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텔레비전 광고에서 나왔던 문구가 생각난다. '집은 사는 것이 아닌, 사는 곳입니다.' 그렇다. 집은 우리가 잠을 자고, 먹고, 씻고, 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장소가 되려면 조건은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외부 위험한 것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고, 안전하고, 안락하면 된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불편함이 없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면적과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최고의 집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집이란 그런 안락함이나, 집 안에서 어떤 사람과 어떻게 사는지를 중요시하지 않고, 그저 외형적으로 멋스럽거나, 불필요하다 느껴질 정도로 넓고,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가 그 사람을 판단케 하는 재산 목록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시간의 단층에 담겨져 있는 수고와 노력과 기쁨과 슬픔들은 읽을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우리의 모든 감각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온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의 지층이 깊은 오래된 도시에 가면 감동을 받는다.
- p. 146
이미 몇 년 전부터 언론매체를 통해 접하게 되는 소식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집이 더 이상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이 되었다는 시대 흐름을 무시하지 않더라도, 내 집이 아닌 월세, 전셋집도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우리 나라에서 인식하는 집이라는 것이 문제가 많다는 것은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책은 부부 건축가가 함께 집필한 책이다. 건축을 그저 건물이나 산업디자인 같은 걸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영화, 음악, 공간, 인간까지 모두 아울러서 설명하였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건축이 그저 눈에 보이는 건물이나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건축하면서 그 건물 안에 녹아든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 애환과 기쁨까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의미와 깊은 역사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건축은 그저 단편적으로 건축물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기쁨이고, 슬픔이고, 고독이고, 상실감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부 건축가가 말하는 것처럼 오래된 건축물을 접했을 때, 경건해지고 숙연해지는 것은 우리도 모르는 새에 그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그저 다양한 건축물을 소개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2~3부를 읽다 보니 단순히 건축물을 설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삶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특히 건축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한 것은 아주 흥미로웠지만, 이따금씩 책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 같아 혼란스럽기도 했다.
언젠가 한적한 시골 마을에 소담하게 내 집을 짓고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어쩌면 아주 많은 현대인들이 이 같은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 집이 편리하고, 멋스럽고, 타인에게 그럴 듯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그 집 안에서 나는 그리 편안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 꿈을 이루게 되는 날, 내 집을 지어줬으면 하는 건축가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부 건축가다. 이 책에서도 빈번하게 강조한 이야기. 사람과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것을 아는 건축가라면 평생 살 집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언젠가 반드시 내가 그들을 만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