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아하는 것이 참 많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책을 좋아한다.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책이라는 그 형체도 좋고, 그 형체를 만든 종이도 좋고, 활자도 좋고, 책을 의자나 가방이라 칭해지지 않고 책이라고 이름지어진 것도 좋아한다. 편독은 심한 편이지만 책을 사는 행위 자체를 즐겨서 내 취향이 아닌 책을 구입하는 경우도 흔하다.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내가 요즘 책에 좀 시들해졌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메모를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한다. 넋을 잃은 상태로 몰입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 p. 142
요즘 사회에서는 너무 고루하다 여길지 몰라도 내 취미는 단연 책 읽기다. 발 빠른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는 요즘 시대에 유일하게 사회에서 인정(?)받으면서 할 수 있는 정적인 활동이 책 읽기라, 나는 여전히 서점과 도서관을 즐겨 찾는다.
그런데 요즘 책 읽는 행위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편독은 옛날부터 가지고 있던 고치고 싶은 습관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러려니 한다. 그런데 최근 나는 즐기는 책 읽기를 하지 못하고 습득하는 책 읽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책 읽는 것 자체가 즐겁지 않고, 부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을 읽고서 그저 약간 반성하고, 많이 감동하고, 두어 마디 습득했다면 최고라고 여겼는데, 언제부턴가 반성과 감동은 없고, 그저 뭔가를 배웠고 쌓았나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책 읽는 것이 즐거울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사나흘에 한 권 읽던 게 일주일에 한 권이 됐고, 그게 이주일, 한 달이 됐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는 내게, 이 책이 운명처럼 왔다.
문학적 취향의 보편성을 자랑하는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독서 범위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 p. 178
언제였는가. 우리가 책을 멀리하기 시작한 것이.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은 몇십 년 전부터 종종 들렸고, 현대 문물과 IT 업계가 발전하면 할수록 동네 서점은 사라졌다. 나비효과로 자연스럽게 과거 책에서 얻었던 교양과 지식은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다른 매체로 옮겨졌고, 그 매체는 점점 더 발전했다. 이 책 초반에 소개된 스티븐 잡스에 대한 일화가 이에 해당한다. 아이패드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현대인들이 점점 책을 멀리하면서부터 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됐고, 다른 문물에서는 얻을 수 없는 정보였다.
이 책은 무조건 책을 읽으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매체보다 책이 대단한 지적재산이니 필독하라고 충고하지 않는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진정 닥칠지 모르는 책의 실종을 막고자, 책을 회피하는 이들을 위해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저자는 내가 말하는 방법이 올바르니, 반드시 따라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항상 요란하고 시끄러운 환경에 처해 있어서 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정적의 텐트를 치라는 정도로 충고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주 오랜만에 고도로 집중하여 오랫동안 한 자리에 앉아 있었다. 중간중간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하는 이들의 사연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낯이 뜨거워지기도 했지만, 저자가 말하는 누가 건드려도 잘 알지 못하는 그 짜릿한 순간을 오랜만에 경험했다.
이 책은 나처럼 책을 예전처럼 다시 맛있게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저자가 책 첫 페이지에 쓴 말처럼 '독서에 늘 거부감을 가져왔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해온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이 책은 독서의 즐거움, 지혜, 기쁨 등을 느껴본 독자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비단 그들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만약 과거에 책을 맛있게 읽은 경험이 없더라도, 책이 맛있다는 것을 처음 경험하게 해 줄 책이다.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유혹하는 책 읽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