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물건을 내려놓고, 그곳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집어넣는 배낭을 싸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전엔 꼭 필요하다고 생각됐던 여행 물품이 뭐 사실 아주 필요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끊임없이 집착하며, "이것 아니면 절대로 안 돼!" 하는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가치관의 작은 변화가, 내 관심사를, 내 중요했던 일을 한순간에 바꾸는 걸 배낭을 싸는 사소한 과정에서 깨달았다. 세상엔 모든 것이 중요하고, 그리고 또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

                                                                            - p. 29

 

 

여행을 아주 좋아한다. 한 때는 여행에 대한 갈망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오롯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 낯선 곳에서 겪게 되는 결국 혼자 풀어내야 하는 문제들이 좋다. 여행을 혼자 해내는 내가 자랑스러워서, 삶에 치일 때마다 더욱 여행을 갈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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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하게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렴풋하게 내가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바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라고 정리해보지만 '그냥 좋다. 왜 좋은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그 감정까지도 좋다.'라고 하는 게 가장 정확한 답일 것이다. 마치 숙제처럼 주기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편인데도,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무작정 여행을 떠나지 못할 때는 대리만족으로 여행 에세이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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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여행 에세이를 꽤 많이 읽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이제껏 읽었던 수 많은 여행 에세이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고, 경솔한 생각이었다. 지금껏 내가 읽었던 여행 에세이는 대부분 자신의 인생을 재조명하기 위한 목표로 시작된 경우였다. 혹은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여행을 가게 되거나, 마치 부름이라도 받은 것처럼 무작정 목적지를 향해 가야겠다고 결심으로 시작된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한 여행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 또한 내가 그것으로 인해 얻게 되는 것들을 위한 여행이지만, 여행의 목적 자체가 다르니 여행을 바라보는 관점도 짐을 챙기는 방법도 다르다. 그것이 내게는 참으로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특히 나는 오롯하게 나만을 위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라, 많은 사람들의 시샘의 다른 모양인 걱정을 들으면서도 대차게 떠나는 그녀가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나의 여행 스타일은 땅 밟기 혹은 그 곳 유적지에서의 기념사진을 찍는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눈물 흘리는 것은 지난 남아메리리카에서의 이과수 폭포, 티티카카 호수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래서일까. 그곳 사람들, 내가 그곳을 통해 깊은 감동을 느낀 보답으로 그곳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 p. 25

 

 

그녀가 그곳에서 겪었다던 많은 일들은 여행을 한 번이라도 다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것들이다. 벼룩에게 뜯겨서 며칠을 고생했다는 이야기나, 현실적으로 당장 필요한 물품이 여행에서는 바로 얻을 수 없어서 난처하는 점 또한 여행을 다녀본 사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가로운 해변가에서 얻은 편안함이나, 절경을 바라보며 느낀 경이로움, 어려운 환경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안도했던 이기적인 마음들을 다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은 정말 멋져서, 내게는 너무 어렵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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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여행을 좋아하고, 또 계속해서 여행을 다닐 사람이라고 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더 어렵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나도 그녀처럼 나를 놓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한 여행이 나만을 위한 여행보다 좀 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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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세이 답지 않게, 이 책은 읽는 내내 나를 설레게 하는 게 아니라 부끄럽게 하고,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한 줄은 나를 울렸다. "심장 두근대는 일, 그 일 찾으면서 천천히, 그러나 올곧게 한번 가고 싶다." 이 책은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책이면서 동시에 자기 반성을 하게 만든 책이다. ​혹시 나처럼 그저 설레고만 싶어서 이 책을 집었다면,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뒤통수를 맞게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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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꿈을 접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현실과 소망의 불일치만 보고, 성공의 기회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현실적인 기회가 있다고 보는 사람, 예를 들어 젊거나, 잘생겼거나, 유명 배우를 아버지로 두었거나 하는 경우에는 꿈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문제는 성공의 개연성이 아예 없다고 보거나 현실과 상상을 대조하지 않는 경우이다. 아예 시도조차 안 하거나, 대책 없는 행동주의로 나아갈 테니 말이다.

                                                                          - p. 174

 

 

나에게는 어릴 적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꿈이 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 꿈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항상 있었다. 하지만 꿈을 접었거나, 포기한 것은 아니다. 사실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되어 시도조차 하지 못한 상황이지만,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시도할 것이라는 결심은 여전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꿨던 그 꿈을 왜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어떤 때는 그 꿈이 너무 허무맹랑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때는 꽤 오랜시간 간직한 창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실패감에 빠지는 것이 싫어서, 살면서 생기는 미미한 꿈을 이루면 성공 경험을 쌓는 것도 참 좋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꿈을 저버리는 내가 한심스러워 땅끝으로 사라지고 싶기도 하다.

