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정만화를 보며 따라 그린 풍선처럼 부푼 드레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열리면 티비를 보며 스케치북을 한가득 그린 드레스 생각이 났다. 어릴 적에는 공주님처럼 예쁘고 우아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는 불편함을 넘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일 줄이야.
드레스를 부풀어 올린 보석과 자수를 가득한 아름다운 파니에는 가구를 넓게 만드는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애교였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3미터에 가까운 스커트 때문에 문을 통과할 때 옆으로 움직여야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크레놀린을 입은 여자는 드레스에 불이 붙어 끔찍한 화재 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넓은 스커트는 작은 장식품이나 가구는 쓸어버릴 수 있었다. 하늘하늘한 요정 같은 엠파이어 라인의 드레스가 유행할 때는 도통 감기가 낫지 않은 여자들이 폐렴으로 쓰러져갔다. 주름을 잡아 만든 러프는 꼭 화려한 접시에 얼굴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넓은 칼라 러프 때문에 50센티미터나 되는 스푼으로 수프를 먹었다는 한 프랑스여자의 사연이 등장한다.
비웃을까 싶다가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현대를 사는 우리들의 모습은 별 다를까 싶기도 하다. 킬힐을 고수하다가 족저근막염에 걸리고, 자연스럽게 생긴 종아리 근육이 보기 싫어 축소술을 받다가 제대로 서있기 힘들어졌다는 사연 쌍꺼풀수술 휴유증로 잠잘 때도 눈이 감기지 않거나 다양한 성형 부작용은 요즘 뉴스에 흔하게 등장하는 기사이다.
거대하고 꼬불거리는 컬이 들어간 가발이 남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하이힐을 처음 신기 시작한 루이 14세, 발을 기형으로 만든 중국의 전족, 생으로 이를 뽑아 심던 사고 팔던 일화들을 보면 다르게 보이도록 하려는 개인의 노력들과 조금 더 높은 기준에 닿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이 눈물겹다. 유행이라는 것이 그것에 휩싸인 사람들의 이성을 어떻게 마비시키는가 하는 것이 흥미롭기도 하고. 아마도 여자들의 신발장을 보면 신발이 겹쳐 쌓여있을 정도의 갯수를 갖고 있지만 여전히 신을 게 없다고 투덜거리는 모습에서 남자들은 비슷한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드레스와 신발, 모자와 악세서리, 모피 등 흥미로운 패션 아이템들과 화장과 코르셋, 가발, 문신 등에서 그 시대상이 엿보인다. 꽤 두껍지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것은 풍부한 사진과 그림 자료 덕분이다. 이미지를 통해 패션의 과장법과 화려함의 정도가 한 눈에 보인다. 패션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좋은 자료집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