안타까운 진실이지만.

 

박정희, 10월유신, 박정희신드롬, 박정희평가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철거민 정착촌에 들어갔다가 처음 빈민들의 생활을 경악한 눈으로 접한 후 거기 눌러앉아 12년을 살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던 저자가 현재까지 연구해 오고 있는 주제가 ‘빈곤’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새벽종 소리에 천형처럼 우리의 어깨를 누르고 있던 가난이 깜짝 놀라 물러선 이래 이제는 영원히 없어져 버린 줄 알았던 빈곤은,

IMF 때에 잠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하였으나 그 역시 일시적인 재해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소득 2만 달러를 구가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벌건 대낮에 ‘빈곤’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 자기잡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때 우리 사회가 완전히 떠나보냈다고 믿었던 빈곤이란 놈이 슬그머니 우리 앞에 돌아와 있다(...) 그것도 예전과는 다른 낯선 모습과 아주 완강한 태도로[본문 5P]

이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빈곤’이라는 문제의식의 발로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빈곤’의 오랜 역사로부터 교육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부모님들의 몸부림과 결국 빈곤을 벗어나지 못해 노숙인으로 전락한 사람들,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각종 ‘푸어’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빈곤에 대한 모습들과 그들의 정치적 성향과 사회인식까지도 살펴본다.

 

그러한 모색 속에서 저자의 ‘빈곤’에 대한 해법은 우리 사회의 빈곤 인식과 정면충돌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빈곤’의 원인을 당사자들이 게으르고 나태함 때문으로 돌리고 이러한 개인적 책임론은 국가정책으로 확장되어 나타나기에 이른다.

 

빈곤 문제는 개인의 무능과 나태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정부의 책무를 망각한 채 그저 시혜적인 요식행위로 일관하고 있는 오늘날, 제대로 된 정책과 의지가 있기라도 한 것이냐고 따져묻는다.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현재의 정책 변화가 없는 한 우리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음을 함께 말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빈곤 문제를 다루면서 미국의 빈곤 문제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 경제대국이면서도 빈곤이 확대되고 불평등이 심화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은, 유럽 복지와 달리 개인과 기업에게 복지의 상당부분을 책임지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러한 미국의 복지와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미국 이야기를 꺼낸 것은 불평등의 골을 깊게 하는 은밀한 메커니즘이 워낙 우리나라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본의 편에 가까이 서 왔던 역사 과정의 유사함과 늘 미국을 모델로 삼는 편향적 지식인 문화의 영향인 듯하다.[본문 261P]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은 미국을 추종해 왔으며 복지정책 역시 미국식 정책을 이어간다면 우리도 미국과 같이 빈곤층 증가와 불평등 심화가 지속되리라는 준엄한 경고를 내포하고 있다.

 

저자 역시 이 책 한 권으로 우리 사회의 인식이나 정책이 바뀌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는 작은 희망의 끈 하나만큼은 놓지 않으려 다음과 같은 루쉰의 말을 인용한다.

“본디 있다고도 또 없다고도 할 수 없는 희망은 마치 땅 위의 길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된다. 그리고 땅 위의 길은 생각의 길을 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희망은 늘 없는 듯 희미해 보이지만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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