 

그럼 나는 정말 왜 꿈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바라만 보는 것일까? 스스로 판단했을 때 부족한 것이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인데, 그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젊은데 재능이 있거나, 잘생겼는데 재능이 있거나, 아버지가 유명 배우인데 재능이 있었다면 꿈을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치기 어린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비록 책이 주고자 하는 교훈이 너무 방대하여 책을 읽는 중간중간 흐름이 많이 깨진 것은 사실이지만, 각 장마다 꽤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 반성할 거리를 주기도 한다.

 

한동안 나는 잊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이루어질 꿈이니, 비록 남에게 나는 언젠가 그런 꿈을 이룬 인간이 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상상하는 미래는 꿈을 이룬 내 모습이라며 만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이 책의 이 부분을 읽고 내 꿈을 다시 깨웠다. 그저 머릿속으로만 계획하고, 상상하던 꿈을 이제 현실로 끄집어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그저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았으니, 난 여전히 꿈을 가진 인간이라 자만한 것이 부끄럽고, 너무 어리석다.

 

 

계속 목표 이야기를 하면 그 목표가 현실적 성격을 얻게 되고 우리는 이미 목표를 달성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것을 '상징적 목표 달성'이라고 부른다.

                                                                           - p.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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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나와 같은 꿈을 꾸던 멋진 선배가 떠오른다. 그 시절 선배가 아주 멋지고 빛나보였던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자신의 꿈에 자신 있었던 것. 자신의 목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목표에 가까워졌든 아니든 상관없다. 늦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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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꿈을 이루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결승점에 도달하지 못했더라도 선배는 분명 결승점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라면 분명히 끊임없이 자신이 꾸고 있던 그 꿈을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할 테니. 반면에 나는 시작점에서 한 발도 내딛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다. 내 꿈이 현실적인 성격을 가지려면 누군가에게는 말해야 한다. 나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이 책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크다. 꿈에 대해 주저하는 이가 있다면 가감 없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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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소유자가 잔인한 것은 그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오히려 그가 몸담고 있는 체제의 잘못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관습과 사회의 영향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모든 것으로부터, 채찍은 노예의 등을 후려치라고 있는 것이라고 배우기 때문에, 그는 성장해서도 자신의 견해를 바꾸기 쉽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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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론을 통해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섬마을에 약자들을 가두어놓고 노예로 부린다는 이야기였다. 21세기에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이런 뉴스가 나오는 걸 보면 지금 우리의 삶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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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잘못된 삶을 12년이나 살았던 한 남자가 있다.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올해 영화로 뽑힌 <노예 12년>의 실화 인물인 솔로몬 노섭. 뉴욕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그는 바이올린 연주자로 일하며 가난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일거리를 소개해주겠다는 사람들을 따랐다가 납치를 당해 하루 아침에 모든 걸 잃고 노예가 된다. 그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루이지애나로 끌려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며 노예의 삶을 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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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무조건 안 좋은 일만 있다면 어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불행한 삶으로 접어들었지만 처음에는 좋은 사람인 목사 윌리엄 포드를 만난다. ​하지만 곧 주인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존 티비츠라는 악덕한 이에게 넘겨지면서 끔찍한 나날이 시작된다. 무차별한 폭력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세월을 보내고, 그곳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곧 더 지독한 사람을 만나 매일을 폭력과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며 1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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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픽션이라고 해도 끔찍하다 여겨지는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니 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경악스럽기만 하다. 솔로몬 노섭의 삶은 정말 기구하기 그지없다. 억울하게 노예의 삶을 살게 된 것도 억울한데, 12년간 노예생활을 하면서 몇 차례나 죽을 위험에 처한다. 희망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삶에서도 인생이 살아갈 만한 데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죽음을 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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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인생이 노예로 끝날 것만 ​같았던 노섭은 좋은 백인의 도움을 받아 그의 고향에 자신의 소식을 전하는 데 성공한다. 12년 전 억울하게 납치되어 노예생활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헨리 B.노섭 선생에게 전해지면서 극적으로 솔로몬은 노예에서 벗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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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도 과거에는 노예제가 있었다. 돈으로 사람을 사서 노비로 삶을 살았던 사람들. 내가 겪어보지 않은 것이라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또 신분제가 당연시되었던 시절에 그런 것들은 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안일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도 심심찮게 노예에 대한 사건 사고가 나오는 걸 보면 많은 걸 생각해보게 된다. 생명의 존엄성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인간의 가치를 인간이 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많고 적고의 차이일 뿐 우리 모두는 사람의 가치를 비교하고, 나보다 조금 부족하다고 스스로 판단되면 그 위에 서서 권력을 누리려고 한다. 나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끔찍한 이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인간의 가치를 좀 더 깊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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